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스포트 SVR & 로터스 에보라 400

  • 기사입력 2017.08.10 22:59
  • 최종수정 2020.09.01 20:48
  • 기자명 모터매거진

WHY SUPERCHARGER?

독일 브랜드와 싸우기 위해 결정적인 한 방이 필요했다. 자연흡기 엔진과 같은 반응속도, 터보차저와는 비교할 수 없는 배기 사운드. 이를 위해 터빈을 포기했다. 대신 슈퍼차저를 선택했다.

글 | 안진욱

사진 | 주보균(시공간작업실)

INTRO

다운사이징이 대세인 지금, 거의 모든 차에는 터보차저가 달려있다. 배기량을 줄이더라도 터빈 하나면 출력과 연료효율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과급기인 슈퍼차저는 더 많은 공기를 끌어 모은다는 목표점이 터보차저와 같다.

다만 터보차저는 배기가스 되새김질로 작동하지만 슈퍼차저는 엔진의 힘으로 컴프레서를 돌린다. 크랭크샤프트에 벨트를 걸기 때문에 엔진 출력을 조금 깎아 먹으면서 힘을 보태기 때문에 터보차저보다 출력 상승폭이 낮다.

그럼에도 슈퍼차저를 장착하고 있는 이들이 있었으니. 공교롭게도 같은 영국 국적을 가지고 있고 각 브랜드의 본성과는 다른 성격을 띠고 있다. 이들은 왜 슈퍼차저를 달고 있을까?

WHAT A SOUND TRACK!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스포츠 SVR

재규어의 고성능 디비전 SVO가 랜드로버에 손을 댔다. 여러 라인업 중 선택한 모델은 레인지로버 스포츠다. 결과는? 랜드로버 역사상 가장 강력한 모델 레인지로버 스포츠 SVR(이하 SVR)이다. 곳곳에 SVR 배지를 훈장처럼 달고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의 고성능 SUV와 정면승부를 펼치고 있다.

그들과 비교해 약점이라면 SVO의 역사가 짧고 고성능 SUV의 경험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허나 재규어는 화려한 영광을 기억하고 있고 랜드로버는 SUV만 만들어 온 장인이다. 이 둘의 합작품은 제법 기대해도 좋을 것 같다.

코앞으로 다가온 SVR의 겉모습에서 일반형 모델과의 차이점을 알아차리기는 쉽지 않다. 시승차의 색상이 블랙이어서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실제로 앞뒤 범퍼에 기교가 살짝 들어간 정도다.

보통 고성능 SUV들이 일반형 모델과 차별성을 두기 위해 우악스러운 보디 키트를 두르는데 SVR은 점잖음을 잃지 않았다. 튀지 않으면서 세련된 느낌을 선호하는 이들이 환영할 외모다. 실내도 일반형 모델과 크게 차이나지 않는다. 재규어 F-타입에서 가져온 버킷시트를 제외하면….

럭셔리 SUV에 코브라 모양의 시트가 달려있어 낯설지만 쿠션감이 좋으면서 코너에서 운전자를 단단히 잡아 준다. 반면 쿨링과 마사지 기능이 빠진 것은 아쉽다.

다양한 편의장비 중 가장 눈부신 것은 메리디안 오디오 시스템이다. 음악을 사랑하는 기자는 촬영 때마다 시승차에서 꼭 음악을 들어본다. 내차 혹은 다른 차에 달린 오디오 시스템과 비교하는 것은 물론 이어폰, 홈오디오, 콘서트홀의 스피커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 고민한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콘서트홀 스피커 다음으로 SVR의 오디오가 좋다. 물론 홈오디오에게는 성능과 소리를 전달하는 공간의 이점이 있지만 실제 가정집에서 적정출력을 사용하며 음악을 감상하긴 무리다. 차는 공간의 독립성이 확실하기 때문에 마음 놓고 즐길 수 있다.

SVR의 넓은 실내 공간을 채우는 사운드는 묵직하고 선명하며, 또 정확하다. 분리수거할 때도 이어폰을 끼고 있는 당신이라면 랜드로버 매장을 가야한다.

세상에서 가장 빠른 음악 감상실 안에는 어마어마한 파워유닛이 담겨있다. 재규어 F-타입 SVR에 장착되는 V8 5.0ℓ 슈퍼차저 엔진이다. 유닛 이름은 재규어에서는 AJ133이라 부르지만 랜드로버에서는 LR-V8 Petrol이라 부른다.

터빈 대신 컴프레셔를 단 이유를 쉽게 추측할 수 있다. 우선 리니어한 토크밴드를 그릴 수 있는 장점과 엔진응답성을 재빨리 가져갈 수 있다는 것. SVR의 경우 이유 하나를 더 뒀다. 바로 배기 사운드다.

터보차저 엔진은 구조적으로 답답한 배기 사운드를 만들어낸다. 인류의 모든 공학기술이 집약된 F1 머신에 터빈이 달리자 배기 사운드의 독기가 사라진 예시를 들 수 있다.

SVR의 경쟁자들인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의 고성능 SUV는 전부 터보 엔진을 품고 있다. SVR은 늦은 출발만큼 확실한 경쟁력을 가져야만 했다. 재규어가 자랑하는 더러운 배기 사운드(좋은 의미다)는 새로운 재규어 아이덴티티로 자리 잡으며 흥행 성공의 1등 공신이었다.

초고성능 랜드로버에 같은 이불 덮고 있는 재규어의 색깔을 넣었다. 정말 배기 사운드는 지구상에 존재하는 SUV 중 최고다.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아이들링 시에는 마치 할리데이비슨이 숨을 쉬고 있는 듯하다. 중저음과 허스키 보이스는 보컬뿐만 아니라 배기 사운드로 들어도 좋다.

세상을 울리다 4000rpm 정도에서 스로틀을 닫으면 터져 나오는 파열음은 운전자의 아드레날린을 치솟게 만든다. 이 사운드를 듣기 위해 계속해서 가속 페달을 괴롭혀 연료게이지 바늘이 왼쪽으로 이동하는 게 보였다.

2.5t에 육박하지만 최고출력 550마력, 최대토크 69.4kg·m의 막강한 힘으로 차체가 무겁다는 생각이 전혀 들지 않는다. 0→시속 100km가 4.7초답게 가속을 할 때면 헐리우드 영화의 머슬카처럼 앞머리를 들며 뛰쳐나간다.

노즈업 현상의 정도가 심하지 않아 맹렬하게 속도를 올리는 것이 짜릿하고 즐겁다. 고속도로에서도 힘의 한계는 느껴지지 않는다. 고속안정감도 지상고를 감안하면 훌륭한 수준이다.

보통의 레인지로버가 요트를 타는 듯한 승차감을 주는데 반해 SVR은 하체가 바짝 긴장해있다. 덕분에 괴력을 아스팔트에 쏟아 붓더라도 거동이 안정적이다. 급격하게 스티어링 휠을 잡아 돌리더라도 주행안정화장치가 개입하지 않는다. 때문에 코너링 퍼포먼스가 준수하다.

언더스티어가 일어나지만 그 궤적이 크지 않다. 실제로 SVR은 뉘르부르크링에서 가장 빠른 SUV다. 강력한 브레이크 성능이 랩타임을 단축시킬 수 있었던 요인 중 하나다.

세라믹 브레이크 시스템은 아니지만 응답성이 좋고 제동거리를 확실하게 짧게 만든다. 고속에서 강한 제동을 연이어 가져가더라도 지치지 않는 점도 좋다.

시승을 마치고 이전에 탔던 고성능 SUV들이 떠올랐다. BMW X5 M, 포르쉐 카이엔 터보, 메르세데스-AMG GLE63, 그리고 마세라티 르반떼까지. 날아다니는 슈퍼 멧돼지들은 모두 경험했다.

이들에게는 지상고의 물리적 한계를 이겨내는 코너링 성능, 화려한 인테리어, 그리고 폭발적인 힘이라는 공통분모가 있다. SVR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SVR의 경쟁력은 무엇일까? 두 가지다. 여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레인지로버 배지와 남자들의 가슴을 뛰게 하는 소리 울림이다.

SPECIFICATION

길이×너비×높이 4870×1985×1780mm | 휠베이스 2925mm | 무게 2445kg | 엔진형식 8기통 슈퍼차저, 가솔린 | 배기량 5000cc

최고출력 550ps | 최대토크 69.4kg·m | 변속기 8단 자동 | 구동방식 AWD | 서스펜션 더블 위시본/멀티링크 | 타이어 (모두)275/45 R 21

0→시속 100km 4.7초 | 최고속도 260km/h | 복합연비 6.3km/ℓ | CO₂배출량 273.0g/km | 가격 1억8570만원

BEST COUPLE

주차장에 레인지로버 스포츠 SVR이 위풍당당 주차되어 있다. 이제 SUV가 있으니 섹시한 스포츠카 한 대만 더 입양하면 된다. 포르쉐 911을 가져오면 전형적인 비버리힐즈 컬렉션을 완성할 수 있다.

조금 더 센스 있는 오너가 되고 싶다면 재규어 F-타입 SVR을 가지고 와라. 그것도 컨버터블 모델로. 섹시한 디자인과 오픈에어링, 그리고 폭력적인 배기 사운드까지 누릴 수 있다. 어디서 많이 들어본 소리라고? 두 대 모두 같은 SVR 배지를 달았으니까.

 

WHENEVER, WHEREVER

로터스 에보라 400

시승 스케줄이 잡히면 가슴이 뛰면서도 내심 걱정되는 브랜드가 있다. 바로 로터스다. 1차원적인 주행 질감을 선호하는 기자가 좋아하는 로터스라 촬영 전이면 소풍가는 어린아이처럼 들뜬다.

반면 타고 내리기가 힘들고 돌덩어리 같은 서스펜션과 일체형 버킷시트 때문에 신나게 촬영한 후 여지없이 몸이 쑤시기 때문이다. 요즘과 같은 더운 날이면 에어컨을 틀더라도 등 뒤에서 전해지는 엔진의 열기 때문에 땀범벅이 된다.

이번 로터스 촬영은 보송보송하게 마쳤다. 로터스 중에서 유일하게 GT성향을 띄는 에보라 400과 함께 했으니까.

엘리스나 엑시지와 달리 각을 세워놓은 보디에 체리로 만든 페인트를 발라 놔 시선을 잡아끈다. 두툼한 도어를 열고 실내로 들어간다. 뭔가 이상하다. 분명 로터스인데 낑낑대지 않고 들어왔다. 알루미늄 터브 타입 섀시를 사용했지만 문턱이 낮고 좁아 승하차 시 불편하지 않다.

당연히 다른 로터스 모델에 비해 편하다는 것이지 웬만한 스포츠카보다 낮은 지상고이기 때문에 맥드라이브 가기도 부담스럽다. 인테리어는 작은 스티어링 휠에 박혀 있는 로터스 배지를 감안하면 호화스럽다.

등받이 각도를 조절할 수 있는 버킷시트는 쿠션감이 적당하며 날개가 두툼해 운전자를 잘 잡아준다. 뒷좌석이 존재하지만 앉을 생각은 꿈에도 하면 안 된다. 사람이 앉을 수는 없지만 이러한 공간이 있는 것이 얼마나 편리했는지 모른다.

로터스를 촬영할 때면 가방이나 기타 소지품들을 촬영차에 둬야했기 때문이다. GT카에 대한 로터스의 진한 배려다. 엔진룸 뒤쪽에 마련된 겸손한 트렁크 공간도 고맙다. 단 마트에서 장본 것 중에 아이스크림이 있다면 평생 후회할 것이다.

트렁크를 사우나로 만들어 버리는 범인은 바로 V6 3.5ℓ 슈퍼차저 엔진이다. 토요타 2GR-FE 엔진에 에델브락(Edelbrock)의 컴프레서를 달았다. 그 결과 파워유닛은 최고출력 400마력, 최대토크 41.8kg·m의 힘을 생산한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데 필요한 시간은 단 4.1초, 최고시속은 280km다. 에보라가 엘리스와 엑시지보다는 무겁지만 로터스 배지 효과로 겨우 1407kg 밖에 나가지 않는다.

가벼운 차체와 고출력 파워유닛의 만남으로 차가 날아다닌다. 운전자의 명령에 엔진은 날카롭게 반응한다. 이 파워에 대응하는 AP 레이싱 브레이크 시스템의 성능 역시 막강하다.

로터스는 과급기로 모두 슈퍼차저를 사용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출력을 구태여 높일 필요가 없으니까. 로터스로 드래그 레이싱을 하는 경우를 유튜브에서도 찾기 힘들다. 직선 도로보단 산길 혹은 트랙에서 달리는 것이 로터스답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슈퍼차저가 터보차저보다 빠른 랩타임을 기록한다는 보장은 없다. 숙련된 드라이버가 터보랙 구간을 이해하면 저회전 영역에서부터 터져 나오는 두터운 토크와 높은 출력을 내는 터보차가 훨씬 유리하기 때문이다.

허나 로터스는 랩타임에 목숨 거는 드라이버를 원치 않는다. 능동적인 드라이빙 자체를 즐기는 운전자를 원할 뿐이다. 토크밴드가 날뛰지 않고 가속 페달로 엔진회전수를 조절하기엔 슈퍼차저가 좋다. 게다가 반응속도도 자연흡기에 맞먹기에 코너 탈출 시 미세하게 가속 컨트롤을 할 수 있다.

사운드의 이점도 있다. 에보라를 타고 터널로 들어가면 머리털이 쭈뼛 선다. 컴프레서가 돌아가는 ‘잉~’ 하는 소리와 머플러 커터에서 울리는 배기 사운드는 터보차저에서 누릴 수 없는 행복이다.

터널이 끝났다고 행복이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제 더 신명날 수 있는 굽이진 도로를 앞두고 있다. 에보라의 코너링 퍼포먼스 수준은 엑시지에 준한다. 솔직히 공도에서는 엑시지와 코너링 성능을 견주기가 힘들다. 그만큼 코너링 한계점이 높다.

로터스에서 유일하게 파워 스티어링을 달았지만 손맛 또한 여전하다. 에보라는 로터스가 분명했다. 오히려 엑시지보다 와인딩을 오랫동안 즐길 수 있다. 드라이빙 모드를 레이싱에 놓으면 주행안정화장치가 해제되는데 밸런스가 좋고 전체적인 세팅이 거칠지 않아 쉽게 채찍질할 수 있다.

섀시가 운전자에게 주는 긴장감이 다른 로터스 모델보다 덜해 박진감은 떨어지지만 이러한 부분을 오히려 부담 없이 놀 수 있다는 매력으로 돌려 생각할 수 있다.

사실 로터스의 열렬한 팬으로서 에보라의 등장은 달갑지 않았다. 로터스는 타기 어렵고 운전하기 어려워야 로터스로 인정했기 때문이다. 이번 시승을 통해 에보라의 대한 미움은 사라졌다. 운전자에게 최소한의 승차감은 확보해 주면서 단단한 하체 세팅은 월드클래스였다.

가슴 뻥 뚫리는 배기 사운드와 여유 있는 파워, 그리고 가벼운 몸놀림은 로터스 골수팬을 유혹하기 충분했다. 로터스 모델 중에서 상품성도 높았다. 엘리스나 엑시지는 세컨드카의 개념이 강하다.

이들을 데일리카로 사용하기엔 우리의 허리는 늙었다. 반면 에보라는 출퇴근이 가능하며 주말에 동호인들과 산길을 누빌 수 있는 스포츠카, 아니 유일한 로터스다.

HOW ABOUT IT?

데일리카로도 사용할 수 있는 에보라다. 가격은 약 1억 7000만원. 그렇다면 고민에 빠진다. 이 예산이면 GT 성향의 차 한 대를 사는 소비자도 있을 수 있지만 아예 장르를 쪼개버리는 경우도 있다.

기자라면 하드코어 머신 로터스 엑시지 수동변속기 모델을 지른 후, 잔돈으로 미니 쿠퍼를 사겠다. 차를 두 대 소유하고 있는 느낌이 궁금하기도 하다. 현재 미니 쿠퍼는 가지고 있으니 이제 엑시지만 구입하면 된다.

 

SPECIFICATION

길이×너비×높이 4384×1845×1229mm | 휠베이스 2575mm | 무게 1407kg | 엔진형식 6기통 수퍼차저, 가솔린

배기량 3456cc | 최고출력 400ps | 최대토크 41.8kg·m | 변속기 6단 자동 | 구동방식 RWD | 서스펜션 (모두)더블 위시본

타이어 (앞)235/35 R 19, (뒤)295/35 R 19 | 0→시속 100km 4.2초 | 최고속도 280km/h | 복합연비 - | CO₂배출량 -

가격 1억 745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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