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운드 플레이어, 포르쉐 타이칸 터보 크로스 투리스모

  • 기사입력 2022.01.30 08:43
  • 기자명 모터매거진

부족한 게 없다. 충전하는 귀찮음만 이겨 낸다면 완벽한 차다. 달리는 재미를 보장하고 거창한 취미생활을 더욱 진하게 즐길 수 있다. 

전기차도 포르쉐가 만들면 다르다는 것을 타이칸을 통해 보여줬다. 전기차 장점과 포르쉐 특유의 주행 질감은 고스란히 품고 있는 게 타이칸이다. 최근 타이칸의 파생 모델 크로스 투리스모가 국내 출시했다. 타이칸 보다 조금 더 거친 길을 갈 수 있고 트렁크 공간이 더 확보된 모델이다. 실제로 보면 정말 멋있다. 개인적으로 타이칸보다 더 마음에 든다. 넙데데하고 투어링 타입이라 차가 더 길어 보인다. 또한 차고가 생각보다 높지 않아 전투적으로 보인다. 오프로드 주행에 대비해 휠 아치 주변을 플라스틱으로 마감해 놨는데 추후 펜더 익스텐션 키트를 달기 좋을 듯하다. 휠 하우스를 가득 채우고 있는 21인치 휠은 여태 본 휠 중 최고의 디자인이다. 단조인지 주조인지는 모르겠지만 어떻게 이러한 형상을 뽑아냈는지 감탄이 절로 나온다. 이 휠 하나로 타이칸 크로스 투리스모를 더욱 콘셉트카처럼 보이게 한다.

추우니 외관은 그만 훑어보고 두툼한 도어를 열고 실내로 들어간다. 포르쉐가 지향하는 대칭형 센터페시아로 운전자에게 안정감을 주고 지저분한 버튼들은 모조리 터치스크린 안에 담았다. 인터페이스가 쉽게 꾸며져 있어 처음 타더라도 쉽게 조작할 수 있다. 가끔 터치 반응이 둔할 때도 있는 것은 아쉬운 부분. 스티어링 휠은 모든 포르쉐에 사용되는 그것이다. 직경이 작고 손에 ‘착’ 하고 감긴다. 세미 버킷 타입의 시트는 단단한 편이라 소파처럼 안기는 느낌을 선호하는 이들은 불평을 할 것 같다. 난 장거리 주행에는 이 정도 쿠션감이 좋다고 생각한다. 사이드 볼스터도 꽤 튀어나와 있어 코너에서 운전자를 잘 지탱해 준다.
크로스 투리스모의 매력은 뒷자리다. 타이칸과 비교해 레그룸은 같지만 헤드룸이 훨씬 여유롭다. 47mm 정도 늘어났다고 한다. 건장한 남성이 타이칸에서 고개를 옆으로 살짝 꺾거나 거만한 자세로 앉아야 했다면 크로스 투리스모에서는 올곧게 앉아도 된다. 트렁크 용량은 1200ℓ이며 리어 시트를 접을 수 있어 럭셔리한 차박도 가능하다. 시승차는 루프 글라스 옵션이 적용되어 달을 보며 잠들 수 있다. 전기차인 만큼 배터리만 있다면 이런 겨울에도 따뜻하게 차에서 잘 수 있다.
해치에 터보 배지가 달려 있다. 포르쉐에서 터보는 곧 최상위 트림을 말한다. 최고출력 625마력(오버부스트 680마력), 최대토크 86.7kg·m의 괴력을 자랑하고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3.3초다. 구동손실률이 거의 없는 전기차에 사륜구동 시스템까지 탑재되어 있으니 이러한 로켓 스타트가 가능하다. 최고시속은 250km이며 주행가능거리는 274km다. 생각보다 짧지만 레인지 모드로 소극적으로 운전하면 380km 정도 주행 가능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포르쉐 전용 충전소가 있다. 집 근처 이마트 성수점에 초고속 충전기가 있는데 타이칸을 타면 항상 이곳에 온다. 배터리가 30% 남아 있는 상태에서 약 30분 급속 충전하면 95%까지 채워져 있었다. 마트에서 과자 몇 봉지와 음료수 사고 나오기 딱인 시간이었다.
잡설은 그만하고 배터리도 채워졌으니 본격적으로 달려보자. 드라이브 모드 마다의 특성을 파악하기 귀찮으니 그냥 스포츠 플러스에 놓고 가속 페달을 짓밟는다. 이전에 타본 타이칸 터보 S와 달리 가속페달의 답력도 무겁고 차도 묵직하게 전진한다. 타이칸 터보 S를 탄 지 꽤 시간이 흘렀고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다르다. 터보 뒤에 S가 붙지 않아서일까? 아니면 크로스 투리스모라는 장르 때문일까? 아마도 두 조건 모두 때문일 것이다. 이 차로 오프로드를 다닐 오너는 거의 없겠지만 포르쉐는 그 상황에 대비해야 한다. 스포츠카와 같은 액셀 리스폰스는 비포장길에 부적합하다고 결론 지었을 것이고 터보 S와 출력 이외에도 차이를 두어야 했을 것이다. 4S 트림만 타 봐도 엄청 빠르기 때문에 몸으로 느껴지는 정도에 차이를 뒀을 것 같다. 그렇다고 반응이 답답한 게 아니고 대배기량 플래그십 세단의 ‘가속결’과 비슷하다. 촐랑대지 않고 깔끔하게 끝까지 밀어주는 느낌!
파워가 파워인 만큼 도로에서 적수를 만나긴 힘들다. 물론 초고속 영역에서는 고성능 가솔린 차에게 비비긴 힘들지만 규정 속도 내에서 달리는 착한 우리들에겐 그런 상황은 펼쳐지지 않는다. 고속도로에 차를 올려봐도 파워가 죽지 않는다. 리어 액슬에 2단 변속기(프런트는 1단)가 달려 있어 후반에도 저속처럼 매콤한 가속력을 보여준다. 보통의 전기차가 시내에서 자신만만하다 고속도로만 올라가면 어깨가 처지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역시 포르쉐는 포르쉐다. 고속안정감 역시 환상적이다. 일단 풍절음을 완벽에 가깝게 차단했다. 차체부터 공기저항계수가 극단적으로 낮은데 방음까지 꼼꼼하게 했다. 평화로운 캐빈룸에서 비현실적인 가속을 즐기며 고속 크루징을 할 수 있다. 고요한 차 안에서 음악과 우주선 사운드를 즐기며 달릴 수 있다. 시승차에는 부메스터 오디오 시스템이 달려 있었는데 보스보다 더 좋다고 느껴지진 않았다. 록과 힙합을 주로 듣는다면 보스 오디오가 더 제격이다. 클래식이나 발라드 같은 장르에 어울리는 가볍고 맑은 톤이다. 이퀄라이징에서 베이스를 최대한으로 올려도 별 변화가 없다. 센 음악을 즐긴다면 보스다.
코너도 잠깐 타 봤다. 공차중량이 2335kg에 윈터 타이어가 끼워져 있으며 노면 온도는 겨우 영상 수준이다. 아무리 포르쉐라지만 와인딩에 부적합한 조건이다. 안전한 범위 내에서 설렁설렁 탔다. 그런데 위에 언급한 불리한 조건들이 머릿속에서 잊히게 하는 움직임을 보여준다. 기본적으로 언더스티어 성향을 보이지만 이상적인 라인을 벗어나는 범위가 그리 크지 않다. 스티어링 피드백은 911 혹은 718 시리즈와 똑같다. 프로 드라이버가 타면 차이를 느낄진 몰라도 아마추어 드라이버들에게 똑같은 피드백이다. 91% 솔직한 피드백! 전달하지 않은 나머지 9%는 운전자가 알 필요 없는 정보다.
리어 엑슬 스티어링 시스템이 장착되어 있는데 이게 진짜 물건이다. 스티어링 휠 명령에 따라 움직이는 박자가 자연스럽다. 다른 브랜드에서 이 옵션은 이질감이 들 때가 있었는데 타이칸 크로스 투리스모의 것은 완벽한 튜닝이 되어 있다. 댐퍼 스트로크가 짧지도 않고 에어스프링의 압도 강하지 않음에도 스티어링 휠을 이리저리 휘저어 보면 좌우 롤링 현상이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 휠 베이스를 자유자재로 늘였다 줄였다 해준다. 짧은 코너에서 민첩하게 안으로 파고들며 복합코너에서 섀시가 엉키지 않고 자연스레 빠져나온다. 코너를 쉽게 정복하게 도와주는 장치지만 실사용 영역에서도 유용하다. U턴을 하거나 주차할 때 짧은 회전반경으로 편리하다. 만약 주변에 타이칸 크로스 투리스모를 산다면 이 옵션을 꼭 넣으라고 권해야 한다.
시승을 마쳤다. 난 전기차를 그리 좋아하지 않는다. 전형적인 ‘꼰대’ 같은 자동차 마니아 중 하나다. 포르쉐를 좋아하지만 타이칸의 등장은 그리 달갑지 않았다. 내가 911을 사려면 한참 남았는데 살 수 있는 여건이 되었을 때 수평대향 엔진의 911이 없을까 괜히 걱정된다. 여하튼 전기차를 선호하지 않는다. 허나 이런 나의 생각을 바꿔 버리는 게 타이칸 크로스 투리스모다. 사실 내연기관이든 전기차든 재미있으면 장땡인데 이 녀석은 재미있다. 그리고 편하고 실용성까지 갖췄다. 충전 환경만 좋다면 무조건 가지고 있어야 할 것 같은 차다. 개인 차고에 충전 시스템을 갖추고 타이칸 크로스 투리스모 옆에 911 GT3가 놓여 있는 꿈을 꾼다.
글 | 안진욱   사진 | 최재혁SPECIFICATION
길이×너비×높이  4975×1965×1410mm  |  휠베이스  2904mm  |  엔진형식  ​​전기모터  |  최고출력  ​​625ps
최대토크  86.5kg·m  |  변속기  ​​​2단 자동  |  구동방식  ​​AWD  |  주행가능거리  274km​  |  가격  ​​​​​​​​​ 2억5080만원(시승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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