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 본드가 되고 싶나? 애스턴 마틴 DB11 V8

  • 기사입력 2022.01.05 00:37
  • 기자명 모터매거진

배기량에 집착하지 않는다면, 아주 근사한 스포츠카를 경험할 수 있다. 더 가볍게 그리고 더 날쌘 감각으로 달릴 수 있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실용적인 감각을 갖게 된 영국의 스페셜 에이전트, 007처럼 말이다.

영국의 에이전트, 007을 좋아하는가?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007의 무기에 대해 논해야 한다. 과연 무엇일까? 첨단 기능을 지닌 근사한 자동차? 사람들을 홀리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여성? 임무 때마다 바꿔서 드는 무기?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필자는 007의 상징으로 소형 권총인 발터(Walther) PPK를 꼽고 싶다. 소설에서는 007이 베레타를 먼저 사용해서 조금 늦게 등장하지만, 영화에서는 처음부터 등장하면서 007이 시그니처 모델이 되었다.

애스턴마틴 DB11이 소형차도 아닌데, 왜 소형 권총을 언급하는지 궁금한가? 이 모델은 이전에 본지에 등장했던 DB11과 다르기 때문이다. 그때는 12기통 엔진을 탑재한 모델이었고 지금은 8기통 엔진을 탑재한다. 그만큼 앞부분이 가벼워서 경쾌한 움직임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다르게 기대되는 것이 있다. 영국 출신 스포츠카는 운전하는 사람과의 교감을 중시한다는 사실이다. 운전자의 실력을 믿고, 그 안에서 최선의 성능을 내도록 해 준다.

그 즐거움을 엔진이 바뀐 이 DB11에서도 그대로 느낄 수 있을지, 그것이 관건이다. 그러고 보니 DB11과 함께할 줄 알았으면 007처럼 슈트를 입고 올 것을 그랬다. 스포츠카를 운전하는 것이기에 편안한 캐주얼을 입긴 했지만, 특히 이 차만큼 브리티시 스타일 슈트가 잘 어울리는 모델도 없을 것이다. 기왕이면 권총이나 폭탄 대신 사용하는 시계도 있으면 좋겠지만, 옷매무새를 다듬고 마음만은 007이 되어보도록 하자.
매끄러운 차체에 담은 공기역학
DB11은 고속 주행을 위해 공기역학을 충분히 고려한 차체를 갖고 있지만, 돌출된 부분이 잘 보이지 않는다. 카나드 또는 에어댐을 겉으로 화려하게 내놓은 모델들과는 다르다. 앞 범퍼 하단이 살짝 돌출되고 사이드 스커트가 조금 날카롭게 다듬어졌지만, 이 정도는 다른 모델에서도 볼 수 있는 디테일이다. 심지어 후면에서도 디퓨저 같은 건 찾아보기 힘들다. 별도로 돌출된 리어 윙이 있는 것도 아니기에, 고성능 모델이라고 인식하기 힘들지도 모른다.

잘 보면 공기역학을 위한 부분은 모두 차체에 자연스럽게 숨겨놓았다. 앞바퀴부터 시작해 도어까지 펜더를 두텁게 가로지르는 에어 벤트는 주행 중 앞부분을 지면에 차분하게 누르기 위한 거대한 프런트 윙의 역할을 한다. 보닛을 열어보면 그것을 제대로 알 수 있는데, DB11을 소유한 운전자만이 알 수 있는 디테일이다. 잠시 즐기는 정도라면 구태여 보닛을 열어볼 일은 없을 테니 말이다. 한바탕 달리고 나서는 꼭 보닛을 열어 구석구석 닦아줘야 하지만, 그것 역시 하나의 재미다.
리어 윙의 역할을 하는 부분도 자연스럽게 숨어있다. C필러 측면에 에어 인테이크가 있는데, 이쪽으로 들어간 공기가 차체를 통과한 후 트렁크 상단으로 배출된다. 그 결과 주행 중 자연스럽게 뒷부분을 지면에 누르게 된다. 그렇게까지 공기역학에 관여하는 부분들을 차체 내에 숨긴 결과, 애스턴마틴의 상징인 특이한 형태의 그릴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조약돌같이 매끈한 차체가 만들어졌다. 가히 디자인의 승리라고 봐도 좋을 법하다.
실내는 스포츠카답게 몸에 딱 맞는다고 느껴진다. 여유가 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일반 승용차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코너를 공략해야 하는 스포츠카에게는 이것이 더 맞다. 여유가 있으면 몸은 이리저리 흔들릴 것이고, 정확한 조작에 있어 오히려 방해만 될 것이니 말이다. 센터 터널이 생각보다 굵은데, 이 역시 코너에서 오른발을 지지하고 정확한 가속 동작을 하는 데 도움이 되는 부분이다. 허투루 만든 곳은 없는 셈이다.

아마도 에어컨이나 오디오 조작은 조금 힘들 것이다. 조그 다이얼 등 벤츠의 조작체계를 가져오긴 했지만 직관적이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DB11은 달리기 위한 스포츠카이고 이를 위한 변속 버튼, 스티어링 휠, 패들시프트, 주행모드 조작 버튼은 직관적으로 손으로 잡거나 누를 수 있다. 계기판도 그것을 위해 다듬어져 있고, 가운데 있는 거대한 원을 통해 엔진 회전과 주행 속도를 직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다. 다른 곳으로 눈을 돌릴 시간은 거의 없는 셈이다.
TORQUE MASTER, V8!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이번에는 8기통 트윈 터보 엔진을 시험해 볼 차례다. 메르세데스 AMG 모델에도 탑재하는 M178 엔진이지만, AMG가 애스턴마틴을 위해 특별히 다듬어주었기에 회전의 질감이나 소리 등 성격은 전혀 다르게 느껴진다. 결정적인 차이는 AMG가 일반적으로 9단 변속기를 사용하는 것에 비해 DB11은 ZF의 8단 변속기를 사용한다는 것. 이로 인해 조금은 야생적이면서도 역동적인 가속 감각을 즐길 수 있다.

시동을 걸어보면, 우렁찬 엔진음과 배기음이 같이 들려온다. 12기통의 그것보다는 조금 낮은 톤이지만, 그래도 달리고 싶다는 마음에 불을 지피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그저 조용한 자동차를 원하는 이들에게는 소음에 불과하겠지만, 정말 달리는 자동차를 좋아하고 드라이브를 즐기는 것만으로 스트레스를 풀어낼 수 있는 자동차 마니아들에게는 이런 것들이 중요하다. 그래도 일단 시내에서는 조용하게 다녀야 하니, 엔진 회전을 높이지 않고 서서히 움직여 본다.
아마 이 시점에서 놀라는 운전자들도 있을 것이다. 12기통 버전과는 달리 엔진 회전을 조금만 써도 뒷바퀴로 전달되는 막강한 토크가 느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내에서도 굳이 엔진 회전을 높일 필요가 없지만, 조금 한적한 고속도로에 올라서서 오른발에 과감하게 힘을 주면 엉덩이를 강하게 때리는 힘이 느껴진다. 4인승 모델이니까 분명히 뒷바퀴는 시트보다 꽤 떨어져 있는데, 마치 2인승 모델을 탄 것 같이 때린다.

그 토크를 좀 더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은 고속도로가 아니라 구불구불한 산길이다. 그것도 내리막이 아니라 오르막이다. 요즘 많은 차들이 사용하고 있는 네 바퀴가 아니라 뒷바퀴에만 충실하게 토크를 전달하고 있는데도, 불안하다는 마음은 전혀 없다. 만약 차체가 조금 흔들리는 것 같다고 느껴진다면, 오히려 절대적인 주행 속도가 부족해서 그렇게 느껴질 가능성이 높다. 게다가 그 흔들림도 불안감으로 증폭되지 않는다.
엔진도 앞바퀴 안쪽으로 제대로 배치했고 차체의 균형도 더 좋게 느껴진다. 12기통보다 좀 더 가벼워진 앞부분은 경쾌한 주행 느낌을 전달하는 데 일조한다. 그래서 어느 정도 운전에 자신이 있다면, 약간의 흔들림 정도는 그냥 즐기면서 돌파할 수 있다. 자고로 영국의 스포츠카라는 것은 드라이빙 스쿨에서 교육을 제대로 받고 제대로 된 운전을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을 위해 만들어진다. 그 허들이 생각보다 높지도 않으니 큰 걱정을 할 필요는 없다.

엉덩이로 막강한 토크를 느꼈다면, 이제 코너에서 자연스럽게 꺾이는 스티어링을 느껴볼 차례다. 순수한 뒷바퀴굴림에 균형 좋은 차체가 있으니, 언더스티어라는 것을 좀처럼 느끼기 힘들다. 스티어링을 돌리는 느낌에 따라 앞바퀴가 거의 그대로 따라온다는 느낌으로, 생각보다 안쪽으로 말려 들어 간다는 느낌도 거의 없다. 만약 그렇게 느껴진다면, 스티어링을 아주 약간만 수정하면 된다. 그 균형을 맞추면서 스티어링을 좌우로 돌리는 것도 하나의 재미가 될 것이다.
조금만 더 익숙해지면, 코너에 진입한 후 생각보다 일찍 가속 페달에 발을 가져갈 수 있을 것이다. DB11은 그것을 자연스럽게 유도한다. 게다가 그렇게 해서 만약 한계를 넘는다 해도, 그래서 뒷바퀴가 조금 미끄러진다 해도 움직임을 고칠 시간과 마음의 여유를 준다. 범프를 만나면 조금 신경질적으로 반응하고 차체가 조금 뜨는 것도 같지만, 그것 역시 재미로 다가온다. 강력한 브레이크도 있으니 거칠 것은 없는 셈이다.

짜릿한 시간이 지나고 차에서 내려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무조건 큰 것이 좋다고 말하는 이들도 있고, GT에는 그것이 더 어울린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허나 조금 작아도 다른 재미를 느끼고 싶다면, 실용적으로 손쉽게 다룰 수 있는 무언가를 추구하고 싶다면, 8기통 버전에서 그것을 더 쉽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애스턴마틴은 DB11을 정말 좋게 만들었고, 8기통 모델에서는 더 직관적인 무언가와 막강한 토크를 느낄 수 있었다.
12기통과 8기통. 어떤 모델을 선택해도 후회는 없겠지만, 좀 더 다루기 쉬운 애스턴마틴이 필요하다면 8기통이 더 좋아 보인다. 007이 은밀하게 움직이기 위해 숨기기 좋은 작은 권총을 선택했던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스포츠카이지만 정장이 잘 어울리고 큰 소리를 내지 않은 채 시내를 손쉽게 통과할 수 있다는 점도 매력적이다. 이제 이 차를 부를 때는 007처럼 이렇게 말해야겠다. “DB11, V8 DB11입니다”라고 말이다.
글 | 유일한   사진 | 최재혁
SPECIFICATION
길이×너비×높이  4750×1950×1290mm
휠베이스  2805mm  |  엔진형식  V8 터보, 가솔린
배기량 ​​​3982cc  |  최고출력  ​​510ps
최대토크  68.8kg·m  |  변속기  8단 자동
구동방식  RWD  |  복합연비 -​
가격 ​​​3억190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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