[시승기] 울부짖음과 편안함의 경계에서, 마세라티 그레칼레 트로페오

스포츠 SUV라고 해도 굳이 6기통이 필요하냐고 묻는다면, 적어도 마세라티에게 있어서는 절대적인 선택지라고 말해야 한다.

  • 기사입력 2024.03.18 10:44
  • 기자명 유일한 기자
마세라티 그레칼레 트로페오  사진 모터매거진 최재혁 기자
마세라티 그레칼레 트로페오  사진 모터매거진 최재혁 기자

마세라티에서 그동안 판매량을 이끌어오던 모델이 과연 무엇일까? 다른 모델들이 거론될 수도 있지만, 필자는 ‘르반떼’를 고르고 싶다. 당시 유명한 드라마에 등장해서 많은 이들을 사로잡았던 르반떼는 인기를 누리면서 국내에서도 꽤 많이 팔린 자동차가 됐다. 그 르반떼의 변화는 꽤 늦었지만, 그 대신이라고 할까, 새로운 SUV가 국내 땅을 밟았다. 바로 르반떼보다 크기를 하나 정도 더 줄인 ‘그레칼레’다. 이 그레칼레는 당시 르반떼의 인기를 되살려줄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다가온다.

마세라티 그레칼레 트로페오  사진 모터매거진 최재혁 기자
마세라티 그레칼레 트로페오  사진 모터매거진 최재혁 기자

좀 더 잘 만들어진 이탈리아의 감성

여기에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다. 모터매거진을 열심히 구독하신 독자 여러분들이라면 그레칼레 시승기를 이미 보셨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 그레칼레는 다르다. 이전까지는 4기통 엔진을 탑재한 평범한 버전이었고, 이번에는 마세라티가 자체 개발한 6기통 엔진 ‘네튜노’를 기반으로 하는 고성능 ‘트로페오(Trofeo)’ 버전이다. 르반떼까지만 해도 페라리에서 받은 엔진을 탑재하고 있었지만, 이 그레칼레부터는 마세라티 오리지널 엔진이 들어가는 것이다.

일단 탑승하기 전에 디자인부터 살펴보자. 길이만 5m가 넘었던 르반떼에 비하면 그레칼레는 확실히 짧다. 포르쉐 카이엔과 마칸의 차이라고 할까. 그렇다고 해도 그레칼레가 마칸보다 조금 더 길기 때문에, 공간에서는 조금 더 넉넉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눈매가 날카로웠던 르반떼에 비해 그레칼레의 눈매는 조금 부드럽게 다듬어졌다. 그럼에도 마세라티 특유의 그 넓은 그릴과 삼지창 엠블럼으로 인해 과격함이 조금은 살아있다.

라인은 돌출된 것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면으로 굴곡이 져 있다. 공격적인 형태를 추구한다면 날카롭게 다듬을 법도 한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 대신 범퍼 하단 그리고 디퓨저에 카본을 적용해 트로페오만의 고성능을 살리고 있다. 사각형으로 다듬은 머플러도 트로페오 전용이다. 뭐 이런 부분을 보지 않아도 이미 앞 펜더 측면에 트로페오 레터링이 들어가 있으니 그 위용은 바로 알 수 있을 것이다. 고성능에 어울리는 지름이 큰 브레이크 디스크와 대형 캘리퍼도 눈에 띈다.

마세라티 그레칼레 트로페오  사진 모터매거진 최재혁 기자
마세라티 그레칼레 트로페오  사진 모터매거진 최재혁 기자

실내는 붉은색 가죽의 향연이다. 물론 가죽 색상은 선택하기에 따라 달라지지만, 검은색은 너무 단정한 모습이라 기왕이면 붉은색을 선택할 것을 권하고 싶다. 일단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센터페시아를 가득 채우는 12.3인치 내비게이션 화면과 8.8인치 에어컨 화면. 변속기는 두 화면 중간에 버튼으로 나열되어 있다. 처음에는 에어컨 화면에서 에어컨만 조작하는 줄 알았는데, 나중에 보니 헤드램프 점등도 여기서 해결해야 하는 거였다. 그나마 와이퍼는 여기서 안 켜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마세라티 그레칼레 트로페오  사진 모터매거진 최재혁 기자
마세라티 그레칼레 트로페오  사진 모터매거진 최재혁 기자

시트는 탄탄하다. 아무래도 트로페오라서 그런 것도 있을 것이고, 생각보다 고성능을 발휘하니 그만큼 신체를 잘 잡아줘야 해서 그럴 것이다. 히팅은 물론 통풍 기능도 들어가 있으니 좋다고 해야 할까. 뒷좌석은 나름 편안하다. 앞 좌석보다 시트가 약간 높긴 해도 SUV인 만큼 머리 공간은 넉넉하다. 등받이는 필요시 접을 수 있고, 이 경우에는 트렁크가 꽤 넓어진다. 뭐 기본 트렁크 용량도 570ℓ로 꽤 넓기 때문에 뒷좌석까지 접을 일은 웬만하면 없을 것이다.

마세라티 그레칼레 트로페오  사진 모터매거진 최재혁 기자
마세라티 그레칼레 트로페오  사진 모터매거진 최재혁 기자

품위 있으면서도 날카로운 엔진

이제 스티어링 휠 왼쪽에 있는 스타트 버튼을 누르면, 6기통 엔진이 깨어난다. 과장된 음색 없이 자연스럽게 깨어나는 것도 꽤 놀라운데, 도심에서 도로 흐름에 맞추어 달리다 보면 다루기 어려운 출력이나 토크가 나오는 법이 없다. 물론 엔진 회전을 높이지 않아서 그럴 수도 있지만, 이러한 고성능 엔진들이 저회전에서 토크가 나오지 않았던 과거를 생각해 보면 놀라운 발전이라고도 할 수 있다. 기본 주행 모드는 GT. 컴포트로 맞추면 더 편해진다.

이 엔진은 네튜노 기반인데, MC20에서는 드라이 섬프 방식을 사용하지만 그레칼레로 오면서 웻 섬프 방식으로 바뀌었다. 게다가 출력도 낮아져서 MC20의 630마력에서 무려 100마력이나 빠진 530마력이 되고 말았다. 심지어 운전자가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상황에 따라 3기통 엔진으로 바뀌기도 한다. 그러나! 그 100마력이 전혀 아깝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오히려 이 기분을 제대로 느끼면서 일상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면, 그 정도는 그냥 줘버려도 된다고 느껴진다.

마세라티 그레칼레 트로페오  사진 모터매거진 최재혁 기자
마세라티 그레칼레 트로페오  사진 모터매거진 최재혁 기자

일단 마세라티라는 브랜드에 어울리게 엔진음이 정말 좋다. 저회전 영역에서는 느낄 수 없지만, 3000회전을 넘기는 순간부터 서서히 음이 바뀐다. 좀 더 맑은소리가 된다고 할까. 4000회전을 넘기면 더 맑은소리가 나오고, 5000회전까지 가면 그 소리가 찢어지기 전의 것으로 바뀐다. 마치 오페라에서 소프라노가 최고 음을 계속 내는 것 같다고 할까. 최근의 자동차들이 배출가스 규제가 심해지면서 소리가 탁해진 경향이 있는데, 그레칼레 트로페오는 맑은소리를 유지하고 있다.

당연하지만 소리만이 좋은 것이 아니라 530마력이나 있는 만큼 순간적인 가속 감각, 한 번에 느껴지는 토크 등 많은 것이 감동으로 다가온다. 그렇지만 힘을 제대로 즐기고 싶다면 일반도로에서는 절대 무리고 반드시 서킷에 가야 할 것이다. 그래서 일반도로에서는 낮은 기어 단수라도 엔진 회전을 올리면서 박력 있게 달리는 것이 이 그레칼레를 즐기는 방법이 된다. 그것 때문에 패들시프트도 일부러 금속을 사용해 크게 만들어 둔 것이리라.

그렇다면 엔진만 좋을까? 그렇다면 필자는 이 차를 추천하지 않았을 것이다. 진면목은 새로운 플랫폼이 제공하는 역동적이면서도 넉넉한 승차감에 있다. 알파로메오에서 사용하는 조르지오 플랫폼을 그대로 가져왔는데(물론 마세라티에 맞게 개량은 가했을 것이다), 이것이 꽤 물건이다. 탄탄함과 안정감, 그리고 승차감에서 모든 것을 만족시킬 수 있다고 할까. 국내에서는 알파로메오 자동차를 타 볼 기회가 없으니 직접적인 비교가 아쉬울 뿐이다.

마세라티 그레칼레 트로페오  사진 모터매거진 최재혁 기자
마세라티 그레칼레 트로페오  사진 모터매거진 최재혁 기자

그리고 여기에 에어 서스펜션을 결합하면서 좀 더 승차감이 좋아졌다. GT나 스포츠 모드라면 당연히 단단한 느낌을 전달하지만, 컴포트 모드만 해도 서스펜션이 느긋하게 이완된 느낌이라 노면에서 올라오는 충격을 잘 흡수해 준다. 다만 이 상태에서 산길에 접어들면, 노면의 요철을 지날 때마다 상하로 움직이는 진동이 미약하게 남는다. 뭐 이때는 당연히 스포츠 모드로 돌입하는 수밖에. 코르사 모드는 이번에는 적극적으로 사용하지 못했다. 아무래도 일반도로를 달리다 보니 그렇다.

브레이크도 물론 훌륭하다. 앞서 이야기한 대로 트로페오라서 그런지 지름이 큰 디스크를 사용하고 있으며, 앞바퀴만 해도 6개의 피스톤이 들어간다. 제동력 자체도 좋은 것이지만, 브레이크 페달을 밟는 정도에 따라 미세하게 브레이크가 걸리는 강도가 조절되는 게 좋았다. 일반 운전자라면 ABS가 걸릴 때까지 꽉 밟는 게 좋지만, 브레이크 스킬이 늘어난다면 ABS가 걸리기 전 아슬아슬한 타이밍까지 브레이크를 완전하게 쓰고 싶은 것이다.

마세라티 그레칼레 트로페오  사진 모터매거진 최재혁 기자
마세라티 그레칼레 트로페오  사진 모터매거진 최재혁 기자

이제 목적지에 도착했다. 사실 이 차를 시승하기 전에만 해도 ‘그레칼레는 4기통으로 충분하다’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믿고 있었다. 그리고 트로페오에서 내린 지금도 그 느낌은 아직 남아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군가 그레칼레를 구매한다면, 반드시 6기통 트로페오를 구매하라고 말하고 싶다. 특히 스포츠 주행을 좋아하고 이탈리아의 감성이 어떤 것인지 제대로 느껴보고 싶다면 말이다. 그만큼 트로페오는 좋은 자동차다. (부호의 기준에서는) 제법 실용성도 있고 말이다.

 

SPECIFICATION

길이×너비×높이  ​4860×1980×1660mm  |  휠베이스 2901mm

공차중량  2080kg  |  엔진형식  V6 터보, 가솔린  |  배기량  2992cc

최고출력  530ps  |  최대토크  63.2kg·m  |  변속기  8단 자동

구동방식  AWD  |  0→시속 100km  3.8초  |  최고속력  시속 285km

연비  8.0km/ℓ  |  가격  1억690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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