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푸조 토탈'의 다카르 랠리 피날레

  • 기사입력 2018.12.26 11:58
  • 기자명 모터매거진

AWAKENING FOR TRIUMPH

TEAM PEUGEOT TOTAL

무술년, 모터스포츠 업계는 시끌벅적했다. 현대 랠리팀은 3년 연속으로 종합 준우승 타이틀을 들어보였고, 르망 24시 내구레이스에서 꾸준히 ‘불운의 아이콘’으로 불리던 토요타는 마침내 LMP1 클래스 트로피를 거머쥐었다. 그리고, 올해를 끝으로 다카르 랠리를 잠시 떠나는 푸조는 모터스포츠 명가다운 저력을 보이며 최고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 윤현수 / 사진 | 푸조 제공

요즈음, SUV에 재미가 들렸다지만 푸조는 유럽에서 발에 채이는 해치백과 왜건을 잘 빚어내는 유럽 색채 짙은 대중차 브랜드다. 겉으로 보기엔 적당한 값에 품질 좋은 자동차를 빚어내야 하는 여느 자동차 제조업체와 크게 다를 바 없는 브랜드라는 소리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푸조를 업신여기지 못한다. 200년 전통의 프랑스산 사자는 기술력과 끈기가 뒷받침되지 못하면 성과를 이뤄내기 어려운 모터스포츠 전장에서 굵직한 획을 그어왔기 때문이다. 비록 독특한 색채 때문에 완성차를 바라보는 소비자 반응은 호불호가 갈리긴 해도, 모터스포츠 세계에서만큼은 모두가 사자 엠블럼에 고개를 끄덕인다.

험로에서 강했던 프랑스산 사자

르망 24시 내구 레이스에서 아우디와 함께 디젤 하이브리드 경주차의 ‘끝판왕’을 가리기 위한 세기의 라이벌전도 여전히 가슴을 울리지만, 푸조는 특히나 험준한 도로를 거침없이 달리는 랠리에 강했다. 1980년대, 광기 넘쳤던 WRC 그룹 B에서 활약한 ‘205 T16’는 푸조 랠리 역사를 화려하게 장식했다. 새천년에 들어선 이후에도 푸조는 WRC(월드랠리챔피언십) 무대를 정복했고, 뒤이어 바통을 넘겨받은 한 지붕 가족, 시트로엥까지 WRC를 지배하며 PSA가 랠리의 황제임을 온 천하에 알렸다.​

뿐만 아니라 푸조는 다카르 랠리에서도 위용을 뽐낸 적이 있다. 최초 출범 당시의 명칭에 따라 실제 파리에서 다카르까지 주파했던 시절, 205 T16에 이어 405 T16으로 참전했던 푸조는 압도적인 기세로 4년 연속 우승 트로피를 차지했다. 그리고 25년 후, 푸조는 ‘팀 푸조 토탈(이하 푸조 랠리팀)’이란 팀명 하에 다카르 랠리에 복귀했다. 모종의 이유로 경기가 진행되는 전장은 바뀌었고, 자리를 비운 시간이 긴 만큼 리그를 지배한 면면들도 과거와는 달랐다.

뒷바퀴의 기적을 일구다

사자 군단은 다카르 랠리를 종횡무진 누볐던 ‘미스터 다카르’, 스테판 피터한셀을 영입하여 전력을 다졌다. 정조준한 곳은 당시 3년 연속으로 우승을 차지해 온 미니 올 4 레이싱팀. 푸조 랠리팀은 서서히 완성되어 가는 미니 독주체제를 저지해야 했다. 그러나 25년 만에 처음으로 맞는 마수걸이 시즌은 그리 녹록지 못했다. 랠리 팬들은 복귀와 동시에 푸조가 포디움 꼭대기에 오르는 드라마틱한 광경을 기대했으나, 현실은 최종 순위 11위에 머무르며 미니 랠리팀의 4년 연속 우승을 지켜봐야 했다.

비록 포디움 등정에는 실패했지만 이는 매우 의미 있는 도전이었다. 푸조의 다카르 랠리 재입성에 많은 모터스포츠 마니아들이 주목한 이유는 ‘랠리 황제’가 다시 돌아왔다는 기대감뿐 아니라, 당시 경주차였던 ‘2008 DKR’에도 숨어있었다. 사막을 비롯한 온갖 오지를 정복해야만 완주가 가능한 이 지옥의 레이스에서 사륜구동은 우리 상식상 당연한 선택이었다. 그러나 푸조는 복귀와 함께 다시 한 번 ‘기행’을 선보이며 모터스포츠 팬들을 기겁하게 했다. 당사 소형 크로스오버 2008을 심하게 벌크업 시킨 듯한 2008 DKR은 무려 ‘뒷바퀴’만 굴리는 랠리카였던 것이다.

푸조는 우선 사륜구동의 추가적인 구동 계통 무게를 덜어내어 유리한 고지를 점령하고, 모자란 앞바퀴 트랙션은 자신들의 비범한 서스펜션 다듬기 실력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11위. 아쉬운 성적이지만 분명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던 복귀 첫 시즌이었다. 그리고 절치부심하여 준비한 이듬해 대회에서 스테판 피터한셀이 결국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며 자신들의 선택이 옳았음을 직접 증명했다. 40여 년간 이어졌던 대회 역사상 최초로 이륜구동 모델이 승리한 역사적 순간이었다. 그야말로 ‘후륜구동의 기적’이었다.

마침내 결성된 드림팀

기세를 몰아 푸조는 2017년에 더욱 강력해진 3008 DKR로 복귀 후 세 번째 시즌에 임했다. 특히 2017 시즌 푸조 랠리팀의 면면들이 압권이다. 한번 잡은 패권을 결코 놓치지 않겠다는 듯, 랠리 레전드들을 추가로 영입하여 전력을 더 탄탄히 보강한 것이다. 9년 연속 WRC를 제패했던 세바스티엥 로브와 토요타의 올드 레전드 카를로스 사인츠, 바이크 랠리 부문 5회 우승자 시릴 디프리까지. 그야말로 드림팀을 결성한 푸조 랠리팀은 두려울 것이 없었다.

‘압도적.’ 다카르 랠리 2017 시즌의 결과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이렇다. 2016년 포디움 꼭대기에 오른 피터한셀은 다시금 우승컵을 들어 올렸고, 같은 유니폼을 입은 세바스티엥 로브와 시릴 디프리가 나란히 2, 3위를 차지하며 푸조 랠리팀이 포디움을 장악했다.

여담으로, 이처럼 푸조가 후륜구동 랠리카를 앞세워서 우승한 이후, 미니를 비롯한 여타 랠리팀도 후륜구동 랠리카를 참전시킨 바 있다. 참고로 올해 다카르 랠리에 복귀한 쌍용차 랠리카 ‘티볼리 DKR’도 뒷바퀴를 굴린다. 물론 이론상 가능하다고 예측한 메이커들은 많았을 테지만 이론을 현실로 이끌어 내는 게 바로 ‘개척자’다.

극적인 피날레

푸조 랠리팀은 2018년 마지막 무대를 가졌다. 2018 다카르 랠리를 끝으로 전장에서 철수하겠다고 선언했기 때문. 페루-볼리비아-아르헨티나 3개국, 9000km에 달하는 험난한 14일의 일정이 바로 그들의 고별 무대였다. 특히 후륜구동 랠리카에게 불리한 전황이 펼쳐져 푸조 랠리팀이 노렸던 3회 연속 우승도 불투명한 상황이었다. 주최 측이 무게 감소를 위해 후륜구동을 선택한 보람 없이 무게 규정을 완화했고, 3008 DKR에는 70kg 가량의 밸러스트가 추가로 설치된 것이다.

그러나 고작 이런 농간에 신념을 거둘 푸조가 아니었다. 푸조는 후륜 기반 체제를 유지하면서 트랙 증대와 서스펜션을 매만져 이전보다 험해진 2018년 대회에 철저히 대비해왔다. 여러 보강을 통해 더욱 든든해진 ‘3008 DKR Maxi’는 푸조 랠리팀의 염원을 해결해줄 ‘열쇠’였다. 최고출력 340마력, 최대토크 81.5kg·m을 내뿜는 V6 트윈터보 디젤 엔진 덕에 사막 지형이 크게 늘어난 랠리 코스를 쉽게 정복할 수 있었다.

톱클래스 수준의 드라이버로 구성된 드림팀은 불리해진 여건 속에서도 신들린 감각을 선보였다. 사자 군단은 대회 기간 내내 선두 자리를 유지하며 총 13스테이지에서 우승을 7번 거두고, 4번의 원-투 피니시, 3번의 원-투-쓰리 피니시까지 기록하는 등, 가히 베테랑다운 면모를 보였다. 다만 대회 초반 압도적인 성적을 기록하며 선두 자리에 올랐던 세바스티엥 로브는 아쉽게 도중에 리타이어되어 포디움에 오르지 못했다.

결국 푸조는 고별 무대에서마저 기어이 역사를 썼다. 우승컵을 들어 올린 자는 지난해 유일하게 포디움에 오르지 못했던 카를로스 사인츠. 루카스 크루즈와 손잡고 모터스포츠 역사상 가장 험난한 여정을 떠난 그는 49시간 16분 18초라는 최종 기록으로 우승을 차지하며 푸조 랠리팀에게 대회 3연패라는 위대한 결과물을 안겼다.

2018년 챔피언 카를로스 사인츠는 “이번 대회는 내가 경험했던 다카르 랠리 중 가장 어려운 경기였지만, 코-드라이버 루카스와 함께 이처럼 어려운 랠리에서 우승할 수 있어서 매우 만족스럽다”고 밝혔다. 2010년 챔피언 등극 이후 8년 만에 부활을 이룬 그는 팀원의 리타이어와 한층 험난해진 코스, 불리한 규정을 넘어서며 자신의 ‘클래스’를 입증했다.

사자 군단을 왕좌에서 떨어뜨리기 위한 규정 변경과 더욱 험난해진 코스도 드림팀의 기세를 막지 못했다. 그리고 2018 시즌은 대회 출범 40주년이다. 레전드 드라이버들과 불리한 조건까지, 그야말로 극적인 유종의 미를 거둔 셈이다. WRC, 르망24시, 그리고 다카르 랠리까지 커다란 획을 그은 평범한 듯 비범한 이들의 비행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푸조의 반전매력은 도통 바닥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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