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벤츠 C200 카브리올레
2017-09-13 16:34

FIRST DATE

자극적이지 않아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다. 곁에 있음에도 그 진가를 모를 수도 있다. 전통을 자랑하는 가문에서 보송보송하게 사랑을 받으며 최고급 교육과정을 거쳐 그런지 세련미가 풍부하다.
글 | 안진욱 사진 | 주보균(시공간작업실)



4기통 2.0ℓ 엔진에 작은 터빈 하나를 달아 최고출력 184마력, 최대토크 30.6kg·m의 힘을 만든다. 300마력도 싱겁게 느껴지는 요즘이지만 이 정도 힘만으로 운전이 즐겁다. 온 신경을 스티어링 휠에 전달하면서 바쁘게 달릴 필요 없다.

서울에 어떤 빌딩이 새로 생겼는지, 하늘색의 채도가 어느 정도인지 세상을 볼 수 있다. 왁스가 살짝 묻어있는 머리카락 끝으로 바람을 느끼며 음악을 청한다. 볼륨을 조금 더 올리고 뻥 뚫린 길에 차를 올리고 속도를 올리더라도 옆자리에 앉아 있는 여자 친구와 속삭일 수 있다. 한여름 밤을 동화 속 그림처럼 만들어 주는 이 움직이는 노천카페, 메르세데스-벤츠 C200 카브리올레다.

많은 상점들이 이미 문을 닫은 고요한 휴게소에 차를 세우고 가로등 불빛에 감싸진 모습을 감상해본다. C클래스 세단에 문짝 두 개만을 달고 지붕은 날려버린 후 천조각 하나를 씌웠다. 밤하늘 빛이 감도는 캔버스 톱은 그레이 페인트를 바른 차체와 잘 어우러진다.

톱 색상은 네 가지(블랙, 다크 브라운, 다크 레드, 다크 네이비)가 준비되어 있으니 기호에 맞게 차체 색상과 조합을 하는 재미도 있다. 다행히 루프라인이 전혀 어색하지 않다. 톱은 시속 50km이하에서 작동가능하며 20초 만에 하늘을 볼 수 있다. 외부와의 밀폐 수준이 높아 차음성도 뛰어나다.

얼굴은 잘 생겼다. 눈도 부리부리 하면서 눈빛이 살아있다. 프런트 그릴 가운데 메르세데스 배지는 주변에 박힌 4캐럿짜리 다이아몬드 수십 개보다 빛난다. AMG 보디 키트를 단 덕분에 운동 좀 하는 도련님 느낌이다. 공기흡입구를 시원하게 뚫어놓은 프런트 범퍼 하단은 크롬 립 스포일러로 꾸몄다.

사이드 스커트에도 이러한 크롬 장식을 넣었는데 전혀 촌스럽지 않다. 헤드램프에서 테일램프로 이어지는 캐릭터 라인은 날이 서 있어 늘씬한 차체를 더욱 길어보이게 만든다. 뒤태에서의 하이라이트는 삼각별이다. 까꿍 카메라가 숨어 있으니까.

묵직한 도어를 열고 실내로 들어간다. 오픈톱 모델은 인테리어가 곧 익스테리어이기 때문에 인테리어가 중요하다. 2017년 지금, 메르세데스의 인테리어는 업계 최정상에 있는 만큼 C200 카브리올레의 내부도 근사하다. 더구나 베이지 색상으로 꾸며져 더욱 고급스럽다.

대칭형 센터페시아 레이아웃은 운전자에게 안정감을 주며 상단에 태블릿 PC처럼 생긴 디스플레이를 올려놨다. 터치를 지원하지 않지만 시인성과 직관성이 좋다. 타공 가죽으로 감싼 바텀 플랫 스티어링 휠은 디자인과 잡는 맛이 훌륭하다.

원형 송풍구는 19인치 휠과 함께 겉과 속에서 클래식한 멋을 살려주는 아이템이다. 칼럼에 붙어 있는 기어 레버는 기자가 메르세데스를 살 수 있는 돈이 모였을 때쯤 아래로 내려가길 기도해본다.

촉감이 부드러운 시트는 푹신푹신해 장거리 주행에도 몸이 피로하지 않고 날개가 두툼해 코너에서 운전자를 잘 잡아준다. 헤드레스트 아래 에어스카프가 있어 겨울에도 오픈에어링을 할 수 있다. 인상적인 것은 뒷좌석에 성인 남자가 탈 수 있다는 점.

D세그먼트 오픈톱 중 가장 넉넉한 레그룸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미국 하이틴 영화에 나오는 미식축구부 학생들처럼 남자 4명이 폼을 잡을 수 있다. 톱을 닫더라도 헤드룸에 여유가 있다. 트렁크도 일상생활을 소화하기 충분한 사이즈다.

탑재된 편의사양 역시 빵빵하다. 내비게이션과 연동 가능한 헤드업 디스플레이를 포함해 프리 세이프(PRE-SAFE)와 주의 어시스트(ATTENTION ASSIST), 졸음방지 시스템, 후면 충돌을 방지해주는 충돌 방지 어시스트 플러스(COLLISION PREVENTION ASSIST PLUS)가 기본 사양으로 들어간다.

오디오는 하이엔드 브랜드의 것은 아니지만 괜찮은 성능을 보여준다. 중저음 영역이 약하지만 전반적인 밸런스는 괜찮다. 또한 음파 반사각을 잘 조율해 오픈을 하더라도 풍절음과 음악이 섞이지 않는다.

차를 둘러보다 보니 어느새 모기들의 먹잇감이 되어있었다. 곧장 출발할 수밖에 없다. 엔진스타트 버튼을 누르며 차분하게 심장이 뛴다. 대형 엔진은 아니더라도 터보차저를 장착했음에도 184마력 밖에 생산하지 못하는 것은 아쉽다. 적어도 200마력은 넘겨줘야 터빈에 대한 예의인데 말이다.

허나 실제로 주행을 해보면 답답하지 않다. 일반적인 교통 흐름을 따라가다 얼마든지 쉽게 추월할 수 있다. 기자가 현존하는 토크 컨버터 타입 중 가장 마음에 들어 하는 9단 자동변속기 덕분이다. 촘촘한 기어비로 연비를 얄밉게 챙기며 빠른 변속과 치솟는 토크밴드만을 공략해 출력을 허투루 쓰지 않는다.

주행성능은 준수하다. 최근 메르세데스를 타보면 굳이 AMG 배지가 붙어 있지 않더라도 운동신경이 좋다. 스티어링 기어비가 타이트해 운전자가 내린 조향 명령에 프런트 액슬이 즉각적으로 반응한다. 물론 AMG GT와 같은 슈퍼카 정도는 아니지만 보편적인 차들과 비교하면 핸들링 수준이 높다.

거기에 오픈톱이지만 차체 강성이 좋아 스티어링 휠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억지로 차체 거동을 망치려 들어도 프런트 서브프레임과 리어 서브프레임이 따로 놀지 않는다. 약간 조미료를 뿌려보자면 이 차체에 보강 없이 500마력짜리 AMG 엔진을 넣어도 무탈할 것 같다.

고속안정감은 역시 메르세데스다. 섀시 앞뒤 진동 주파수를 기가 막히게 조율했다. 횡 방향으로 전해지는 자잘한 진동은 드라이브샤프트를 거쳐 스태빌라이저 쪽으로 오기 전에 이미 상쇄되어 요(Yaw)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댐퍼 스트로크가 길지만 스프링 레이트가 높아 좌우롤링이 심하지 않다.

때문에 굽이진 길을 달릴 때도 불안하지 않다. 코너링 성향은 언더스티어지만 벗어나는 라인이 크지 않아 진입속도만 잘 조절하면 예쁜 선을 그릴 수 있다. 주행안정화장치를 해제하고 뒤를 살랑살랑 거리게 만드는 재미도 있다. 친숙한 파워와 균형 잡힌 섀시의 조합은 마치 친환경 소재로 만든 고급 장난감 같다.

브레이크 성능도 준수하다. 페달의 답력은 부드럽고 노즈다이브나 브레이크스티어가 일어나지 않는다. 고속주행에서 강한 제동을 연거푸 가져가더라도 페이드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동안 수많은 메르세데스를 타봤지만 메르세데스 4인승 오픈톱 모델은 C200 카브리올레가 처음이다. 일단 개방감이 로드스터와 차원이 다르다. 뚜껑을 열고 달리더라도 바람이 내부로 휘몰아치지 않는다. 헤어스타일을 흐트러트리지 않고 동승자와 대화가 가능하다.

오픈톱 모델로 공기를 잘 다스리는 시험이 있다면 메르세데스가 수석이다. 리어시트 뒤에 위치한 윈드 디플렉터를 굳이 꺼내지 않더라도 실내를 평화롭게 할 수 있다. 실용성도 로드스터 대비 훨씬 높다. 뒷자리의 유무에 따라 외출할 때 옷과 가방이 달라지니까.

누구에게나 기호와 취향이 있다. 기자는 오픈톱 모델이라면 화끈한 SLC43과 같은 로드스터를 선호한다. 겸손한 파워를 가진 4인승 오픈톱 모델은 오직 강남 영희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편견과 고집을 가뿐하게 꺾어준 C200 카브리올레는 상품성이 높고 근사했다. 편하게 어디든 갈 수 있으며 조용하다.

굳이 갓길에 세워 뚜껑을 열고 닫을 필요도 없다. 소프트톱은 루프 라인을 해치지도 않는다. 연료도 외모와 달리 알뜰하게 사용한다. 무엇보다도 거칠게 보였던 아저씨를 부드러운 오빠처럼 보이게 하는 마법을 지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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