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딜락 XT5

  • 기사입력 2017.03.09 12:11
  • 최종수정 2020.09.01 19:27
  • 기자명 모터매거진

The X-Tasy

잇따라 신차를 내보이며 적극적으로 국내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캐딜락. XT5는 캐딜락의 새로운 라인업 중 마지막 조각인 SUV를 채우는 모델이다.

준수한 주행성능으로 SUV 본연의 기능에 충실했고, 운전자를 보조하는 여러 첨단기능이 돋보였다. 또한 흔한 SUV를 거부하는 소비자에게 캐딜락 고유의 디자인은 분명 매혹적이었다.

글 | 이재현

사진 | 임근재

길게 늘린 검은 차체. 보닛에 달려 휘날리는 성조기. 옆에는 선글라스 쓴 경호원이 주변을 살피며 차를 엄호한다. 미국 대통령의 캐딜락 원(Cadillac One)이다. TV에서 자주 본 그 모습 때문일까. 백악관 아저씨 덕분에 캐딜락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차는 바로 검은 대형 세단이다.

물론 캐딜락에 SUV가 없던 것은 아니다. 장르가 조금 다른 에스컬레이드를 제외하고라도 SRX가 있었다. 캐딜락 내에서의 위상은 어땠을지 모르지만 안타깝게도 국내 SUV 시장에서는 존재감이 그다지 크지 않았다.

최근 캐딜락은 고성능 세단 CTS-V, 대형 세단 CT6를 잇따라 내놓으며 라인업 ‘물갈이’를 시작했는데, XT5는 SRX의 자리를 대신해 캐딜락의 새로운 라인업을 완성할 SUV다.

그래서 궁금했다. 세단이 아닌 캐딜락 엠블럼을 단 SUV는 과연 어떨지, 피 튀기는 SUV 시장에서 과연 경쟁력이 있을지. 마침 시승차는 플래티넘 버전이었다. 캐딜락이 작심하고 온갖 기능을 넣은 상위 트림이다.

아스팔트를 잠재우는 묵직함

사실 도로에서 XT5를 본적은 아직 없었다. 사진으로만 봤었기에 ‘뭐 보통 중형 SUV 크기 정도겠지’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예상보다 훨씬 우람한 체구에 깜짝 놀랐다. 그도 그럴 것이 이것저것 큼직하지 않은 게 없다.

프런트 그릴은 방금 벌크업을 마친 보디빌더의 가슴처럼 한껏 부풀었고, 전면부도 상당히 높아 위압감마저 들 정도다. ‘뜨거운 눈물 흘리는’ 헤드램프는 좌우가 아닌 상하로 길쭉해 차폭이 넓어 보인다. 테일램프까지 이어지는 캐릭터 라인은 선명하게 윤곽을 드러낸 치골처럼 근육질 몸매에 조화로움을 더한다.

사이드미러는 A필러 옆이 아닌 도어에 달았다. 크기도 크기지만, 굵은 지지대가 이를 받쳐 건장한 사내의 삼각근처럼 든든하게 꾸몄다. 도어에 붙은 덕에 그린하우스가 더욱 넓어 보이는 효과는 보너스. 테일램프의 형태는 CT6와 거의 비슷하다. 해치를 여는 라인 바깥에 길쭉하게 붙어 뒷모습이 넓어 보인다.

상하로 긴 헤드램프로 차를 넓게 보이게 한 앞모습과 일맥상통하는 디자인이다. 그러고도 부족했는지 번호판 위에는 길쭉한 크롬을 달았다. 역시 넓어 보이는 효과를 내고, 강인하고 남성스러운 이미지를 더한다.

미쉐린 4계절 타이어를 신은 20인치 휠은 말년병장 워커처럼 눈부시게 광을 냈다. 특별한 기교를 넣은 디자인은 아니지만, 굵은 정으로 툭툭 다듬은 각진 조각 같아서 오히려 XT5와 어울린다. 아기자기한 모양의 휠이었다면 꽃신 신은 마동석 같아서 보기 불편했을지도.

풍성하지만 개운치 않은 뒷맛

시트의 착석감은 훌륭하다. 가죽 재질도 만족스럽다. 다만 높은 보닛 때문에 대시보드도 굉장히 높아 시트를 높이지 않으면 전방 시야가 답답해 운전하기 불편하다. 높은 차를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장점이겠지만 날렵하게 운전하는 사람에게는 그다지 내키지 않는 설계다.

전 모델 SRX보다 휠베이스를 50mm 늘렸는데, 그 덕인지 뒷좌석에 앉았을 때 다리 공간은 여유롭다. 다만 SUV치고는 머리공간이 좁은 편. 상하로도 넉넉하게 설계했다면 좋았을 텐데, 답답한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뒷좌석에서도 온도를 조절하는 공조기와 평평한 바닥으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계기판은 전통적인 스타일과 최신 스타일을 섞어 놓았다. rpm과 속도는 바늘이 가리키고, 디스플레이는 여러 주행정보를 표시한다.

대체로 만족스럽지만 한 가지 흠이 있다면 스포츠 모드로 바꿔도 아무런 신호가 없다는 것. 디스플레이 색을 빨간색으로 바꾸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닐 텐데 섬세하지 못한 마무리가 아쉬웠다.

꼼꼼하지 못한 마감은 센터페시아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오디오 볼륨 조작은 터치 방식, 공조기 조작은 버튼 방식인데, 문제는 둘 다 말을 잘 듣지 않는다는 것. 새끼손가락 걸고 약속한 다음 ‘엄지 도장’을 찍는 것처럼 꾹꾹 눌러야 한다. 어라운드 뷰 기능도 아쉬운 건 마찬가지.

후진 시 주변 모습을 디스플레이에 띄우는데, 차 윤곽을 깨끗이 다듬지 못해 사각형 검은 박스 안에 XT5가 쏙 들어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에 비하면 완성도가 떨어졌다.

반면 후방카메라로 찍은 영상을 룸미러에 전송하는 기능은 만족스러웠다. 화질이 선명하고 화각이 넓다. 사이드미러의 사각도 속 시원히 보여 차로를 바꿀 때 잘 보이지 않는 모터사이클도 똑똑하게 잡아낸다. 조작법도 간단하다. 룸미러 아래 달린 작은 스위치를 내리면 다시 거울로 변신한다.

캐딜락은 XT5를 만들면서 트렁크에 관련된 기능을 많이 생각한 모양이다. 운전석 도어에 달린 조그다이얼로 해치를 여는 각도를 조절할 수 있다.

트렁크의 짐이 움직이는 것을 막는 장비는 박수를 보내고 싶을 정도. 김치를 싣고 가다가 엎질러 약 3개월간 쉰내를 맡으며 운전한 경험이 있는 터라 탐나는 아이템이었다.

별도의 버튼을 누르지 않고도 리어범퍼 왼쪽 아래로 발을 뻗으면 센서가 이를 감지해 해치를 열거나 닫을 수 있다. 범퍼 가운데에 센서를 설치하면 해치가 닫히며 머리를 다칠까 봐 한쪽으로 치우쳐 놓은 것.

역시 유용하지만 아쉬움이 남는 기능 중 하나인데, 맞은편에서 달려오는 차나 왼쪽을 지나는 차를 생각한다면 이왕이면 오른쪽에 센서를 달았어야 했다.

캐딜락의 고향 미국에서는 어떨까. XT5의 미국 광고를 확인해보니 역주행 방향으로 차를 세우고 멋지게 발을 뻗어 해치를 닫는 모습을 연출했다. 미국도 우측통행을 하는 나라인데, 놀라운 일이었다.

운전석에서 가까워 왼쪽에 설치했을 수도 있지만, 그 어떤 이유도 안전보다 우선할 수는 없다. 쥐똥 피하다 소똥 밟는다고, 머리 다치는 게 문제가 아니라 사고 위험이 있는 설계다. 분명 개선해야 할 문제다.

정중한 주행, 예리한 첨단 기능

V6 3.6ℓ 직분사 가솔린 엔진이 아이신 8단 자동 변속기와 맞물려 XT5의 바퀴를 굴린다. 최고출력은 314마력, 최대토크는 37.4kg·m. 절대 약하지 않은 출력이지만 2t이 넘는 무게 때문인지 실제로는 200마력 중반대로 느껴졌다. 스포츠 모드로 차를 몰아 봐도 큰 차이는 없다.

스티어링 휠은 두툼해 움켜지는 느낌이 좋다. 돌리는 느낌도 묵직해서 말 그대로 ‘덩칫값’을 한다. 스티어링 휠 뒤에는 마치 ‘아는 사람만 쓰세요’라고 말하는 것처럼 패들시프트를 숨겨 놓았다. 기어노브로는 변속을 할 수 없으므로, 수동모드로 운전하려면 패들시프트로만 변속해야 한다.

XT5의 변속기는 운전자의 적극적인 개입을 원치 않았다. 수동모드에서 레드존에 이르기 한참 전인데도 5000rpm을 조금 넘자 2단에서 3단으로 강제로 변속한다. 캥거루맘처럼 혹시 못된 주인이라도 만나 상처라도 입을까 변속기를 보호하려 들었다.

다운시프트 할 때도 마찬가지. 엔진회전수는 아직 여유로운데도 저단으로 내리기 주저한다. 물론 XT5가 스포츠카는 아니기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미는 것은 조금 가혹한 일일 수도 있다. 하지만 수치상으로 300마력이 넘는 차라면, 그 힘을 운전자가 적극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세팅이 뒤따라야 한다.

승차감은 운전자의 편안함에 초점을 맞췄다. 고르지 않은 노면을 지나도 성가신 충격을 잘 걸러낸다. 고속으로 주행해도 탄탄한 하체 덕에 안정적이고, 엔진 소음과 노면을 통해 전해지는 소음도 잘 차단해 마음이 편안하다. 움직임이 날카롭지는 않아도 유순한 ‘누렁소’처럼 느긋하고 진득하게 운전자의 의도에 따라 방향을 튼다.

여러 가지 첨단기능은 칭찬을 아끼고 싶지 않다. 시승차는 타이어 상태가 별로 좋지 않았는데, 그립을 놓치는 순간에 자세안정화장치가 우렁각시처럼 소리 없이 슬쩍 개입했다가 사라진다. 매우 세련된 방식으로, 운전자가 눈치챌 수 없을 정도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은 앞차와의 거리를 정확하게 헤아려 급격한 감속이나 가속 없이 부드럽게 속도를 유지한다. 차선을 벗어난다 싶으면 세차게 엉덩이를 때리며 슬쩍 스티어링 휠을 돌려준다.

엉덩이 때리기를 얼마나 좋아하는지 거의 ‘사디스트’ 수준이다. 사진을 찍던 중, 뒤에서 차를 유도하던 사진기자와 거리가 가까워지자 헤드업 디스플레이에 충돌경고 표시를 띄우고, 또 다시 엉덩이를 때리기 시작한다. 그래도 계속 후진하자 ‘빡’ 하며 큰 소리를 낸다.

처음에는 차를 어디에 박은 줄 알고 ‘시말서 당첨’이라며 한숨을 쉬었지만 스스로 제동한 것을 알고는 덩치에 안 어울리게 예리하고 섬세한 XT5가 새삼 대견했다.

XT5가 학생이었다면 어땠을까. 이것저것 아는 것도 많고, 나이에 비해 비싼 전자제품과 옷을 걸친 ‘놀 줄 아는’ 학생이었을 것이다. 성적도 꽤 괜찮은 편. 그런데 시험만 보면 항상 덤벙대다가 한두 문제씩 틀리는 그런 녀석이 바로 XT5다.

몇몇 아쉬운 점이 있는 것은 맞지만, 대형 세단이 먼저 생각나는 캐딜락이 꽤 괜찮은 SUV도 만든다는 사실을 각인시키기에는 충분해 보인다. 캐딜락의 새로운 라인업에서 당당히 한자리 차지할 자격도 충분했다.

개성이 강하고 매력적인 요소가 많은 만큼 운전자와 궁합만 잘 맞는다면 XT5는 끊기 힘든 엑스터시가 될지도 모른다.

SPECIFICATION

길이×너비×높이 4815×1905×1705mm

휠베이스 2857mm | 무게 2030kg

엔진형식 직렬 6기통, 가솔린 | 배기량 3649cc

최고출력 314ps/6600rpm

최대토크 37.4kg·m/5000

변속기 8AT | 구동방식 AWD

서스펜션 더블 위시본/멀티링크

타이어(모두) 235/55 R 20 | 복합연비 8.9km/ℓ(5등급)

CO₂ 배출량 163g/km | 가격 748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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