으르렁대는 SUV, 재규어 F-페이스 SVR

  • 기사입력 2022.08.18 10:53
  • 기자명 모터매거진

회광반조(回光返照)라는 사자성어가 있다. 불꽃이 꺼지기 직전에 밝게 타오른다는 뜻이다. 오늘 만날 재규어 F-페이스 SVR이 품은 V8 슈퍼차저 엔진은 이 사자성어가 가장 잘 어울린다. 머지않아 사라질 물건이지만, 지금 이 순간 가장 화려한 엔진이다.  

재규어가 겨울잠에 빠졌다. 올해 들어 국내에서는 매달 20여 대를 밑도는 판매 수준을 보이며 주춤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재규어는 2025년부터 새로운 포트폴리오를 바탕으로 순수 전기차 브랜드로 새롭게 태어난다는 계획을 세웠다. 이는 당분간 재규어의 신차를 만날 수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굽이치는 산길에 접어든 재규어 F-페이스 SVR은 그러한 걱정을 잠시 내려놓은 듯 활기차게 움직인다. 본래 이러한 곳이 자신의 고향인 마냥 뛰어노는 움직임이 여간 예사롭지 않다. 5.0ℓ V8 슈퍼차저 엔진은 최고출력 550마력을 발휘한다. 최대토크는 71.4kg∙m로 8단 자동변속기를 물려 네 바퀴를 굴린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3.8초. 커다란 맹수가 사냥감을 발견했을 때처럼 거칠게 뛰어나갈 수 있다.
속도를 높여가더라도 불안감은 들지 않는다. 풍부한 출력은 2133kg의 무거운 차체를 가뿐하게 밀어내며 탄탄한 트랙션을 자랑한다. 550마력의 출력은 강력하지만 다루기도 쉽게 다듬어졌다. 재규어 한 마리에 목줄을 단단히 채운 듯 운전의 주도권은 완전히 운전자에게 주어진다. 그만큼 예측이 불가능한 움직임은 보여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가슴팍이 짓눌리듯 짜릿한 가속력을 선보인다. 고속영역에 진입하더라도 힘은 남아돈다. 터보 엔진에 비해 스로틀 리스폰스가 빠른 만큼 가속 페달을 다루는 재미도 뛰어나다. 이러한 장단에 쿵짝을 맞춰주는 똑똑한 변속기는 말할 필요도 없다.

코너에 몸을 던지면 날렵하고도 유연한 움직임을 보여준다. 한쪽으로 하중이 쏠렸을 때 초반에는 살짝 차체가 기우는 듯한 느낌이 들지만 어느 정도 한계선에서 탄탄하게 버티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덕분에 차체가 바깥으로 쏠리는 느낌은 억제하고 있으며 잘 잡힌 밸런스 덕분에 운전자가 원하는 이상적인 라인을 그리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브레이크 시스템 역시 맹수를 제어하는 데 부족함이 없도록 만들어졌다. 운전자를 불안하게 만드는 노즈다이브와 브레이크스티어 현상은 모두 잘 억제되어 있다. 코너를 돌면서 브레이크를 밟아보아도 차체가 안쪽으로 말려 들어오지 않아 마음에 든다. 물론 여기까지는 어디까지나 공도에서 안전을 해치지 않는 범위의 주행에서 느낄 수 있는 움직임이다. 그러나 트랙에 들어가서 이 차의 한계를 시험해본다 하더라도 큰 아쉬움은 없을 것 같다.
이 차의 가장 매력적인 부분은 역시 소리다. 실린더 8개의 오케스트라는 4개의 머플러를 통해 황홀한 연주를 선보인다. 낮은 회전수에서부터 레드존까지 어느 한 악장도 실망스러운 음색은 들리지 않는다. 환경규제와 터보차저라는 재갈을 물고 있었다면 들을 수 없는 소리일 것이다. 8기통 엔진에서 기대하는 소리의 정석이다. 엔진 회전수가 낮을 때는 굵고 무거운 음색이 깔리다가 점점 회전수를 높아질수록 폭발적인 배기음을 내뿜는다.

이러한 음색이 얼마나 중독성이 있는지 터널이 보일 때마다 창문을 내리게 되고 입가엔 미소가 맴돌기 시작한다. 터널에 진입하면 가속 페달을 지그시 밟기 시작한다. 굳이 킥다운을 하지 않아도 된다. 엔진 회전수를 천천히 높여가며 목청을 푸는 재규어의 소리가 터널을 가득 채운다. 경박스러운 소리는 절대 내뱉지 않는다.
메탈 소재로 만들어진 패들 시프트를 탕탕 튕겨가며 변속을 해도 좋다. RPM을 잔뜩 높여서 이 맹수가 마음껏 부르짖는 소리를 듣고, 기어 단수를 올릴 때마다 시트로 전해지는 기분 좋은 충격을 느끼는 것도 이 차를 즐기는 한 가지 방법이다. 물론 박자를 맞추듯 거칠게 들리는 후적음을 즐기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진짜 눈물이 날 정도로, 황홀해서 소리를 지르고 싶을 정도로 감동적인 배기음이다. 이 소리를 글로써 전달할 방법이 없어 매우 아쉬울 뿐이다.

재규어와 함께 한바탕 신나게 뛰어논 뒤 다시 차분히 이 녀석을 느껴본다. 드라이브 모드를 컴포트로 설정하고 가속 페달에 힘을 풀자 언제 그랬냐는 듯 긴장이 풀어지는 모습이다. 어댑티브 댐핑 컨트롤은 롤링과 피칭을 1초에 100번 측정하고 조향 입력은 1초에 500번 측정한다, 이와 함께 새롭게 적용된 서스펜션 부싱은 저속에서 더욱 우아한 승차감을 제공한다. 또한 스티어링 시스템은 새로운 전자식 파워 어시스턴트 시스템으로 개선했는데, 이러한 차이로 인해 컴포트 모드와 다이내믹 모드 사이의 간극이 꽤 크게 느껴진다. 물론 기본적인 하체 세팅이 단단한 탓에 컴포트 모드에서 요철을 만나면 어느 정도의 충격은 감수해야 한다.
잠시 차를 세우고 디자인을 감상할 차례. 전체적인 차체의 모양새는 이전 모델과 같지만 앞뒤 램프의 디자인과 공기 흡입구의 디자인을 바꿔 세련미를 더했다. 후드와 프런트 펜더에 있는 구멍은 진짜로 뚫려 있기에 제 기능을 확실히 한다. 더블 J 주간주행등 디자인은 멀리서 보아도 한눈에 재규어임을 알아볼 수 있는 소중한 요소다.
후면부 디자인은 가운데로 모여드는 느낌이다. 그 이유에는 비교적 가운데로 모여있는 머플러 커터가 큰 몫을 차지한다. 그래서인지 후면부는 차가 작아 보이는 인상이 있는데, 만약 머플러가 범퍼 양 끝단으로 퍼져 있었으면 그러한 인상을 받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리어 램프는 이전에 비해 한층 단정하게 다듬어졌으나 인상 자체는 조금 심심한 편이다. 두툼한 리어 펜더는 승모근이 불룩 튀어나온 보디빌더의 어깨가 생각난다.
외관보다 더 많은 변화를 거친 것은 인테리어다. 시트는 버킷 타입으로 고성능 자동차에 딱 알맞은 물건이다. 조금 딱딱한 느낌이 들지만 몸이 잘 미끄러지지 않아서 마음에 든다. 스티어링 휠의 디자인은 최근 만났던 자동차 중에 가장 멋있다. 특히 손으로 느껴지는 촉감이 무척 고급스럽다. 촉감 이야기가 나온 김에 이야기하자면 실내를 감싸고 있는 가죽들의 품질도 무척 좋다. 손으로 쓰다듬어 보면 특유의 부드러운 감촉이 마치 명품 가방을 생각나도록 만든다. 전자식 기어 레버는 뭉툭한 주먹처럼 생겼고, 기어 레버를 중심으로 좌우에는 시동 버튼과 드라이브 모드 셀렉터가 있다. 드라이브 모드 셀렉터는 누르면 튀어 올라오는 다이얼 방식이다. 다만 다이얼을 돌린 후 소프트웨어가 반응하는 속도가 느려서 아쉽다.
소프트웨어 이야기가 나왔으니 인포테인먼트에 대한 이야기도 빠질 수 없다. 11.4인치 디스플레이에 담긴 PIVI 프로 시스템의 UI 디자인은 언제 보아도 참 매력적인 물건이다. 다만 터치 후 시스템이 반응하는 속도가 생각보다 살짝 느리지만 용서가 가능한 수준이다.
재규어 F-페이스 SVR은 고성능 SUV의 숨은 보석이다. M, AMG, RS 등 독일제 고성능 SUV가 많은 주목을 받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들과는 또 다른 매력을 가지고 있다. 절대적인 성능 자체는 독일제 고성능 SUV들이 우위에 있을지도 모르지만, 배기음 하나만큼은 그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 분명한 것은 이 재규어는 멸종 위기종이라는 것. 머지않아 기름을 바닥에 뿌리면서 다니는 8기통 가솔린 엔진 고성능 SUV는 세상에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그 피날레를 장식하듯 F-페이스 SVR은 화려한 소리를 마음껏 지르며 내달리고 있다.
글 | 조현규   사진 | 최재혁

SPECIFICATION
길이×너비×높이  4762×2071×1670mm
휠베이스  2874mm  |  엔진형식  ​​V8 슈퍼차저, 가솔린
배기량 ​​​ 5000cc  |  최고출력  ​​550ps
최대토크  71.4kg·m  |  변속기  8단 자동
구동방식  AWD  |  복합연비  -
가격  1억293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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