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련 없는 작전 수행차, 제설차

  • 기사입력 2019.02.22 10:34
  • 기자명 모터매거진

도로에 눈이 내리기 시작하면 특급 작전이 시행된다. 작전명은 제설이다. 누군가는 빗자루를 들고 나와 마당을 쓸고 어디선가는 나무판자로 열심히 눈을 밀어낸다.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며 작전 성공을 위해 고군분투한다. 하지만 어디까지나 제설은 작전이다. 현대전에서 작전 수행에 있어 정보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장비다. 일개 중대 혹은 대대 병력만큼의 임무를 수행할 수 있는 제설차는 그만큼 중요한 장비다.

글 | 김상혁

눈, 그까짓 거 밀어버려

제설도 효율성이 따라야 한다. 빗자루질 10번보다 넉가래질 한 번이 확실한 법. 즉 쓸어내는 것보다 밀어내는 것이 효과적이다. 차량에 블레이드를 장착해 눈을 밀어내는 것이 제설차의 기본이다. 보통 차량 앞쪽에 블레이드를 장착한 채 밀고 나간다. 제설을 위해 만들어진 차량의 경우 장착된 블레이드는 상, 하, 좌, 우 틸트가 가능하다. 눈을 밀어내는 동시에 차량 뒤쪽에선 염화칼슘을 살포하도록 구성돼있다.

제설차 초기에는 블레이드가 고정되어 있었다. 직선으로 밀어내다 보니 눈이 뭉쳐 무게가 증가하고 타이어 마찰력이 감소해 온전히 밀어내는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다 보니 수시로 퍼 날라야 했고 이를 극복하기 위해 블레이드를 회전시켜 부드럽게 옆쪽으로 밀어내게 된 것. 건설장비 중 흙이나 모래를 더 담아 옮기는 로우더도 종종 비슷한 방식으로 활용된다. 눈을 밀어 삽에 쌓이도록 담아 치우는 방법이다.

최근 가정용 혹은 작은 마을 등에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지며 소형 모델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일부 양산형 자동차에도 삽이나 블레이드를 장착해 사용하는데 밀어내는 눈의 무게를 감당해야 한다. 토크가 뒷받침돼야 한다는 얘기다.

차가운 눈길을 가르며 너에게 가고 있어

등산에서 자주 쓰는 용어 ‘러셀(Russel)’은 눈길을 가로질러 헤쳐나간다는 뜻인데 러셀이란 용어가 바로 러셀 제설차에서 넘어온 것이다. 러셀 제설차는 주로 철도에서 사용된다. 자동차가 달리는 도로에 눈이 쌓이듯 철길에도 눈이 쌓인다. 철길의 눈을 치우기 위해 고안돼 러셀 제설차 혹은 웨지 제설차라 불린다.

삼각형 모양의 커다란 블레이드가 선수부에 붙어있다. 선박의 선수부와 형태가 비슷하다. 다만 선박은 물길을 가르는 것이고 러셀 제설은 눈길을 가른다는 점이 차이랄까? 블레이드 중심을 기준으로 좌, 우로 눈이 흩날려가는 방식이다. 블레이드로 밀어내는 방식보다 눈의 무게를 덜 받고 속도도 조금 더 빠르다는 게 장점. 다만 양옆으로 눈이 흩날리면 다른 차량 및 사람이 눈발에 휘날리기 때문에 점점 사용빈도가 줄어들고 있다.

불편함은 진보를 이뤄낸다. 제설차는 발전을 거듭했다. 눈은 시간이 지날수록 뭉치고 딱딱해진다. 때론 바닥에 눌어붙어 제대로 밀리지도 않는다. 군대에서 넉가래를 배에 거치고 밀다가 한 번쯤 아파본 기억처럼 말이다. 그래서 블레이드 대신 스크류를 이용해 눈을 치웠다. 차량 앞부분에 회전하는 스크류를 장착함으로 눈을 잘게 썰고 날려보내는 방법이다.

믹서기처럼 뭉친 눈을 갈아내고 원통을 거쳐 외부로 방출된다. 최근 사용되는 대부분의 제설차가 취하고 있는 방식이며 보다 넓은 도로 폭을 제설하기 위해 블레이드와 스크류가 합쳐져 있다. 눈을 방출하는 원통은 방향을 임의로 설정할 수 있어 주변 통행량에 미치는 영향도 줄어든다.

제설하면 역시 군대!

제설이라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곳, 훈련 없이 곧바로 실전에 돌입하는 주요 작전이 제설 작전이다. 우리나라 군대에서 제설 작전은 어떻게 이루어질까? 국내 영공을 수호하는 공군, 365일 24시간 출격을 대비해야 한다.

눈 내리는 겨울이라고 달라질 건 없다. 활주로에 눈이 쌓여도 치우면 그만이다. 물론 시간이 생명이다. 군대라는 특성과 활주로라는 특수성 덕분에 공군은 특별한 제설차가 있다. SE-88이다. SE는 SNOW EQUIPMENT의 약자로 1988년 만들어져 SE-88이란 이름을 가지게 됐다. SE-88은 퇴역한 전투기 F-4와 F-5E/F의 엔진이 얹어졌다. SE-88에 얹어진 엔진의 열기로 활주로 눈을 증발시키거나 날려버린다. 그만큼 많은 양의 연료를 소비하지만 작업량과 효율성에서 압도적이다.

영해를 책임지는 해군도 눈에서 자유로울 순 없다. 바다에 눈이 쌓일 리 없고 얼어붙지도 않는다. 하지만 선박에는 눈이 쌓이는 법. 해군은 바닷물을 빨아들여 선박의 눈을 치운다. 강력한 물줄기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눈과 물이 결합하면 금방 얼어붙을 것이라 생각하겠지만 바닷물은 염분이 결빙을 방지해준다. 바다를 누비며 언제 어디서든 바닷물을 구할 수 있으니 제설 걱정은 넣어둬도 될 듯.

육군은 공군, 해군보다 비중이 높다. 당연히 병력도 많다. 공병이나 기갑 등 장비가 넉넉한 곳은 제설차도 있고 나름 제설 장비를 만들어낼 여건도 갖추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육군 부대는 장비보단 병력이 제설 작전에 나선다. 삽과 넉가래가 주요 장비인 셈. 국내 지형 특성상 산이 많고 산간 지역 군부대도 상당수, 제설 장비가 있어도 사람이 직접 손으로 눈을 치워야 하는 곳이 많다. 그 덕에 장병들은 끈끈한 전우애와 단단한 팀워크를 이뤄 제설 작전을 완벽히 수행해낸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2024 모터매거진.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