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이엔 끝판왕, 포르쉐 카이엔 터보 GT 시승기

  • 기사입력 2022.07.20 10:22
  • 기자명 모터매거진

포르쉐 모델에 터보가 붙으면 무섭다. 초고성능을 뜻하니까. 여기에 GT까지 붙었다. 장르를 초월하는 성능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 고성능 SUV를 선호하지 않는다. 무거운 차체로 빠르게 달리는 것이 그리 달갑지 않다. 직진 성능은 뛰어나겠지만 코너에서는 중량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게다가 제동에서도 손해를 본다. 아무리 강한 브레이크 시스템을 끼워도 그렇다. 워낙 요즘 파츠들의 성능이 높아 예전보다는 밸런스를 잘 잡지만 물리 법칙을 거스르기는 어렵다. 이런 내 앞에 포르쉐 카이엔 터보 GT가 도착했다. 그냥 카이엔 터보도 무시무시한 힘을 자랑하지만 이 모델은 그보다 더 강력하다. 참고로 난 국내 수입되는 카이엔 중에서 엔트리급인 3.0 가솔린 모델을 가장 좋아한다. 파워도 충분하고 부담스럽지 않아 마음껏 밟을 수 있다. 파워트레인과 섀시 조화도 훌륭해 움직임도 안정적이다. 과연 지나친 파워를 품고 있는 이 차는 다른 고성능 SUV들처럼 불필요한 힘을 과시하기만 할까? 아니면 포르쉐가 세팅하면 다르다는 것을 보여줄까? 3일간 진한 만남을 가졌다.
도로 위에 많은 포르쉐 카이엔이 있지만 확실히 다르다. 외모를 크게 뜯어고치진 않았지만 약간의 드레스 코드를 바꾼 것만으로도 분위기가 다르다. 공기 흡입구를 큼지막하게 뚫어 놓은 것만으로도 이 녀석의 성능이 짐작된다. 얼마나 본격적으로 달릴 예정인지 루프도 카본 파이버로 만들었다. 이미 무거운 몸무게였고 덜어낼 수 있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이는 약간의 무게를 줄이는 것보다 무게 중심을 낮추기 위한 정성이다. 휠도 인상적이다. 22인 휠 사이즈는 덩치에 어울리고 스포크 형상도 시원하게 뻗어 더 크게 보인다. 컬러가 예술이다. 네오다임(Neodyme)이라 불리는 이 색상은 실제로 보면 오묘하고 눈을 사로잡는다. 그레이 보디 컬러와 안 어울릴 것 같은 톤인데 근사하게 매칭된다. 차체 뒤쪽으로 자리를 옮겨 보면 머플러 커터도 공격적이다. 마치 전투기에서 본 듯한 모양이다.
두툼한 도어를 실내로 들어가 본다. 문을 여닫을 때 느낌이 좋다. 유격이 없고 동글동글한 소리를 내며 열고 닫힌다. 별거 아니지만 이런 게 감성이고 프리미엄 브랜드의 클래스다. 여하튼 인테리어는 노멀 카이엔과 같다. 대형 디스플레이와 크로노그래프를 기준으로 둔 대칭형 센터페시아 레이아웃이다. 안정감이 들고 좌우대칭 강박자가 흐뭇할 것이다. 알칸타라 소재를 적극적으로 사용해 스포티한 느낌을 더 강조한다. 스티어링 휠은 물론 대시보드 모서리와 기어노브, 그리고 시트 등 곳곳을 알칸타라로 덮었다. 레이싱 글러브를 끼고 알칸타라 스티어링 휠을 잡으면 완벽한 그립이 나온다. 관리가 어렵지만 트랙에서 탈 수 있는 SUV라는 점에서는 잘 어울린다.
스티어링 휠 상단에는 센터 마킹까지 했다. 이 센터 마킹은 드리프트 카에 필요하다. 차를 돌리면서 무아지경에 빠질 때 스티어링 휠 정렬을 짧은 순간에 인지하기 위한 마크다. 사륜구동 차라 드리프트가 잘 될지는 모르겠지만 오피셜 사진을 보면 드리프트하는 장면이 있다. 리어 액슬로 구동력을 많이 보내 파워 슬라이드는 될 것으로 추측한다. 시트는 편하고 사이드 볼스터도 제법 튀어나와 코너에서 운전자를 잘 잡아준다. 뒷좌석은 건장한 성인 남성이 앉아도 레그룸이 여유롭다. 다행히 헤드룸도 괜찮다. 여유롭진 않지만 고개를 숙여야 할 정도는 아니다. 트렁크 공간은 일반 카이엔 쿠페와 같다.
겉과 속 모두 볼 건 다 봤으니 이제 달리자. 그 전에 브로셔를 잠시 훑고 가자. 후드 안에는 거대한 파워유닛이 담겨 있다. V8 4.0ℓ 트윈 터보 엔진은 최고출력 650마력, 최대토크 86.7kg·m의 힘을 생산한다. 이 힘을 8단 자동변속기를 통해 네 바퀴에 골고루 전달한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3.3초다. 2.2t이 넘는 SUV가 3.3초다. 참고로 911 GT3가 3.4초다. 아무리 출력 차이가 나더라도 중력을 거스르는 트랙션을 완성했다. 최고시속도 무려 300km다. SUV지만 포르쉐 GT 라인다운 스펙을 보유하고 있다. 스포츠카는 물론 슈퍼카도 긴장할 만한 수치다.
브로셔는 옆자리에 던지고 왼손으로 시동을 켠다. 야수가 깨어난다. 서서히 도로에 차를 올린다. 승차감이 준수하다. 노멀 카이엔보다 살짝 단단한 듯하지만 거의 비슷하다고 해도 무방하다. 승차감은 주관적이지만 이 정도를 거슬린다고 할 이는 거의 없을 것이다. 다만 뒷좌석은 앞좌석보다 살짝 더 단단한 승차감이다. 아무래도 큰 차이기에 뒷바퀴가 빨리 따라오려면 이런 세팅을 할 수밖에 없다. 여하튼 승차감에 불만은 없다. 장거리 주행해도 끄떡없었으니까. 모델명에도 GT가 들어가지만 GT 장르에 필요한 덕목을 갖췄다.
막히는 도로를 뚫고 뚫린 도로에 닿았다. 드라이빙 모드를 스포츠에 놓고 감쇠력을 하나만 조인 후 가속 페달을 지그시 밟는다. 당연하겠지만 폭발적인 가속력이다. 엔진은 크랭크샤프트, 터빈, 흡기 시스템, 등을 바꿨다. 단순히 부스트압을 올려 출력을 올리지 않아 터보랙도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세상에 바퀴 달린 모든 것을 타이어가 아스팔트에 씹히는 이 느낌 오랜만이다. 과거 아우디 RS7이 처음 나왔을 때 이런 느낌을 받았다. 스티어링 휠로 약간의 토크 스티어가 느껴지면서 섀시와 타이어 그립이 싸우는 이 느낌! 괴물을 채찍으로 조련하는 영웅이 된 것 같다. 영리하고 배신하지 않는 녀석이지만 짧은 순간에는 그러한 성향을 잊고 컨트롤하려 용쓰는 게 중독적이다. 고속도로에서도 힘은 남아돈다. 이 힘의 끝이 어디인가 싶다. 활주로에서 마음 놓고 달려보고 싶다. SUV지만 고속안정감이 훌륭하다. 리어 스포일러는 터보 모델보다 25mm 더 넓어져 시속 300km에서 다운포스를 40kg까지 더 일으킨다.
코너링 퍼포먼스도 장르를 뛰어넘었다. 사실 카이엔 터보 GT를 일전에 트랙에서 먼저 타봤다. 당시 함께 달렸던 718 GT4와 911 GT3를 따라가기에 충분했다. 물론 시승회 특성상 풀어택이 아니라 가능했지만 트랙 데이를 즐길 수 있는 실력이었다. 또한 함께 달렸던 모델들이 트랙스타라 그렇지 웬만한 차들은 잡을 수 있을 것 같다. 실제로 뉘르부르크링에서 SUV 신기록인 7분 38.9초를 마크했다. 그러니 차체 한계치로 달릴 수 없는 와인딩에서는 더더욱 여유 있는 몸놀림을 보여준다. 기본적으로 언더스티어 성향을 보이지만 그 농도가 진하지 않다. 무게 중심을 낮추려 노력했고 토크 벡터링과 후륜조향장치까지 더해지니 코너를 가뿐하게 탄다. 코너를 계속 돌아 나가면서 공차중량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것이 이 차의 가장 큰 장점이다. 댐퍼 감쇠력을 최대한으로 강하게 두면 노면을 많이 타긴 하지만 스티어링 피드백이 빨라 재미있다.
이렇게 잘 달리고 잘 돌지만 잘 설까 걱정이다. 대왕 바나나 캘리퍼에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 디스크를 달았지만 여전히 이 녀석의 몸무게가 걸린다. 포르쉐는 늘 오버 스펙의 제동 시스템을 장착하는데 역시나 카이엔 터보 GT도 잘 멈춰 세운다. 파워트레인과 섀시를 압도하는 성능이다. 노즈다이브 혹은 브레이크스티어 현상을 최대한으로 줄이고 고속에서 강한 제동이 연거푸 들어가도 잘 버틴다. 또한 코너를 돌면서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도 뒤뚱뒤뚱하지 않는다. 이러니 운전자는 650마력을 믿고 사용할 수 있다. 페달의 답력도 일반 차와 비슷해 발목에 무리가 가지 않고 제동 소음도 전혀 없다.  
브레이크 테스트를 마지막으로 3일간의 만남은 끝이 났다. 좋아하지 않는 장르지만 괜히 보내기가 싫다. 기대하지도 않았는데 아주 재미있게 탔다. SUV가 빠를 순 있어도 이렇게 빠를 순 없고 이만큼 재미있을 수 없다. “SUV로 달려봐야 뻔하지!”라는 말에 제대로 카운터를 날린다. 스포츠카를 따로 둘 필요가 없을 정도의 퍼포먼스를 보여준다. 물론 진짜 스포츠카만큼은 아니다. 하지만 진짜 스포츠카를 진짜 스포츠카처럼 타는 이는 거의 없다. 이 정도면 된 거다. 게다가 배기 사운드가 훌륭하다. 음색도 좋고 음량도 충분하다. 합법적인 선에서 최고의 배기 사운드다. 8기통 특유의 베이스가 깔리고 엔진 회전수가 올라갈수록 우렁찬 소리를 점점 더 낸다. 스로틀이 닫힐 때나 다운시프트를 칠 때 백프레셔가 터지는데 운전자를 더욱 흥분하게 만든다. 911 터보가 보통 사람들 눈에는 그냥 911이지만 마니아들 눈에는 그렇지 않다. 운전자에게 후광이 보인다. 보여지는 것에 투자하는 것이 아닌 자기 취향에 투자하는 그런 자. 이와 같이 카이엔 터보 GT는 운전자를 아는 이들에게 은은하게 포장해준다. 세련되고 확실한 사람으로···.
글 | 안진욱   사진 | 최재혁

SPECIFICATION
길이×너비×높이  4940×1995×1620mm
휠베이스  2895mm  |  엔진형식  ​​V8 터보, 가솔린
배기량 ​​​ 3996cc  |  최고출력  ​​650ps
최대토크 ​​86.7kg·m  |  변속기  8단 자동
구동방식 ​​AWD  |  가격  2억341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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