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AMG S63 4매틱+

  • 기사입력 2018.07.24 15:37
  • 기자명 모터매거진

DON’T TELL PAPA

굳이 어울리지 않아도 된다. 누가 타도 좋으니까. 언제든지….

글 | 안진욱 사진 | 최재혁

아빠 사업이 술술 잘 풀리나 보다. 저녁 식사 도중 S클래스를 산다고 선언했다. 나의 심장박동수는 빨라지고 손가락에 힘이 풀리며 숟가락을 떨어뜨렸다. 우리 아빠는 보닛에 삼각별이 발딱 서있는 S500에 로망이 있다.

거래처 사장들이 모두 검은색 S500을 탄다고 한다. 여하튼 주말에 우리 가족은 메르세데스 매장에 갔다.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를 들었다.

이제 S500은 없고 S560으로 대체되었다고. 그놈이 그놈인 것 같지만 아빠는 분명 500이라는 숫자에 꽂히셨나보다. 이전 S500 보다 파워와 효율이 높아졌다는 것은 아빠 왼쪽 귀로 들어가 오른쪽 귀로 빠져나왔다.

아빠가 이해할 수 없는 좌절에 빠져있을 때 나의 눈을 사로잡는 녀석이 있었다. 바로 AMG 대장 S63이다. 어릴 때부터 <모터매거진>에서 수도 없이 AMG 찬양 글을 읽었다. 그 중에서 S클래스 AMG 버전은 바퀴 달린 것 중 최고라는 찬사가 쏟아졌다.

최신형 S63은 노멀 S클래스와는 확실히 다른 포스를 뿜고 있었다. 순간 머리에서 스파크가 튄다. AMG라면 나도 타고 싶다. 소파에 늘어져 있는 아빠를 이끌고 S63 곁으로 온다. AMG를 모르는 아빠에게 이 차를 사야하는 63가지 이유를 억지로 만들기 시작한다.

이 차 하나로 거래처 사장 사이에서 큰형님이 될 수 있다고 부추겼다. 사실 그들도 AMG가 뭔지 모르겠지만…. 넘어오는 듯했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비싼 가격에 아빠는 주춤했다. 나의 마음을 읽은 딜러는 나의 공격에 힘을 더한다.

협공에 당해낼 수 없었는지 결정권을 엄마에게 토스한다. 나와 딜러의 애절한 눈은 엄마로 향했고 우리집 대통령은 흔쾌히 허락하셨다. 이런 호쾌한 성격의 아내를 둔 남자만이 S클래스를 탈 수 있다는 사실을 이번에 알았다.

여하튼 외장은 아빠가 원하던 블랙 색상으로, 실내는 엄마가 좋아하는 밝은 베이지로 선택했다. 계약은 끝났으니 이제 기다리는 일만 남았다. 차가 우리집으로 오기 전까지 수도 없이 S63 영상을 유투브로 봤다. 역시나 호평일색이다.

드디어 그 날이 왔다. 우리 가족은 콧노래를 부르며 딜러숍으로 향했다. 트럭 위에 검정 S63이 위풍당당하게 앉아 있다. 기사 아저씨가 능숙하게 차를 내려주는 동안 범퍼나 휠에 상처가 생길까 우리 가족 모두 숨을 참고 있었다.

무사히 내린 후 틴팅과 블랙박스 작업을 하는 동안 내가 직접 번호판을 달았다. 6300은 걸리지 않았지만 나름 괜찮은 번호다.

번호판을 다니 프런트 범퍼의 에이프런이 부각되면서 인물이 더 산다. 이제 우리 아빠가 안전하고 멋있게 타는 모습을 떠올리고, 이 바람을 차에 담았다. 그리고 아빠가 빨리 출장가기를 또 한 번 기도했다. 정말 간절하게.

거짓말처럼 출고한지 일주일 후에 아빠가 스웨덴으로 날아갔다. 키는 어디에 있는지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타이밍도 기가 막히다.

다음날에 강촌으로 MT를 가니 말이다. 아직 고백하지 못했지만 우리 과에 내가 짝사랑하는 여자애가 있다. 이름은 아라. 우리 아빠차에, 아니 내 S63에 그녀를 태우고 서울을 벗어나는 상상에 잠이 오질 않는다.

한 가지 걸리는 것은 얄미운 선배다. 나의 여신을 자기가 찜했다고 떠벌리고 다닌다. 게다가 다들 잘생겼다고 난리치니 더 얄밉다. 공부도 잘하고 대학생 주제에 차도 가지고 있다. 심지어 비싼 차다.

형한테 물려받은 2014년식 아우디 RS5인데 네 바퀴로 움켜쥐고 달리는 것도 얄밉다. 내가 이번 여행에서 그 녀석을 제쳐버리겠다.

떠나는 날이 밝았다. 엄마한테 무릎을 꿇고 내 자존심을 바쳐 S63 키를 받았다. 우리집 지하주차장 명당에 세워진 S63은 나를 반겼다. 이렇게 운 좋을 수가. 시동이 잘 걸린다. 컬럼 타입 기어 노브를 내리고 학교로 출발한다.

그동안 누나차인 미니 쿠퍼만 타봐서인지 모르겠지만 오늘 유난히 대한민국 도로가 매끄럽게 닦여 있는 것 같다. 차가 크게 느껴지지도 않아 운전하는데 전혀 부담이 없다. 미끄러지듯 움직이다 보니 어느새 학교에 닿았다.

멀리 선배의 RS5가 보인다. S63은 깜짝 등장을 위해 농구장 옆에 세워 놓는다. 선발대는 이미 떠났고 후발대 15명이 모두 모였다. 차는 렌트카 카니발과 RS5, 그리고 비밀병기 S63, 이렇게 총 3대다. 먼저 선배 추종자 2명이 까불거리며 RS5에 올라탄다.

한 자리가 남기에 선배가 아라에게 자기 차에 타라고 권한다. 천사 아라는 연희와 함께 타겠다고 정중히 거절한다. 좋았어. 그 사이 추종자 하나가 RS5에 침투한다. 좁은 뒷자리에 낑낑대고 있는 모습이 웃겼다. 좋았어.

모두 내가 누나차를 가져오는 줄 알았기에 내차는 서로 타기 싫어했다. 남은 인원 대부분이 카니발로 뛰었고 나와 내 친구, 연희, 그리고 아라가 남았다. 좋았어.

우리도 S63을 향했다. 그들은 S63 외관에 눈이 커졌고 실내로 들어가자 입이 벌어졌다. 좌석 배치는 아라와 연희가 뒷좌석, 친구 녀석이 내 옆이다. 룸미러에 걸린 염주와 컵홀더에 목캔디를 재빨리 콘솔박스에 쳐 박았다.

이제 우리도 출발한다. 낭만을 안고 강촌으로…. 분위기에 맞춰 음악을 틀어줘야겠다. 나의 선택은 블랙핑크의 <마지막처럼>. 정말 마지막처럼 오늘 그녀에게 들이댈 거다.

부메스터 오디오 시스템은 베이스가 묵직하고 보컬이 묻히지 않고 가사 전달을 잘한다. 제니가 내 옆에서 직접 노래를 불러주는 것 같다. 물론 우리 아라가 제니보다 더 예쁘다. 룸미러로 훔쳐보니 아라가 흥얼거린다. 기분 좋다.

올림픽대로를 벗어나니 교통량이 줄었다. 카니발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빨간색 RS5는 저기에 있다. 선배가 이제야 내가 S63을 몰고 왔는지 알았다. 의식했는지 굉음을 내며 달리기 시작한다. 나도 질 수 없지.

스포츠 플러스 모드로 변경한다. 가속 페달에 힘을 실을수록 배기사운드가 들리기 시작한다. 이중접합 유리와 완벽한 방음 때문에 실내로 유입되는 음량은 작지만 창문을 살짝만 내려보면 폭발적인 사운드를 토해낸다.

4500rpm 부근에서 스로틀이 닫힐 때 터지는 백프레셔는 나와 아라, 그리고 깍두기 둘에게 신세계를 맛보게 해준다. 이것이 바퀴 4개 달린 초호화 독일산 할리데이비슨이다.

주행안정감이 높아 체감 속도가 높지는 않다. 얼마나 빠른지 가늠하기 어렵지만 어느새 RS5는 사이드미러에 담겨져 있다. 8기통 4.0ℓ 트윈터보 파워유닛은 최고출력 612마력, 최대토크 91.8kg·m의 힘을 생산하고 9단 자동변속기와 매칭되어 네 바퀴를 굴린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단 3.5초. 아무리 몸무게가 많이 나간다고 하지만 이정도 파워 차이는 선배차를 우습게 볼 수밖에 없다. 비교할 수 없는 가속력이다. 아라도 무섭지 않은지 놀이기구를 타듯 신났다.

세상을 모조리 시야 뒤로 둘 수 있을 것만 같다. 고속도로의 황제 메르세데스, 메르세데스의 황제 S클래스, 거기에 AMG 배지까지 붙었으니 세상 무서울 게 없다.

IC를 빠져나와 선배차와 카니발을 잠시 기다린다. 당황했지만 당황하지 않은척하며 선글라스를 만지며 그가 나에게 다가온다. 역시 AMG는 직선구간에서 최고라며 칭찬하는 듯 하다가 코너링 퍼포먼스는 떨어진다고 비꼬기 시작한다.

M4 정도 타면서 코너링을 운운하면 가만히 있겠는데 프런트 액슬 앞에 엔진 얹은 자아를 발견하지 못하는 게 안타까웠다. 어쩔 수 없이 와인딩 실력을 보여줘야겠다.

차로 산을 탄 적은 없지만 내 애마 BMW S1000RR로는 수도 없이 내 무릎을 깎았다. 두 바퀴 BMW로 다져진 드라이빙 테크닉을 네 바퀴 AMG로 보여주겠다. 다짐하는 동안 카니발이 도착했다. 다시 출발이다. 내가 선행이다.

뒤에 RS5가 바짝 붙었다. 신명나게 등산할 준비는 끝났지만 아라가 신경 쓰인다. 그녀가 멀미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빨리 달리는 것이 관건이다. 그녀가 천정에 있는 손잡이를 잡는 순간, 난 더 이상 스로틀을 열 수 없을 것이다.

우선 노면이 좋지 않아 감쇠력은 하나 풀고 그립을 올린다. 첫 번째 코너에서 가볍게 스티어링 휠을 라인에 맞춰본다.

서스펜션이 완전히 조여진 상태가 아니지만 좌우롤링은 잘 억제되어 있다. 조금 더 공격력을 올려보자. 속도를 높여도 부담이 없다. 언더스티어 현상이 살짝 일어나지만 대응가능하다. 가속 페달로만 라인의 크기를 조절할 수 있다.

휠베이스가 3m가 넘는 거구지만 리어 액슬이 잘도 따라온다. 마음 놓고 코너를 공략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중량이 체감되지 않는다. 스티어링 휠을 이리저리 휘저어도 자세가 무너지지 않으며 주행안정화장치의 개입도 눈치 챌 수 없을 만큼 세련되게 세팅되었다.

스티어링 피드백이 적당히 빠릿빠릿하고 솔직해 손맛도 은근히 짜릿하다. 복합코너에서도 어리둥절한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 서스펜션과 차체가 따로 놀지 않고 한쪽으로 쏠린 중량은 반대편으로 유연하게 넘긴다.

차가 문제인지 운전자가 하자인지 모르겠지만 고추장 RS5는 점점 멀어진다. 타이어 스키드음을 즐겨보지 못한 티가 확 난다. 다행히 아라가 손잡이를 잡지도 않았다.

승리에 취해 있을 무렵, 갑자기 경운기가 튀어나온다. 브레이크 페달을 강하게 밟는다. 순간적으로 아빠 얼굴이 윈드실드에 비치면서 경운기 앞에 섰다.

운이 좋기도 했지만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 시스템이 돈값을 했다. 서킷에서 어떤 퍼포먼스를 보여줄지는 모르겠지만 공도에서는 만족스럽다. 노즈다이브 혹은 브레이크스티어 현상은 잘 억제되어 있고 코너에서 브레이킹이 들어가도 차가 안쪽으로 말리지 않는다.

게다가 고속에서 강한 제동이 연거푸 들어가도 지치지 않는다. 으뜸은 카본 세라믹 특유의 패드 소음이 없고 디스크 로터에 열이 오르지 않아도 운전자를 당황시키지 않는다는 점. 발로 전해지는 느낌도 스틸과 크게 다르지 않아 좋다.

숙소에 도착하고 나니 RS5의 뒷자리에서는 곡소리가 나고 있다. 본의 아니게 추종자들의 어제 저녁 메뉴를 알고 말았다. 그에 반해 아라는 더 예뻐졌다. 저녁에 고기 파티를 하고 설거지 벌칙이 남았다. 이게 무슨 일인가. 소설처럼 나와 아라가 설거지를 하게 되었다.

설거지는 싫지만 아라와 함께하는 설거지는 언제든지 환영한다. 신이 세상의 행운을 모두 나에게 주는 것만 같았다. 불판을 수세미로 박박 닦으며 우린 담소를 나눴다. 고무장갑을 끼고 흘러내리는 머리카락을 넘기는 장면은 슬로우 비디오로 변했다.

그 순간 난 수세미를 냄비에 던지며 박력있게 고백했다. 어떻게 됐냐고? 시원하게 차였다. 내가 못생겨서 싫다고 했다. 아우프레시트(Aufrecht)와 멜셔(Melcher)도 내 얼굴의 퍼포먼스를 올리기에 역부족이었다. 아빠도 미안해.

SPECIFICATION _ MERCEDES-AMG S63 4MATIC +

길이×너비×높이 ​5287×1915×1499mm | 휠베이스 3165mm | 무게 ​​​2275kg | 엔진형식 8기통 트윈터보, 가솔린 | 배기량 3982cc

최고출력 612ps | 최대토크 ​​​91.8kg·m | 변속기 9단 자동 | 구동방식 AWD | 서스펜션 (모두)멀티링크 | 타이어 (앞)255/40 R 20, (뒤)285/35 R20

0→시속 100km 3.5초 | 최고속도 시속 250km | 복합연비 ​​​7.8km/ℓ | CO₂ 배출량 226.0g/km | 가격 2억510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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