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타버스 시승기, 란치아 델타 HF 인테그랄레 에볼루치오네

  • 기사입력 2022.02.10 13:29
  • 기자명 모터매거진

잠시 일상을 되찾는 듯 보였지만, ‘오미크론’이라는 이름의 또 다른 변종으로 인해 생각보다 봉쇄가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 연유로 인해 ‘그란투리스모 스포트’ 속에서 이루어지는 시승은 계속된다. 이번에는 란치아의 이야기다.

어린 시절 자동차 잡지를 마르고 닳을 때까지 읽었던 것이 생각난다. 당시 잡지를 구매할 돈이 없어, 은행에서 부모님의 볼일이 끝나기를 기다리면서 비치된 잡지를 정독했다. 그때 필자의 눈을 사로잡았던 것이 바로 하얀색의 차체를 가진 날렵한 해치백의 활약이었다. 각을 세운 모습은 당시의 자동차들과 같았지만, 알록달록한 마르티니(Martini) 특유의 리버리를 두르고 거친 길을 마음껏 헤쳐나가는 모습은 어린 눈에도 다른 차임을 직감하게 했다.사진 밑에 있는 글들을 천천히 읽다가 그 차가 ‘란치아 델타 HF 인테그랄레’라는 것을 알고 흥분했었다. 아마도 그 때 크게 영향을 받아 나이를 먹은 지금도 해치백 모델을 좋아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쨌든 그 꿈의 자동차를 손에 넣기에는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버렸지만, 지금도 ‘언젠가는 직접 운전해보고 싶다’는 꿈만은 갖고 있다. 그리고 이번에도 어김없이 갖고 있는 PS4의 전원을 켰다. 다행이 그란투리스모 스포트 안에 란치아가 마련되어 있다.

레이서를 만드는 합리적인 자동차
란치아의 설립은 1906년 즈음이다. 창립자인 빈센초 란치아(Vincenzo Lancia)는 ‘레이서를 위한 비싸지 않으면서도 가벼운 자동차’를 만들고 싶어 했다. 피아트에서 일했던 그는 동료인 클라우디오 포골린(Claudio Fogolin)을 설득해 각각 5만 리라를 투자했다. 란치아는 엔진 성능은 물론 절제와 우아함을 같이 품은 외형, 혁신적인 실내 디자인으로 명성을 얻었다. 이후 12기통 엔진도 만들었던 란치아는 ‘가능한 한 엔진 길이를 줄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그는 각각의 실린더를 13도 각도로 비틀어 이를 실현했는데, 당시로써는 굉장히 뛰어난 주물 기술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그 뒤 1937년에 빈센초 란치아는 급작스런 심장마비로 56세에 생을 마감했고, 아들인 지안니(Gianni)가 물려받았다. 2차 대전이 끝난 후에는 V형 6기통 엔진을 새로 개발했고, 자동차 업계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 이후 경영난을 이유로 피아트에 인수된 란치아는 1990년대까지만 해도 레이스에서 준수한 활약을 보였고 판매도 꽤 잘 이루어졌다.
란치아가 무너진 것은 그 이후다. 피아트가 FCA라는 거대 기업으로 태어난 뒤, 란치아는 제대로 된 투자를 받지 못했다. 한때는 크라이슬러의 모델들에 란치아 엠블럼만 달아 유럽에서 판매할 정도로 대접이 좋지 않았다. 그리고 그마저도 철수시키고 입실론 한 대만 이탈리아 시장에서 판매할 정도였다. 그러나 FCA가 PSA와 합병한 뒤 ‘스텔란티스’로 재정립된 현재, 란치아는 존속을 확정받았다. 그리고 델타는 전기차로 재탄생할 예정이다.
여전히 아름다운 인테그랄레
옛 추억은 여기까지만 이야기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인테그랄레(이름을 모두 언급하기엔 너무 길다)의 시동을 걸어보자. 아직 스티어링 휠을 잡았을 뿐인데, 자연스럽게 긴장이 된다. 계기판에 수많은 게이지가 있기 때문인데, 연료계와 수온계는 그렇다 쳐도 부스트 게이지와 전압계는 특이한 존재다. 게다가 계기판 옆에 유압계와 유온계가 별도로 존재한다. 회전계가 3시 방향부터 시계 방향으로 회전하는 것 역시 독특하다.

다른 자동차라면 스티어링을 잡는 감각이 다르겠지만, 인테그랄레는 그 감각도 아마 비슷할 것이다. 이 차에는 에어백이 없는 모모 스티어링 휠이 장착됐으니 말이다. 기어를 넣고 출발해보면, 여전히 카랑카랑한 소리를 내며 반응하는 엔진이 꽤 준수하게 차체를 밀어준다. 이 차의 최고출력 212마력은 지금 와서는 별거 아닌 듯하지만, 당시에는 혁신에 가까웠다. 게다가 1300kg을 조금 웃도는 가벼운 차체와 만났으니, 경쾌한 가속에 대해 따로 설명할 필요가 없으리라.
엔진을 회전시켜 터빈에 압력을 채우면, 잠시 후에 반응이 오면서 가속이 조금 더 빨라진다. 아마 최신 기술의 터보차저 엔진만 느껴왔다면, 힘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걸리는 이 차에 실망할 수도 있으리라. 그러나 옛 차는 이것이 맛이다. 매혹적인 엔진음과 함께 터보차저가 광음을 내면서 힘이 실리고, 그 힘은 네 바퀴에 고스란히 전달된다. 브랜드는 다르지만, 이 느낌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메르세데스-AMG A45(W176)에 거의 그대로 전달됐다.

안정감이 꽤 있기에 코너링에서 큰 재미를 느끼기는 힘들 것이다. 기본적으로는 약 언더스티어 성향이기 때문에 WRC에서처럼 뒤를 흔들면서 코너에 진입한 뒤 드리프트로 멋지게 극복해내는 것은 힘들다. 사이드 브레이크를 사용하면 가능하지만, 굳이 그것을 권하고 싶지는 않다. 소소한 재미를 모아 코너링의 즐거움을 만들 수 있기 때문이다. 겉으로는 수수한 움직임을 보이겠지만, 그 안에 있는 운전자는 슬며시 미소를 짓는다는 이야기다.
조금 더 거칠게 오랫동안 밀어붙여 보면, 인테그랄레의 또 다른 진가가 드러난다. 오래된 이 핫해치가 놀라운 안정성을 보여준다. 최신 자동차와 비견될 정도로 말이다. 아마 10년 전 자동차와 산길 주행 중 안정성을 겨룬다고 하면, 오히려 이길 확률이 더 높다. 고작 게임 속인데 어떻게 그것을 알 수 있냐고? 첫 번째는 느낌. 두 번째는 자동차가 좌우로 기울어지는 각도를 재는 게이지다. 다른 차를 운전할 때와 동일하게 스티어링을 흔들어봐도 게이지가 상당히 적게 흔들린다.
세계에서 가장 날렵한 코끼리
이 차의 그릴에는 노란색의 HF 엠블럼이 있다. 그리고 그 위에 코끼리가 그려져 있다. 이것은 무슨 의미일까? 란치아의 HF는 High Fidelity의 줄임말이다. 우리말로 옮기면 고충실도. 그렇다. 오디오에서 많이 들었을 ‘하이파이’다. 란치아는 자동차가 필터나 왜곡 없이 운전자에게 도로의 모든 감각을 전달할 수 있기를 원했다. 그 의지를 처음 담은 것이 1963년에 등장한 란치아 풀비아. 이후 HF는 란치아 고성능 모델의 상징이 되었다.

그렇다면 코끼리는 무엇일까? 페라리의 말, 람보르기니의 황소는 잘 알려진 이야기를 담고 있지만, 코끼리는 생경할 것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몇 개의 설이 있지만, 대표적이면서 신빙성 있는 이야기는 창립자의 아들인 지안니가 코끼리를 제안했다는 것이다. 엔지니어들이 “코끼리는 빠르거나 민첩하지 않습니다”라며 반대했지만, 지안니는 “코끼리가 달리기 시작하면 아무도 멈추게 할 수 없다”라고 대답했다고. 그래서 HF 엠블럼에 코끼리가 들어갔다.
참고로 란치아는 코끼리의 색으로 고성능 모델을 구분한다. 같은 HF라고 해도 파란색 코끼리가 들어가면 일반 스포츠 모델이다. 현대차의 N라인 모델을 떠올리면 된다. 그리고 HF에 붉은색 코끼리가 들어가면 고성능 스포츠 모델이 된다. 현대차의 N 모델과 동급이 되는 셈이다. 이러한 자동차 제조사의 역사와 모델들, 엠블럼에 대해 숨겨진 이야기를 듣고 나면, 그란투리스모 속에서 자동차를 고르고 운전하는 것도 좀 더 즐거워질 것이다.
 
글 | 유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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