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 812 슈퍼패스트 LOVE IN PORTOFINO feat.V12

  • 기사입력 2018.08.07 09:52
  • 기자명 모터매거진

세상에서 가장 근사하고 빠르게 사랑에 빠지다. 12개 트럼펫의 연주와 함께….

글 | 안진욱 사진 | 최재혁

이야기에 앞서 내 소개를 먼저 하겠다. 36세이며 싱글이다. 광고기획사에 다니고 있으며 부업으로 카페를 운영하고 있다. 혼자가 아니라 대학교 동기 3명과 돈을 모아 강남에 카페를 용돈 벌이 겸 해서 열었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내 SNS 마케팅 전략이 통했는지 매출이 상상 이상이다. 이 대박을 기념하는 의미로 슈퍼카 하나 뽑아 돌아가면서 타자고 입을 모았다. 우린 차를 좋아하니까. 이 기회에 과감하게 페라리를 타보자는 치기를 부렸다. 왜 하필 페라리냐고? 이유는 단 하나. 페라리니까. 반기를 드는 순간 역적이 될 분위기에 휩쓸려 우린 페라리를 계약한다. 그것도 플래그십 812 슈퍼패스트를…. 처음에는 488 스파이더를 구매하려했지만 기왕 일 저지르는 거, 끝까지 가보자고 해서 812 슈퍼패스트를 질렀다.

군대보다 길게 느껴졌던 시간이 흐르고 마침내 내차, 아니 우리차가 도착했다. 친구들과 함께 매장으로 달려갔다. 너나 할 거 없이 사진 찍기 바빴다. 첫 페라리라 빨간색을 염두에 뒀었지만 인터넷에서 본 노란색에 홀딱 반해버렸다. 레몬과 황금을 섞은 물감이 롱노즈 숏데크 보디를 밝혀주고 있었다. 패널에 구멍이 많다. 이로 인해 거추장스러운 스포일러가 없어도 엄청난 다운포스를 일으켜 안정적인 주행이 가능하다고 한다. 딜러가 그랬다. 바람개비 모양의 휠은 차체 디자인과 잘 어우러진다. 휠에서 시선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브레이크 캘리퍼는 무난한 은색으로 주문했는데 탁월한 선택이었다.

혹여 내 천한 손톱이 귀하신 몸에 상처라도 낼까 싶어 조심스레 도어를 열고 실내로 들어가 본다. 사진으로만 보던 페라리 실내에 내가 앉아 있다니. 믿어지지 않는다. 시트포지션은 슈퍼카답게 낮다. 앞으로 길게 뻗은 보닛을 확인 후 걱정이 살짝 된다. 약한 모습 그만 보이고 둘러보기나 하자. 488 모델과 달리 새로 바뀐 스티어링 휠이 달려 있는데 사이즈가 조금 더 작아졌고 디자인도 세련되게 다듬어졌다. 그립감이 좋고 손끝에 만져지는 패들시프트 조작감도 좋다. 아쉬운 부분은 송풍구다. 디자인은 마음에 들지만 방향을 바꿀 때 송풍구 통째로 움직여 눈에 거슬린다. 내가 탈 때는 무조건 송풍구를 정면으로 만져놔야겠다.

친구 녀석들이 엔진룸을 열어달라고 보챈다. 보기만 해도 경건해지는 붉은 심장이 등장했다. V12 6.5ℓ 엔진은 과급기 도움 없이 최고출력 800마력, 최대토크 73.2kg·m의 힘을 뒷바퀴로만 보낸다. 이게 무섭다. 어마어마한 고출력 후륜구동이다. 그것도 페라리. 두렵긴 하지만 요즘 전자장비가 좋아 편하고 빠르게 탈 수 있다는 딜러의 말을 믿을 수밖에….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2.9초 만에 도달한다. 3초도 걸리지 않는다고? 이름 그대로 정말 빠른가보다. 최고시속은 340km에 달하는데 인천공항고속도로에서 화끈하게 딱지 한 번 떼 보자고 친구 녀석들이 허세를 부린다. 실컷 까불다보니 812 슈퍼패스트가 사라졌다. 순번 1번 친구가 벌써 여자 친구에게 자랑하러 떠났다.

출고한 지 몇 주가 지나고 우린 우리 카페에 모였다. 내가 탈 차례가 온 것이다. 먼저 탄 친구들이 차가 죽인다고 난리다. 소리도 죽이고 다루기도 크게 어렵지 않단다. 한 놈은 고속도로에서 KTX를 추월했다는 뻥을 쳤는데 지금 보면 진짜였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나만 소름 돋나? 30대 중반 아저씨들이 고등학생들처럼 놀고 있을 때 카페 유리문이 열리고 엄청난 빛을 발사하는 여인이 들어온다. 그녀의 입장에 모두가 숨을 죽인다. 마시던 망고 스무디를 뱉으며 넋을 잃고 그녀를 바라봤다. 나이키 모자로 눈을 가리고 연예인 상징 마스크를 쓰고 청바지는 각선미를 감출 수 없었다. 아침에도 본 화장품 광고의 주인공이다.

실명을 밝히긴 어렵지만 최근 영화에서는 ‘발연기’ 논란이 있었다. 연기 못할 수도 있지. 이렇게 예쁜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배우다. 아니 내 첫사랑이다. 내 또래인 그녀는 고등학교 시절 책상에 수없이 붙어있던 사진 속 주인공이다. 이를 아는 친구들이 그녀에게 머핀을 서비스로 주고 사인도 받고 사진도 찍어라 난리다. 소심한 성격인지라 용기가 나질 않는다. 심호흡 몇 번 하고 그녀에게 다가간다. 가까이서 보니깐 신기할 정도로 아름답다. 내 호의를 그녀가 거절했다. 계속 권하니 마지못해 받으며 고맙다고 한다. 인형이 말을 한다. 이어 함께 사진을 찍고 사인도 얻었다.

좋은 흐름으로 프라이빗 팬미팅을 이어간다. 수준 낮은 내 유머에 천사 같이 웃어준다. 그러던 순간. 갑자기 그녀의 표정이 굳고 눈동자가 흔들리기 시작한다. 내게 지금 차 있냐고 물어본 후 자기를 태워줄 수 있냐고 부탁한다. 대한민국 남자 중에서 누가 이 부탁을 외면하겠는가. 이유도 목적지도 궁금하지 않다. 어디든 모셔다 드릴테다. 분명 누군가를 피하는 눈치다. 카페 뒷문으로 빠져나와 내 차(?)로 향한다. 역시 톱스타라 그런지 페라리를 보고도 무덤덤하다. 얼른 그녀를 태우고 출발해야한다. 시동을 켜자마자 12기통 엔진이 천지를 울리는데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런 차를 많이 타 본 것 같다.

처음 타는 페라리에 보닛까지 길어 낯설기 그지없다. 청담동 골목을 빠져나오는 것보다 쩔쩔매는 티를 내지 않는 게 더 힘들다. 큰 도로로 나오니 그녀가 올림픽대로를 타라고 한다. 내가 왜 그래야만 하는지를 떠올리기도 전에 슈퍼패스트는 올림픽대로를 달리고 있었다. 그녀의 목적지가 최대한 멀길 간절히 기도한다. 그녀가 조금 더 밟아 달라고 주문한다. 비록 슈퍼패스트를 처음 타지만 친구들에게 말로만 들었던 괴력을 자랑하고 싶었다. 가속 페달을 밟으니 우리의 목을 뒤로 제쳐지고 세상을 추월한다. 이렇게 빠를 줄은 몰랐다. 작년까지 BMW M4를 600마력까지 튜닝해서 타고 다녔는데 이것은 다른 세계의 가속력이다.

스티어링 휠에 마네티노 스위치를 확인하니 WET으로 설정되어 있다. 더 무섭다. 도대체 스포츠부터는 어떤 또 다른 세계가 있다는 것인가. 막강한 펀치력에 그녀가 살짝 긴장했다. 스로틀을 닫으려 하니 괜찮으니 더 빨리 달리라고 한다. 그렇다면 스포츠 모드다. 가속 페달이 예민해졌다. 패들시프트로 다운시프트를 때리고 다시 킥다운! 7단 듀얼클러치는 마음먹는 순간 이미 원하는 기어를 물리고 있다. 이제 우주를 집어삼킬 가속력을 보여준다. 고속안정감이 좋아 체감 속도보다 시속 100km 이상이 계기판에 표시된다. 그녀의 하얀 손은 의지할 곳을 찾고 있었다. 상기된 얼굴로 “진짜 빠르네요”하면서 미소를 짓는다. 내 심장은 폭격 당했다.

어느덧 올림픽대로가 끝이 나고 고속도로가 나온다. 이쯤 되니 그녀의 목적지가 정말 궁금해진다. 물어보려고 타이밍을 재던 그때 다시 그녀는 더 밟아달라고 한다. 그러고 보니 아까부터 룸미러에 검은색 람보르기니 무르시엘라고가 따라오고 있었다. 아까부터 거슬렸는데 그녀도 저 차를 신경 쓰고 있는 모양이다. 그녀가 노골적으로 저 차를 떼어 달라고 한다. 영문을 물으니 예전 남자친구인데 지금 스토커처럼 괴롭힌단다. 스토커란 단어와 예전 남자친구가 철지난 황소를 타고 있는 것에 괜한 자신감이 생긴다. 따돌려주마. 난폭운전으로 신고당할 각오를 하고 본격적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슈퍼패스트를 몬지 30분이 지나니 버거운 느낌이 줄었다. 더 과감하게 달려도 위험하지 않을 것 같은 믿음이 생겼다. 스티어링 휠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차들 사이를 통과한다. 순간이동을 하면서 슈퍼파워가 뒷바퀴에만 전해지니 엉덩이가 살짝 살랑거린다. 다시 무서워졌다. 주행안정화장치의 개입이 상당히 느긋하다. 운전 잘 하는 부자가 아닌 나 같은 놈은 운전 실력과 재산에서 이 녀석을 다룰 자격이 없는 것 같다. 타이어가 앞 275mm, 뒤 315mm인데 앞을 370mm, 뒤는 이 사이즈가 존재한다면 400mm 정도로 세팅하고 싶다.

무르시엘라고와 거리를 벌렸는데 저 앞에 망할 트럭들이 추월차선까지 가로막고 있다. 일단 달려가서 간격을 봐야겠다. F1 드라이버가 직선구간이 끝나고 헤어핀에 들어가기 전 추월을 위해 레이트 브레이킹을 작렬하듯 나도 따라해 본다. 역시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 시스템은 제동성능이 강력하다. 출력을 채찍질하기에 충분한다. 거기에 노즈다이브 혹은 브레이크스티어 현상이 일어나지 않아 마음 놓고 질주할 수 있다. 트럭들 사이에 간격이 조금 보인다. 나만 빠져 나갈 수 있을 것 같다. 보닛이 길어 거리 측정이 힘들지만 에라 모르겠다하며 들어간다.

트럭군단 사이를 빠져나오고 맹렬히 달려 추격을 벗어났다. 이 순간 내 자신이 생각해도 조금 멋있었다. 그녀가 힐끔 나를 쳐다보는 게 느껴졌는데 그녀도 내 드라이빙에 흠뻑 젖은 것 같다. 마음이 놓였는지 이제야 배기 사운드가 들린다. 12기통 자연흡기 엔진은 그 어떤 악기보다 근사한 소리를, 그 어떤 가수보다 높은 음역대를 자랑했다. 이어 그녀의 향수가 코끝에 닿는다. 여태 맡아보지 못했던 향인데 엄청 고급스럽다. 콧속에 향기를 저장했으니 조금 분위기를 더 올려야겠다. 오디오를 켜고 스마트폰에서 가장 세련된 음악을 찾아야했다. 록으로 가득 찬 플레이리스트에서 빛이 보인다.

나의 선곡은 안드리아 보첼리(Andrea Bocelli)의 러브 인 포르토피노(Love In Portofino)다. “아침의 달콤한 마법 속에서 바다는 널 내게 보내주었지. 난 포르토피노에서 내 사랑을 만났지. 내가 널 기다리던 곳의 하늘, 그 끝을 기억해. 사랑스러운 너와의 키스. 그 입술도 기억해. 내 삶에서 슬픈 일은 없을 거야. 난 내 사랑을 만났으니.” 세계 최고의 테너가 가사 속의 주인공을 나로 노래해주며 그녀와의 시간, 그리고 미래를 축복해줬다. 너무 오글거려서인지 다시 성난 황소가 붙었다. 저 정도 근성이 있어야 미녀를 만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고속도로에 교통량이 꽤 있던지라 떼어 놓기 힘들었다.

좋은 생각이 났다. 산길로 가면 완벽하게 따돌릴 수 있을 것이다.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산길에 들어왔다. 800마력 후륜구동 페라리로 와인딩이라…. 손에 땀이 벌써 나긴 하지만 나도 M4로 끝까지 가본 놈이다. 자신 있게 코너에 대시한다. 살짝 언더스티어가 일어나지만 조급한 마음만 버리면 머릿속에 그린 그림을 그대로 연출할 수 있다. 탈출 전 일찍이 가속 페달을 밟으니 리어 액슬이 바깥으로 빠져 나도 모르게 카운터스티어를 쳤다. 파워슬라이드가 근사하게 완성되고 나니 무르시엘라고와의 간격이 확 벌어졌다. 덩치가 있는 편이지만 복합 코너에서 섀시가 엉키지 않고 한쪽으로 쏠린 중량을 반대쪽으로 보내는 리듬이 좋다. 코너 몇 개를 지나고 고개 몇 개를 넘으니 무르시엘라고와 영원한 작별을 했다. 고맙다는 말이 이렇게 달콤했나. 연예인이라 경찰에 신고할 수 없었다면서 그녀는 계속해서 고맙다는 말을 반복했다. 여유가 생겨 우린 아주 평범한 대화를 시작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수다를 떨다보니 어느새 그녀의 집 앞에 도착했다. 쓰고 있던 모자를 벗고 머리카락을 위로 넘기며 다시 고맙다는 인사와 함께 윙크를 던졌다. 내가 주연한 한국 버전 미션 임파서블은 이렇게 끝났다. 그 후에 어떻게 됐냐고? 잠깐만. 다음 주 휴가라 일을 몰아서 하니 눈이 아프다. 지금 내 스마트폰에 그녀의 메시지를 도착했다. “자기야 포르토피노의 맛집 알아놨어.”

SPECIFICATION _ FERRARI 812 SUPERFAST

길이×너비×높이 ​4657×1971×1276mm

휠베이스 2720mm | 무게 ​​​1750kg

엔진형식 12기통, 가솔린 | 배기량 6496cc | 최고출력 800ps

최대토크 ​​​73.2kg·m | 변속기 7단 듀얼 클러치

구동방식 RWD | 서스펜션 (앞)더블 위시본, (뒤)멀티링크

타이어 (앞)275/35 R 20, (뒤)315/35 R 20

0→시속 100km 2.9초 | 최고속도 시속 340km

복합연비 ​​​5.6km/ℓ | CO₂ 배출량 315.0g/km | 가격 4억원 중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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