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아한 그 녀석, 애스턴 마틴 DB11 볼란테

  • 기사입력 2023.01.20 14:28
  • 기자명 모터매거진

차에 성별을 붙이기도 하는데 이건 난감하다. 분명 남성의 강함을 가지고

있는데 그 태가 고상하다.

뚜껑을 열고 달리는 것은 여유다. 슈퍼카의 오픈톱을 기피하는 이유다. 누가 명령하지 않았음에도 슈퍼카는 괜히 질주해야 할 것 같아 오픈에어링을 즐길 여력이 없다. 그렇다고 어느 수준 이상의 퍼포먼스가 없으면 가끔 솟구치는 흥에 맞장구칠 수 없다. 종합해 보면 고성능 GT카의 오픈톱 모델이 오픈에어링에 가장 이상적이다. 지극히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에 동의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특히

오픈에어링 경험이 많을수록···. 여태 타본 수많은 컨버터블 중에서 최고라 생각하는 모델을 만났다. 애스턴마틴 DB11 볼란테. 애스턴마틴에서는

뚜껑이 열리면 볼란테라 부른다. 사전을 찾아보니 이탈리아어로 ‘날다’라는 뜻이라고 한다. 바람을 맞으며 달리면 나는 기분이니까 이렇게

지은 것 같다. 그런데 영국차인데 왜 이탈리아 말로 풀었지?

여하튼 햇빛도 적당하고 덥지도 춥지도 않은 날에 DB11 볼란테의

스티어링 휠을 잡고 있다. 변신을 할 수 있는 녀석이니 바로 루프를 걷어냈다. 여기서 잠깐! DB11 볼란테는 쿠페보다 측면 미적 지수가 떨어지지

않는다. 대개 쿠페의 유려한 실루엣을 따라가지 못하는데, 캔버스

속 프레임이 도드라지지 않아 매끈하다. 까만 차체에 붉은 톱을 씌워 놓으니 컬러웨이가 정말 근사하다. 이 루프는 시속 50km까지 주행 중 작동할 수 있다. 이게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움직이면서 루프를 여닫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고마운 일인지 모른다. 대부분 서울 시내가 시속 50km 묶여 있으니 따라오는 차 눈치

볼 일도 없다. 작동 시간도 길지 않다. 로드스터 타입이

아니라 시트 뒤로 롤바가 있지 않아 개방감이 크다. 뒤에 시트가 있는 것도 장점이다. 물론 성인이 앉을 수는 없지만 외투나 가방을 놓을 수 있기에 요긴하다.

파워트레인과 섀시 모드를 GT에 놓고 유유히 달린다. 딱 럭셔리 스포츠 쿠페 승차감이다. 물렁하지도, 그렇다고 단단하지도 않다. 편하고 언제든 달릴 수 있는 잠재력만이

느껴진다. 실제로 강력한 파워를 갖고 있다. 브로셔를 읽어보자. V8 4.0ℓ 엔진에 터빈 두 발을 달아 최고출력 535마력, 최대토크 68.9kg·m의 힘을 생산한다. 8단 자동변속기를 통해 뒷바퀴를 굴리며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4.1초, 최고시속은 308km에 달한다. 애스턴마틴 중에서 가장 강력한 모델은 아니지만

이 정도 수치면 어디 내놔도 꿇리지 않는 성능이다. 얌전했던 모습은 드라이빙 모드를 스포츠에 놓는 순간부터

돌변한다. 배기 사운드는 톤과 볼륨이 올라간다.

배기 사운드에 관해 조금 더 표현하자면 정말 고급스럽다. 분명 더

크고 자극적으로 세팅할 수 있었을 텐데 자제했다. 유행을 좇아 ECU로

장난쳐 고의적인 백프레셔를 낼 수도 있었다. 인위적이지 않은 백프레셔가 불규칙적으로 터진다. 언제는 은은하게, 때로는 박력을 넘어 폭력적으로 터진다. 주기와 시점을 알 수 없다. 이렇게 조이는 맛이 살아 있어야 세련된

것이다. 시승차는 주행거리가 짧고 격하게 탄 적이 없는 터라 내가 촬영하면서 매니폴드부터 중통을 곱게

구워 줬다. 차를 받고 반납하기 전까지 점점 더 소리가 깊어졌다. 호텔

로비 앞에서 자신들의 차를 기다리며 서 있는 이들에게 으스대기 좋은 사운드다. 그리고 신라보다는 금빛

조명으로 감싸지는 하얏트가 어울린다.  

뚜껑이 열려 있으니 이 소리가 더욱 선명하게 잘 전달된다. 길이 뚫렸으니

달릴 수밖에 없다. 왼손으로 시프트 패들을 튕기며 항속 기어에 물려 있던 기어를 3단에 맞추고 가속 페달을 무자비하게 밟는다. 체감 가속력은 스펙보다

더 짜릿하다. 튀어 나가는 맛으로 타기만 해도 즐겁다. 500마력이

넘는 후륜구동인데 트랙션은 안정적이다. 뒤가 절대로 춤추지 않는다. 주행안정화장치를

해제하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개입이 적극적이지 않은 것으로 봐서는 기본적인 피지컬이 훌륭하다. B와 C필러가 없음에도 섀시 강성이 떨어지지 않는다. 트랙에 가면 티가

날 수 있겠지만 공도에서는 전혀 아쉽지 않다. 비스듬하게 경사를 올라가도 뒤틀리는 느낌이 적다. 차체 강성을 확인하는 나의 원시적인 방법이다. 일반적이면서 단순한

또 다른 방법도 있다.

코너를 타보면 된다. 상쾌한 바람을 쐬기 위해 산길에 왔는데 온 김에

코너도 타보자. 먼저 스티어링 성향은 약간의 언더스티어를 보인다. 이는

의도한 언더스티어다. DB11 볼란테의 후드를 열어 보면 엔진 위치가 완벽한 프런트 미드십이다. 12기통 유닛으로는 실린더 2열까지가 프런트 액슬보다 앞에 나와

있었는데 8기통은 완벽하게 뒤쪽으로 몽땅 들어가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프런트 미드십은 핸들링이 예민해져 운전 난도가 올라간다. 물론 프로 드라이버들은 좋아하겠지만

우리와 같은 아마추어 드라이버들에게는 부담과 위협으로 다가온다. 이를 위해 애스턴마틴이 섀시와 타이어

스펙, 그리고 얼라인먼트를 친절하게 조율했다. 그러니 마음

놓고 코너에 적극적으로 들이댔다. 개인적으로 경박하게 뒤를 날리며 타이어 날로 타는 것을 좋아하는데, 얘는 그렇게 타는 차는 아니다. 스티어링 휠 피드백과 하중 이동

모두 침착하다. 복합코너에서 하중이 한쪽으로 쏠렸을 때 반대로 넘기는 리듬 또한 자연스럽다. 이 차의 장르가 무엇인지를 애스턴마틴은 정확히 알고 있다.  

그렇다. 나만 모르고 있었다. 이렇게

쏘고 코너를 타는 차가 아니다. 물론 이렇게 몰아붙이면 잘 놀아 주긴 하지만 태생의 이유는 다른 곳에

있다. 바람과 음악을 배경으로 두고 달리며 고민도 하고 멍도 때리고 다음 휴가 계획도 짜는 차다. 애스턴마틴 글을 쓸 때마다 제임스 본드를 들먹이는 나 자신이 슬프지만 이번에도 등장시켜야겠다. 이 DB11 볼란테야말로 진짜 제임스 본드 차다. 작전 수행할 수 있는 퍼포먼스를 갖췄고 오픈을 하면 시리즈마다 바뀌는 아름다운 여주인공 태울 수 있다. 촬영을 진행하면서 디자인을 감상하느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글이라

있어 보이기 위해 감상이라는 단어를 사용했지 헤벌레하며 구경했다. 평소에 우아하다는 말을 쓰질 않는데

이게 우아한 것이다. 마지막 착용한 아이템은 다시 제자리에 둔 애스턴마틴, 그리고 DB11 볼란테였다.

글 | 안진욱   사진 | 최재혁

SPECIFICATION

길이×너비×높이 

4750×1950×1300mm  |  휠베이스 2805mm

공차중량 

1870kg  |  엔진형식  V8 터보, 가솔린  |  배기량  3982cc

최고출력 

535ps  |  최대토크  68.9kg·m 

|  변속기  ​​​98단 자동

구동방식 

RWD  |  0→시속 100km  ​​4.1초  |  최고속력  시속

308km

연비 

​​​-  |  가격  2억910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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