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교통 특집-택시

  • 기사입력 2017.08.07 15:39
  • 최종수정 2020.09.01 20:40
  • 기자명 모터매거진

택시

Past and Present

우리는 더 이상 택시를 “택시~”라고 부르지도, 위험한 길가에서 손을 크게 흔들지도 않는다. 모바일 기기의 버튼 하나로 택시를 부를 수 있는 시대라서. ‘Pick Me’ 춤을 추듯 손을 흔들며 택시기사의 선택을 기다리는 사람, 그 마음은 ‘응답하라 2010’이 나와야 가늠할 수 있을 것이다. 공유경제다 뭐다, 택시의 내일을 얘기하는 사람은 많은데 택시의 어제와 오늘은 왜들 관심이 없는 걸까.

글 | 박소현

요즘에는 환경보호 차원에서 내연기관 대신 전기모터를 품은 자동차가 각광받고 있지만 택시의 역사는 지금으로부터 반 바퀴는 앞서 있었다. 내연기관 택시 이전에 전기 택시가 먼저 등장했다. 물론 그 전에 말이 끄는 택시가 있긴 했지만.

‘택시’라는 말은 1891년 독일의 빌헬름 브룬이라는 사람이 발명한 요금계산기 ‘택시미터’에서 유래했다. 흔히 미터기라고 불리는 이 기계는 자동차 뒷바퀴의 회전으로 주행거리를 측정, 요금을 계산한다. 그래서 목적지에 닿는 순간 “손님, 00유로입니다”할 수 있는 것이다.

요금을 쉽게 정산할 수 있게 되자 택시미터를 장착한 영업용 전기승용차가 1896년 미국에 생겨났다. 이어 1897년 뉴욕에는 전기자동차회사들이 들어서기 시작했다. 200여 대의 전기승용차들이 택시영업에 착수했는데 시민의 반응이 좋았다. 조용하면서, 냄새가 없고, 운전도 쉬워서 기사와 승객을 가리지 않고 전기 택시에 대해 애정을 품은 사람들이 많았다.

전기 택시보다 시끄럽고 냄새도 좋지 않지만 빠른 택시, 휘발유 엔진 택시는 1898년 메르세데스-벤츠의 본고장인 독일 슈투트가르트에서 첫 선을 보였다. 크라이너라는 사람이 다임러 승용차를 몇 대 사들여 매일 70km정도 택시영업을 했는데 이때 택시미터로 요금을 정산해서 인기를 끌었다고 한다. 이후 택시미터는 유럽 각국에서 세계로 유행처럼 번졌고, 오늘날에 이르게 된 것이다.

색깔로 보는 세계의 택시

USA > Yellow Cab

뉴욕 택시의 역사는 1897년 ‘사무엘 전차(Samuel’s Electric Carriage)’라는 첫 번째 택시 회사가 설립되면서 시작된다. 사무엘 전차는 총 12대의 전동 마차를 시에 보급해 택시로 운영하기 시작했다.

가솔린을 동력원으로 하는 택시는 1907년 프랑스에서 처음 수입됐으며, 시인성을 높이기 위해서 카나리아 깃털과 닮은 노란색으로 칠해졌다. 그 이래로 뉴욕의 택시들은 대체로 노란색 도장을 입게 됐고, 점점 늘어난 노란 택시는 이제 뉴욕의 상징이 됐다.

 

Germany > Pearl Cab

1891년에 택시미터, 일명 미터기를 발명해 택시 운송산업 발전에 혁혁한 공을 세운 독일 출신 엔지니어 프리드리히 빌헬름 브룬(Friedrich Wilhelm Bruhn)의 고향 베를린에선 ‘비싼’ 택시를 쉬이 볼 수 있다.

베를린뿐만 아니라 뮌헨 같은 대도시에선 메르세데스-벤츠, BMW, 아우디 등 브랜드의 고급 차들이 진주색 옷을 입고 택시로 활동한다. 세계 어디서도 더는 진주목걸이를 귀금속이라 칭하고 있지 않지만, 진주색은 여전히 우아하고 고급스럽다.

India > Yellow+Green Rickshaw

1973년 생산된 ‘프리미어 패드미니(Premier Padmini)’가 인도의 첫 택시다. 다양한 차종의 택시가 생겨나면서는, 택시임을 알리기 위해 노란색 번호판을 장착해 운행하고 있다. 하지만 오늘날 인도를 대표하는 택시는 좀 다른 모양새다.

승용차 형태의 택시가 상류층의 전유물로 여겨지고 있는 가운데, 일본의 인력거 ‘리키샤’를 연상시키는 3륜차 릭샤(Rickshaw)가 서민의 발 대신에 열심히 달리는 중이다.

UK > Black Cab

택시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 전세 마차(Hackney Carriage)는 1621년 영국 런던에서 탄생했다. 1662년에 정부가 전세 마차 운행 자격증을 발급하기 시작했고, 곧이어 자동차 형태의 택시가 등장했다. 지금도 어렵기로 소문난 택시 운전사 자격시험과 클래식한 검정색 택시 형태는 이 때부터 전해진 것이다.

말 대신 내연기관이 끄는 택시는 1901년에 등장했는데, 당시 사보이 호텔 입구의 좁은 회전교차로를 고려해 택시 회전반경을 8m로 정한 법규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Hong Kong > Red Cab

홍콩 택시는 영토별로 세 가지 색상(빨강, 연두, 하늘)으로 구별된다. 홍콩은 불법 택시 규제를 위해 1974년 9월 택시 표준화를 시작했다. 차체를 빨간색으로 하되, 그린하우스 부분은 은색으로 하는 것.

연두색, 하늘색 택시가 특정 지역에서만 영업을 할 수 있는 반면, 빨간색 택시는 홍콩 섬을 비롯해 카오룽 반도 전체를 누비기 때문에 홍콩의 상징이 됐다. 참고로, 홍콩에는 개인택시 사업자가 거의 없다. 약 90%는 임대택시라고 보면 된다.

 

요금 계산하는 택시미터기

2013년 10월, 택시요금 인상에 따라 14일부터 25일까지 서울의 서울대공원·난지천공원·태릉사격장·창동역주차장 등에서는 택시미터기 조정 작업이 진행됐다. 기본요금이 2400원에서 3000원으로 오르고 144m당 100원으로 측정하던 주행요금은 142m당 100원으로 바뀌었다.

택시미터기는 기본요금+주행요금+시간요금+할증여부를 반영해 요금을 계산한다. 택시를 타자마자 찍히는 금액 3000원은 처음 2km를 가는 금액이고, 여기에 142m당 100원씩 추가되는 것이다. 속도 15㎞/h 이하로 서행하면 35초마다 시간요금 100원이 별도로 붙는다.

택시가 정차 중일 때, 그러니까 시속이 0일 때에도 요금이 오르는데 이것도 ‘시간거리병산제’ 때문이다. 이것이 총알택시가 사라진 이유다. 신호등마다 대기해가며, 천천히 갈수록 요금은 많이 나오게 돼있다.

 


 

대한민국 택시의 역사

포드 모델 T

국내에 자동차가 처음 들어온 지 9년, 1912년 4월에 이봉래라는 사람이 일본인 2명과 함께 20만원의 자본금으로 ‘포드 모델 T’ 두 대를 구매해 서울 시내에서 시간제로 운행하던 게 택시의 시초라고 볼 수 있다. 의심할 것 없이 택시 요금은 매우 비쌌다고 한다.

국내 최초의 택시회사는 1919년 12월 일본인 노무라 겐조가 세운 ‘경성택시회사’인데, 그로부터 2년 후에 한국인 조승봉이 ‘종로택시회사’를 설립했다. 서민은 택시가 무엇인지 알 겨를이 없었다. 1920년대의 택시 요금은 서울 시내를 한 바퀴 도는 데 3원 정도로 책정돼 있었다.

미터기가 없었기 때문에 달리 요금을 정산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략 한 시간을 타면 6원 정도 요금을 내야 했다는데, 그 값이 쌀 한 가마와 같은 수준이었다고 한다.

1926년에 들어서야 ‘아사히택시회사’를 주축으로 미터기를 장착한 택시가 생겨났다. 그러나 요금은 진배없이 비싸 승객들은 미터기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다가 목적지에 다다르기도 전에 “여기! 여기서 세워주세요!” 외치기 부지기수였다.

시발자동차

한국전쟁은 한반도의 아픈 역사임과 동시에 국내 자동차 산업의 시발점이다. 물론 한국전쟁 이전에도 자동차가 돌아다니긴 했으나, 전쟁을 위해 미국에서 들여온 군용차, 전쟁으로 파괴된 자동차 등등이 자동차 부품을 활용한 재생산업에 불을 지폈다.

그런 와중에 ‘시발(始發)자동차’가 탄생한 것이다. 1955년 ‘국제차량제작주식회사’의 최무성, 최혜성, 최순성 3형제가 미군 지프를 개조한 4기통 시발자동차를 만들어냈다. 폐기 군용차의 부품을 떼어와 붙이고 드럼통을 쪼개고 펴서 차체를 만들었기 때문에 한 대 제작에 4개월가량 소요됐다.

로고는 ‘시-바ㄹ’이었다. 듣기에는 왠지 욕 같지만, 일부러 음절을 찢어서 표기해서 외래어스러운 느낌을 내려고 했다는 얘기가 있다.

시발택시

3형제의 첫 사업장은 을지로에 있던 천막공장으로 매우 열악했지만, 광복 10주년 기념 산업박람회에서 대통령상을 수상해 엄청난 영업이익을 올리면서 본격 양산체제로 전환했다. 곧 시발자동차 500여 대가 택시로 팔리게 된다.

1956년에는 군용트럭에 장착됐던 6기통 엔진을 참고로 국산화에 성공했고, 1958년에는 세단형 9인승 자동차를 생산하기에 이르렀다. 시발자동차, 그리고 시발택시의 인기가 치솟았다.

새나라택시

시발택시의 인기는 ‘새나라택시’의 등장으로 사그라든다. 1962년 8월, ‘새나라자동차공업주식회사’에서 닛산의 블루버드 부품을 수입해 ‘새나라자동차’를 제작판매하기 시작하면서다. 택시회사들은 ‘시발’보다 좀 더 새롭고 세련된 ‘새나라’로 갈아탔다.

그런 시류 속에서 본격적인 승용차 택시운송업이 시작됐다. 이 때 택시운송법은 아직도 문제시되는 지입제가 중심이었다. 지입제는 개인 소유의 자동차를 운수 회사에 등록해놓고 택시를 운행해 보수를 지급받는 제도다.

차만 있으면 택시운송을 할 수 있는 듯 들리지만 문제는 운송회사가 영업용 번호판을 과점하고 수수료를 차주에게 전가하는 데에서 불거졌다. 정부는 이를 막기 위해 차주신고제를 강화하고 운송업체 정비를 단행해 기업화의 기틀을 잡았다. 현재까지도 말끔하게 해결된 문제는 아니지만 말이다.

1967년 7월에는 개인택시가, 1970년 4월에는 호출택시가 처음 등장했다. 이 시기부터는 택시의 종류뿐만 아니라 차종도 여러 개로 늘어났다. 1978년부터 LPG를 연료로 하는 택시가 운행되기 시작했다.

서울올림픽이 있던 1988년, 좀 더 정확히는 4월 15일에 중형택시제도가 도입돼 내국인 및 외국인의 편안한 이동에 기여했다. 1992년 12월에는 모범택시가 등장해 ‘택시=고급 교통수단’이라는 공식이 생겼고, 검은색 택시를 타면 요금이 많이 나온다는 인식도 짙어졌다.

지금이야 택시요금을 카드로 계산해도 눈치 보이지 않지만, 한때는 카드를 꺼내면서 현금이 아니라는 데 미안함을 가져야 했다. 그럴 필요가 없는데도. 2005년 인천광역시에 도입된 카드택시 수요가 전국으로 퍼져, 이제는 카드 안 받는 택시가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서울에선 찾아보기 힘든 1000cc 이하의 소형택시가 2010년 경기도 성남시에서 운행을 시작했고 대전광역시에서는 CNG 연료의 택시가 생겼다. 경상북도 울릉군은 지역특성상 SUV 또는 CUV 경유택시 운행이 보편화됐으며 서울시는 2020년까지 모든 택시를 하이브리드 차량으로 바꿀 예정이라고 발표했다.

그리고 2017년,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의 자료에 따르면 일반택시 업체 1692개에 8만2690대(소형 5대, 중형 8만2551대, 고급 85, 대형 31대, 승합 18대)의 차가 등록돼있으며 개인택시는 16만4319대(중형 16만1749대, 모범 1961대, 대형 406대, 고급 203대)가 운행 중이라고 한다.

대체로 중형택시가 주를 이룬다. 그런 와중에, 등록된 일반택시 면허대수가 8만9216대인데 운전자는 11만3176명이라는 통계는 어쩐지 마음을 짠하게 한다. 택시기사가 택시보다 1.3배 더 많다는 얘기이니까. 자이언티의 노래 ‘양화대교’는 모든 택시기사를 위한 헌정곡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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