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벤츠

  • 기사입력 2017.09.07 15:11
  • 최종수정 2020.09.01 20:59
  • 기자명 모터매거진

THE BEST OR NOTHING

영원한 별 메르세데스! 마이클 조던 날아가는 모양.

글 | 안진욱

한 명의 사회 구성원이 성공을 이뤘다는 징표와 같다. 프리미엄 브랜드의 대장, 메르세데스-벤츠다. 고급 승용차의 대명사격인 메르세데스-벤츠의 시작은 한 세기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한다.

1차 세계대전 이후 경제공황 시절인 1926년 칼 벤츠(Karl Benz)가 설립한 벤츠 앤 시에(Benz & Cie)와 고틀립 다임러(Gottlieb Daimler)의 다임러-모토른-게샬프트(DMG : Daimler-Motoren-Gesellschaft)가 합병하여 다임러-벤츠 AG(Daimler-Benz AG)가 탄생했다.

합병 후 출시되는 차에 메르세데스-벤츠 브랜드명을 달았다. 메르세데스는 스페인어로 우아함을 뜻하는데 이는 DMG에서 1902년 출시한 모델 메르세데스에서 따왔다.

칼 벤츠

창립자 중 먼저 칼 벤츠의 이야기다. 칼 벤츠는 1844년 11월 25일 독일 카를스루(Karlsrue)에서 태어났다. 1846년 그의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살림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칼 벤츠의 어머니는 아들을 그래머 스쿨(Grammar School, 당시 독일 중등학교)에 진학시키고, 이후 기계공학을 공부할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1871년 칼 벤츠는 엔지니어였던 아우구스트 리터(August Ritter)와 힘을 합쳐 자신의 첫 번째 회사인 ‘칼 벤츠와 아우구스트 리터 엔지니어링 작업소(Carl Benz und August Ritter Mechanische Werkstätte)’를 만하임(Mannheim)에 설립한다.

머지않아 칼 벤츠는 리터와의 불화로 혼자서 회사를 운영하게 된다. 칼 벤츠는 1978년부터 자신이 목표로 했던 ‘말이 끌지 않는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 가스 구동 방식의 2행정 엔진 개발에 집중적으로 매진한다.

오랜 기간에 걸친 연구개발 끝에, 새해를 앞둔 1879년의 마지막 날 드디어 최초의 가솔린 엔진이 탄생했다. 이어 1882년 10월, 칼 벤츠는 ‘만하임 가스 엔진 제작회사(Gasmotoren-Fabrik Mannheim)’를 지주회사 형태로 설립한다.

이 회사에 대한 벤츠의 지분은 겨우 5% 밖에 되지 않았고, 또한 기술 부분에 미치는 영향력도 제한적이고 결정적으로 그의 후원자들은 안정적인 비즈니스인 고정형 가스 엔진에만 주요한 관심이 있었다.

결국 칼 벤츠는 1883년 1월 회사를 떠나 새로운 사업 파트너인 막스 로제(Max Caspar Rose )와 프레드리히 빌헬름 에스링거(Friedrich Wilhelm Esslinger)와 손을 잡는다.

같은 해 10월 이들은 세계 최초의 자동차 공장 벤츠 앤 시에(Benz & Cie. Rheinische Gasmotoren-Fabrik Mannheim)를 설립한다. 1885년 2인승 마차에 0.75마력 1기통 4행정 엔진을 달고 차동 장치까지 탑재한 차를 완성했다.

이 탄력으로 이듬해 1886년에는 첫 번째 삼륜 자동차인 ‘페이턴트 모터바겐(Patent-Motorwagen : 특허 받은 자동차)’을 탄생시켰다. 이 모델은 세계 최초로 ‘자동차’라는 이름으로 특허를 제출하여 독일에서 특허번호 DRP 37435를 획득했다.

1893년에는 앞바퀴를 여러 각도로 움직일 수 있는 ‘빅토리아(Viktoria)’를 개발하여 본격적으로 양산 체제에 돌입했다. 이후 ‘벤츠 앤 시에’는 1900년까지 매년 600대의 자동차를 생산했다.

회사운영은 순탄했지만 칼 벤츠는 로제, 에스링거와 지향점에 대한 이견으로 갈라서게 된다. 이에 칼 벤츠는 다시 한 번 새로운 투자자를 찾아 나서게 되고, 1890년 5월 율리우스 간스(Julius Gans)와 프레드리히 피셔(Friedrich von Fischer)를 새로운 투자자로 맞이한다.

이후 고정형 엔진과 자동차 엔진을 함께 생산하는 복합 비즈니스 모델이 성공을 거두게 된다. 하지만 자동차에만 집중하길 원했던 칼 벤츠는 1906년 라덴부르크(Ladenburg)에 ‘Karl Benz Sohne(칼 벤츠와 그의 아들)’이라는 이름의 회사를 새롭게 설립한다.

1912년, 칼 벤츠는 회사 일선에서 물러나고 자신의 아들에게 회사의 관리를 맡긴다. 이후 칼 벤츠는 1926년 DMG와 합병된 다임러-벤츠 AG에서 중추 역할을 하다 라덴부르크 자택에서 1929년 4월 4일 생을 마감한다.

고틀립 다임러

이제 또 다른 창립자 고틀립 다임러 이야기다. 고틀립 다임러는 1834년 3월 17일 독일 쇠른도르프(Schorndorf)에서 태어났다. 학창시절 권총 제작 교육을 받고, 1857년부터 1859년까지 2년간 슈투르가르트의 폴리텍 스쿨(독일의 응용과학대학)에 다녔다.

이후 프랑스와 영국에서 다양한 기술 경험을 쌓고 1862년부터 독일 가이슬링겐(Geislingen)에서 제도사로 근무한다. 이어 1836년 말, 다임러는 로이틀링겐(Reutlingen)에 위치한 기계 제작소의 기술 감독으로 일하게 된다.

1865년 바로 그곳에서 빌헬름 마이바흐(Wilhelm Maybach, 자동차 브랜드 마이바흐 설립자)와 운명적인 첫 만남이 이뤄진다.

1872년, 고틀립 다임러는 가스 엔진 제작회사인 도이츠 가스 자동차 제작회사(Deutz Gasmotoren-Fabrik)에 입사해 기술 이사에 오르게 되면서, 니콜라스 오토(Nikolaus August Otto)가 개발한 4행정 기술에 정통하게 된다.

하지만 1882년 관리 이사와의 견해 차이로 회사를 떠나, 이후 자신의 칸슈타트 빌라 온실에 제작소를 만들고, 가솔린 4행정 엔진을 개발을 시작한다.

1884년 빌헬름 마이바흐와 함께 일하면서 ‘괘종시계(Grandfather Clock)’로 알려진 내연 엔진을 개발한다. 이 내연 엔진은 작고, 무게 또한 가벼워 자동차에 탑재될 수 있는 기본 토대를 갖추고 있다.

연구개발에 자신의 전 재산을 쏟아 부은 다임러는 다시 새로운 사업 파트너를 찾아 나선다. 1890년 11월 28일, 다임러는 막스 두텐호퍼(Max Duttenhofer) 그리고 자신의 사업 파트너였던 빌헬름 로렌즈(Wilhelm Lorenz)와 함께 DMG(Daimler-Motoren-Gesellschaft)를 설립한다.

두텐호퍼는 고정형 엔진을 제작하기 원했던 반면, 다임러는 자동차 생산에 주력하기 원하면서 둘의 의견 차이는 점점 좁힐 수 없게 된다.

그러던 중 1891년 빌헬름 마이바흐가 불합리한 계약조건을 이유로 DMG를 그만 둔 이후, 다임러는 마이바흐와 함께 비밀리에 계속 엔진을 제작하고, 특허는 다임러의 이름으로 출원하기로 한 것이다.

한편 두텐호퍼, 로렌조 두 사람과의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면서 결국 다임러는 주주 자리에서 물러나게 된다. 이후 회사의 재정 악화는 기술 개발 부진으로 이어지고, 결국 DMG는 1895년 마이바흐에게 다시 회사로 복귀해줄 것을 부탁한다.

허나 마이바흐는 다임러와 함께 하는 것이 아니라면 자신도 다시 돌아가지 않겠다며 복귀 제안을 거절한다. 결국 DMG는 계속되는 사업 악화를 해결하기 위해 다임러와 마이바흐 모두를 회사에 복귀시킨다. 이후 마이바흐가 제작한 피닉스 엔진 덕분에 DMG는 해외에서도 큰 호평을 얻는다.

다임러와 마이바흐 두 사람의 DMG 복귀는 대성공이었다. 환희는 짧게도 1900년 3월 6일 다임러는 심장병으로 숨을 거뒀다.

시간이 흘러 1926년 다임러-벤츠가 완성된 모습을 다임러는 보지 못했고 칼 벤츠는 잠깐 본 것이다. 그럼에도 창립자들의 정신은 유산으로 내려오고 있다. 칼 벤츠는 “발명에 대한 열정은 결코 잠들지 않는다”, 고틀립 다임러는 “중요한 것은 아이디어가 아니라, 그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지금 출시되고 있는 메르세데스-벤츠 모델에는 새로운 기술들을 대거 탑재하고 있다. 다른 브랜드에서는 보지 못한, 그리고 상상하지 못한 기발한 장비들로 업계를 이끌어가고 있다. 새로운 세상에 진보적으로, 자신들의 색깔은 보수적으로 서 있는 메르세데스-벤츠다.

Badge Story

메르세데스-벤츠의 배지 세 꼭지별은 ‘육지, 바다 그리고 하늘’에서 최고가 되고자 했던 다임러의 열망을 담았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상징 세 꼭지별과 월계관은 다임러-벤츠 AG가 탄생하기 17년 전에 시작 되었다.

1909년 칼 벤츠가 ‘BENZ’를 월계관으로 감싸고 있는 형태의 로고를 완성하고 공교롭게 같은 해 DMG는 세 꼭지별 로고를 만들었다. 이후 세 꼭지별을 동그라미 안에 넣고 당시 출시되던 모델 메르세데스 이름을 로고 하단에 넣었다.

두 브랜드가 다른 배지를 사용하다 1926년 인수합병을 거치며 배지도 합쳐졌다. 지금 메르세데스-벤츠 모델의 보닛이나 휠에서 볼 수 있는 월계관 배지가 이때 완성된 것이다.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

130년이 넘는 메르세데스-벤츠의 역사를 한 눈에 볼 수 있는 곳이다. 네덜란드의 세계적인 건축가 반 베르켈(Ben Van Berkel)이 디자인한 메르세데스-벤츠 박물관은 2006년 5월에 건립되어 올해로 11년째 전 세계 방문객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1만6500㎡(약 5000평)의 규모인 박물관은 크게 Legend Room과 Collection Room으로 구성되며 총 12개의 전시관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로 연결된 두 개의 전시 코스를 따라 약 160대 모델과 1500여 점의 전시품을 감상할 수 있다.

전시관에는 1886년 처음 발명된 페이턴트 모터카를 비롯해, 자동차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차라고 불리는 1936년형 메르세데스-벤츠 500K 스페셜 로드스터를 만날 수 있다.

다양한 원리로 작동하는 여러 가지 미래 자동차 등 기술과 디자인의 결합체인 메르세데스-벤츠의 모든 것을 경험할 수 있다. 입장료는 10유로(약 1만3400원)이며 월요일을 제외하고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문을 활짝 열어둔다.

모터스포츠

메르세데스-벤츠는 모터스포츠에서 찬란한 업적을 남겼다. 1901년 메르세데스 최초의 그랑프리 우승, 1914년 리옹 근교에서 열린 프랑스 그랑프리에서 1위부터 3위까지 석권했다.

특히, 1934년 뉘르부르크링 서킷에서 열린 아이펠렌넨(Eifelrennen) 그랑프리에서 무게를 감량하기 위해 메르세데스 W25의 페인트 도장을 모두 벗겨내고 알루미늄 차체 본연의 은색 표면을 드러내고 레이스에 참가했다. 결국 우승까지 차지하면서 전설적인 ‘실버 애로우(Silver Arrows)’가 탄생했다.

모터스포츠의 꽃이라 할 수 있는 F1에서도 메르세데스-벤츠의 질주는 멈추지 않는다. 2010년 자체 팀인 메르세데스-AMG 페트로나스 모터스포츠 팀을 결성하여 F1을 점령했다.

2013년 시즌부터 맥라렌에서 루이스 해밀턴을 영입하여 니코 로즈버그와 한 팀을 이루었으며, 팀 순위 2위로 2013 시즌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메르세데스-벤츠 모터스포츠 120주년인 2014년, F1은 하이브리드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다.

새로운 실버 애로우와 함께 시즌 16번의 우승과 함께 컨스트럭터 월드 챔피언십 타이틀을 차지했으며 드라이버 득점 순위는 루이스 해밀턴이 1위(384점), 니코 로즈버그가 2위(317점)로 메르세데스-AMG 페트로나스 모터스포츠 팀이 1, 2위를 기록, F1 하이브리드 시대의 첫 번째 우승자, 우승팀이 되었다.

2015 시즌에도 F1 컨스트럭터 월드 챔피언의 영예를 안았다. 시즌 총 19경기 중 메르세데스-AMG 페트로나스 모터스포츠 팀은 16번의 우승을 차지했으며 드라이버 득점 순위는 루이스 해밀턴 1위(381점)로 월드 챔피언, 니코 로즈버그 2위(322점)로 메르세데스-AMG 페트로나스 모터스포츠 팀이 1, 2위를 기록하며 성공적인 시즌을 마쳤다.

다음해인 2016년 시즌에도 독주는 이어졌다. 3년 연속 F1 컨스트럭터 월드 챔피언에 오르고 니코 로즈버그가 월드 챔피언(385점), 그리고 루이스 해밀턴이 2위(380점)로 시즌을 마쳤다.

메르세데스-AMG

1967년 다임러-벤츠의 연구소에서 일하던 한스 베르너 아우프레흐트(Hans-Werner Aufrecht)는 메르세데스-벤츠를 위한 고성능 엔진을 개발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동업자 에버하드 멜 커(Eberhard Melcher)와 함께 그로사스파흐(Großaspach)에서 두 창업자의 이름과 지명의 머리글자를 딴 AMG를 만들었다.

메르세데스-벤츠 일반 모델을 고성능차로 튜닝하는 작은 회사로 출발했지만 설립 후 4년 만에 300 SEL 6.8 AMG로 레이싱 대회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50여 년의 역사를 이어 오면서 AMG는 메르세데스-벤츠의 고성능 디비전 메르세데스-AMG로 성장하게 됐다.

메르세데스-마이바흐

마이바흐 자동차를 의미하는 ‘마이바흐 모터렌바우(Maybach Motorenbau)’에서 두 개의 ‘M’을 삼각형 안에 넣었다. 1920년대와 1930년대를 걸쳐 최고의 우아함, 고급스러움, 그리고 안락함을 상징한 마이바흐.

메르세데스-벤츠와 마이바흐는 오래된 역사를 공유하고 있다. 1919년 칼 마이바흐가 첫 번째 테스트카를 제작하는 데 기반이 된, 군수업자에게서 구입한 메르세데스 섀시(Mercedes chassis)로 연은 시작됐다.

뿐만 아니라 첫 번째 메르세데스 개발의 주역도 바로 칼 마이바흐의 아버지인 빌헬름 마이바흐였다. 경제공황의 여파로 숨어 지내던 마이바흐는 2002년 세상에 다시 나온다.

이때도 메르세데스-벤츠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다. 롤스로이스와 박빙의 승부를 펼치며 3200대 이상을 판매했다. 2012년 마이바흐 모델을 단종시키고 2015년 메르세데스-벤츠의 최고급 서브브랜드 메르세데스-마이바흐로 재탄생했다.

Hall Of Fame

페이턴트 모터바겐

긴말 필요 없다. 이것이 세계 최초의 자동차다. 이것만으로 명예의 전당에 오를 수 있다. 자동차보단 마차 같은 디자인이다.

1885년 10월 시험 주행이 실시되었고 이어 1886년 1월 29일 ‘가스 엔진으로 작동되는 자동차’로 특허 신청을 했다. 특허번호 DRP 37435. 이 것으로 자동차의 역사는 시작되었고 <모터매거진>이 존재할 수 있는 이유가 되었다.

300 SL

1954년 메르세데스-벤츠는 뉴욕 오토쇼에서 300 SL 걸윙 쿠페를 전 세계에 공개했다. 하이라이트는 단연 도어다. 하늘을 향해 펼쳐지는 새의 날개와 같은 걸윙 도어는 파격적이었다.

거기에 양산차 최초로 연료 분사 시스템을 장착하고 독립 서스펜션을 달았다. 보닛 높이를 낮추기 위해 엔진을 좌로 45° 기울여 배치했다.

G바겐

수많은 스타들이 사랑하는 G바겐. 각진 외모는 도로 위에 시선을 독식하기 충분하다. 1979년 극한의 오프로드를 위해 개발되었고 38년간 진화를 거듭하며 그 명성을 이어오고 있다.

초창기에는 실용성에 중점을 뒀지만 이제는 메르세데스-벤츠 프리미엄 세단에 버금가는 럭셔리 오프로더가 되었다. 지금은 600마력이 넘는 G바겐도 있다.

CLK 55 AMG DTM

2003 시즌 베른트 슈나이더를 독일 투어링카 마스터즈(DTM : Deutsche Tourenwagen Masters) 우승으로 이끌었던 CLK 레이싱 카를 기념하기 위해 제작된 모델로 쿠페와 카브리올레가 각각 100대씩 한정 생산되었다.

공격적인 와이드 보디 키트가 압권이다. V8 5.5ℓ 슈퍼차저 엔진과 5단 자동변속기 매칭으로 582마력의 힘을 발산했다.

SLS AMG 블랙시리즈

SLS AMG GT3 레이싱 머신에서 영감을 받아 제작됐다. 블랙시리즈답게 오버 펜더로 위풍당당한 자세를 연출하고 있다.

노멀 모델보다 70kg 가벼우며 V8 6.3ℓ 엔진은 과급기 도움 없이 최고출력 631마력, 최대토크 64.8kg·m의 괴력을 자랑한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3.6초 만에 끝내고 최고시속은 315km. 지금도 높은 몸값을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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