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GM 디자인센터, 쉐보레 디자인을 정의하다

  • 기사입력 2017.10.11 09:18
  • 최종수정 2020.09.01 23:50
  • 기자명 모터매거진

BRIGHTER THAN NOW

그동안 그 누구에게도 공개된 적 없는 금단의 공간. 쉐보레 경·소형차와 소형 SUV는 이곳을 거치지 않으면 앙금 없는 찐빵이고 얼굴 없는 기계 덩어리에 불과하다. 10개 팀 180여명 역량 하나하나가 주인공이 되어 쉐보레의 얼굴을 만드는 이곳은 한국GM 디자인센터다.

글 | 박지웅

한국GM 홍보팀으로부터 전화 한 통을 받았다. 다름 아닌 인천 부평 소재 한국GM 디자인센터 투어를 진행한다는 내용이었다. 이 센터는 지난 2014년 400억을 들여 2배 확장한 이후에도 외부 공개를 하지 않았던 금단 지역이라 이번 초청이 내심 반가웠다.

미대를 졸업하지 않은 기자가 디자인에 대해 왈가왈부할 건 아니지만, 자동차업계가 디자인은 신경 쓰지 않은 채 어떻게든 저렴한 가격만을 내세워 판매하던 시절을 지나와서 그런지 글로벌 GM 브랜드의 핵심 디자인 프로그램을 맡은 한국GM 디자인센터의 국제적인 수준이 궁금했다.

투어 프로그램은 아침 일찍부터 진행됐다. 한국GM 관계자는 사진 촬영만 막을 뿐 반갑게 기자단을 맞이했다. 센터 규모는 생각보다 컸다. 투어는 제한된 부분만 공개해 진행했을 것이기 때문에 실제는 눈으로 본 것보다 크다는 얘기다.

나중에 알았지만, 한국GM 디자인센터는 GM 글로벌 네트워크에 퍼져있는 디자인센터 중 규모로는 2위다. 다른 나라도 아니고 미국에 이어 우리나라가 2위인 이유는 한가지다. 뛰어난 디자인 실력을 방증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실력이 안 좋으면 지원도 없겠지만, 규모도 클 이유가 전혀 없다.

본격적인 투어에 앞서 센터 소개와 쉐보레 디자인에 대한 간단한 설명이 있었다. 그 내용에 따르면 한국GM 디자인센터는 북미 워렌(Warren) 디자인센터보다 규모는 작아도 자동차 개발 프로그램과 연계한 실내외 디자인과 디지털 디자인 등 다양한 역할을 동일하게 수행한다.

스파크와 아베오, 크루즈 등 베스트셀링카 디자인 개발에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는 센터는 순수 전기차 라인업까지 도맡아 지금의 볼트EV 실내외를 탄생시켰다. 이곳은 이미 같은 방법으로 2012년 스파크EV를 내놓은 바 있다.

규모도 크지만, 디자인 설비 또한 수준급이다. 이날 발표자로 나온 스튜어트 노리스(Stuart Norris) 전무 역시 한국GM 디자인센터가 뛰어난 한국 디자이너들이 역량을 펼치는 최정상급 첨단 디자인 설비를 갖춘 무대라며, 글로벌 GM 디자인을 책임지는 핵심 기지로서 입지를 굳혀 나가겠다고 자신했다.

노리스 전무는 2004년 입사해 쉐보레와 캐딜락, 오펠 등 GM 글로벌 브랜드 제품의 여러 핵심 프로젝트를 맡아 진행했던 디자인 베테랑이다. 그런 그가 말하는 쉐보레 디자인이란 어떤 것일까?

쉐보레 디자인을 말하려면 우선 전설적인 GM 디자이너인 할리 얼(Harley Earl)을 빼놓고는 말이 되지 않는다. 그는 자동차 디자인 기술로 자유 스케치와 클레이 모델 스컬프팅을 정립한 선구자다. 그가 디자인한 ‘프로젝트 원(Project One)’은 나중에 쉐보레 콜벳이 됐다.

1956년 설립한 GM 테크 센터에서는 콜벳을 포함해 지금의 쉐보레를 널리 알린 카마로와 임팔라, 말리부 등 명작이 탄생했다. 노리스 전무는 이들 차에게 보이는 디자인이 단순히 오래된 쉐보레가 아닌 고유의 날렵하고 강한 이미지를 그대로 유지해 최근 라인업 모델에게도 녹여낸다고 쉐보레만의 디자인 철학을 밝혔다.

설득력 있는 디자인을 설계하다

한국GM 디자인센터는 자동차 하나를 디자인할 때 최고의 결과물을 위해 10개 정예 팀을 운영한다. 투어를 시작해 처음 들른 곳은 자동차 디자인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는 익스테리어와 인테리어 팀이다. 자동차 외관 컬러는 보통 3년에서 4년 후의 트렌드를 예측하고 미리 결정해 놓는다.

우선 겨울에 리서치를 시작한다. 이듬해 봄엔 회의를 통해 20개에서 25개 색을 선정하고, 이들 색으로 여름에 보디 컬러 쇼를 한다. 마지막으로 가을에 최종 컬러를 결정해 내놓는다. 이런 과정은 매년 반복된다.

인테리어 프로세스는 헌트&개더(Hunt & Gather)라는 과정을 필수로 거친다. 리서치 단계로서 시장조사와 고객 선호도 조사, 벤치마킹한 데이터를 토대로 창조적인 디자인을 끌어내려 노력한다. 1세대 스파크에 적용했던 모터사이클 계기판은 이 과정으로 열매를 맺은 좋은 사례다.

두 팀 모두 디자인 스케치를 마치면 아이디어 품평회를 통해 3개에서 4개의 디자인을 추린다. 다음 외관은 실제 차 1/3 크기, 내부 1/4 크기 모델 제작부터는 스컬프팅(Sculpting)팀이 합류한다. 스케치를 바탕으로 디자인을 입체화시키는 팀이다.

최종적으로 실제 차 크기의 클레이 모델을 만들기 전에는 컬러 앤 트림(Color & Trim)팀도 역할을 시작한다. 컬러 앤 트림 팀은 쉽게 말해 차에 색을 입히고 어울리는 소재를 정하는 과정을 맡는다. 마치 새로 산 집을 꾸미는 것과 같다. 쉐보레 내부 트림은 크기가 커도 원피스로 만들어 중간에 끊어지는 부분이 없다는 것도 놀라운 사실이다. 컬러 앤 트림 팀이 고급스럽게 꾸미기 좋은 조건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팀은 디지털 팀이다. 기자는 지금까지 해외 멋진 배경에 화려한 스포츠카 사진을 보고 진짜가 아닐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한국GM 디지털 디자인 팀이 선보인 글로벌 크리에이티브 비주얼라이제이션(Global Creative Visualization, 이하 GCV)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GCV 기술은 날씨, 배경 등 원하는 조건을 고르고 실사에 가까운 자동차 CG 이미지 제작이 가능하다. 예시로 보여준 사진은 정말 해당 장소에 가서 찍은 진짜 같았는데 GCV 기술로 그린 작품이라고 하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VR(Virtual Reality) 신기술과 접목해 가지고 있는 3D 데이터를 가상현실 공간에 띄워 진짜 차처럼 보이는 한 차원 높은 시각화를 구현했다.

이날 가진 체험에서 체험자는 360도 가상현실 속에서 손을 쓰지 않고도 차 곳곳을 투시해 파워트레인의 확인이 가능했고, 차에 직접 앉아 시인성을 체크하는 등 실제보다 더 간편하게 차를 살펴볼 수 있었다. VR이 가상과 현실의 경계를 허물고 디자인 커뮤니케이션 툴로서 가지는 성장 가능성을 톡톡히 보여줬다.

20년 전만 해도 우리나라 자동차업계에서는 해외 자동차 디자인을 값비싼 로열티를 내고 가져오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이 방법으로 자동차 제조사 측은 개발 비용과 시간을 아낄 수 있었고, 소비자는 만족감 높은 제품을 만날 수 있었다.

달리 말하면 당시 국산 자동차 디자인은 투자가 열악한지 국제적인 수준에 못 미쳤단 뜻이다. 한국GM 디자인센터를 방문하고 이런 생각은 많이 바뀌었다. 정확히는 정반대가 됐다. 잘 배우고 숙련된 우리나라 디자이너가 글로벌 GM에 포진해 열매를 맺었다. 이제 한국인이 쉐보레를 디자인하고, 세계적인 디자인을 한다.

디자인은 그동안 현대 자동차산업에서 성능과 가격 못지않은 경쟁력으로 여겨진 지 오래다. 그저 디자인 조금 바꾸고 내놓은 모델은 소비자로부터 철저하게 외면당할 것이다. 한국GM 디자인센터는 쉐보레가 가진 디자인 철학과 소비자 니즈에 맞는 체계적인 디자인 개발 과정을 공개했다.

한국 철수설과 위기설 등 쉐보레를 둘러싸는 안 좋은 소리가 들리지만, 기자가 직접 두 눈으로 확인한 쉐보레 디자인은 최정상 수준을 자신하기 충분하다. 앞으로 국내 시장의 문을 두드릴 쉐보레 신차는 어떤 모습일지 벌써 기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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