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OCK STAR,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스포츠 SVR

  • 기사입력 2022.02.06 12:06
  • 기자명 모터매거진

어울리지 않는 것들이 서로 어울릴 때의 멋이 있다. 그러한 멋이 진하다.

높은 시트 포지션에서 듣는 폭력적인 이 사운드! 기분 좋다. 요즘 이런 소리 내는 차 보기 힘들다. 거의 모든 차들이 터빈을 장착해 먹먹한 소리를 내는데 이 녀석은 시원시원하다. 레인지로버 스포츠 SVR이다. 스로틀을 한 번에 열면 금속 마찰음으로 운전자 입꼬리를 올린다. 3000~4000rpm 정도에서 터지는 백프레셔도 기가 막히다. 보통 마이너체인지 혹은 풀체인지를 거치면서 배기 사운드 볼륨이 줄어드는데 여전히 우렁찬 목청을 가지고 있다. 이 사운드 하나만으로도 그냥 레인지로버 스포츠보다 돈 더 쓰고 SVR 배지를 가질 만하다.

소리만 요란한 게 아니라 성능도 뛰어나다. V8 5.0ℓ 엔진에 컴프레서를 달아 최고출력 575마력, 최대토크 71.4kg·m의 괴력을 생산한다. 이 파워는 ZF 8단 자동변속기를 통해 네 바퀴에 골고루 전달된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4.5초, 최고시속은 280km에 달한다. 스펙만 놓고 보면 마이너체인지 전보다 강해졌고 2445kg의 공차중량으로 스포츠카처럼 달릴 것 같다. 참고로 SVR은 노멀 6기통 대비 45kg 더 무겁다. 실린더가 2개 더 늘어나고 다른 엔진 파츠들이 커진 것에 비하면 크게 증량되진 않았다.
가속력은 차고 또 넘친다. 가속에 가속, 그리고 또 가속을 해도 힘은 남아돈다. 고속에서도 지치지 않고 전진한다. 슈팅카를 탄 포토그래퍼와 동료 기자들은 SVR의 가속력을 보고 감탄했다. 저렇게 육중한 덩치가 튀어 나가는 모습이 비현실적이라고. 나이가 들어 시승차를 타도 잘 달리지 않는데 나도 모르게 신났었나 보다. 터보엔진에 비해 스로틀 리스폰스가 빨라 가속 페달을 컨트롤하는 재미가 있었다. 잘 만들어진 자연흡기 엔진처럼 원하는 순간에 원하는 엔진 회전수에 닿아 있다. 여기에 변속기도 장단을 잘 맞춰준다. 변속 속도도 빠르고 다운시프트에도 적극적이다. 마음에 든다.

하체 세팅은 보통의 레인지로버가 물 위를 둥둥 떠다니는 듯한 승차감을 주는 데 반해 SVR은 하체가 바짝 긴장해 있다. 그렇다고 승차감을 해치는 정도는 아니니 걱정할 필요 없다. 여하튼 탄탄한 하체 덕분에 무자비하게 달려도 거동이 안정적이다. 급격하게 스티어링 휠을 잡아 돌리더라도 주행안정화장치가 쉽게 개입하지 않는다. 스티어링 피드백도 솔직한 편이라 차체를 다루기가 편하다. SUV임에도 코너링 퍼포먼스가 준수하다. 물론 언더스티어가 일어나지만 이상적인 라인을 벗어나는 궤적이 크지 않다. 토크벡터링과 똑똑한 전자식 LSD 도움도 크다. 진입 속도만 잘 맞추면 깔끔하게 코너를 돌 수 있으며 복합코너에서도 어리둥절하지 않는다. 섀시에 엉켜 있는 진동을 재빨리 털어버린다.
이렇게 용감하게 놀 수 있는 것은 브레이크 시스템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출력과 차체를 다루기에 충분한 파워이며 노즈다이브 혹은 브레이크스티어가 심하지 않다. 또한, 고속에서 강한 제동이 연거푸 들어가도 페이드나 베이퍼록 현상이 나타나지 않아 마음이 놓인다. 코너를 돌면서 브레이킹이 걸어도 차체가 안으로 쏠리지 않는 만큼 언제든지 브레이크 페달에 발을 가져가도 좋다. 페달의 답력과 스트로크는 보통 차 수준이다.
한바탕 SVR과 씨름을 하고 난 후 휴식을 취하며 외관을 둘러본다. 외모 콤플렉스는 전혀 없다. SUV로서 위풍당당하고 모델명처럼 스포티함도 놓치지 않았다. SVR 배지를 달았지만 겉모습에서 일반형 모델과 차이점은 두드러지지 않다. 과거 SVR 트림이 출시된 이후 레인지로버 스포츠의 보디 키트가 SVR스러워져 더더욱 차이가 없다. 차이가 없을 뿐, 레인지로버 스포츠는 모든 트림이 잘생긴 것이다. SVR만이 가진 매력은 머플러 커터다. 최근 트렌드를 따라 거대한 머플러 커터를 범퍼에 깔끔하게 매립해 놓았다. 실제 배기 시스템과 연결되어 있지 않아 세차하기도 편하고 보기에도 좋다.
두툼한 도어를 열고 실내로 들어가자. 사이드 스텝이 없어 키가 작거나 여성들은 승차가 조금 힘들다. 인테리어는 전형적인 레인지로버다. 대칭형 센터페시아에 버튼을 최소화하고 마무리는 최고급 가죽! 레인지로버를 탈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가죽은 정말 좋은 것을 쓴다. 대개 부드러운 가죽은 만지면서도 내구성을 걱정하게 되는데 레인지로버의 것은 그렇지 않다. 연하게 연마한 가죽을 두껍게 사용해 오래 사용해도 컨디션이 유지된다. 시트는 버킷 타입이다. 본격적인 버킷 시트는 아니지만 코너에서 운전자를 잘 지탱해 준다. 생긴 것도 레이스카에서 가져온 것 같아 오너들의 만족도가 높을 것이다. 심지어 리어 시트도 버킷 시트 형상이다. 뒷좌석 공간도 넉넉하다. 건장한 성인 남성이 앉아도 레그룸과 헤드룸이 여유롭다. 등받이 각도도 적당히 누워 있어 장거리 이동에도 피곤하지 않다. 트렁크 공간은 비슷한 체급의 SUV 수준이다.
편의사양도 부족하지 않다. 먼저 애플카플레이와 안드로이드 오토 시스템이 탑재되어 있다. 한 사용해 보면 빠져나올 수 없는 옵션이다. 반자율주행 시스템도 있다. 장거리 이동 시 고속도로에서 유용하다. 큰 덩치를 쉽게 주차할 수 있게 도와주는 어라운드뷰를 지원하며 쾌적한 실내공간을 위해 초미세먼지(PM 2.5) 필터를 갖춘 실내 공기 이오나이저도 있다. 가장 인상적인 옵션은 역시 메리디안 오디오 시스템이다. 음악 프로듀서들이 스튜디오에서 녹음 후 꼭 레인지로버에서 들어본다는 소문이 있다. 진짜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니터링 포커스인 스튜디오 스피커에서 곡을 만들고 대중들이 들을 때의 톤을 파악하기 위해 차에서 꼭 확인한다고 한다. 그리고 그 차는 대부분 레인지로버라는 이야기다. 스피커 자체도 좋고 음질을 결정지을 방음도 잘 되어 있다. 중저음은 먹먹하지 않고 묵직하다. 하이톤은 귀가 따갑지 않고 선명하고 깔끔하다. 그 때문에 장르를 가리지 않는다. 난 주로 록을 듣는데 악기 소리를 분리하는 실력이 우수했고 보컬이 연주에 묻히지 않았다. 창문을 살짝 열고 배기 사운드와 함께 음악을 감상하는 순간을 위해 이 차를 탄다.
정말 마음에 드는 녀석이다. 라이벌인 고성능 SUV들은 죄다 터보 차인 점에서부터 이 SVR은 부각된다. 압도적인 소리를 들려준다. 이런 소리는 이제 레인지로버에서도 마지막이 될지도 모른다. 청담동에 예쁜 카페를 향할 때 도산대로에서 존재감을 드러낼 수 있다. 그리고 하얏트 호텔에서 밥을 먹는다면 범퍼 신경 쓰지 말고 로비 쪽으로 박력 있게 내려가도 된다. 하차할 때는 할리데이비슨 소리가 BGM으로 깔린다. 앞에서 일행을 기다리고 있는 아가씨들의 달콤한 시선을 받을 수 있다. 여자들은 레인지로버를 좋아하고 이런 소리가 나는 레인지로버는 처음 보니까. 이 정도면 상품성이 높은 차다. 글 | 안진욱   사진 | 최재혁

SPECIFICATION
길이×너비×높이  4890×1985×1780mm
휠베이스  2925mm  |  엔진형식  V8 슈퍼차저, 가솔린
배기량 ​​​5000cc  |  최고출력  ​​575ps
최대토크  71.4kg·m  |  변속기  8단 자동
구동방식 ​​AWD  |  가격  1억7947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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