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조 2008 VS. 혼다 HR-V

  • 기사입력 2017.04.09 17:34
  • 최종수정 2021.06.25 15:18
  • 기자명 모터매거진

WHO’S THE NEXT SUPER ROOKIE?

신차는 아니지만 페이스리프트로 얼굴을 뜯어고친 푸조 2008, 출시한 지 반년이 조금 넘었지만 아직은 따끈따끈한 HR-V. 서로 다른 개성을 지녔어도 같은 차급에 걸친 라이벌이다. 둘 다 탄탄한 기본기를 갖추었지만 2008은 재미있는 패션카, HR-V는 영리한 짐꾼에 가까웠다.

글 | 이재현

사진 | 임근재

출시 이후 꾸준한 판매량을 기록하던 푸조 2008이 페이스리프트를 마치고 돌아왔다. 피 튀기는 각축전이 벌어지는 국내 소형 SUV시장에서 다시금 ‘도장깨기’에 도전한다. 뛰어난 연비와 운전하는 재미는 그대로 간직하면서, 날렵하고 SUV다운 모습으로 구석구석을 다듬었다.

푸조 2008의 상대로는 혼다 HR-V가 제격이다. 지난해 7월 출시한 후 큰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혼다의 기본기를 고스란히 담았고 고유한 개성까지 갖춘 숨은 강자다.

프랑스와 일본, MCP와 CVT, 디젤과 가솔린 등 흥미로운 대비를 이루는 두 맞수. 홍코너엔 푸조 2008이, 청코너엔 혼다 HR-V가 올랐다.

# EXTERIOR

과감한 2008, 의젓한 HR-V

크롬을 지나치게 사용해서였을까. 페이스리프트를 하기 전 2008은 지나치게 화려했다. 금붙이를 주렁주렁 단 도련님 같아서 전형적인 SUV와는 거리가 멀었다.

이번엔 다르다. 사이드미러에서 크롬이 차지하는 비중을 줄이고, 도어 하단에 붙었던 크롬도 떼어냈다. 펜더 테두리를 검은 플라스틱으로 둘러 타이어가 튕기는 돌멩이에도 대비했다.

가장 크게 바뀐 것은 역시 프런트 그릴이다. 다소 밋밋했던 그릴이 격자무늬 위에 크롬으로 바늘땀을 새긴 것처럼 변했다. 새로운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는지, 보닛 위에 있던 ‘사자’도 프런트 그릴로 내려왔다. 사자 앞발 같은 날렵한 헤드램프, 사자 발톱으로 할퀸 듯한 테일램프는 큰 변화 없이 여전하다.

16인치 휠에 저마찰 타이어를 장착한 2008

사자가 할퀸듯한 2008의 테일램프

전체적인 외형은 푸조 208과 흡사하다. 맞다. 2008은 208과 같은 PF1 플랫폼 출신이다. 플랫폼이 같아도 디자인은 얼마든 달리할 수 있지만, 크기를 제외하면 앞모습, 옆모습, 뒷모습까지도 닮았다. 해치백 208을 SUV 버전으로 만나고 싶다면 2008을 선택하라는 무언의 메시지다.

이에 반해 HR-V는 혼다 피트(Fit)와 같은 글로벌 스몰카 플랫폼에서 태어났다. 해치백을 SUV로 덩치를 키운 점은 2008과 같다. 국내에 들어오는 모델은 북미형으로, 멕시코에서 생산한 제품이다.

익스테리어는 2008보다 얌전한 편이다. 검은 바탕에 크롬으로 슬쩍 그은 프런트 그릴, 별다른 기교를 부리지 않은 테일램프, 바람개비 모양의 단순한 5스포크 휠은 ‘누가누가 잘 튀나’ 경쟁에선 한 발 뒤로 물러선 느낌이다. 이 모든 것이 어쩌면 ‘쿠페형 SUV’라는 것을 돋보이게 하려는 양보일 수 있다.

기교를 아낀 HR-V의 17인치 휠

2008보다는 수더분한 HR-V의 테일램프

C필러 옆에 숨긴 HR-V의 도어핸들

실제로 옆에서 보면 영락없는 쿠페 스타일이다. 뒷좌석에 앉아보려 도어핸들을 한참 찾았는데, C필러 옆에 ‘까꿍’하고 숨어있다. 매끄럽게 떨어지는 루프 라인과 장단을 맞춰 쿠페 스타일로 보이려는 혼다의 위트다.

하지만 HR-V의 익스테리어에도 아킬레스건은 있다. 할로겐 헤드램프는 출시할 때부터 많은 지적을 받았다. 푸조 2008은 헤드램프까지는 아니어도, 주간주행등만큼은 LED를 사용했다.

반면 HR-V에서 LED의 흔적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LED가 대단한 것은 아니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대단하지도 않은 걸 포기한 셈이다. 디자인에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어도 시대 흐름이 있는 것은 분명하다. 원가절감도 중요하지만 경쟁모델보다 한참 뒤처진 선택을 한 것 같아 아쉬움이 남는다.

# INTERIOR

차 떼고 포 떼도 필살기는 있다

208과 같은 족보여서일까. 2008의 인테리어 레이아웃은 208과 같다. 두툼한 대시보드 위로 솟은 계기판, 센터페시아, 한 손에 쏙 들어오는 기어노브, 차 안으로 햇볕을 가득 들이는 파노라믹 선루프까지.

스티어링 휠 크기도 208과 같은 350mm이다. 작은 스티어링 휠에 손을 올리고 요리조리 돌리는 재미는 분명 차급과 장르를 뛰어넘는 2008의 필살기다.

거문고 뜯듯 손가락으로 당기는 패들시프트 역시 빼놓을 수 없는 자랑거리다. 기어노브로도 직접 변속할 수 있지만, 패들시프트를 더하면 운전하는 재미를 배로 느낄 수 있다는 점을 푸조는 파고들었다. 이 정도 차급에서 패들시프트를 아끼지 않는 푸조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푸조 2008

수동으로 조작하는 2008의 시트

동급 SUV보다 불편한 2008의 뒷좌석

2008의 첫 번째 자랑거리 350mm 스티어링 휠

2008의 두 번째 자랑거리 패들시프트

대시보드 위로 솟은 푸조의 계기판

한 손에 쏙 들어오는 2008의 기어노브

410ℓ에서 1400ℓ로 변신하는 2008의 트렁크. 게다가 시트가 평면으로 누워 큰 짐을 실을 때 편하다

HR-V의 인테리어는 철저하게 편안함에 초점을 뒀다. 운전자 쪽으로 살짝 기운 디스플레이와 팔이 편한 기어노브 위치, 그리고 그 아래 숨은 수납공간까지 영리하게 설계했다.

동승석 쪽에 일렬로 늘어선 송풍구는 다른 차에서는 보기 어려운 레이아웃이어서 신선하다. 다만 직물로 덮은 도어트림은 충격적이어서 애써 외면하고 싶었다.

속도계와 타코미터는 단순한 모양이지만, 이를 감싼 테두리에 재미있는 기교를 부렸다. 순간 연비가 좋을 때는 초록색이었다가, 그 반대가 되면 이내 하얀색으로 변한다. 기름값 아끼라고 은근히 잔소리하는 것 같아도, 어느새 계기판 눈치를 보게 된다.

혼다 HR-V

역시 수동으로 조작하지만 착석감은 2008보다 좋은 HR-V의 시트

차 크기를 고려하면 상당히 여유로운 HR-V의 2열 머리 공간과 다리 공간

시트 쿠션을 위로 접어 만든 마법 같은 공간은 HR-V의 필살기

단순하지만 직관적인 HR-V의 계기판

수동 변속을 할 수 없는 HR-V의 기어노브

688ℓ에서 1665ℓ까지 확장하는 HR-V의 트렁크. 눕힌 시트와 트렁크 바닥의 높이는 약간 다르다

실내 공간을 따져보면 HR-V의 압승이다. 모든 좌석에서 머리 공간과 다리 공간이 2008보다 훨씬 넓다. 차에 타고 내릴 때도 2008은 자꾸 머리를 부딪칠 만큼 불편하지만, HR-V는 머리가 커서 슬픈 짐승인 기자도 걱정 없다.

쿠페형으로 만들었을 때 손해 보는 2열 머리 공간은 루프를 파놓아 똑똑하게 해결했고, 바닥도 거의 평면에 가깝다. 위아래로 넉넉한 공간 덕분에 패밀리카로 활약하기에도 손색없다.

HR-V는 필살기도 2열에 숨겨놓았다. 시트 쿠션을 90°로 올리면 마법처럼 공간이 생긴다. 화분이나 여행용 트렁크, 애완견 이동가방 등을 두기에 좋다. 트렁크도 2008보다 278ℓ, 2열 시트를 접으면 265ℓ 넓게 활용할 수 있다.

결론을 짓자면 푸조 2008은 디테일이 섬세하지만 좁은 내부공간이 약점이다. HR-V는 효율적인 공간 활용이 돋보이지만, 직물로 마감한 도어트림이 치명적인 약점이다. 두 차의 성향 차이는 인테리어에서부터 분명하게 드러났다.

# PERFORMANCE

99마력으로 즐기는 스릴, 143마력으로 즐기는 편안함

푸조는 자타공인 1.6ℓ 디젤 엔진의 대가다. 2008이 품은 심장 역시 직렬 4기통 1.6ℓ 디젤 엔진. 최고출력은 99마력, 최대토크는 25.9kg·m이다.

푸조 208, 시트로엥 칵투스와 같은 엔진이다. 99마력으로 끈덕진 가속을 기대하기는 어렵지만, 최대토크가 1750rpm에서 일찌감치 터지면서 도심에서 주행할 때는 큰 불편함 없이 경쾌하게 치고 나간다. 디젤을 먹고사는 엔진이어도 소음은 작고, 엔진의 회전 질감도 부드럽다.

피스톤이 상하로 움직이며 만들어내는 힘을 앞바퀴로 전달하는 것은 MCP, 즉 수동기반 자동변속기다. 모터매거진 사무실에서는 ‘인터스텔라 변속기’라고 부를 만큼 변속할 때마다 무중력을 경험케 하는 푸조의 명기(?)다. 이런 불편함을 줄이는 방법을 여기저기서 들을 수 있었지만, 적응하기는 좀처럼 쉽지 않았다.

대신 2008은 스티어링과 핸들링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저속에서는 깃털처럼 가볍고, 고속에서는 돌덩이를 움켜쥔 듯한 스티어링이다. 코너에서도 의도한 대로 예쁜 궤적을 그리며 방향을 튼다.

디젤이지만 조용한 2008의 1.6ℓ 엔진

헐겁지 않은 서스펜션 세팅도 훌륭한 핸들링에 한몫한다. 모터스포츠에서 쌓은 데이터가 바탕이 되었는지 서스펜션과 핸들링이 조화롭게 균형을 맞춘다.

급제동 시 ABS도 큰 이질감 없이 개입한다. 하지만 저마찰 타이어 때문에 제동성능은 실망스럽다. 마찰이 작은 타이어를 달았다는 것은 험로주파성 및 뛰어난 제동 성능을 포기하겠다는 뜻이다. 게다가 SUV인데 꼭 그래야만 했을까.

실제로 조금 미끄러운 노면에서 2008의 타이어는 자주 땅을 놓쳤다. 오프로드에서도 마찬가지였다. 2008을 촬영하던 날, 조금 경사진 풀밭 위를 오르려 했지만 바퀴는 계속 헛돌았다. 연비도 중요하지만 SUV 본연의 임무를 너무 외면한 것은 아니었을지.

한편 HR-V는 어떤 성능을 보였을까. 보닛 아래 자리 잡은 1.8ℓ 가솔린 엔진은 최고출력 143마력, 최대토크 17.5kg·m의 힘을 낸다. 엔진 응답성이 재빠르지는 않아도 한번 속도가 붙으면 세차게 전진한다. 고속 안정감은 2008 못지않게 안정적이고, 뜻밖에 화끈한 배기음은 HR-V가 준비한 보너스다.

‘엔진의 혼다’가 만든 HR-V의 1.8ℓ 가솔린 엔진

CVT는 변속 충격 없이 매끄럽게 바퀴로 동력을 전달한다. 가솔린 SUV인 HR-V의 공인연비를 13.1km/ℓ까지 끌어올린 1등 공신이다. 서스펜션은 노면이 전달하는 충격을 부드럽게 흡수한다.

승차감에 초점을 맞춘 세팅으로 2008보다는 무른 편이다. 그래서인지 롤링은 2008에 비해 조금 크지만 승차감과 안정적인 코너링 사이에서 합리적으로 절충한 세팅이다.

HR-V의 가장 강력한 무기는 편안한 주행이다. 널찍한 내부공간과 확 트인 전방 시야, 훌륭한 착석감 덕분에 장시간 운전해도 피로가 적다. 여기에 시원한 주행성능(스포츠카 같은 힘을 기대하지 않는다면)까지 어우러진 팔방미인이다.

수동 변속모드 없이 높은 엔진회전수를 사용하는 S와 L모드만 있는 게 전부여서 운전하는 재미가 밋밋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복잡한 기능이 필요 없다면, 조미료 치지 않은 솔직한 맛의 SUV를 찾는다면 HR-V는 제 역할을 충분히 해낼 차다.

둘의 성향 차이는 익스테리어, 인테리어, 퍼포먼스에서 쉽게 확인할 수 있다. 어떤 운전자를 만나느냐에 따라 2008과 HR-V의 가치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재미를 따지는 운전자라면 푸조 2008을, 편의성을 따진다면 혼다 HR-V를 권한다.

둘 다 트림과 할인정책에 따라 2000만원대로 살 수 있으므로, 수입차 중에서는 비교적 가성비도 뛰어난 편이다. 소형 SUV가 넘쳐나는 국내 시장에서 흔한 모델에 질린 소비자에게 2008과 HR-V는 고려해봄 직한 대안이다.

SPECIFICATION

푸조 2008

길이×너비×높이 4160×1740×1555mm | 휠베이스 2540mm | 무게 1290kg

엔진형식 직렬 4기통, 디젤 | 배기량 1560cc | 최고출력 99ps/3750rpm | 최대토크 25.9kg·m/1750rpm

변속기 6AT | 구동방식 FF | 서스펜션 맥퍼슨 스트럿/토션빔 | 타이어 (모두)205/55 R 16

복합연비 18.0km/ℓ(1등급) | CO₂배출량 106g/km | 가격 3070만원

혼다 HR-V

길이×너비×높이 4295×1770×1605mm | 휠베이스 2610mm | 무게 1340kg

엔진형식 직렬 4기통, 가솔린 | 배기량 1799cc | 최고출력 143ps/6500rpm | 최대토크 17.5kg·m/4300rpm

변속기 CVT | 구동방식 FF | 서스펜션 맥퍼슨 스트럿/토션빔 | 타이어 (모두)215/55 R 17

복합연비 13.1km/ℓ(3등급) | CO₂배출량 130g/km | 가격 319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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