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 812 슈퍼패스트

  • 기사입력 2017.08.10 23:38
  • 최종수정 2020.09.01 20:51
  • 기자명 모터매거진

WELCOME TO THE NEW ERA

페라리의 본고장 마라넬로에서 페라리의 70년 역사상 가장 강력하고 빠른 슈퍼카를 몰았다. 바로 800마력의 걸작 812 슈퍼패스트 이야기다.

글 | 이승용

사진 | 페라리

[A Lead]

인생을 지배하는 기억들이 있다. 마구 얽혀있는 기억 중에서 가장 선명하고 정교하게 각인된 경험이 그렇다. 돌이켜보면 때론 찬란하기도 가끔은 끔찍하기도 하다.

지금 시작하는 이야기는 페라리에 대한 수많은 찬사에 찬양 글 한 줄 더 추가하는 것에 불과할지도 모르지만, 내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기억에 대한 기록이다.

페라리의 본고장 이탈리아 마라넬로에서, 그리고 페라리의 모든 스포츠카와 GT카를 테스트하는 피오라노 서킷에서 800마력의 812 슈퍼패스트를 몰아본 경험담이다.

[Signature Model]

올해로 창립 70주년을 맞은 페라리가 값진 물건을 선보였다. 페라리 브랜드의 핵심이자 자부심인 자연흡기 V12 기통 엔진의 새 시대를 개막하는 새 모델 812 슈퍼패스트를 내놓았다. 지금까지 페라리가 내놓은 V12 기통 엔진 모델 중 기술적으로 가장 진화한 상징적인 모델이다.

그들에겐 이미 고전적 신념이나 다름없는 자신에 대한 도전의 결과물이며 페라리의 열성 팬인 티포시(TIFOSI)에 대한 애정을 담은 선물이다.

812 슈퍼패스트의 파워트레인은 자연흡기 V12 기통 엔진과 F1 머신에 장착되는 7단 듀얼 클러치다. 이들의 조력으로 상상만으로도 오금이 저린 800마력의 힘과 73.2kg・m의 토크를 능란하게 다루며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 구간을 2.9초만에 지나고 최고시속 340km에 거뜬히 도달한다. 믿기 어려운 제원상의 숫자를 몸소 확인하기 위해 이탈리아 볼로냐 마르코니 공항으로 향했다.

[The Home of Ferrari]

6월 하순의 남부 이탈리아 날씨는 후덥지근했다. 볼로냐 마르코니 공항은 작은 공항이지만, 휴가를 보내기 위한 여행객으로 가득했다. 출입국 절차를 마치고 짐을 찾는데도 시간이 꽤 걸렸다. 빨리빨리 문화에 익숙한 한국 사람에겐 곤욕이나 다름없었다.

훗훗한 날씨와 늦게 나온 가방 때문에 표정은 이내 여행객의 구겨진 옷차림처럼 일그러졌다. 여행용 가방을 끌고 밖으로 나오니 한국인 미녀가 환한 얼굴로 다정하게 반겨주었다. 덕분에 다행히 미소를 되찾을 수 있었다. 같은 시간에 도착한 인도네시아 기자와 인사를 나누고 함께 미니밴에 올랐다.

여정의 첫날은 마라넬로 빌리지 호텔에서 보냈다. 작지만 아기자기하게 페라리에 대한 애정을 담고 있는 호텔이다. 숙박비가 무척 착해서 놀랐다. 1박에 80유로 정도. 길 건너의 패독 레스토랑의 라비올리의 맛이 일품이었다.

하긴 여긴 이탈리아니까. 다음날 일정을 위해 침대에 누웠지만, 멀뚱멀뚱 천장만 쳐다보았다. 결국, 밤새 시차에 시달리고 말았다.

몇 년 만에 다시 찾은 이탈리아의 작은 도시 마라넬로였다. 이른 아침, 한적한 도심 외곽은 여느 시골 풍경과 비슷했다. 페라리의 본고장답게 도시 입구에 프랜싱 호스 동상이 서 있고 주변을 까칠한 배기음의 페라리 모델들이 지나다녔다. 페라리 공장과 박물관을 지나고 드디어 피오라노 서킷의 철문이 열렸다.

1972년에 지어진 총 길이 2.997km의 이 서킷은 페라리의 모든 차를 테스트하는 트랙이다. 이곳을 거치지 않고 출시된 페라리는 단 한 대도 없다. 마이클 슈마허 등 유명 F1 선수들이 이곳에서 최고의 머신들을 테스트했다. 과거엔 F1 머신도 이곳에서 테스트했지만, 지금은 공식적으로 시험하지 않는다.

서킷 입구의 개라지를 지나 사무실과 귀빈실 건물 앞마당으로 향했다. 울긋불긋한 812 슈퍼패스트 여러 대가 나란히 줄지어 서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70주년을 기념해 조색한 붉은색 로쏘 70 애니버서리 컬러와 개나리빛깔의 노란색 지알로 트리스트라토(Giallo Tristrato) 컬러, 그레이 컬러와 실버 컬러로 칠해진 아름다운 GT카 8대가 서 있었다. 눈망울에 하트가 뽕뽕, 절로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한창 아리따운 812 슈퍼패스트를 둘러보고 사진을 찍고 있을 때 스태프들이 잠시 개라지 안으로 들어와 달라고 요청했다. 피에로 페라리 부회장이 탄 헬기가 착륙할 거란다. 가끔 헬기로 다녀간다고 한다. 아쉽게도 멀찌감치 떨어져 있어서 얼굴을 직접 보진 못했다.

한국팀은 붉은색의 로쏘 70 애니버서리 컬러에 20인치 포지드 다크 컬러 알로이 휠, 전동식 시트가 장착된 차의 키를 건네받았다. ‘페라리는 역시 빨간색이지.’

시승 차 문을 열자 알싸한 가죽 냄새가 코끝을 자극했다. 이곳 피오라노 서킷을 먼저 주행할 팀과 외부 시승 코스를 달릴 팀으로 조 편성을 했다. 우린 마라넬로 주변과 외곽도로를 먼저 시승하게 되었다.

[Certain Values]

페라리는 스포츠카와 GT카 두 가지 차종을 생산한다. 엔진 라인업도 터보차저 엔진인 V8기통과 자연흡기 엔진인 V12기통의 두 가지다. 현재 판매 중인 GT카 라인업은 터보차저 V8 엔진의 캘리포니아 T와 GTC4 루쏘 T다.

자연흡기 12기통 모델은 GTC4 루쏘다. 스포츠카는 터보차저 V8 엔진의 488 스파이더와 488 GTB 두 가지 모델이 있다.

페라리 라인업 중 가장 정점에 위치한 플래그십이 바로 812 슈퍼패스트다. 812 슈퍼패스트는 자연흡기 V12 기통 엔진과 F1 머신에 적용되는 7단 듀얼 클러치 트랜스미션을 앞쪽 보닛에 얹고 뒷바퀴 차축에 트랜스 액슬을 장착해 뒷바퀴를 굴리는 FR 타입의 GT(그란투리스모)카로 기존 F12베를리네타의 계보를 잇는 모델이다.

페라리가 프런트 엔진, 리어 휠 드라이브 방식의 자연흡기 12 기통 엔진의 GT카를 생산한 시기로 거슬러 올라가 보면 1969년 생산된 페라리 365 GTB/4 데이토나와 만나게 된다. GTB의 GT는 GT카를, B는 베를리네타(쿠페)를 뜻한다.

365 GTB/4 데이토나의 심장은 배기량 4390cc의 12기통 자연 흡기 엔진으로 당시 최고출력 352마력/7500rpm, 최고시속 283km를 기록했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5.6초 만에 가속할 수 있었다.

이후 한동안 미드십 엔진, 리어휠 드라이브 타입만을 고집해오던 페라리는 1996년에 550 마라넬로를 선보이며 자연흡기 12기통 엔진을 앞 보닛에 얹고 뒷바퀴를 굴리는 방식의 플래그십 GT카를 발표한다. 365 GTB/4 데이토나처럼 롱노즈 숏데크 디자인을 다시 내놓은 것.

너나할 것 없이 당대 최고의 슈퍼카로 인정하고 있는 550 마라넬로 역시 걸출한 성능을 뽐냈다. 배기량 5474cc의 12기통 엔진은 485마력/7000rpm, 0→시속 96km를 4.3초에 주파했다.

2002년에 업그레이드된 575M 마라넬로는 배기량을 5748cc로 늘리고 최고출력을 508마력/7250rpm으로 높여 0→시속 100km까지 4.2초 만에 도달했다.

2007년 출시한 페라리 599 GTB 피오라노는 배기량 5999cc, 최고출력은 620마력/7600rpm이었다. 정지상태에서 출발 후 시속 100km를 3.7초 만에 통과했다.

2012년 발표한 F12베를리네타는 배기량 6262cc, 최고출력 740마력/8250rpm으로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를 3.1초 만에 도달하는 주행 성능을 자랑했다.

812 슈퍼패스트에 얹혀진 V12기통 엔진은 F12베를리네타의 심장보다 60마력 높은 800마력/8900rpm이다. 최대토크는 73.2kg・m/7000~8900rpm이다. 550 마라넬로와 비교해 거의 2배에 가까운 성능이다.

이 수치는 지금까지 생산된 페라리의 모든 스포츠카와 GT카, 심지어 한정 생산 리미티드 에디션을 포함해 가장 높은 출력이다.

실린더 헤드, 피스톤, 크랭크 샤프트, 350bar 직접 연료 분사 시스템, 연소 체임버, 인테이크 매니폴드 등 엔진의 75%를 새로운 부품으로 교체했다. 실린더 안의 압축비도 13.5대 1로 조절했으며 기어비도 새로 세팅했다.

그 결과 최고시속은 340km이고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를 2.9초에 통과하며 0→시속 200km를 7.9초 만에 도달한다. 812 슈퍼패스트는 F12베를리네타의 장점인 편안함과 799대 한정 생산 모델인 F12tdf(Tour De France)의 스포츠 특성을 잘 버무려 가장 강력하고 편안한 GT카로 진화했다.

페라리 피오라노 서킷에서 기록한 V12기통 자연 흡기 플래그십카의 랩 타임을 비교해보면 812 슈퍼패스트의 우월함을 쉽게 납득할 수 있다. 812 슈퍼패스트의 공식 기록은 1분 21.5초, F12베를리네타의 기록은 1분 23초였다. 599 GTB는 1분 26초, 550 마라넬로는 1분 33초를 기록했다.

페라리의 연륜이 담긴 역대 자연흡기 V12기통 GT카들은 여전히 강렬한 인장을 남기고 있다. 812 슈퍼패스트는 역대 모델들의 기록을 뛰어넘으며 페라리의 도전이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Beyond Beauty]

페라리는 언제나 최상의 성능과 함께 최고의 디자인을 과시해왔다. 단 한 번도 성능을 위해 디자인을 저버린 적이 없다. 역동성을 높이기 위한 최선의 선택은 기술 혁신과 공기역학 디자인이었다. 이 부분에서 기술적인 진보를 이룩해왔다.

812 슈퍼패스트의 정, 측, 후면을 돌아보면 바람결이 차체를 타고 어떻게 흐르는지 상상이 된다. 앞범퍼의 공기 흡입구는 F1 머신의 터닝베인처럼 앞쪽의 공기 흐름을 정리해준다.

‘BI-BOCCA’라고 불리는 프런트 인테이크 시스템은 공기의 흐름을 이용해 엔진룸을 식혀주고, 브레이크의 열을 식혀주며 공기저항을 줄여준다.

에어로다이내믹 디자인은 차 바닥으로 지나는 공기의 흐름까지 철저하게 계산해야 한다. 공기저항과 와류 현상을 줄이기 위해 언더보디 디자인을 바꿨다. 앞쪽에 곡선 형태의 댐과 리어 디퓨저에 곡선형 팬을 추가했다.

시속 200km 이상에서 프런트 디퓨저의 덮개가 열리며 공기주입구로 들어온 공기의 흐름을 바닥으로 유도해 공기저항을 줄인다.

보닛과 뒤 펜더에 에어 덕트도 뚫었다. 트렁크 리드 끝자락에 살짝 솟아오른 리어 스포일러는 F12베를리네타보다 30mm 높아졌다. 리어 디퓨저와 함께 뒤쪽의 공기 와류 현상을 줄여준다. F12베를리네타보다 다운포스 성능이 30% 나아졌다. 매끄러운 차체 디자인은 다운포스를 최대한 끌어낼 수 있다.

헤드램프는 풀 LED 램프로 바뀌었다. 매섭게 부릅뜬 눈매에 기합이 바짝 들어간 다부진 표정이다. 스케치북에 바람을 그려보면 이런 모양이 아닐까? 매끄러운 루프 라인과 어우러져 유려하게 솟구치는 캐릭터 라인은 무용수의 춤사위를 보는 듯하다.

수평으로 놓인 4개의 라운드 테일램프와 트윈 듀얼 머플러 팁은 스포티한 이미지를 더한다. 전체적으로 공격적인 이미지의 디자인이다.

아름다운 자태는 완벽한 균형미를 보여준다. 롱노즈 숏데크인 패스트백 스타일의 812 슈퍼패스트는 눈에 보이는 것처럼 앞 47%, 뒤 53%의 무게비를 이룬다. 디자인은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답다.

고급 가죽을 뒤덮고 카본 파이버로 꾸며진 실내는 현대적이고 고급스럽다. 수평으로 뻗은 대시보드, 전투기 제트 엔진처럼 생긴 동그란 에어벤트가 놓인 센터페시아, 전체적인 인테리어는 첨단 기술을 표현하되 편안한 분위기로 디자인되었다. SF 영화 속 우주선 조종석에 앉아있는 기분이다.

[Balance, Grip & Agility]

운전석에 올라 시동을 걸어 잠든 엔진을 깨웠다. 으르렁대는 들숨과 날숨에 포악한 성질이 묻어났다. 짧은 포효만으로 상대를 제압한다. 812 슈퍼패스트는 페라리 고유의 강인한 배기 사운드를 재현하기 위해 길이가 같은 2개의 6-in-1 형태의 배기 매니폴드와 미드 머플러(중통)의 형태를 손보았다.

두 손으로 새로 디자인한 스티어링 휠을 붙잡고 시트 포지션을 몸에 맞추었다. 운전석 무릎 아래 공간이 넓다. 페라리 스포츠 콕핏은 가운데 동그란 rpm 게이지를 사이에 두고 양쪽으로 5인치 풀 HD 스크린을 배치했다.

왼쪽 화면에서 VDA, 트립 컴퓨터 모드를 세팅할 수 있고 오른쪽 화면으로 스피도미터와 내비게이션,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을 조절할 수 있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GTC4 루쏘의 것과 동일하지만 CPU의 속도가 8배 빠르다. 애플 카플레이를 적용해 사용이 편리해졌다. 동승석 앞 대시보드에도 풀 HD 8.8인치 터치스크린 패신저 디스플레이가 장착되었다.

스피도미터, 내비게이션 등 운전석과 동일한 정보를 간략한 그래픽으로 볼 수 있다. 콩 한 조각도 나눠 먹는 인심처럼 운전의 즐거움도 함께 나누자는 의미다(물론 가끔은 디스플레이의 시속을 보며 운전석을 힐끔거릴 때도 있지만).

우습게도 리터당 123마력을 자랑하는 페라리 플래그십에 스톱앤스타트 기능이 추가되었다. 슈퍼카도 시대의 요구를 저버릴 수 없다. 제아무리 좋은 물건도 팔리지 않으면 뭐에 쓸까?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340g/km로 양호한 수준이다.

토크의 80%가 3500rpm에서 나온다. 도심에서 고회전 영역을 유지하지 않아도 된다. 일상에서 운전이 편하다.

작은 다운타운을 빠져나오기까지 812 슈퍼패스트는 자신의 영토를 확인하는 맹수처럼 천천히 움직이며 낮은 소리로 그르렁거렸다. 도로 위에 위용을 드러내자 주위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남자들의 시선은 오로지 차에만 꽂혔다. 반면 여자들의 눈은 차 한 번 쳐다보고 운전자를 바라본다.

빨간색 페라리의 운전석에 앉아있는 남자가 동양인이라도 손을 흔들며 부러움의 눈길을 보냈다. 오른쪽 문을 열어주면 길 가던 이탈리아 아가씨가 날름 올라탈 것 같았다. 어쩌면 ‘페라리’는 ‘너라면 뭔들’이란 의미의 만국 공통어일지도 모른다. 아쉽게도 옆자리는 이미 동성의 일행이 앉아있었다.

도심을 벗어나니 도로 위 차들이 줄어들었다. 그래도 좁은 시골길에서 가속 페달을 힘껏 밟을 수가 없었다. 인내심을 갖고 기다렸다. 드디어 뻥 뚫린 도로다. 공권력에 반항이라도 하듯이 오른발에 힘을 주고 풀 스로틀. 812 슈퍼패스트는 총성과 함께 총구를 통과한 탄환 같았다.

누군가 뒷덜미를 잡아채듯 고개가 뒤로 젖혀졌다. 1단에서 시속 80km, 2단 120km/h, 3단 160km/h. 변속이 매우 빠르다. 4단 200km/h, 5단 240km/h. “와우!”, “푸하하!” 두 사람의 입에서 연신 탄성이 나왔다.

키득키득 거리며 웃는 모습이 누가 보면 영락없이 정신 나간 사람처럼 볼 수도 있었다. 812 슈퍼패스트는 서울에서 경험해본 F12베를리네타보다 기어 변속이 빠르고 가속이 거침없었다. F12베를리네타보다 기어 변속 시간이 30% 빨라졌고 3단부터 7단 구간에서 50마력 이상 높은 출력을 발휘한다.

오르막길을 만났다. 마네티노 주행 모드를 레이스로 바꾸고 달렸다. 가속 페달을 밟자 7단 듀얼 클러치는 번개같이 시프트업하며 속도를 높였다. 발가락만 꼼지락거려도 가속되는 느낌이다.

앞차를 추월하기 위해 차선 변경과 동시에 킥 다운하며 풀 가속했다. 6단에서 4단까지 시프트 다운되는 시간이 매우 빠르다. 사이드미러에 비친 차가 순식간에 작아졌다.

스프링처럼 꼬불거리는 도로가 이어졌다. 시속 160km로 달리다가 헤어핀 구간에 다다르기 전 브레이크를 힘껏 밟았다. 7단 듀얼 클러치는 빠르게 시프트 다운되며 rpm을 올렸다 내렸다 레브 매칭했다.

시속 70km로 좁은 포물선의 도로를 돌아나갈 때 운전대가 묵직한 게 마치 대물이 걸린 낚싯대를 붙잡고 있는 느낌이었다. 앞바퀴(275/35 ZR 20)와 뒷바퀴(315/35 ZR 20)에 달린 20인치 피렐리 P 제로 타이어는 최상의 그립 성능을 발휘했다.

코너링 진입 때부터 정점에 이르기 전까지 SSC 5.0 시스템은 센서를 통해 차체의 롤링을 측정해 운전자가 운전대를 과하게 꺾지 않도록 스티어링 휠의 조향 토크를 무겁게 제어한다. 고속주행에서도 센터 필링이 또렷하고 차선 변경 시의 예리한 조향감이 일품이었다. 제동도 날카롭고 빨랐다.

812 슈퍼패스트는 처음으로 전자식 파워스티어링 시스템을 장착하고 5세대로 진화한 SSC 5.0(사이드 슬립 앵글 컨트롤 시스템)을 적용했다. E-Diff(전자식 디퍼렌셜)과 F1-Trac(전자제어 주행안전장치), SCM(자기유동 서스펜션 제어 시스템), PCV 2.0(버추얼 숏휠베이스) 등 전자제어장치를 새롭게 세팅했다.

한참을 꼬불거리는 산길을 올랐다. 정상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이 아름다웠다. 오래된 성곽과 기암괴석을 감상하며 시승을 즐기다 보니 어느덧 늦은 오후였다. 서둘러 피오라노 서킷으로 돌아가 해지기 전에 서킷을 주행해야 했다. 부지런히 내리막길을 달렸다. 812 슈퍼패스트는 정말이지 운전이 쉽다.

운전대와 조종석에 놓인 버튼들만 숙지하면 그만이다. 물론 매우 빠르다. 그렇다고 기죽을 필요 없다. 똑똑한 전자제어장치는 자신의 운전실력을 스스로 과대평가하게 만든다. 다만 명심할 것. 과욕은 금물이다.

다행히 시간에 맞춰 피오라노에 도착했다. 그런데 날씨가 변덕스럽다. 시커먼 비구름이 서킷 위를 뒤덮더니 이내 굵은 빗줄기가 쏟아졌다. 잠시 후 우박까지 연이어졌다. 개라지 안에서 닭 쫓던 개 지붕만 쳐다보듯 멍하니 하늘만 바라보고 있자니 좀이 쑤셨다.

이러다가 서킷에 코스-인도 해보지 못할까 내심 걱정이 앞섰다. 다행히 우박과 빗줄기는 멈췄지만, 노면이 미끄러웠다. 그래도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됐다. 헬멧을 쓰고 812 슈퍼패스트에 올랐다. 이 트랙은 오르막과 내리막이 섞여 있고 급회전 구간이 섞인 테크니컬 코스다.

고삐 풀린 말처럼 내달렸다. 헤어핀에서 꽁무니가 살랑거렸다. 아드레날린의 분비가 과했다. 좋아라 웃다 보니 헬멧에 꽉 쪼인 볼살이 터질 것 같았다. 행복한 하루였다.

이렇게 소중한 기억을 기록하며 귀청 떨어질 찬양 시를 마무리한다.

812 슈퍼패스트는 페라리 V12 엔진 기술 역사의 집약체다. 그렇다고 페라리 최고의 걸작은 아니다. 70주년을 맞았지만, 아직 페라리의 도전이 절정에 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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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문 고객 중 40%가 V12기통 엔진의 차를 보유하고 있다.

1. 페라리 재구매 고객 57% / 2. 신규 고객 43%

구매 이유는?

1. 퍼포먼스가 90% / 2. 디자인이 69% / 3. 브랜드 이미지 42%

4. 주행 감성 13% / 5. 안락한 승차감 12%

 

페라리 피오라노 랩 타임

 

SPECIFICATION

길이×너비×높이 4657 ×1971×1276mm | 휠베이스 2720mm | 무게 1525kg

엔진형식 V12기통, 가솔린 | 배기량 6469cc | 최고출력 800ps | 최대토크 73.2kg・m

변속기 F1 기어박스 7단 듀얼 클러치 | 구동방식 FR | 서스펜션 더블 위시본/멀티링크

타이어 275/35 ZR 20, 315/35 ZR 20 | 0→시속 100km 2.9초 | 최고속도 340km/h

복합연비 14.9ℓ/100km(유럽기준) | CO₂ 배출량 340g/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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