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카티 959 파니갈레 / 로터스 엘리스 / 포르쉐 911 GT3 RS / 렉서스 RC F / 람보르기니 우라칸 스파이더 / 페라리 GT4 루쏘

  • 기사입력 2017.08.11 00:00
  • 최종수정 2020.09.01 20:52
  • 기자명 모터매거진

NATURAL ASPIRATION, NEVER AGAIN

42개의 실린더가 합주를 시작했다. 다른 언어, 피부색을 가졌지만 소름끼치는 연주 실력은 모두 그 수준이 정점에 있었다.

글 | 안진욱

사진 | Chris.C

>>PROLOGUE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 전 세계 유일하며 마지막 기회이자 기획일지도 모른다. 몇 년 전부터 불거진 자연흡기 종말론은 현실화되고 있다. 환경법규가 강화되면서 자동차 메이커들은 배기량을 줄이는 다운사이징을 감행할 수밖에 없다.

낮아진 출력은 과급기로 다시 올려 이전 세대보다 근사한 숫자를 브로셔 빈칸에 넣었다. 제대로 된 회사의 공산품은 신제품의 성능이 당연하다. 바보가 아닌 이상 이전 것보다 떨어지는 제품으로는 갈수록 눈이 높아지는 소비자들을 잡을 수가 없으니.

허나 여전히 자연흡기 엔진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많다. 우리가 자연흡기 엔진을 찬양하는 것이 비단 과거를 회상하고 추억을 파는 것이 아니다. 자연흡기 엔진만의 매력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차를 사랑하는 사람들은 자동차에 기계 이상의 의미를 부여한다.

폭발적인 가속력과 날카로운 핸들링이 운전재미에 큰 영향을 준다. 반면 종종 기사에서 금속덩어리를 표현하면서 감성을 운운할 때 가장 비중이 큰 것이 배기 사운드다. 귀를 자극하기엔 자연흡기 엔진이 최적화되어있다.

자연흡기 엔진이 구조상으로 더 좋다고 설명하는 것보다 과급기를 단 엔진이 왜 귀를 즐겁게 하지 못하는지를 설명하는 게 빠르다. 특히 터보 엔진은 머플러 팁에 고구마를 끼워 넣은 소리가 나기는데 이는 배기가스 일부를 되새김질하기 때문이다.

또한 자연흡기 엔진이 운전자가 엔진회전수를 1차원적으로 쉽게 컨트롤할 수 있다. 터빈이 스풀업할 때 순간적으로 토크밴드가 상승하기에 액셀링을 미세하게 조절하기 힘들다. 이러한 이유들로 인해 기자를 포함한 수많은 마니아들은 자연흡기 엔진을 벌써 그리워하고 있다.

6색상의 6대를 모았다. 공대오빠라 그런지 몰라도 기자는 수열에 민감하다. 기자생활을 시작했을 때부터 2기통부터 12기통 자연흡기 엔진을 단 모델들을 한자리에 모으고 싶었다. 직렬, V형 수평대향 엔진이 총출동했다.

슈퍼스타들의 모임이니만큼 스케줄 잡기도 힘들었지만 기왕이면 장르도 전부 달랐으면 했다. 모임 조건은 자연흡기 엔진에 문짝 두 개, 그리고 색깔이 확실해야한다. 변속기도 수동과 자동 그리고 듀얼클러치까지 포진해 있다. 코카콜라 곰이 가장 싫어할 기획. 이제부터 시작한다.

REPRESENTATIVE OF 2 CYLINDERS

두카티 959 파니갈레

기자가 처음으로 이 기획을 구상했을 때는 4기통부터 시작되었다. 자연흡기가 자취를 감추기 일보직전인 지금, 짝수의 시작인 2기통을 빼놓기는 아쉬웠다. 2기통 자동차는 생소하지만 호랑이가 담배피던 시절엔 작은 차의 심장으로서 잘도 뛰어다녔다.

차체의 크기가 시대와 비례하면서 보다 높은 출력이 필요했고 2기통 엔진은 서서히 잠들었다. 시간이 흘러 다운사이징에 가속이 붙어 다시 2기통 모델이 출시되고 있다.

피아트 500 트윈에어와 르노의 2기통 디젤 엔진이 그 주인공이다. 허나 다시 말하지만 이번 기획은 자연흡기 특집이기에 그들은 참가자격이 박탈됐다.

그렇다면 바이크로 눈을 돌려야한다. 나머지 다섯 대의 차들이 모두 스포츠카들이기 때문에 슈퍼바이크라는 조건이 붙었다. 2기통 바이크는 많지만 슈퍼바이크 중에서는 보기 힘들다. 아니 그 중 오직 두카티만이 가지고 있다.

수많은 바이크 브랜드 중에서 하나를 골라야했는데 차라리 잘 됐다. 어차피 기자는 마음속에 두카티를 담고 있었다. 명차들과 함께 하려면 두카티의 브랜드 밸류가 ‘딱’이었으니까. 모터매거진 독자들은 두카티가 자동차 브랜드만큼 익숙하지는 않을테니 간단하게 집고 넘어가자.

쉽게 말해 두카티는 바이크 세계의 페라리다. 이탈리아 볼로냐(Bologna)에 본사를 두고 있는 두카티는 안토니오 두카티(Antonio Cavelieri Ducati)와 그의 세 아들이 공동 설립했다. 사명은 그들의 성 ‘두카티(Ducati)’에서 따왔다.

출발은 바이크가 아닌 라디오 부품 제조 회사(Radio Brevetti)로 1926년에 시작했다. 이후 1935년 파니갈레(Panigale)에 새로운 공장을 짓고 생산 제품의 범위를 확대했다. 2차 세계대전에는 군수물품을 생산했으나 1944년에 폭격을 맞아 공장이 파괴되었다.

전쟁이 끝난 1946년, 자전거 장착용으로 개발한 48cc의 엔진 쿠치올로(Cucciolo : 이탈리아어로 강아지)가 생산되기 시작했다. 이 작은 엔진은 20만대 이상 판매되며 순식간에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개선된 쿠치올로는 소형 바이크에 탑재되고 모터스포츠에서 우승 트로피를 모으기 시작한다.

1954년 두카티는 사업이 확장됨에 따라서 전기/기술(Ducati Elettrotecnica)와 바이크(Ducati Meccanica) 분야로 회사를 나눈다. 이로써 본격적인 모터사이클 회사로 거듭나고 60년 이상 동안 최정상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러한 두카티에는 다양한 모델들이 있지만 959 파니갈레를 호출했다. 보다 강력한 모델들이 라인업에 존재하지만 그나마 다루기 쉬운 959 파니갈레가 2기통 엔진을 느끼기에 수월할 것 같았다. 페라리에 빗대자면 812 슈퍼패스트 대신 488 스파이더를 부른 것이다.

부르자마자 쏜살처럼 등장한 959 파니갈레는 눈이 정화되는 외모를 자랑하고 있다. 바이크는 자동차보다 훨씬 작고 디자인에 제약사항이 많기 때문에 다른 바이크와의 차별을 두기가 어렵다. 허나 두카티는 독보적인 디자인을 가지고 있다.

앞에서 바라보면 헤드램프 사이로 내려오는 노즈 때문인지 잘 생긴 외계인 같다. 촬영 장소를 지나는 아저씨들의 질문공세가 이어질 정도로 만인의 눈을 만족시킨다. 세상에 존재하는 바퀴 두 개를 달고 있는 가장 멋진 공산품이 두카티다.

페라리와 같은 이탈리안 레드 페인트를 곱게 발랐다. 두카티의 시그니처 컬러이며 그밖에 화이트 색상(레드 휠)을 선택할 수 있다. 사이드미러가 크지 않고 마운트가 짧아 전체적인 디자인을 해치지 않는다. 차체 오른쪽 뒤로 바주카포처럼 생긴 머플러 두발이 길게 뻗어있다.

유광 블랙으로 칠해진 17인치 휠은 나이키 에어맥스보다 성능이 좋은 피렐리 디아블로 로쏘 코르사를 신고 있다. 브레이크 시스템은 같은 국적의 브렘보가 달린다. 전륜에 4피스톤 캘리퍼, 후륜에 2피스톤 캘리퍼는 각각 320mm, 245mm 디스크와 조합된다.

시트포지션은 830mm로 180cm 남자가 올라타면 편한 까치발로 차체를 받칠 수 있다. 계기판은 LCD로 되어 있어 깔끔하며 시인성이 좋다. 거기에 전자식 스로틀 타입으로 라이딩 모드(Sport, Race, Wet)를 선택해 상황에 맞는 주행이 가능하다.

이제 두카티를 깨운다. 당연하지만 할리데이비슨의 2기통과 비교된다. 뱅크각을 45°로 만들어 고의적으로 진동을 주며 엇박자 사운드를 주는 것과 다르다. 두카티는 L형(뱅크각 90°) 엔진으로 진동이 거의 없으며 정박자 사운드를 낸다. 음색은 4기통 슈퍼바이크에 비해 허스키하면서 중저음이다.

허나 고회전 영역으로 스로틀을 당기면 배기 사운드의 톤이 점점 높아지면서 라이더의 털끝을 세워준다. 이전 세대 899 파니갈레의 엔진을 가지고 스트로크만 늘여 배기량 57cc를 키워 955cc 엔진을 완성했다.

1만500rpm에서 최고출력 157마력, 9000rpm에서 최대토크 11.0kg·m의 힘을 낸다. 늘 자동차 제원만 써서 그런지 정말 낯선 엔진회전수다.

수치에 놀랐지만 4기통 슈퍼바이크에 비해서는 낮은 rpm을 사용한다. 같은 배기량이면 실린더수가 많을수록 스트로크가 짧아지기 때문이다. 반면 두카티가 2기통을 고집하는 이유 중 하나는 경량화 때문이다. 가벼운 무게가 중력과 원심력을 이겨내는데 훨씬 유리하다.

또한 엔진 크기를 작게 할 수 있어 디자인을 조금 더 자유롭게 할 수 있다. 종합하면 두카티스트는 재미와 멋을 중요시 여긴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SPECIFICATION

길이×너비×높이 2056×-×1115mm | 휠베이스 1431mm | 무게 176kg | 엔진형식 2기통 가솔린

배기량 955cc | 최고출력 157ps | 최대토크 11.0kg·m | 변속기 6단 수동 | 구동방식 RWD

서스펜션 (앞)텔레스코픽 도립, (뒤)싱글쇽 스윙암 | 타이어 (앞)120/70 R17, (뒤)180/60 R17 | 0→시속 100km -

최고속도 289km/h | 복합연비 17.9km/ℓ(유럽) | CO₂배출량 133g/km(유럽) | 가격 2520만원

REPRESENTATIVE OF 4 CYLINDERS

로터스 엘리스

대부분의 차들은 연료를 막론하고 4기통 엔진을 탑재하고 있다. 크기가 작고 연료효율도 높으며 현재 출력도 부족하지 않기 때문에 가장 인기 있는 엔진이다. 대부분 직렬 4기통을 사용하지만 토요타나 포르쉐 718 박스터처럼 수평대향 방식이 있고 과거에는 V4 형식도 있었다.

과거엔 엔진룸이 작아 엔진 부피를 최소화해야했다. 말이 V형이지 뱅크각이 작아 만화에 나오는 다이너마이트 모양처럼 거의 모든 실린더가 서있는 형상이라 보면 된다.

4기통은 그 브랜드의 기본기를 옅볼 수 있기도 하다. 특히 대중 브랜드들의 가장 치열한 싸움이 펼쳐지는 곳이기도 하다. 실용성이 중시되는 차들에 들어가기 때문에 따질 것도 대형 엔진들에 비해 많다. 그 중 토요타는 4기통의 장인이라 부를 수 있다.

전세계에서 가장 차를 많이 파는 브랜드답게 4기통 엔진을 수없이 만들어왔고, 다른 양산차 브랜드에 납품도 많이 한다. 그렇기에 이 토요타 엔진을 사용하는 브랜드를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었다. 바로 로터스 엘리스다.

캐릭터가 뚜렷하다 못해 고집스러운 브랜드 로터스. 창립자 콜린 채프먼이 지향했던 초경량 스포츠카로 두터운 마니아층을 확보하고 있다. 로터스 시리즈의 시작 엘리스는 비현실적인 차체 크기와 동글동글한 외모로 마치 RC카 같다.

루프가 성인 남자 허리에 이를 정도로 땅바닥에 바짝 엎드려 있다. 4개의 원으로 구성된 테일램프 위로 살짝 솟구친 트렁크 리드 라인은 스포일러 역할을 해 다운포스를 높여준다. 도어 뒤쪽으로 뚫린 숨구멍을 보자면 미드십 구조임을 눈치챌 수 있다.

엘리스를 데일리카로 사용하기 가장 꺼려지는 점은 승하차가 어렵다는 것이다. 욕조(Tub) 모양처럼 생긴 알루미늄 섀시 구조 때문인데 문턱이 넓고 높아 탈 때마다 낑낑거리기 일쑤다. 실내에는 꼭 필요한 것들로만 채웠다.

로지텍 레이싱 휠만한 스티어링 휠, 알루미늄을 깎아 만든 기어노브, 그리고 클러치, 브레이크, 가속 페달을 갖추었다. 에어컨과 라디오까지 작동되니 여기서 더 바란다면 대치동 자동차 거리로 눈을 돌리는 게 정신 건강에 이롭다.

꼬마 자동차 엘리스는 뚜껑을 열 수 있다. 오픈 방식은 체결부위를 분리하고 캔버스 재질의 톱을 김밥처럼 말면 된다. 처음에는 조금 어렵지만 익숙해지면 톱을 제거하는데 1분도 채 걸리지 않는다. 보통 오픈톱 모델들이 20초 정도의 작동시간이 걸리니 오래 걸린다고 볼 수도 없다.

걷어낸 톱은 엔진룸 뒤에 위치한 트렁크 공간에 넣으면 된다. 모양이 빠져 보일 수도 있지만 동승자와 함께 하면 나름 재미있다. 남들이 하지 않는 독특한 행위를 하니 우월감마저 드는 착각이 들 정도로 엘리스는 운전자를 홀린다.

엘리스에는 토요타에서 가져온 4기통 1.6ℓ 엔진이 탑재되며 최고출력 136마력, 최대토크 16.7kg·m의 힘을 낸다. 세계에서 가장 많이 팔린 코롤라의 심장으로 사용되는 엔진 (1ZR-FAE)이다. 놀라운 출력은 아니지만 회전질감이 좋다.

보통 4기통 엔진은 4000rpm을 넘어서면 힘들다고 징징거린다. 반면 엘리스의 엔진은 부드럽고 거뜬하게 고회전 영역을 소화한다. 이 작은 스포츠카의 무게는 900kg도 되지 않아 스로틀이 열리는 순간의 엔진 반응은 재빠르다.

여기에 6단 수동변속기는 변속할 때마다 손맛이 일품이며 클러치 미트감이 그리 무겁지도 않아 나름 편안하다. 브레이크와 가속 페달의 간격은 270mm의 운동화로 힐앤토를 구사하기에 딱 좋다.

4기통 배기 사운드는 그리 환영받지 못하지만 시승차는 애프터마켓의 것이 장착되어 백프레셔를 동반하며 잘도 붕붕거린다. 박진감 있다.

로터스를 탔으면 산길을 달려야한다. 파워가 넘치지 않아 다운힐이 훨씬 재밌다. 전자식 파워 스티어링 휠이 대중화가 된 지금, 멸종위기에 처한 논파워 스티어링 휠의 맛은 일품이다. 주차할 때의 불편함은 핸들링하는 재미가 덮어버린다.

코너를 돌 때 원하는 만큼 지시를 내리면 그 만큼 도는 정직함을 지니고 있다. ‘마리오 카트’를 현실화시킬 수 있는 장난감이다. 브레이킹 중에도 균형을 잘 유지한다. 노즈다이브 현상이 일어나지 않으며 고속에서 강한 제동이 연속적으로 걸리더라도 지치지 않는다.

흔하고 평범한 4기통 엔진은 겸손한 136마력의 출력을 내지만, 866kg의 중량과 함께하는 오픈에어링은 엘리스가 아니면 절대 누릴 수 없는 호사다. 엘리스는 이번 기획에 주옥과 같았다. 멸종위기에 처한 논파워 스티어링 휠, 수동변속기, 그리고 자연흡기 엔진을 모두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다운사이징으로 플래그십 모델에도 4기통 터보 엔진이 장착되고 있다. 가장 흔하지만 조금 있으면 작별인사를 해야 하며 너무 익숙했던 나머지 이별 후유증이 클 엔진이 바로 4기통 자연흡기다.

SPECIFICATION

길이×너비×높이 3785×1850×1117mm | 휠베이스 2300mm

무게 866kg | 엔진형식 4기통 가솔린 | 배기량 1598cc

최고출력 136ps | 최대토크 16.7kg·m | 변속기 6단 수동 | 구동방식 MR

서스펜션 (모두)더블 위시본 | 타이어 (앞)175/55 R16, (뒤)225/45 R17

0→시속 100km 6.5초 | 최고속도 204km/h | 복합연비 15.8km/ℓ

CO₂배출량 149g/km | 가격 7200만원

REPRESENTATIVE OF 6 CYLINDERS

포르쉐 911 GT3 RS

과거 차에 고급이라는 수식어가 붙으려면 적어도 실린더 6개는 달려야했다. 6기통부터 통상적으로 큰 엔진으로 불렸으며 레이아웃이 다양하다. 대부분을 차지하는 V형, 직렬, 그리고 수평대향 방식이 있다. V6 엔진의 역작들은 많지만 장기 집권한 유닛은 닛산의 VQ 엔진이다.

성능도 성능이지만 끝까지 남는 자가 가장 강하다고 하지 않는가? 강산이 한 번 바뀔 동안 꾸준히 권위 있는 상들을 받은 엔진이다. 직렬 6기통에 관해서는 BMW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실키식스라 불린 이 엔진은 2000년대 초반까지 메르세데스-벤츠와 아우디가 만든 6기통 엔진을 압살했다. 지금은 터빈이 붙어 진정한 실키식스를 더 이상 만날 수 없다.

마지막으로 수평대향 6기통 엔진이다. 단연 포르쉐 911이 연상된다. 실린더가 누워있어 무게중심이 낮은 것이 장점이다. 911 엔진의 위치가 차체 앞뒤 밸런스에 손실을 주지만 그나마 무게중심을 낮춰 그 손실을 조금이나마 덜어냈다.

피스톤 상하운동이 아니라 엔진 진동이 거의 없다는 것 또한 장점. 현재 911 시리즈들은 배기량을 낮추고 터빈 두 발을 달아버렸다. 공랭식에서 수냉식으로 넘어갈 때도 이정도 반감은 아니었다.

자연흡기 성애자들이 촛불 집회를 열 정도였다. 불행 중 다행으로 마니아들이 가장 사랑하는 GT3와 GT3 RS는 여전히 자연흡기를 고수한다.

이번 모임에 참석한 모델은 911 GT3 RS. 자연흡기 6기통 엔진의 대장이다. 과속방지턱을 만나면 아찔할 듯한 낮은 지상고를 가지고 있다. 거기에 911은 원래 순한 인상인데 이 녀석은 과감한 에어로 키트로 마초가 됐다.

프런트 펜더에 에어벤트를 뚫어 휠 하우스 안의 난류를 정리해주면서 다운포스를 만들어낸다. 911 터보 보디를 사용해 엉덩이가 더욱 토실토실하며 리어 펜더에 에어덕트가 마련되었다. GT3 RS의 시그니처인 거대한 리어 스포일러는 전혀 촌스럽거나 싼 티가 나지 않는다. 이것이 포르쉐 마법이다.

배지마저 스티커로 대체했다. 배지 무게라 해봤지 차 안에 물티슈하나 덜어내면 그만이지만 그만큼 경량화에 힘썼다는 포르쉐의 생색이다. 허나 이것이 밉지가 않다. 뭘 좀 아는 녀석들이 만든 장난감이다. 휠은 앞 20인치, 뒤에 21인치를 달고 있다.

트윈 5 스포크 휠 안에는 거대한 붉은 브레이크 캘리퍼가 자리하고 있다. 카본세라믹 브레이크 디스크를 선택할 수 있지만 시승차는 스틸이다. 그렇다고 제동 성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고출력을 감당하기 충분하다.

차체 뒤쪽에 박혀있는 수평대향 6기통 엔진은 4.0ℓ의 배기량만으로 최고출력 500마력, 최대토크 46.9kg·m의 힘을 리어 액슬로 전달한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걸리는 시간은 단 3.3초, 시속 200km까지 10.9초 만에 도달한다.

최고시속은 310km. 포르쉐가 자랑하는 변속기 PDK는 GT3 RS를 위해 더욱 날카롭게 다듬어졌다. 변속 속도가 번개 같은 것은 물론이거니와 하드코어 머신다운 변속 충격을 운전자에게 전달한다.

엔진을 쥐어짜내 만든 500마력의 가속력은 폭발적이다. 저회전 영역에서는 흐리멍덩하지만 고회전 영역에서는 본색을 드러낸다. 물론 911 터보가 더 빠르지만 가속 느낌이 현저히 다르다. 실제로 911 터보는 GT 성향이 강해 차가 묵직하게 나가는 느낌이다.

반면 GT3 RS는 날래게 달린다. 방음은 거의 되어 있지 않아 피스톤이 치고 박는 사운드를 생생하게 즐길 수 있다. 심지어 오일과 냉각수가 흐르는 소리를 머리 뒤로 들을 수 있다. 배기 사운드는 포르쉐 중 가장 높은음을 선사한다.

이 점은 차의 성향을 떠나서 포르쉐 바이러스 감염자들이 GT3 RS를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다. 6기통이라 믿기 힘든 음색이다.

승차감은 기자가 타본 차중에서 가장 단단하다. 아니 딱딱하다. 아무리 공도주행이 가능하다지만 완벽하게 서킷을 위한 뼈대와 하체다. 실내에 롤 케이지를 달고 짧은 댐퍼 스트로크와 강한 스프링으로 섀시가 극도로 긴장해 있다.

주행 중 패널 유격에서 오는 잡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는 것이 신기하다. 이러한 세팅은 노면 상태가 좋지 않은 도로에서는 트랙션을 놓칠 때도 있으며 세미 슬릭 타이어 미쉐린 파일럿 스포츠 컵2는 노면을 무지막지하게 읽어버린다. 공도에서 이렇게 긴장하면서 탄 차는 처음이다.

반면 고른 도로에서는 땅에 붙어간다. 무게중심이 낮고 다운포스가 높아 좌우 롤링을 허락하지 않는다. 피칭 현상도 없다. 코너를 누구보다 공격적으로 돌 수 있다. 체감상은 오버스티어처럼 느껴지지만 궤도를 보면 완벽한 뉴트럴스티어다. 성급한 코너 탈출을 하더라도 뒤가 흐르지 않는다.

가장 무거운 엔진이 리어 액슬 뒤쪽에 위치한 핸디캡을 가지고 있지만 991 시리즈로 넘어오면서 엔진의 위치가 앞으로 많이 당겨진 것도 한몫했다. 거기에 가벼운 911의 앞머리를 보디 키트로 다운포스를 생성해 프런트 그립을 확보해 운전자에게 안정감을 준다.

모인 차들 중 가장 정확한 몸놀림을 자랑했다. 얼마 전 991 MK2 GT3가 나왔다. 포르쉐는 두 가지 선물을 준비했다. 자연흡기 엔진을 수호하고 수동변속기를 재탄생시켰다.

아직 MK2 GT3 RS가 나오지는 않았지만 독일 외계인에게 작은 바람을 표한다. 최고의 섀시와 최강의 엔진, 그리고 즐거움이라는 표현에 최적화된 수동변속기를 장착해주길….

SPECIFICATION

길이×너비×높이 4545×1880×1290mm | 휠베이스 2456mm | 무게 1495kg | 엔진형식 6기통, 가솔린

배기량 3996cc | 최고출력 500ps | 최대토크 46.9kg·m | 변속기 7단 듀얼 클러치 | 구동방식 RWD

서스펜션 맥퍼슨 스트럿/멀티링크 | 타이어 (앞)265/35 R 20, (뒤)325/25 R 21 | 0→시속 100km 3.3초

최고속도 310km/h | 복합연비 6.7km/ℓ | CO₂배출량 271.0g/km | 가격 2억 3720만원

REPRESENTATIVE OF 8 CYLINDERS

렉서스 RC F

많은 이들의 로망, 8기통 엔진이다. 영화 <매드맥스>에서도 그렇게 ‘V8’을 그렇게 외쳤다. 과거 징그러울 만큼 기다란 직렬 8기통 엔진이 존재했지만 지금은 전부 V형 엔진이다. 4기통의 가벼움이 두 배가 되면 묵직한 중저음 사운드를 뿜어낸다.

V8 엔진은 특히 미국인들이 사랑한다. 미국 브랜드에서는 여전히 자연흡기 8기통 엔진을 주재료로 사용하고 있다. 쉐보레 카마로와 포드 머스탱 그리고 닷지 챌린저 같은 대표 머슬카들은 물론 콜벳까지.

특히 GM이 자랑하는 LS 엔진은 8기통 유닛 중에서 가장 대중적이다. OHV의 단순한 구조로 엔진 크기가 작아 스왑용으로도 널리 사용된다.

8기통 엔진을 탐내는 것은 비단 미국뿐만 아니다.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독일 프리미엄 3사들의 고성능 D세그먼트 쿠페들은 자연흡기 8기통을 사용했다. BMW M3, 메르세데스-AMG C63, 그리고 아우디 RS5는 배기량은 다르지만 실린더 8개로 마니아들을 즐겁게 했다.

노블리스 오블리주를 성실하게 이행해야만 하는 사칙 때문인지 배기량을 줄이고 모두 터빈 두 개를 장착해 버렸다. 부담 없이 스포츠 주행을 선사하는 쿠페에 이제 더 이상 자연흡기 엔진을 만날 수 없을까?

우리나라에서 동쪽으로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일본이란 나라에서 아직도 만들고 있었다. 바로 렉서스 RC F다.

차가운 블루 페인트로 칠한 외모는 무더운 날씨에 일단 합격점이다. 렉서스 디자인 언어인 L-피네스(L-finesse)를 이제서야 엔지니어들이 이해한 것 같다. 오늘 모인 유럽 모델들과 비교해도 밀리지 않는다.

개성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스핀들 그릴, 작고 날카로운 헤드램프, 그리고 부풀어 오른 펜더. 이것이 재패니스 머슬카다.

보닛 아래에는 V8 5.0ℓ 엔진이 담겨있다. 렉서스 모기업인 토요타에서 8기통 엔진을 많이 생산하지 않는다. 경험이 없어 어설픈 8기통 엔진을 만들 것 같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토요타는 전 세계에서 차를 가장 많이 파는 회사다. 당연히 주력은 4기통 엔진이다.

다른 4기통 엔진에 비해 출력이 높지는 않지만 내구성은 이미 검증받았다. 앞서 나온 로터스 엘리스에도 토요타 엔진이 달려 있지 않은가. 그 엔진을 V형으로 붙이기만 하면 V8 엔진이 떡하니 나타난다. 거기에 RC F의 V8 엔진(2UR-GSE)은 야마하와 공동 개발해 스포츠성을 불어넣었다.

렉서스 고성능 디비전인 F 배지를 단 만큼 성능은 화끈하다. 최고출력 473마력, 최대토크 53.7kg·m의 힘을 아이신 8단 자동변속기가 뒷바퀴에 전달한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시간은 4.5초로 스프린터 자격을 갖췄다.

시동을 걸면 8기통 엔진의 웅장함이 전해진다. 허나 이내 렉서스답게 차분해진다. 가속 페달을 밟아도 사운드 제너레이터가 만드는 인위적인 사운드가 스피커로 전해져 아쉽다. 머플러 커터에 귀를 대고 들어보면 충분히 좋은 음색인데 음량을 줄여 놓아 렉서스의 체통(?)을 지켰다.

가속 페달에 발을 가져가 속도를 높인다. 촐싹대는 세팅이 아니다. 변속기의 반응속도 역시 느긋하다. 답답하지는 않지만 라이벌 모델들과의 세팅 차이는 확실하다. 스포츠카를 타는 것처럼 박진감이 느껴지는 독일 녀석들과 달리 RC F는 차분하고 부드럽다.

애초에 컨셉트를 사무라이가 아닌 종갓집 맏며느리로 잡아놓았다. 서스펜션은 렉서스 플래그십 LS에서 가져왔는지 좌우롤링을 쉽게 허락한다. 실제로 거동이 흐트러지지는 않지만 불안한 마음에 코너를 적극적으로 진입할 수 없다.

허나 직선 구간에서 고속으로 달릴 때는 안정적이다. 물렁한 서스펜션을 제외하면 차체 강성이 높고 매립식 리어 스포일러가 돌출되면서 공기를 잘 다스려줘 흔들림 없이 달려 나간다.

여유 있는 주행에는 음악과 함께 해야 한다. 기자는 시승차를 타면 그 브랜드 나라의 음악을 듣는 버릇이 있다. 하이엔드 오디오 마크레빈슨으로 ‘X 재팬’의 ‘Tears’를 들어봤다. 괜히 일본에서 RC F를 타는 듯한 기분이 든다.

RC F와 X 재팬 사이에 공통점이 있었다. 지금도 X 재팬은 공연을 한다. 오래된 밴드이지만 그들은 자신들만의 확실한 색깔을 가지고 있다. 단순히 영국 밴드를 따라하지 않았다. 그렇기에 영국에서 일본 교민들이 아닌 영국인들 앞에서 공연이 가능하다. 렉서스도 마찬가지.

토요타가 렉서스를 출범할 때 정확한 타겟을 잡아 대박을 터트렸다. 렉서스는 유럽 프리미엄 브랜드와 차별화된 매력이 있었다. 고성능 버전인 F도 마찬가지. BMW M을 따라하다 망신당한 브랜드를 종종 봤다. 렉서스는 현명했다.

RC F에 달린 8기통 엔진이 아무리 자연흡기라지만 톱클래스는 아니다. 최고의 8기통 자연흡기 엔진은 누가 뭐래도 페라리 458 스페치알레의 것이다.

그럼에도 지금 이 8기통 엔진은 소중하다. 다운사이징에 직격탄을 맞은 D 세그먼트 고성능 쿠페들이다. 그 중 유일한 생존자이자 작은 차체에 V8 엔진의 조합을 갈망하는 마니아들의 희망이니까.

SPECIFICATION

길이×너비×높이 4705×1845×1390mm | 휠베이스 2730mm

무게 1825kg | 엔진형식 8기통, 가솔린 | 배기량 4969cc

최고출력 473ps | 최대토크 53.7kg·m | 변속기 8단 자동 | 구동방식 RWD

서스펜션 더블 위시본/멀티링크 | 타이어 (앞)255/35 R 19, (뒤)275/35 R 19

0→시속 100km 4.5초 | 최고속도 325km/h | 복합연비 7.9km/ℓ

CO₂배출량 222.0g/km | 가격 1억 2230만원

REPRESENTATIVE OF 10 CYLINDERS

람보르기니 우라칸 610-4 스파이더

1990년대 초반 F1에서 10기통을 사용했고, 포르쉐 카레라 GT와 E60 M5, 그리고 무시무시한 닷지 바이퍼에도 V10 엔진이 탑재됐다. 8기통과 12기통 사이에 위치해 애매해 보일 수도 있는 이 엔진은 알고 보면 참 매력적이다.

8기통의 박력과 12기통의 여유로움이 공존하기 때문. 현재 10기통 대표 모델은 아우디 R8과 람보르기니 우라칸이다. 사실 아우디가 람보르기니에서 빌려간 것이기 때문에 현존하는 10기통 엔진의 장인은 람보르기니라고 할 수 있다.

기념비적인 엔진이다. 이 엔진을 살짝 건드려 장착한 우라칸 퍼포만테가 뉘르부르크링에서 양산차 최고 기록자 자리를 포르쉐 918 스파이더로부터 뺏었다(3위, 람보르기니 아벤타도르 750-4 슈퍼벨로체). 자연흡기 엔진만으로 모터의 힘을 더한 괴물을 무찔렀다.

또한 직선주로만 달릴 줄 안다며 조롱하는 람보르기니 안티 팬들에게 카운터펀치를 날린 것. 지구상에서 가장 혹독한 코스를 1등으로 주파하고 자연흡기 모델 중에서는 뒷줄에 큰형만을 세운 우라칸 퍼포만테. 이 엔진은 가야르도에서 가져온 사골이 아닌 유산인 것이다.

우라칸 퍼포만테는 아니지만 지금 기자 눈앞에 우라칸 610-4 스파이더가 있다. 스머프 옷을 입고 거기에 뚜껑까지 열리니 퍼포만테 부럽지 않다. 시간 오래 끌 것 없다. 화가 잔뜩 나있는 육식성 황소는 채찍질해야 한다.

스파이더 모델이기에 캐빈룸에서 엔진룸이 보이지 않지만 V10 5.2ℓ 파워유닛이 숨어있다. 최고출력 610마력, 최대토크 57.1kg·m를 네 바퀴에 전달한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는 단 3.4초면 도달한다.

최고시속은 324km이다. 가속페달에 발을 대는 순간 차가 반응한다. 이는 기특한 7단 듀얼 클러치 변속기의 공도 무시할 수 없다. 드라이빙 모드에 따라 그 정도가 다르긴 하지만 리스폰스는 100점 만점에 99점이다.

재밌는 것은 토크밴드다. 보통 자연흡기가 고회전 영역을 유지하는 집중력이 있어야 호쾌한 주행이 가능하다. 허나 우라칸은 타코미터 바늘이 그 어떤 숫자를 가리키고 있더라도 폭발적인 토크로 차체를 견인한다.

우라칸이 라이벌 모델과 비교해 가산점을 획득하는 부문은 뉘르부르크링 1위 타이틀이 아닌 배기 사운드다. 폭발적인 것을 넘어 폭력적이다. 게다가 스로틀이 닫힐 때마다 터지는 백프레셔는 환상적이다.

대개 터보차들이 답답해진 배기 사운드로 감점된 박진감을 파열음으로 만회하는데 우라칸은 양민학살을 하고 있다. 이번 기획에 모인 차들이 내로라하는 연주 실력을 자랑하지만 기자가 주최한 콩쿠르에서는 람보르기니가 입상했다.

스파이더 모델이니 뚜껑을 열어버린다. 하늘과 맞닿는 순간 쏟아지는 시샘과 시선으로 아이돌이 왜 검은 마스크를 더운 날 주구장창 끼고 다니는지를 알 수 있다. 바람은 머리카락을 헝클어트리지 않으며 스쳐지나간다.

람보르기니의 공기역학 과목 성적이 우수하다. 리어 글라스를 윈드 디플렉터로 사용하며 톱을 닫더라도 리어 글라스만 내릴 수 있다. 때마침 촬영 때 소나기가 내렸는데 리어 글라스를 열고 달리니 시속 300km로 달리는 노천카페로 변신했다.

슈퍼카지만 데일리카로 사용해도 손색없는 승차감이다. 물렁물렁하다는 뜻이 아니다. 섀시와 서스펜션의 조율 값이 경이롭다. 하드웨어는 승차감에 독이 되는 조건이다. 타이어 편평비가 낮고 댐퍼 스트로크가 짧고 스프링 레이트가 높으며 섀시의 강성도 강하다.

허나 노면의 충격이 타이어를 타고 서스펜션을 거쳐 버킷시트에 도착할 때 거의 상쇄된다. 어디론가 충격을 버리는 하수종말처리장을 마련해 놨다는 이야기다. 공간을 채울 수 없는 캐빈룸 부분은 강성을 높이고 서브프레임에 적정량의 유연함을 줘 섀시가 충격과 진동을 머금고 있지 않는다.

수많은 데이터가 담긴 서스펜션과 사륜구동 시스템으로 발군의 코너링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그립감이 좋은 바텀 플랫 스티어링 휠을 이리저리 휘저으며 황소 앞머리의 방향을 결정해준다. 운전자가 마음먹은 코너 라인을 정확하고 예쁘게 그린다.

보통 사륜구동이 프런트 트랙션으로 언더스티어가 살짝 나지만 우라칸은 후륜구동과 사륜구동을 넘나든다. 코너가 끝나기 전 그 누구보다 먼저 가속 페달을 밟을 수 있다.

운전자가 횡중력을 버티기 힘들어서 그렇지 우라칸은 노면을 놓치지 않는다. 훌륭한 차체 밸런스와 최고 수준의 그립 때문에 운전자는 주행안정화장치에게 잔소리를 들을 필요가 없다.

차를 급정거시키더라도 노즈다이브, 브레이크스티어가 일어나지 않는다. 고속에서 강한 제동이 연거푸 들어가도 페이드 현상은 없다. 브레이크 페달 답력이 꽤 강한 편이라 미세한 브레이킹 컨트롤이 가능해 코너 진입 전 브레이크로 속도를 조절하는 재미가 있다.

두 개의 페달에 발을 놀리고 양 패들에 손가락을 놀리는 것은 놀이다. 신나게 촬영하고 나니 종교가 없음에도 누군가에게 기도하고 싶었다. 훗날 우라칸 후속 모델에도 이 영광스러운 엔진을 담아달라고. 실린더 10개가 주는 파워, 사운드는 더 이상이 없었다.

SPECIFICATION

길이×너비×높이 4559×1924×1180mm | 휠베이스 2620mm | 무게 1542kg | 엔진형식 10기통, 가솔린

배기량 5204cc | 최고출력 610ps | 최대토크 57.1kg·m | 변속기 7단 듀얼 클러치 | 구동방식 AWD

서스펜션 (모두)더블 위시본 | 타이어 (앞)245/30 R 20, (뒤)305/30 R 20 | 0→시속 100km 3.4초

최고속도 324km/h | 복합연비 8.1km/ℓ | CO₂배출량 285.0g/km | 가격 -

REPRESENTATIVE OF 12 CYLINDERS

페라리 GT4 루쏘

엔진의 왕은 8기통이라고? 8기통이 엔진의 왕이라면 엔진의 황제는 12기통이다. V형 6기통 엔진을 세로로 혹은 가로(W형)로 붙이거나 직렬 6기통을 V형으로 이어 만드는 방법이 있다. 처음부터 12기통 엔진 블록의 주물을 뜨는 경우도 있다.

실린더 12개가 주는 상징성은 크다. 대부분의 프리미엄 브랜드 기함들은 12기통 엔진을 달고 있다. 롤스로이스는 전 모델이 12기통을 달고 있다. 페라리 역시 12기통 장인이다. 지금은 8기통 터보 라인업이 늘어났지만 페라리의 역사는 늘 12기통과 함께였다.

이번 기획의 대미를 장식할 12기통 대표선수는 페라리 GT4 루쏘다. 현시대 자연흡기 12기통 엔진의 정점을 보여주는 812 슈퍼패스트를 섭외하려 했지만 편집부 대장이 이탈리아로 차를 가져가는 바람에 다른 모델이 필요했다.

선택의 여지가 없기도 하지만 루쏘는 괜찮은 대안이다. 엮어보자면 이번 기획에서 문 두개짜리들로만 구성하면서도 장르를 달리하고 싶었다. 해치백으로서 참석했다. 덩치가 큰 것을 제외한다면 루쏘야 말로 진정한 핫해치다. 앞으로 루쏘 밑으로는 이제 ‘핫해치’ 닉네임은 통제된다.

옆에서 루쏘를 바라보면 보닛이 어마어마하게 길다. 거의 AMG GT의 보닛 길이 정도다. 이유는 두 대 모두 엔진을 최대한 캐빈룸 쪽으로 밀어 넣어 무게 밸런스를 맞추기 위함이다. 루쏘에는 V12 6.3ℓ 엔진이 들어가 있다.

슈퍼패스트와 라페라리에 들어가는 엔진과 같은 엔진이다. 허나 그들과 성격을 달리하기 위해 디튠이라기 보단 다른 세팅값을 입력했다. 최고출력 690마력, 최대토크 71.1kg·m의 힘을 뒷바퀴에 전달한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 시간은 단 3.4초, 최고시속은 335km에 이른다.

스티어링 휠에 달린 엔진스타트 버튼을 누르면 12개 실린더의 피스톤들이 상하운동을 하기 시작한다. 아이들링 시 배기 사운드가 그리 큰 편은 아니다. 차를 서서히 움직여 도로로 나온다. 페라리 중에서 가장 다소곳한 외모를 지녔음에도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진다.

승차감은 유럽산 스포츠 세단 정도 되니 일상주행에서도 몸에 무리를 주지 않는다. 기다란 보닛은 주행 후 7분 후면 바로 적응된다.

적응도 끝났으니 이제 패들시프트를 튕기며 가속페달을 밟아 rpm을 높인다. 루쏘에는 가변 배기 버튼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다. 엔진회전수가 올라가면 자동으로 플랩이 열려 시원한 사운드를 내준다. 음량은 크지 않지만 음색은 전형적인 페라리의 소프라노다.

조금 더 과감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지만 뒷자리에 앉아보면 더 이상 음량에 대한 불만은 없을 것이다. 아쉬운 점이라면 8000rpm에서 레드존이 시작된다는 것이다.

분명 812을 의식한 세팅이라고 하지만 1000rpm이 괜히 아쉽다. 사실 페라리를 타면서 9000rpm을 유지하면서 달리지는 않지만 괜히 우리집만 화장실이 하나인 느낌이다.

캠샤프트를 조금 덜 빨리 돌리면 어떠하리. 가속력은 폭발적인데. 저회전 영역에서 다소곳했던 처자가 4000rpm을 넘어서니 머리끈을 풀고 헤드뱅잉을 시작한다. 고회전 영역에서 힘을 발휘하도록 세팅해놓았기에 스로틀의 개폐량과 비례하게 전진한다.

촬영을 도와준 2014년식 메르세데스-AMG C63이 근처도 못 쫓아온다. 지상에서 가장 빨리 달리고 있지만 안정감이 상당하다. 차체가 노면에 붙어 운전자에게 스로틀을 더 열라고 유혹한다. 고속도로에서 한계점을 알 수 없다.

정말 마음먹으면 시속 300km는 쉽게 넘길 수 있다. 스피드미터를 300 이상 점령하는 차는 많을지 몰라도 짧은 구간에서 도달하는 차는 많지 않다.

코너링은 우아하다. 이전에 탔던 488 스파이더가 예리하게 돌았다면 루쏘는 날카롭지는 않지만 그 라인을 묵직하게 잘 지킨다. 휠베이스가 길고 중량이 꽤 나가지만 이러한 핸디캡이 운전석으로 전해지지 않는다.

690마력의 초고성능이지만 좋은 차체 밸런스와 세련된 주행안정화장치로 차를 몰아치기 쉽다. 여기에 듬직한 브레이크 시스템의 공도 크다. 제동 성능은 이번 촬영 때 확실히 눈으로 확인했다.

본래 루쏘 촬영 컨셉트는 이러했다. 이 기획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만큼 다른 그림을 만들기로 포토그래퍼와 이야기했다. 잡지에서는 거침없이 질주하는 사진만 있지 풀브레이킹을 하는 사진은 거의 없다.

루쏘로 풀브레이킹을 해서 노즈다이브 현상을 고의로 만들어 리어 댐퍼가 이완되는 다이내믹한 장면을 연출하려 했다. 몇 번의 시도를 했지만 포토그래퍼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노트북으로 촬영 장면과 동영상을 확인해 보니 조금의 노즈다이브 현상도 없다.

그렇다. 그냥 맹렬히 달리다 제동이 걸리면 차체 전체가 땅으로 꺼지듯이 정지해 버린다. 최고의 브레이크 성능이다. 브레이크스티어 역시 조금도 없다.

뒷좌석에 성인남성이 탈 수 있는 페라리라는 것도 매력 포인트. 구색 맞추기 용으로 시트를 준비한 게 아니라 레그룸과 헤드룸이 충분하며 등받이의 각도도 적당히 누워 착석감이 괜찮다. 장거리 이동에도 무리 없다.

4명이 탈 수 있는 루쏘는 페라리 중에 인기가 떨어질지도 모른다. 허나 다른 방향으로 접근해보면 분명 루쏘는 훗날 488 GTB보다 높은 몸값으로 옥션에 오를 것이다. 자연흡기 12기통 엔진을 품고 있는 슈퍼해치, 거기에 스쿠데리아 페라리 방패가 프런트 펜더에 박혀있으니까.

SPECIFICATION

길이×너비×높이 4922×1980×1383mm | 휠베이스 2990mm

무게 1790kg | 엔진형식 12기통, 가솔린 | 배기량 6262cc

최고출력 690ps | 최대토크 71.1kg·m | 변속기 7단 듀얼 클러치 | 구동방식 AWD

서스펜션 더블 위시본/멀티링크 | 타이어 (앞)245/35 R 20, (뒤)295/35 R 20

0→시속 100km 3.4초 | 최고속도 335km/h | 복합연비 6.7km/ℓ

CO₂배출량 350.0g/km | 가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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