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IC 켄보 600

  • 기사입력 2017.04.09 16:54
  • 최종수정 2020.09.01 19:39
  • 기자명 모터매거진

서해를 건너온 중국차의 홍위병

‘가성비’를 앞세우며 국내 시장에 상륙한 북기은상(BAIC)의 켄보 600. 다양한 옵션을 갖췄으면서도 약 2000만원으로 살 수 있는 SUV라는 사실은 국내 자동차 업계를 들썩이게 했다. 성능과 조립품질은 아직 수준 미달이었지만, 정작 문제는 켄보 600 이후였다.

글 | 이재현

사진 | 임근재

사드(THAAD) 미사일 배치 문제로 한국과 중국이 갈등을 빚고 있다. 중국이 경제보복을 하면서 양국 관계는 외교적 마찰을 넘어 감정싸움으로 번졌다. 중국에서 한국제품 불매운동이 일어나자 한국도 맞불을 놔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고 있다.

온라인에서 중국 제품 리스트를 나열하는 글을 쉽게 찾아볼 수 있는데, 북기은상의 켄보 600은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켄보 600이 이슈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이미 지난 1월, 국내에서 정식으로 판매를 시작한 최초의 중국산 승용차여서, 약 2000만원에 구입할 수 있는 SUV여서 많은 사람의 관심을 끌었다.

켄보 600을 국내로 들여오는 중한자동차도 중국산임을 애써 숨기지 않았다. 가격을 내세운다면 중국산 자동차여도 분명 수요가 있으리라 판단했을 것이다.

켄보 600이 미풍에 그칠 차일지, 서해 너머에서 태풍을 몰고 올 차일지는 성능을 보면 예측할 수 있다. 대부분 소비자는 ‘저렴한’과 ‘싸구려’의 차이를 명확히 구분하기 때문이다. 켄보 600은 둘 중 어느 표현이 어울리는 차였을까.

모방으로 덮을 수 없는 디테일

차를 살피기도 전, 스마트키부터 어디선가 본 느낌이다. 모서리가 둥근 네모난 형태로 현대차의 그것과 똑같이 생겼다. 크롬을 잔뜩 사용한 차의 앞모습도 익숙하다. 영락없는 렉서스다. 익스테리어 구석구석 다른 브랜드의 차와 닮은 구석이 많다.

인테리어도 마찬가지다. 원목처럼 가공한 플라스틱으로 장식한 대시보드를 비롯해 전체적인 레이아웃이 과거 인피니티와 비슷하다. 계기판은 혼다 어코드와 거의 비슷했다. 하지만 후발 주자들의 성장은 모방에서 시작하는 경우가 많아 큰 문제 삼고 싶지는 않았다.

시트는 모두 블랙과 브라운 투톤으로 꾸몄다. 등받이가 여유롭지는 않지만 착석감은 꽤 훌륭하다. 차의 높이를 고려한 적당한 시트포지션 덕분에 전방 시야도 넓다. 센터페시아의 공조기 버튼은 고급스럽지 않고, 누르는 느낌도 그다지 좋지 않지만 큼직해서 편하긴 하다.

8인치 터치스크린은 내비게이션 및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을 지원한다. 국내 실정에 맞게 아틀란 내비게이션을 설치했다. 스크린 위에는 스피커가 있다. 대시보드를 장식하려는 의도였겠지만, 크기와 모양이 과장된 느낌이라 그다지 보기 좋지는 않았다.

소소한 문제는 그렇다 쳐도 진짜 문제는 기어노브였다. N에서 R 모드로 변속할 때는 보통 손가락으로 기어노브에 달린 버튼을 눌러야 하는데, 모양만 있고 실제 버튼은 없다. 실수로 기어노브를 건드리면 난처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 꼼꼼하지 못한 마감이었다.

반면 2열은 만족스럽다. 머리 공간과 다리 공간이 상당히 넓다. 바닥도 완전히는 아니어도 평평한 편이다. 시트는 두 단계로 각도를 조절할 수 있다. 허리를 꼿꼿하게 세워 앉거나 등을 뒤로 많이 기울여 앉아야 한다. 두 단계의 중간 정도 각도로 시트를 조절할 수 있었다면 2열은 더 만족스러웠을 것이다.

트렁크 용량은 1063ℓ다. 2열을 접으면 2738ℓ로 늘어난다. 시트는 평면으로 접혀 커다란 화물을 실을 때 편리하다.

다만 해치를 열면 조악한 마감이 모습을 드러낸다. 해치와 차체가 맞닿는 곳에 나사가 그대로 보인다. 도어를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보이지 않는 곳까지 깔끔하게 처리하는 정성은 아직 기대하기 어려웠다.

어설픈 파워트레인, 의외의 고속 안정감

켄보 600에는 1.6ℓ 직렬 4기통 가솔린 엔진을 얹었다. 낮은 배기량이지만 터보를 달아 최고출력은 147마력, 최대토크는 21.5kg·m이다. 체감하는 힘은 더도 아니고, 덜도 아니고 딱 그만큼이다.

엔진 응답성은 매우 느린 편이고 CVT 변속기는 효율적이지 못해 엔진을 혹사시킨다. 특히 오르막길에서 엔진은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도 전진하는 속도는 매우 더디다. 비교 대상으로 삼기에는 무리가 있지만, CVT 변속기를 즐겨 사용하는 닛산이나 혼다보다 기술력이 많이 떨어졌다.

소음도 해결해야 할 문제다. 엔진 소리는 유난히 크고, 저속에서는 호루라기 부는 듯한 소리가 고막을 괴롭힌다. CVT 변속기에서 나는 소리로 추측할 수 있는데, 예민하지 않은 사람도 불쾌하게 느낄 수준이다. 풍절음도 심하고 조금만 속도를 높여도 부밍 노이즈가 차 안을 장악한다.

제동성능 역시 실망스럽다. 멈출 때가 되었는데 여전히 차체는 앞으로 밀리고 있다. 시승차의 주행거리가 5000km도 되지 않았기 때문에 차의 컨디션을 탓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다소 거칠게 몰아붙이면 언더스티어가 심하게 발생한다. 차체안정화장치를 끌 엄두가 나지 않았다.

다행히 고속안정성은 뜻밖에 기대했던 수준 이상이었다. 서스펜션을 비교적 탄탄하게 조여서 고속으로 진입해도 운전자를 불안하게 하지 않는다. 스티어링 휠도 묵직해지면서 손에 적당한 긴장감을 전달한다.

모든 영역에서 70점을 받는 차와 어떤 영역은 90점을 받으면서 어떤 영역은 20점을 받는 차. 둘 중에서 더 좋은 차는 어떤 걸까? 사람마다 생각은 다르겠지만 기자는 전자가 더 좋은 차라고 생각한다. 서로 다른 영역이라도 비슷한 수준이어야 운전자가 차를 통제하기 쉽기 때문이다.

그 잣대를 켄보 600에 들이 대보면 미흡한 점이 많았다. ‘저렴한 차’라고 표현하기에는 기본기가 초라했다. 켄보 600보다 비싼 다른 차와 켄보 600 중에 어떤 차를 택할지 가정한다면, 가격 차이가 성능 차이를 극복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이다. 켄보 600이 미풍에 그칠 것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하지만 문제는 그다음이다. 중국은 자동차 산업의 변방이었지만 적극적으로 기술개발에 뛰어들고 있다. 천문학적인 자본금과 자국 내 인구는 기술발전의 토대가 될 것이다.

켄보 600이 실망스러웠다고 해도 제2, 제3의 켄보 600은 어떻게 진화할지 모른다. 가격은 그대로면서 성능 차이를 줄인다면 미풍이 아닌 태풍이 되어 국내에 상륙할 것이다.

SPECIFICATION

길이×너비×높이 4695×1840×1685mm | 휠베이스 2700mm | 무게 1620kg | 배기량 1498cc

구동형식 직렬 4기통 터보, 가솔린 | 최고출력 147ps/5500rpm | 최대토크 21.5kg·m/2000~4000rpm

변속기 CVT | 구동방식 FF | 서스펜션 (앞/뒤)맥퍼슨 스트럿/멀티링크 | 타이어 (모두) 225/65 R 17

복합연비 9.7km/ℓ | 가격 1999~2099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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