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빛 화살, 페라리 SF90 스파이더

  • 기사입력 2022.01.19 09:33
  • 기자명 모터매거진

이 세상 자동차가 아니다. 지금 당장 매장에서 살 수 있는 차 중에서 가장 빠르다. 네 자리의 출력을 가질 수 있는 프라이드. 라페라리의 실루엣이 느껴지고 그와 대적할 만큼 강하다. 거기에 오픈에어링까지…. '

지금 비가 온다. 기분이 울적해진다. 평소 비를 좋아하지만 다음 날 촬영 있기에 날씨에 민감해졌다. 보통의 촬영이라면 날씨에 크게 영향 받지않지만 내일은 다르다. 페라리를 찍어야 하니까. 그것도 그냥 페라리가 아니라 1000마력 페라리다. 거기에 오픈까지 가능한 SF90 스파이더다. 이전에 트랙에서 SF90 스트라달레를 탔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1000마력을 경험했다. 네 자리의 파워는 달라도 달랐다. 전기차의 순발력과 초고성능 내연기관이 나를 다른 공간으로 이동시켰다. 미천한 운전실력이지만 그나마 레이싱 트랙이라 부담감이 덜했는데 이번에는 공도에서 탄다. 설레는 마음 반, 두려운 마음 반이었다. 허나 눈 비슷한 비가 내리니 두려움이 더욱 커졌다.

촬영 날이 밝았다. 다행히 비가 그쳤다. 창밖으로 도로 상태를 확인했다. 군데군데 젖어 있는 곳이 있지만 전반적으로 괜찮아 보였다. 그래도 오늘 하루 ‘조심 또 조심’이라고 다짐하며 페라리 SF90 스파이더를 만나러 갔다. 반포 전시장 앞에 위풍당당하게 서 있는 SF90 스파이더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실버 페인트를 바르고 코도 뾰족하게 생겨 완전한 실버 애로우다. 원래 실버 애로우는 독일 출신이지만 현시대 실버 애로우는 이제 이탈리아 출신이 담당한다. 낮고 넙데데하고 날렵하다. 공기저항을 최소화하고 다운포스를 생성하기 위해 모든 패널이 만들어졌다. 이유 없이 그냥 미적 지수를 위한 파츠는 하나도 없다. 시각 전문가가 아니라 이러쿵저러쿵할 순 없고 그냥 일반인 입장에서 봤을 때 7억원처럼 보인다. 촬영 후 사진을 체크하면서 옆 라인이 라페라리와 흡사한 것을 발견했다. SF90 스파이더는 슈퍼카를 넘어 하이퍼카 포스를 보여준다.
두툼한 도어를 열고 콕핏에 앉는다. 여느 페라리와 다른 센터페시아 레이아웃이다. 완벽하게 운전자 중심으로 설계되었고 미래에서 온 차답게 물리 버튼은 모조리 숨겨뒀다. 공부하지 않으면 적응하는 데 꽤 오래 걸린다. 홍보팀에서 전해준 매뉴얼 영상을 보고 오지 않은 내가 죄인이다. 계기반은 16인치 커브드 디스플레인데 선명하고 정보도 쉽게 알려준다. 스티어링 휠은 여전히 근사하고 크기와 두께 모두 만족스럽다. 페라리답게 스티어링 휠에서 대부분의 기능을 이용할 수 있다. 드라이빙 모드와 방향지시등, 그리고 와이퍼를 제외하면 터치로 기능을 활성화해야 한다. 페라리의 상징 붉은색 엔진스타트 버튼 역시 터치로 바뀌었다. 기어 레버는 과거 게이트 타입의 수동 변속기처럼 완성했다. 유격 없는 조작감이 일품이다.
이제 그만 보고 만지는 것도 멈추고 출발하자. 나에겐 시간이 없다. 앞머리를 올리고 주차장에서 빠져나온다. 프런트 오버행이 길어 걱정했는데 리프팅 기능으로 웬만한 과속방지턱과 주차장 입구는 무난하게 지나간다. 우선 전기모터만으로 시내를 빠져나오기로 한다. 프런트 액슬에 전기모터가 두 개 뒤쪽에 한 개가 달려 있다. E 드라이브 모드에서는 앞쪽 모터의 힘으로만 전진한다. 즉 전륜구동인 셈이다. 페라리 배지를 달고 있는 전륜구동이라···. 그것도 전기 힘으로만 나아간다. 완전 충전하면 최대 25km 이동할 수 있고 시속 135km로 달릴 수도 있다. 얌전하게 동네를 빠져나오거나 이렇게 막히는 시내에서 딱 맞는 드라이빙 모드다. 전기모터의 출력도 짱짱해 가속도 준수하다.
지겨웠던 올림픽대로의 끝이 보이고 교통량은 한적해졌다. 마네티노 스위치를 돌려 하이브리드 모드를 넘어 퍼포먼스 모드로 설정하니 최고출력 780마력, 최대토크 81.6kg·m의 V8 파워 유닛이 엄청난 배기 사운드와 함께 깨어난다. 이 과정이 매끄럽다. 왼손으로 패들 시프트를 튕기고 가속 페달을 지그시 밟는다. 트랙에서 타던 1000마력과 다르다. 더 빠르다. 상대적으로 다른 차들이 정지해 있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 나를 제외한 모든 차들이 후진하고 나만 앞으로 달린다. 말도 안 되는 가속력이다. 게다가 오늘처럼 노면 온도가 높지 않은 상황에서도 안정적인 트랙션을 보여준다. 공도에서 열을 올리기 쉽지 않은 미쉐린 파일럿 스포츠 컵 2 타이어인데 땅을 움켜쥐고 있다.
이러한 트랙션은 사륜구동 시스템의 덕도 있다. 수치상 프런트 액슬 쪽 구동력이 리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긴 하지만 이 차는 앞이 뒤보다 가볍다. 비율로 따지면 무게 대비 적은 구동력이긴 하지만 없는 것보다 훨씬 낫다. 게다가 섀시 밸런스를 잘 잡고 댐퍼압과 스프링 레이트를 기가 막히게 튜닝했다. 1000마력짜리 하이퍼카라서 마냥 딱딱한 승차감일 줄 알았는데 일상주행에 전혀 피로하지 않다. 운전자가 처한 상황에 맞게끔 하체가 유기적으로 변하는 것 같다. 극적인 스티어링에는 좌우 롤링을 허락하지도 않으며 고속 안정감도 출중하다. 속도가 올라갈수록 차체가 노면 깔려 스로틀을 더 열 용기가 생긴다. 수준 높은 에어로다이내믹 실력을 갖추고 있는 페라리다. 정말이지 뭐 이런 차가 있는가 싶다.
이미 속도가 꽤 높지만 힘은 남아돈다. 기어비만 허락하면 시속 400km도 돌파할 기세다. 기왕 기어비 이야기가 나온 김에 변속기를 짚고 넘어가자. 8단 듀얼 클러치 변속기가 탑재되었다. 변속 속도는 레이싱 게임처럼 빠르다. 원하는 타임에 박자를 맞춰 기어를 바꿔준다. 드라이브 모드에 따라 고의적인 변속 충격으로 흥분시키는 능력도 있으며 다운 시프트에도 적극적이다. 터보 엔진이지만 꽤 높은 회전수까지 사용 가능하기에 이러한 변속기는 필수다. 패들 시프트의 조작감은 달콤하다. 칼럼에 마운트 되어 있는 페라리의 것을 사용하다 스티어링 휠에 달린 작은 패들 시프트를 사용하면 밋밋하다. ‘철컹’ 해야 큰일을 하지 ‘딸깍’ 하면 작은 일밖에 할 수 없다. 이런 하나하나가 모여 페라리의 감성이 된다.    

코너링 성향은 공도에서 평하기 어렵다. 워낙 한곗값이 높아 미래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다. 다만 1000마력이라는 수치에 겁먹지 않으면 안정적으로 코너를 돌 수 있다. 앞서 말했듯이 트랙션이 좋기에 일반인 수준에서의 진입 속도로는 여유롭게 코너를 정복한다. 스티어링 성향은 언더스티어를 살짝 가미한 뉴트럴이다. 가속 페달의 전개에 따라 라인의 크기가 좌우된다. 테크니컬 코너에서는 한쪽으로 쏠린 중량이 반대로 넘기는 리듬이 자연스럽다. 보통의 페라리와 비슷하지만 그 템포가 조금 더 빠르다. 오픈톱 모델이지만 다른 페라리보다 차체 비틀림 강성이 강해 이러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 게다가 하드웨어 세팅이 훌륭하고 토크 벡터링 같은 잔 기교까지 부렸기 때문이다.  

직선 구간에서 활처럼 쏘고 짧은 코너에서 스티어링 휠을 마음껏 돌릴 수 있는 것은 브레이크 시스템에 대한 믿음에서 시작된다. 섀시와 출력을 다스리기에 충분한 브레이크 퍼포먼스다. 노즈다이브와 브레이크스티어를 억제한 기본기가 눈에 띈다. 고속에서 강한 브레이크가 연거푸 들어가도 쉽사리 지치지 않으며 코너를 돌면서 차체가 안으로 말리지 않는 점도 칭찬한다. 브레이크 페달의 답력은 살짝 무거운 편이며 스트로크도 짧다. 레이스카 브레이킹 필링을 일상 주행에서도 크게 불편하지 않은 선에서 조율을 잘했다.

촬영과 시승 모두 끝났다. 아쉽게도 너무 추워 뚜껑을 열고 달려 보지 못했다. 그래도 정보는 줘야 하니 읊어 보겠다. 기존 하드톱 대비 약 40kg 가볍고 주행 중에도 14초면 변신할 수 있으며 오픈 시 리어 윈도가 윈드 디플렉터 역할을 한다. 이번에 SF90 스파이더를 타면서 리어 윈도는 열어봤다. 박력 터지는 배기 사운드를 생생하게 즐기게 해주는 소중한 아이템이다. 추운 날씨에 뚜껑도 못 열고 시원하게 달려보지는 못했지만 SF90 스파이더의 매력은 확실했다. 1000마력으로 오픈에어링이 가능하다는 식상한 말은 하고 싶지 않다. 타는 내내 느낀 바다. 차를 사회적 위치로 보는 이들이 있다. 속물이라 할 수도 있지만 나도 그중 하나다. 그리고 그 차를 나누는 기준은 대개 브랜드 밸류와 찻값이다. 대개비싼 차는 출력이 높다. SF90 스파이더는 브랜드 벨류는 이야기할 필요 없고 프라이스 택에 7억이라 적혀 있다. 게다가 출력은 1000마력이다. 이런 차를 가지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는 차다.
글 | 안진욱   사진 | 최재혁

SPECIFICATION
길이×너비×높이  4704×1973×1191mm
휠베이스  2649mm
엔진형식  V8 터보+전기모터, 가솔린
배기량 ​​​3990cc  |  최고출력  ​​1000ps
최대토크  81.6kg·m(내연기관)
변속기  8단 듀얼 클러치
구동방식 ​​AWD  |  가격  6억950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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