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기에서 느껴지는 힘, 지프 그랜드 체로키 L

  • 기사입력 2022.02.27 08:36
  • 기자명 모터매거진

오래 기다렸다. 무려 11년 만의 풀체인지다. 5세대 그랜드 체로키의 롱 보디 버전인 그랜드 체로키 L을 만났다. 기대 이상의 만듦새는 감동적인 수준이다. 많은 것을 개선했고, 자동차의 급을 한 단계 올려버렸다. 

지프 가문의 둘째 형, 그랜드 체로키가 5세대로 풀체인지를 거치고 롱 보디 모델인 그랜드 체로키 L(이하 그랜드 체로키)이 한국 시장에 등장했다. 무려 11년 만의 변화는 이전 세대의 모습을 시원하게 털어냈다. 게다가 큰형 왜고니어에게 플래그십의 자리를 넘겨주었으니 그랜드 체로키는 부담을 덜어내고 조금 더 개성 있는 매력을 보여줄 수 있는 좋은 조건을 갖췄다고 볼 수 있다.3열 시트를 갖춘 대형 SUV 시장이 날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 전 세계가 탄소 중립을 애타게 외치는 요즘 시대에 이처럼 연료를 많이 소비하는 커다란 차가 인기를 얻고 있는 것이 조금 아이러니 하다. 이미 경쟁사 대부분은 그랜드 체로키의 경쟁 모델을 출시했고, 심지어 풀사이즈 SUV 모델 역시 한국 땅을 모두 밟고 있다. 그만큼 소비자들이 이러한 장르를 원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거친 변화의 바람 속에서 새로운 그랜드 체로키는 어떤 매력을 가지고 있을까?

깔끔하게 정돈된 외모
지난 4세대 그랜드 체로키를 시승하고 오랜 시간이 지나지 않았다. 덕분에 이전 세대의 감상이 기억 속에 강하게 남아있다. 기억 속 4세대 그랜드 체로키는 보기만 해도 듬직한 덩치와 그에 맞는 단단한 디자인, 실내로 들어서면 세월의 흔적을 피하지 못해 투박한 인테리어로 정리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번 그랜드 체로키는 거의 환골탈태 수준에 가깝다. 원래도 듬직하던 덩치는 롱 보디 모델을 뜻하는 L 이니셜을 붙여 더욱 커졌다. 단순히 크기만 키운 것은 아니다. 때때로 롱 보디 모델은 휠베이스를 늘이기 위해 허리만 잔뜩 길어져 우스운 모양새를 보이기도 하는데, 이번 5세대 그랜드 체로키의 경우는 전체적인 디자인 비율을 절묘하게 조절했다. 분명 덩치는 21인치 휠이 작아 보일 만큼 훨씬 커졌으나, 그 자태가 무척 섹시하다.
지프의 상징인 7 슬롯 그릴은 그 크기를 줄였고, 눈매 역시 더욱 세련미 넘치게 다듬었다. 여기에 후드의 끝단이 살짝 튀어나온 형태로 안쪽으로 들어간 그릴과 대비되어 입체감을 조성해 마음에 든다. 지프가 이렇게 잘생긴 차를 만들 줄 아는 브랜드였나? 랭글러의 이미지가 워낙 강하게 심어져 있기에 낯선 잘생김이 당황스럽도록 설렌다.

이러한 극적인 변화는 후면에서도 마찬가지다. 얇고 길게 그려진 리어램프는 최근의 유행을 착실히 따라가는 모습이다. 시승차의 컬러가 흰색으로 칠해져 있기 때문인지 후면부의 크롬이 필요한 곳에만 딱 배치되어 있어 정갈한 느낌이다. 여기에 가로선을 겹겹이 쌓아 올려 차체가 한층 넓어 보이는 것도 장점이다.
측면으로 눈을 돌리면 이 차의 성격이 명확히 드러난다. 지프는 새로운 그랜드 체로키에 도심형 SUV의 이미지를 더욱 강조하기 시작했는데, 이는 보디 컬러와 동일하게 칠해진 클래딩에서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루프 라인은 뒤로 갈수록 아주 완만하게 떨어지는 형태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눈치채기도 쉽지 않다. 에어 서스펜션이 장착되어 차체의 높낮이를 조절할 수 있다. 차체를 최대한 높였을 때와 낮췄을 때도 이미지 변화가 제법 큰 편인데 은근히 감상하는 맛이 쏠쏠하다. 같은 값이면 다홍치마라 했던가? 이처럼 잘생긴 외모를 싫어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 같다.
몰라보게 고급스러워진 인테리어
인테리어 역시 완전히 바뀌었다. 이전 세대의 흔적을 희미하게 남겨놓은 외관과 달리 옛 모습을 완전히 지웠다. 미국차 특유의 간결하고 직관적인 인테리어 스타일은 변함이 없지만 만듦새는 놀라울 정도로 좋아진 모습이다. 클래식하면서도 세련된 마무리가 수준급이다.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실내를 장식하는 우드 트림이다. 자칫 잘못하면 고리타분한 이미지를 풍길 수 있는 우드 트림이지만 따로 광택을 내지 않고 분위기를 해치지 않을 정도로만 사용해서 마음에 든다. 3스포크 타입 운전대의 스포크에도 일부 사용했는데 평소 손이 잘 닿지 않는 부분에 적용되어 있어 괜히 촉감을 느끼기 위해 손가락이 향한다.

이제 10.25인치 디지털 클러스터와 10.1인치 디스플레이가 놀라운 부분은 아니다. 반응 속도와 UI의 디자인 역시 평범한 수준이다. 다만 최근 많은 제조사들이 물리 버튼을 없애려고 노력하는 편인데, 지프는 굳이 그러한 흐름에 동참하지 않은 것이 눈에 띈다. 운전 중에 꼭 필요한 기능들은 각각의 물리 버튼으로 디스플레이 상·하단에 배치했고, 모든 버튼들이 손이 닿기 좋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간혹 필요한 기능을 작동하기 위해 디스플레이 속 세상을 헤매는 것보단 이편이 훨씬 직관적이고 안전해 마음에 든다.
기어는 다이얼 방식으로 조작한다. 다이얼을 돌리면 중앙으로 되돌아가는 타입이 아닌 각 기어에 멈추는 방식이다. 아쉬운 점은 이를 조작하는 감각이 다소 헐렁하다는 것. 어차피 주행 중에 기어에 손이 갈 일이 거의 없으니 크게 모난 점은 아니지만, 차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생각했을 때 조금 더 고급스러운 감각을 더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기어 다이얼의 왼쪽에는 터레인 모드를, 오른쪽에는 차고를 조절할 수 있는 레버를 배치했다. 그리고 센터페시아 하단에 USB C타입과 A타입 포트를 각각 두 개씩 마련한 것도 칭찬할 점이다.

2열과 3열의 공간도 충분히 마련했다. 독립 시트로 구성된 2열의 거주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고, 3열 역시 옹졸하지 않아 명분상으로 만들어 놓은 것이 아님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성인이 앉아서 장거리를 가기에는 조금 무리가 있을 듯하지만 어린아이들이 타고 다니기에는 넉넉한 수준이다. 또한 2열을 앞으로 손쉽게 당겨 3열에 타고 내리기에 편한 것도 기본에 충실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3열은 접었을 때 풀 플랫이 되며 접고 펴는 것은 모두 버튼 하나로 조작할 수 있다.
사실 지프의 인테리어에서 가장 하이라이트라고 볼 수 있는 것은 사운드 시스템이다. 하이엔드 오디오 브랜드 ‘매킨토시(Mcintosh)’의 시스템이 자동차 최초로 탑재되었기 때문이다. 현재 Hi-Fi 오디오 업계에서는 유명한 브랜드 중 하나이지만, 오디오 분야에 관심이 없다면 꽤 생소한 브랜드이기도 할 것이다.
그랜드 체로키 내부에는 최대 출력 950W의 17채널 앰프와 10인치 서브 우퍼를 포함해 총 19개의 스피커를 갖추고 있다. 저음부를 단단하게 받치면서 고음까지 깔끔하게 재생하며 공간을 가득 울리는 데 특히 팝이나 록, 힙합 같은 음악에 무척 잘 어울린다는 것이 개인적인 감상이다. 문과 트렁크를 활짝 열고 볼륨을 잔뜩 높이면 웬만한 공연장의 스피커 부럽지 않은 풍부한 음량으로 주변을 가득 채운다. 기회가 된다면 꼭 경험해보는 것을 조심스레 권해본다.
기대했던 만큼 달리는 그랜드 체로키 L
외모를 충분히 감상했다면 이제 이 녀석을 타고 달려볼 차례다. 3.6ℓ V6 자연흡기 가솔린 엔진에 8단 자동변속기 조합으로 네 바퀴를 굴리는 것은 이전 세대와 동일하다. 출력 역시 그대로다. 최고출력은 286마력, 최대토크는 35.1kg∙m다. 풀 체인지 모델임에도 파워트레인에 변화가 없는 것이 의아하지만 지프의 다양한 모델에 사용되는 조합인 만큼 높은 완성도에 자신이 있다는 뜻으로 해석해도 좋을 것이다.

시동을 걸고 주차장을 조심스레 빠져나간다. 커다란 덩치에 2.3t의 무게를 부드럽게 다루는 데 어려움이 없다. 오랜만에 타는 대형 SUV이며 긴 보닛이 조금은 부담스럽지만 도로 위에 올라섰을 때 느낄 수 있는 탁 트인 시야는 높은 만족감을 선사한다. 사뿐사뿐 발걸음을 내딛는 커다란 곰의 등에 올라탄 느낌이다. 먹이를 찾아 어슬렁대는 곰처럼 도로를 누비는 것만 같다.
가속 페달에 힘을 살짝 더 주면 맹렬히 달려 나가는 맛도 제법이다. 6기통 특유의 엔진음이 고스란히 실내로 전해져 들어와 박력을 더한다. 높이와 무게 탓에 롤링과 피칭도 제법 있는 편이기에 차체가 꽤 출렁거린다. 다행인 것은 그러한 느낌이 불안함으로 다가오지는 않는다. 자세가 흐트러지는 것은 예상 범위를 벗어나지 않으며, 자세를 재빨리 바로잡는 능력도 기대 이상이기 때문이다. 거대한 덩치를 고려한다면 꽤 날렵한 움직임을 보여주는 편이다.

브레이크 시스템도 이 차의 무게를 잘 감당하는 모습이다. 그렇다고 이 차를 타고 무지막지하게 달리는 것도 썩 내키지는 않는다. 그저 일정한 속도에 맞춰서 평온히 달렸을 때 마치 도로를 항해하는 것 같은 최고의 만족감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물론 동력 성능에도 아쉬움은 있다. 가속 페달을 살짝 깊게 밟으면 변속기가 화들짝 놀라는 듯 실내로 충격을 전달한다. 2500rpm 근방에서 이러한 느낌이 도드라지는데, 자주 사용하는 회전 영역대에서 충격이 발생하니 불쾌감이 느껴질 정도다. 게다가 변속기가 종종 제자리를 찾지 못해 허둥대는 모습도 보인다. 이전 세대 모델을 시승할 때는 느끼지 못했던 부분이기에 분명 개선이 필요한 점으로 생각한다. 또한 도심에서의 연비는 6km/ℓ 내외이며 고속도로에서도 10km/ℓ를 겨우겨우 달성한다. 대형 가솔린 SUV를 사는 사람들이라면 이 정도 연비는 감수하지 않을까? 분명 그 이상의 만족감을 선사하니 말이다.
즐거운 시승이 끝나고 다시 차를 한 바퀴 둘러본다. 기대 이상의 완성도와 풍요로운 공간, 시선을 잡아끄는 외모까지 모두 갖췄다. 이러한 장르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무척 매력적인 상품성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 도로에서 자주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그랜드 체로키 L이다.

글 | 조현규   사진 | 최재혁

SPECIFICATION
길이×너비×높이  5220×1975×1795mm
휠베이스  3090mm  |  엔진형식  V6, 가솔린
배기량 ​​​ 3604cc  |  최고출력  ​​286ps
최대토크  35.1kg·m  |  변속기  8단 자동
구동방식 ​​​​4WD  |  연비  7.7km/ℓ  |  가격  8980만원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2024 모터매거진.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