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페라리 GT4 루쏘다

  • 기사입력 2017.06.14 17:42
  • 최종수정 2020.09.01 20:11
  • 기자명 모터매거진

페라리 미디어 익스피리언스

It's Super GT

그냥 GT카가 아니다. 프런트 펜더에 말 방패가 떡 하니 박혀있다. 8기통 트윈터보 엔진은 610마력을 생산하고 영리한 변속기는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고 있다. 리어 휠 스티어링 시스템은 다양한 코너에도 자신 있게 들이대게 해준다. 거기에 뒷자리에 가방이 아닌 사람이 탈 수 있다. 이것이 페라리 GT4 루쏘다.

글 | 안진욱 사진 | FMK

 

마감으로 몇 번의 밤을 지새워 피곤한 몸이 저절로 일어난다. 소풍가기 전날의 어린 아이처럼 알람시계보다 일찍 눈이 떠졌다. 아침부터 부랴부랴 서울에서 멀리 떨어진 강원도 인제로 떠나야한다. 발걸음은 이보다 가벼울 수가 없다. 왜냐고? 페라리 타러 가니깐. ‘페라리’라는 세 음절만으로 사나이의 피로를 가시게 하고 심장박동수를 올린다. 지구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페라리를 국내에서 경험하기란 쉽지 않기에 이번 이벤트가 더욱 기대가 되었다.

두 시간 정도 성실하게 달리니 인제스피디움에 닿았다. 페라리 깃발이 바람에 휘날리고 있어 서킷이 근사해 보인다. 페라리보다 서킷에 잘 어울리는 차는 없다. F1에서 가장 많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린 브랜드이기에 레이싱 DNA의 농도는 가장 진하다. 아직 프로그램이 시작되지도 않았지만 벌써부터 떨린다. 사실 기자는 페라리보다 빠른 차를 많이 경험했지만 페라리에겐 이성적으로나 물리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다.

이 행사는 페라리 GT4 루쏘 T(이하 루쏘)가 주인공이다. 겉모습만 본다면 FF의 마이너체인지 모델 같지만 구성을 확인해 보면 후속작이라 봐도 무방하다. LED 구슬을 담고 있는 헤드램프는 눈매가 더 날카로워져 온순한 FF와 첫인상이 다르다. 원형 테일램프가 양쪽에 한 개씩 추가 된 점도 반갑다. 덕분에 더욱 넙대대해 보여 안정적인 자세를 연출한다. 평행이론처럼 원형 머플러 커터의 숫자도 맞춰 놓는 센스까지 발휘했다.

루쏘의 감상이 끝나갈 무렵 프로그램이 시작되었다. 노란색 488 GTB로 짐카나를 뛰면서 몸풀기에 들어갔다. 극단적인 숏코너로 이루어진 코스이기에 페라리, 그리고 488 GTB의 핸들링 실력을 확인할 수 있을 거라 기대되었다. 출발 신호와 함께 알루미늄을 깎아 만든 가속페달을 힘껏 밟으면 폭발적인 배기음을 토해내며 튀어 나간다. 이내 맞닥뜨리는 슬라럼 코스에서는 스티어링 휠을 이리저리 휘젓는다. 좌우 롤링을 허락하지 않을 만큼 차의 윤거는 넓었고 서스펜션은 탄탄했다. 오늘내일하는 타이어를 끼고 있음에도 민첩하게 반응한다. 운전자가 원하는 만큼, 예측한 만큼 정확하게 명령을 따르는 것이 놀라웠다.

이제 페라리와의 진한 만남을 위해 트랙 안으로 들어간다. 언제나 주인공은 엔딩을 장식하기에 먼저 캘리포니아 T를 탔다. 사람들에게 종종 무시를 받는 녀석이다. 엔트리 급의 비애다. 허나 잠깐이라도 타보면 알 것이다. 페라리 배지를 단 모델 중에서 가격대가 낮을 뿐이지 3억을 호가하는 4시트 컨버터블이다. 자본주의에서 공산품의 가격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파워트레인의 폭발력과 완성도는 수준급이다. 연속된 코너의 연석에 충격을 받더라도 섀시가 힘들어 하지 않으며 하드톱을 얹고 있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피트로 들어와 루쏘로 갈아탄다. 오늘의 하이라이트다. FF 인테리어와 비교해 바뀐 부분을 찾는다면 단연 스티어링 휠이다. 세련된 디자인에 크기도 이전보다 살짝 작아져 잡는 맛이 더 일품이다. 동승석 앞에 주행 정보를 띄워주는 디스플레이가 달려있는 것도 마음에 든다. 루쏘를 타보기 전에 뒷좌석은 단지 자켓이나 가방을 두는 자리인 줄 알았다. 성인남자가 타더라도 헤드룸과 레그룸이 충분하다. 형식적으로 갖춘 리어시트가 아니다.

출격하라는 무전이 들려온다. 가속페달에 자비를 베풀지 않으리라 마음먹었다. 3.9ℓ 유닛에 두 개의 터빈을 달고 7단 듀얼 클러치 변속기를 매칭시켜 최고출력 610마력, 최대토크 77.5kg·m의 힘을 발사한다. 루쏘는 개구리가 점프하듯이 출발한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데 단 3.5초가 걸린다. 최고시속은 320km로 제원은 다시 한 번 페라리다.

밟는 대로 나간다. 아니 밟는 것보다 더 잘 나간다. 터보랙은 느낄 수가 없다. 저회전 영역에서부터 막강한 토크로 루쏘를 가볍게 이끈다. 토크밴드가 고회전 영역까지 이어져 운전자가 굳이 적정 회전수를 맞추며 탈 필요가 없다. 이쯤 되면 페라리 마니아인 당신이 궁금한 것이 있을 것이다. 터보가 달려서 사운드가 아쉽냐고? 사운드라는 것이 주관적이긴 하지만 확실히 페라리 자연흡기 엔진보다 시원하지 못하다. 고막을 찢어버릴 듯한 음역대에서 간질이는 음역대로 내려왔다. 허나 이전 페라리와 비교해서 그렇다는 것이지 여전히 톱클래스 사운드를 공중에 퍼트린다.

서킷에서 루쏘를 다룰 때 변속타이밍을 잡기가 가장 힘들다. 엔진회전수가 레이싱 게임처럼 치솟아 비현실적인 타이밍에 변속을 해야 한다.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더라도 순식간에 레드존으로 치솟아 퓨얼컷에 걸리기 일쑤다. 정말이지 엔진은 물건이다. 변속기 역시 훌륭하다. 변속속도는 빠르며 적당한 변속충격으로 운전자의 아드레날린을 분비시킨다.

루쏘의 가장 큰 매력은 핸들링이다. 리어 휠 스티어링 시스템을 달았다. 저속에서는 조향과 반대방향으로 뒷바퀴를 움직여 회전반경을 줄여주며 고속에서는 조향과 같은 방향으로 안정적인 움직임을 보여준다. 이론적으로는 완벽한 시스템이지만 실제로 타보면 이질감이 느껴지는 모델들이 더러 있다. 허나 페라리는 자연스럽게 소화했다. 때문에 헤어핀처럼 큰 고속 코너에서 한계점이 높다. 차가 좀처럼 슬립을 허용하지 않는다. 고속도로의 황제 타이틀은 루쏘에게 줘야할 것이다.

페라리 루쏘를 오랫동안 탄 것이 아니다. 그렇지만 루쏘는 페라리가 분명했다. 여느 GT카와는 확실히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다. 4시트 럭셔리 쿠페라 하면 롤스로이스 레이스, 벤틀리 컨티넨탈 GT, 그리고 애스턴마틴 뱅퀴시를 들 수 있다. 그 중에서 단연 가장 달리기 본능이 강한 것은 페라리 GT4 루쏘 T다. 4명이 함께 세상에서 가장 즐겁고 빠르게 이동하고 싶다면 페라리 매장으로 가자. 큰 거 아니, 진짜 큰 거 3장은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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