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MW

  • 기사입력 2017.10.11 21:28
  • 기자명 모터매거진

PERFORMANCE + PREMIUM = BIMMER

많은 이들의 가슴 속과 비버리 힐즈 차고에는 BMW가 한 대씩 있다.

글 | 안진욱

Franz Josef Popp(1886~1954)

독일 빅3라 하는 메르세데스-벤츠, 아우디, 그리고 BMW. 이들 중에서 가장 팬층이 두터운 브랜드는 BMW다. 독일에서는 베엠베라 불리는 BMW가 콘크리트 지지층을 보유하고 있는 이유는 간단하다.

디자인은 주관적이라 세 브랜드 중 기호에 맞게 선택하면 되지만 압도적인 운전 재미를 제공하기 때문이다. 앞뒤 차체 무게를 50:50으로 맞추고 날카로우며 정확한 핸들링과 코너링을 선사하는 것이 BMW다. 코로나링, 키드니 그릴, 프로펠러 엠블럼 등으로 아이덴티티가 확실하고 창립 이래 이들을 고집스럽게 지키고 있는 BMW. 비머라 불리는 BMW의 이야기는 1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BMW의 설립자는 여느 브랜드와 달리 한 명만을 거론하기 힘들다. 분명한 것은 설립자 중 가장 큰 공을 세운 것은 프란츠 요세프 포프(Franz Josef Popp)다. 1886년 오스트리아의 빈(Vienna)에서 태어난 그는 1909년 기계공학과 전기공학 학위를 취득한 후, 전자제품을 만드는 AEG(Allgemeine Elektricitäts-Gesellschaft)에서 기술자로 근무한다.

이때 프란츠 요세프 포프는 칼 라프(Karl Rapp)가 세운 항공엔진 회사 라프 모토렌 베르케(Rapp Motorenwerke GmbH)에 감독관으로 파견되었다. 이곳의 열악한 생산 시스템을 혁신하기 위해 AEG 동기인 막스 프리츠(Max Friz)를 영입한다.

1916년 제1차 세계대전으로 라프 모토렌 베르케가 경영난을 겪게 되자 프란츠 요세프 포프와 막스 프리츠는 경영권을 인수해 1917년 ‘바이에리셰 모토렌 베르케(BMW : Bayerische Motoren Werke AG)’로 사명을 바꾸고, 이듬해 주식회사로 상장시켰다.

이후 프란츠 요세프 포프의 경영 하에 BMW는 항공기 엔진을 생산해 독일 군대에 납품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독일의 패배로 끝나고,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독일은 군수사업을 중단해야 했다.

이에 BMW는 기존의 인프라를 이용해 모터사이클을 만들었다. 1923년 첫 번째 모델 R32를 출시했다. 당시 전쟁 후유증으로 경제가 죽어있던 독일 내에서 자동차보다는 모터사이클의 수요가 높았고, 항공기 엔진 기술을 토대로 만든 BMW의 제품들은 큰 인기를 끌게 됐다.

모터사이클 시장에서의 성공으로 주머니가 빵빵해진 BMW는 1928년부터 본격적으로 자동차 시장에 진출한다. 비행기공장 아이제나흐(Eisenach)를 인수하고 자동차 제작을 시작했다.

BMW는 오스틴(Austin Motor Company)사로부터 소형 자동차 모델인 오스틴 세븐(Austin 7)의 라이선스를 샀다. 1929년 BMW는 오스틴 세븐을 발전시켜 15마력의 힘을 내는 BMW 3/15를 만들었다. 1933년 BMW는 6기통 엔진이 장착된 BMW 303을 출시했다.

이 모델에는 BMW의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 BMW의 심볼인 프로펠러 엠블럼(Propeller Emblem)과 두 개의 콩팥을 형상화한 키드니 그릴(Kidney Grille)이 처음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BMW만의 색깔을 대중들은 사랑했고 프리미엄 양산차 브랜드로 자리 잡았다. BMW는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모터스포츠에도 도전했다.

1936년 항공기에서 영감을 얻어 유선형으로 디자인한 2인승 레이스카 BMW 328을 출시했다. 높은 차체 강성과 프런트 독립식 서스펜션으로 BMW의 하이테크 진가를 자랑했다.

1936년부터 1940년까지 BMW 328은 172개 대회에 출전하여 141차례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으며, 그 중 1938년 1000마일(약 1600km)을 달리는 이탈리아의 밀레 밀리아(Mille Miglia) 레이스에서는 평균시속 166km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우승해 내구성과 스피드를 인정받았다.

현재 BMW M의 DNA가 이때 잉태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로서 BMW는 모터스포츠에서도 유명세를 얻게 되었다.

다음해 제2차 세계대전이 터지고 BMW는 다시 항공기 엔진과 로켓을 제작해 독일 공군에 납품한다. 전쟁 후 BMW는 연합국에 의해 3년 동안 생산 금지 명령을 받으며 재정적인 타격을 입는다. 회사를 재정비하고 1952년 럭셔리 세단 BMW 501과 BMW 502를 출시한다.

허나 전쟁 여파로 독일 경기가 침체되었기에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1950년대 중반 BMW는 미국 스포츠카 시장으로 눈을 돌린다. 당시 시장을 선점하고 있던 메르세데스-벤츠의 300SL에 대항해 BMW 503과 BMW 507을 출시한다.

8기통 엔진과 4단 수동변속기를 탑재한 BMW 507은 최고출력 150마력, 최고시속 227km를 자랑했다. 슈퍼스타 엘비스 프레슬리(Elvis Presley)가 자신의 애마로 뒀었다.

이후 BMW는 경제적인 컴팩트 모델 BMW 700을 만들었다. 모노코크와 리어 엔진 구조로 세단, 쿠페, 그리고 컨버터블의 총 3가지 모델로 출시되었다. BMW 700은 1965년 생산이 종료될 때까지 총 18만1000대가 판매되었다. BMW 700가 선전했지만 BMW는 재정난을 겪으며 1959년 파산위기에 놓였다.

BMW의 경영진은 회사를 살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당시 인수합병을 제안해 온 메르세데스-벤츠의 제안을 받아들이는 것이라 확신했다.

허나 BMW의 배지는 계속 유지되어야 한다는 주주들의 공통된 의견과 함께 BMW가 메르세데스-벤츠의 하청업체로 전락하는 것을 반대하는 주주들로 인해 바로 무산되었다.

당시 BMW의 주주였던 헤르베르트 콴트(Herbert Quandt)가 BMW의 나머지 주식을 모두 사들이면서 BMW는 숨통을 틀 수 있었다. 1961년 프랑크푸르트 오토쇼에서 스포츠 세단 BMW 1500이 등장하며 큰 호응을 얻었다.

‘BMW 뉴 클래스(Neue Klasse)’시리즈의 첫 번째 모델이었다. 뉴 클래스는 BMW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양산하지 않았던 1500cc~2000cc급 엔진을 장착한 차라는 의미다. 가격이 높았지만 고객들은 BMW 1500의 스포츠 이미지와 혁신적인 디자인, 그리고 높은 완성도로 인해 전혀 불만을 가지지 않았다.

1963년 BMW 1500의 후속모델 BMW 1800이 시장에서 크게 인기를 끌었고, 이후 BMW는 BMW 2000C, BMW 2000CS라는 프리미엄 라인과 실용성 높은 BMW 1600-2 모델을 연이어 출시했다.

이를 통해 1964년 BMW는 전년 매출 대비 47%의 성장세를 보였고, 1950년대의 심각한 재정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더불어 BMW가 스포츠 세단을 만드는 자동차 브랜드라는 인식을 대중들에게 얻을 수 있었다.

1970년 헤르베르트 콴트의 소유 콴트 그룹(Quandt Group)에 있던 에버하르트 본 쿠엔하임(Eberhard Von Kuenheim)이 BMW의 새로운 CEO로 취임했다. 에버하르트 본 쿠엔하임의 지휘 아래 BMW는 라인업을 시리즈로 나누고, 1972년 그 시작으로 BMW 5시리즈를 출시했다.

1974년 석유파동을 겪으면서 엔진 효율성에 대한 소비자 니즈가 높아지자, 이듬해 연료 효율성을 강조한 컴팩트 세단 3시리즈를 선보였다. 당시 BMW 3시리즈는 전체 BMW 매출의 60%를 웃돌며 대표 모델로 자리 잡았다. D세그먼트의 왕관을 이때부터 머리에 얹혔다.

이어 1977년에는 풀사이즈 세단 BMW 7시리즈를 출시한다. BMW의 첫 번째 대형 세단인 7시리즈에는 전자식 스피드미터, 속도 감지형 파워 스티어링, 전자식 사이드미러, 체크 컨트롤 등의 최신 기술이 접목된 장치들을 대거 탑재했다.

라인업을 확장하면서 BMW는 적극적으로 세계 시장에 진출한다. 매출액은 폭발적으로 증가한다. 2번의 오일쇼크를 겪었지만, BMW는 동요되지 않았다. 1990년대 초반 미국의 경제 불황과 함께 걸프전쟁으로 기름값이 폭등하면서, BMW를 포함한 자동차 산업 전체는 큰 타격을 입었다.

당시 자동차 업계에서는 인수합병을 통해 기업 규모를 키우면서 생산 원가를 절감하는 움직임이 유행이었다. 1994년 BMW의 새로운 수장 베른트 피세츠리더(Bernd Pischetsrieder)는 미니(MINI)와 랜드로버(Land Rover), 재규어(Jaguar) 등을 보유한 로버그룹(Rover Group)을 인수했고, 1998년 롤스로이스(Rolls-Royce)를 인수했다.

불경기에 따른 영국정부의 규제 강화로 외국기업 BMW가 기업운영에 난항을 겪어 2000년 로버 그룹 중 미니만 남기고 랜드로버와 재규어는 포드사에, 나머지 로버는 피닉스 컨소시엄(Phoenix Consortium)에 각각 매각했다.

현재 BMW 그룹은 BMW와 미니, 그리고 롤스로이스 3가지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다. 세상에서 가장 유쾌한 브랜드와 세상에서 가장 고급스러운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것이다. 캐릭터가 확실한 독일 브랜드가 캐릭터가 확실한 영국의 두 브랜드를 품에 안고 있다.

100년 동안 산전수전을 다 겪은 BMW는 앞으로의 100년을 준비하고 있다. i시리즈는 BMW의 향후 방향을 알려준다. 내연기관을 포기하더라도 운전재미는 잃지 말자는 의지가 확고하다. BMW가 스포츠카 브랜드는 아니다. 일상생활을 소화하면서 일탈 순간을 즐길 수 있게 하는 것이 BMW다.

기자가 BMW의 팬이 된 것은 M3가 아닌 2시리즈 액티브투어러 때문이다. 몇 년 전 촬영 때문에 루프박스가 올려진 2시리즈 액티브투어러를 이틀간 탔다. 키드니 그릴의 마법으로 전륜구동에 껑충한 차체로 달릴 의지가 없어 보이는 이 녀석이 기자에게 손맛을 줬었다. 이것이 BMW다.

BADGE STORY

수많은 배지 중에서 최고의 디자인 중 하나다. BMW의 로고는 그룹 본사가 자리 잡고 있는 독일 바이에른 주의 푸른 하늘을 상징하는 파란색과 알프스의 눈을 상징하는 흰색을 사용해 프로펠러 형상으로 디자인되었다. 또한 항공기 엔진에서 모터사이클을 거쳐 자동차 분야로 확장해온 BMW이기에 ‘하늘에서 땅으로’, ‘두 바퀴에서 네 바퀴로’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KIDNEY GRILLE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프런트 그릴이다. 사람의 콩팥 모양과 유사해 키드니 그릴이라 불리는 프런트 그릴은 BMW의 상징이다. 수많은 자동차 속에서 BMW를 쉽게 구별해낼 수 있는 이유는 바로 키드니 그릴 때문이다.

이 디자인은 1931년 일(Ihle) 형제에 의해 2인승 로드스터에 최초로 도입되었고 1933년 베를린 모터쇼에 소개된 신형 303시리즈에 다시 부착되면서 전통이 시작되었다. BMW의 역사에서 1955년 3륜 소형차였던 이세타(Isetta)와 1959년 700 모델에서 키드니 그릴이 생략된 적이 있다.

이를 제외하면 자동차 디자인에 따라 조금씩 크기와 모양이 변했지만 기본적인 형태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키드니 그릴은 바로, ‘함부로 변화를 취하기보다 끊임없는 진화의 과정을 거쳐 정상에 도달한다’는 BMW의 장인 정신을 표한다.

MUSEUM

2008년 6월 21일, BMW 박물관은 2년 6개월 동안의 리모델링 작업을 마치고 재개관했다. 이전과 비교해 전체 면적이 약 5배 확장되었으며 120여 대의 차가 전시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되었다.

1973년 오스트리아 출신의 건축가, 칼 슈반처(Karl Schwanzer)가 건축한 BMW 박물관은 커다란 그릇과 같은 형태로 디자인되어 4실린더 BMW 본사 건물과 나란히 뮌헨의 랜드마크다.

공간 내부로 역동적으로 이어지는 경쾌한 경사로 시스템이 방문객들을 25개 전시장에서 펼쳐지는 테마 여행으로 인도한다. 방문객들은 마치 멋진 도시의 잘 닦여진 길을 따라 거리를 걷고 있는 것처럼 이 통로를 통해 이동한다.

BMW 역사와 전통을 보여주는 BMW 박물관은 7개의 테마 전시관으로 구성되어 있다. 특히 BMW 자동차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BMW 로드스터’가 박물관 중앙에 전시되어 있다. 또한 1975년부터 세계적인 아티스트들과 함께 작업되고 있는 BMW 아트카의 보금자리기도 하다.

M

가장 성공한 고성능 디비전 M. 남자들의 로망이자 배지 하나만으로 사나이의 피를 뜨겁게 만든다. 단순하게 M은 모터스포츠의 약자다. BMW의 모터스포츠 기술이 양산차에 접목되어 고성능 모델을 완성한다. 시작은 1972년 창설된 BMW 모터스포츠(Motorsport GmbH, 현재 BMW M GmbH의 전신)다.

레이싱 경험이 많은 35명 팀원들을 중심으로 출범했다. 기념비적인 모델 BMW 3.0 CSL은 1973년부터 1979년까지 유럽 챔피언십에서 6차례 우승했다. 이후 1980년대에는 BMW 최초의 F1 파워 유닛을 설계했는데 1987년까지 총 9회에 걸쳐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1987년부터 5년간은 M3로 유러피언 투어링카 챔피언십과 독일 투어링카 챔피언십(DTM)에서 두 번씩 우승을 거두는 등 화려한 경력을 지니고 있다.

HALL OF FAME

Z8

제임스 본드가 <007 언리미티드>에서 몰았다. 1999년 등장한 Z8은 클래식한 멋의 진수를 보여주는 모델이다. 키드니 그릴을 제외하면 BMW의 느낌이 전혀 나질 않는 것이 특징이다. 우아한 겉모습과 달리 성능은 박력 터진다. M5에서 가져온 V8 5.0ℓ 엔진과 6단 수동변속기로 파워트레인을 구성하고 있다. 계기판이 센터페시아 중앙에 있는 컨셉트카의 향이 나는 인테리어도 매력적이다.

M1

M2의 전신이었던 1M이 M1이라는 이름을 가질 수 없었던 이유는 이 전설적인 모델 때문이다. 1978년 등장한 M1은 BMW 최초의 미드십 스포츠카다. 조르제토 주지아로가 디자인하고 람보르기니가 섀시를 만져줬다. 277마력짜리 직렬 6기통 3.5ℓ 엔진을 얹고 최고시속 260km를 자랑했다. 엉덩이에 BMW 배지 두 개를 단 아이러니한 녀석이기도 하다. 머플러 커터는 왼쪽에 하나밖에 없는데….

850CSi

다시 탄생되기를 바라는 8시리즈. 1990년대 초 자동차 전문 잡지에서 자주 등장하던 셀러브리티로 팝업식 헤드램프가 특징인 럭셔리 쿠페다. 매끈한 보디 라인과 강력한 성능으로 부자들의 지갑을 열게 만들었다.

B필러가 없어도 될 수준의 섀시 강성을 뽐냈다. CSi 모델은 한정판 모델로 1994년부터 약 2년간 200대만이 생산되었다. V12 5.6ℓ 자연흡기 엔진은 6단 수동변속기와 맞물려 최고출력 380마력을 뽐냈다.

M3

가장 성공적인 모델이자 M의 상징 M3는 1986년 등장했다. E30 3시리즈를 베이스로 M이 다듬어 고성능 쿠페로 변신시켰다. 보닛과 선루프만 노멀 모델과 공유하고 나머지 부품들은 모두 M3만을 위해 제작되었다는 풍문이 돌기도 했다.

직렬 4기통 2.3ℓ 엔진은 최고출력 195마력의 힘을 뒷바퀴로 보냈다. 최고시속은 225km로 당시로서는 화끈한 성능이었다. 이 모델은 여전히 많은 마니아들이 리스토어해서 보관하고 싶어 한다.

M5

크리스뱅글이 디자인한 E60 5시리즈는 출시 당시 세상을 뒤집었다. 프리미엄 세단 중 가장 파격적인 디자인이었다. 혹평도 많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질리지 않고 세월을 느낄 수 없는 디자인이다. 여기에 고성능 버전인 M5도 외모 못지않게 놀라운 파워유닛을 달았다.

V10 5.0ℓ 엔진과 수동기반 7단 자동변속기를 조합해 최고출력 507마력, 최대토크 53.1kg·m의 힘을 생산했다. 지금도 유튜브에서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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