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HOOT TO THRILL, 포르쉐 911 GT3

  • 기사입력 2021.12.26 08:24
  • 기자명 모터매거진

진짜 마지막일 수도 있다. 마이너체인지를 거치면 이러한 구성은 영원히 없을지도 모른다. 마지막일 것 같은 순간을 꿈이 아닌 현실에서 함께했다. 

내 뒤에 검정색 카이엔이 엉덩이를 박을 정도로 밀착해 있다. 룸미러를 통해 보니 스마트폰으로 촬영 중이다. 내가 셀럽이 아니라 내가 타고 있는 녀석이 셀럽이다. 따끈따끈한 신상 포르쉐 911 GT3. 촬영 기간 3일 동안 도로 위를 다니면서 수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받았다. 스머프 색상도 튀지만 거대한 날개와 박력 터지는 배기 사운드는 눈과 귀를 사로잡기에 충분하다. 야심한 밤에 삼청동을 지나다 음주단속 중인 경찰 아저씨(동생일지도 모른다)를 만났다. 음주 테스트 후 새로 나온 911 GT3 처음 본다고, 그리고 정말 멋있다고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운다. 물론 내 차는 아니지만 기분 좋다. 트랙에서 신나게 타라고 만든 차지만 이러한 에피소드가 생기는 거 보니 공도에서 천천히 타는 재미도 있다.

콘크리트 지지층을 둔 특별한 차이기에 슈팅카로 기왕이면 급에 맞게 991.1 카레라 S를 불렀다. 촬영 전 두 대를 나란히 세워놓고 보니 크기 차이가 나진 않는다. 따로 보면 992가 훨씬 크게 보였는데 다행히 실차 사이즈는 비슷한 듯하다. 스피드 마니아는 차 크기에 민감하다. 세대 변경을 하면서 덩치가 커져 버리면 반감도 커진다. 여하튼 이전 세대인 991 GT3는 아니지만 그래도 마지막 자연흡기 카레라 S에서 911 GT3의 질주를 카메라에 담았다. 약 2000rpm 정도 더 사용하는 911 GT3가 고음 파트를, 카레라 S가 중저음 파트를 맡아 환상적인 오케스트라를 완성하고 연주를 시작한다. 촬영을 진행하면서 두 대가 함께 달리는 것만으로도 장관이다. 911 시리즈의 최대 장점은 신형이 나와도 구형의 빛이 어두워지지 않는다는 것. 낡고 오래된 차가 되는 게 아니라 진한 클래식이다.
식은땀이 나고 이런 나를 발견한 911 GT3는 당황한다. 섀시가 너무 강해 우리나라 도로에는 맞지 않는 세팅이며 실력 있는 운전자만을 허락한다. 댐퍼 스트로크는 몇 년 전 탔던 991.1 GT3 RS 수준 정도로 짧다. 내가 타기엔 너무나도 버겁다. 세미 슬릭 타이어의 그립은 상상 이상으로 강해 횡적인 움직임에 이질감이 느껴지고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 시스템은 공도에서 열을 올리기가 어렵다. 트랙에 가서 혹사해도 디스크와 패드에 열이 차 브레이크 밀리는 일은 절대 없을 것 같다. 생각해 보니 봄에 탔던 911 터보 S에도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가 달려있었는데 냉간 상태가 오래가지 않았다. 또한 페달의 답력도 부드럽고 스트로크도 보통 차처럼 길었다. 허나 911 GT3는 레이스카처럼 답력이 강하고 스트로크도 극단적으로 짧다. 이는 미세한 브레이킹 컨트롤과 양발 운전을 할 때 좋지만 일반인들이 도로에서 타기엔 힘들다. 그냥 카레라가 훨씬 공도에서 편하고 빠르게 다닐 수 있다.
기대했던 차지만 공도에 부적합한 차라고 단정 지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하루 탔을 때다. 이틀째 탈 때부터 뭔가 다르다. 확실히 더 편해지고 노면을 튕기는 느낌도 덜하다. 어느새 적응이 조금 되었다. 어제처럼 긴장하지 않으니 살짝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드라이빙 모드는 스포츠에 두고 댐퍼 감쇠력은 풀어 놓고 타는 게 가장 마음에 들었다. 실제 가속력은 터보 차만큼 빠르지 않지만 결은 훨씬 더 고급이다. 태코미터 칼자루 끝이 9를 가리킬 때까지 숨을 죽이게 된다. 과급기 도움 없이 6기통 수평대향 4.0ℓ 엔진은 510마력을 토해내며 비명 지른다. AC/DC 브라이언 존슨의 고음보다 깔끔하지만 흥분지수는 같다. 터널을 만나면 그렇게 반가울 수 없다. 흔히 페라리의 하이톤이 과거 F1 머신을 연상케 하는데 911 GT3도 그러하다.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 차를 타면 음악부터 켜는 습관은 911 GT3에서 사라졌다.
변속기는 포르쉐가 자랑하는 듀얼 클러치 유닛이다. 노멀 모델과 다른 점이라면 기어가 하나 빠진 7단이다. 어차피 항속 기어가 빠졌기에 기어비에 크게 차이가 날까 했지만 터보 엔진보다 엔진 회전수를 많이 사용하는 자연흡기 엔진이기에 기어비를 더욱 타이트하게 세팅했다. 고속도로에서 3단에 놓으면 배기 사운드 음색이 가장 아름답고 토크도 두툼해 선행 차를 추월하기도 편하다. 변속 속도는 보통의 PDK 보다 빠르고 다음 기어를 물릴 때 절도 있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3.4초다. 이 스코어를 따기 위해서는 트랙션도 한몫했지만 이 변속기의 공이 가장 크다. 다운시프트에도 적극적이다. 6000rpm 정도의 고회전을 사용하다 기어를 내려도 곧바로 내려간다. 내구성이 걱정되긴 하지만 포르쉐니까 어련히 잘했겠지.
마력으로 밀어 부치는 맛! 정말 오랜만이다. 아니, 자연흡기 차를 많이 타봤지만 이런 맛은 처음이다. 고회전 영역으로 갈수록 크랭크샤프트에 온몸이 빨려 들어가고 차는 예민해지고 힘이 넘친다. 때문에 스포츠 주행을 위해서는 고회전 영역에서 머물게 하는 집중력이 필요하다. 코너링 머신이지만 고속도로에서 일직선으로 달려도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공력 성능에 신경을 많이 써 둔 덕에 안정적인 고속 크루징이 가능하다. 프런트 범퍼에서 후드로 이어지는 에어 채널과 스플리터로 앞을 눌러주고 뒤는 날개가 다운포스를 만들어준다. 이 윙은 조절식으로 너트를 풀어 4단계의 높이로 설정할 수 있다. 고속 세팅 혹은 다운포스 세팅 중에서 고를 수 있다. 4개의 너트 체결 부위의 위치가 굉장히 촘촘한데 이 약간의 위치가 911 GT3 퍼포먼스의 향을 결정한다. 다른 브랜드라면 그냥 ‘보여주기’라고 생각될 텐데 포르쉐는 이유 없는 짓은 절대 하지 않는다.  

코너 실력은 말할 수 없다. 공도에서 이러쿵저러쿵할 상대가 아니다. 911 GT3의 코너링 실력을 알려면 이 녀석과 함께 서울에서 한 달, 인제에서도 한 달 동안 살아야 알 수 있다. 누군가 911 GT3를 공도에서 탄 후, 코너링이 뉴트럴스티어니 뭐니 한다면 그는 운전의 신이다. 난 모르겠다. 그냥 느낀 점이라면 앞머리가 가볍게 움직이는 건데 이건 카레라를 타도 이렇다. 박스터도 그렇다. 가벼운 스티어링 감도와 솔직한 피드백은 포르쉐 배지가 붙어 있다면 무조건이다. 차가 무서워 산길 와인딩을 시도조차 하지 못했다. 단지 서울 시내에 있는 램프에서 살짝 맛만 봤는데 훌륭하다. 오차 없이 정확하다. 머릿속에 떠올린 라인을 현실에서 표현한다. BMW M카를 타고 코너를 만나면 오버 파워로 뒤를 날리고 카운터를 치면서 가속 페달에 힘을 줘 드리프트 하는 상상을 하는데 이 녀석은 그런 상상을 하기도 싫다. 이렇게 그립이 쫀쫀한 차는 배신을 무섭게 하니깐.
좌우롤링 피칭 이런 거 없다. 프런트 액슬을 차체와 더블 위시본으로 묶으면서 댐퍼가 수축되거나 늘어나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노면을 움켜쥐고 있다. 급격한 스티어링에도 자세가 무너지지 않으며 섀시가 엉키지도 않는다. 한쪽으로 쏠린 중량을 반대로 넘기는 리듬도 빠르다. 롤 센터가 잘 잡혀있고 차체 강성이 강해 거동이 무너지지 않는다. 앞서 브레이크 시스템에 대한 불만은 열이 살짝 오르기 시작하면 사랑스러운 모습으로 변한다. 우선 브레이크 파워가 섀시와 출력을 압도한다. 게다가 브레이크 페달의 답력이 무겁고 스트로크가 짧은 것은 일반 도로에서도 장점이 될 때가 있다. 911 GT3는 뒤가 무거운지라 브레이크를 걸어 앞에 하중을 걸어 줘야 할 때가 있는데 이때 비루한 운전 실력의 나도 섬세하게 제동량을 조정할 수 있다. 무결점 슈퍼카다.
슈퍼카? 911 GT3가 슈퍼카일까? 슈퍼카 기준은 정해져 있지 않지만 내 기준에서 911 GT3는 슈퍼카다. 우선 슈퍼카라 하면 아이 캐칭이 되야 한다. 세련된 외모의 911에 과격한 에어로파츠 및 스완넥 스포일러로 화려하고 전투적인 분위기가 압권이다. 휠과 휠하우스의 갭은 손가락 한 개가 겨우 들어가고 펜더와 휠이 딱 맞게 떨어져 휠 스페이서도 필요 없는 완벽한 자세를 연출하고 있다. 외모로 보자면 슈퍼카이고 감성은 슈퍼카를 넘어 레이스카다. 디퍼렌셜 소리를 들으면서 운전할 수 있는 양산차는 드물다. 포르쉐가 원가 절감을 위해 뒷좌석을 떼버리고 방음에 신경 쓰지 않아서가 아니라 날 것의 사운드를 즐기라는 고의다. 배기가스 규제가 까다로워졌음에도 이러한 차를 만들어 주는 포르쉐가 고맙다. 지금으로부터 22년 전인 996 GT3처럼 여전히 룸미러에 날개가 담겨 있고 어려운 노래를 잘 부르는 엔진을 품고 트랙 데이를 기다리는 911 GT3다.
글 | 안진욱   사진 | 최재혁

SPECIFICATION
길이×너비×높이  4575×1850×1290mm
휠베이스  2450mm  |  엔진형식  ​​수평대향 6기통, 가솔린
배기량 ​​​3996cc  |  최고출력  ​​510ps
최대토크  48.0kg·m  |  변속기  7단 듀얼 클러치
구동방식  RWD  |  복합연비  6.5km/ℓ​
가격  2억200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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