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동차를 오랫동안 탈 수 있을까

  • 기사입력 2021.12.08 16:17
  • 기자명 모터매거진

옆 나라에서는 여배우가 30년이 넘도록 한 대의 자동차만을 탔다고

해서 화제가 되고 있다. 그것을 보면서 부럽게 느껴지는 이유는, 한국에서는

이런 것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어떤 나라에 살고 있든지 간에 한 대의 자동차를 오랫동안 소유하고 즐기는 것은 꽤 어렵다. 자동차 자체에도 수명이 있으며, 자동차 제조사도 자동차를 계속 팔아야만

수익이 나기 때문에 ‘신차 시절의 성능을 계속 유지하는 자동차’는

정확히 말하면 그 어디에도 없다. 그러나 세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살기 마련이고, 한 대의 자동차를 20년 넘도록 혹은 평생 동안 갖고 있으면서 운전하는

경우도 보곤 한다.

일본의 여배우, 이토 카즈에(伊藤かずえ) 또한 그렇다. 오랜 기간 배우로 살아온 그녀는 최근에 다시 한 번

주목을 받게 됐는데, 30년이 넘도록 한 대의 자동차를 애용해 온 것이 드러나면서부터 그렇게 됐다. 그녀가 가진 자동차는 꽤 오래 전에 등장한 닛산의 고급 대형 세단, ‘시마’ 1세대 모델(FPY31)이다. 1988년에

출시된 시마는 스페인어로 ‘정상’을 의미하며, 일본의 맛을 가지면서도 전 세계에서 통하는 새로운 대형 자동차를 목표로 했다.

일본에서도 한 대의 자동차를 오래 사용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소유한

지 10년만 넘더라도 매년 차량검사를 받아야 하고 그 비용도 꽤 비싸다. 검사소에 따라 다르지만, 부품에 대한 트집을 잡아 ‘차량검사를 통과하기 힘드니 이 기회에 기존 자동차를 팔고 새로운 자동차로 넘어갈 것’을 제안하며 차량 판매 영업을 병행하는 곳도 있다. 그런 시점에서

스포츠카도 아닌 평범한 대형 세단을 오래 소유한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SNS의 화제에 닛산이 응하다

이토 카즈에가 소유한 닛산 시마는 우연한 기회에 화제가 됐다. 그녀가

차량 검사를 받으러 닛산 쇼룸에 갔을 때, 딜러가 이를 알아보고 ‘구매

30년을 축하한다’면서 꽃을 선물한 것이다. 그녀는 꽃과 자동차를 같이 찍어서 자신의 SNS에 올렸고, 곧 화제가 되었다. 사람들의 댓글이 잇달아 달렸고, ‘닛산이 직접 리스토어를 해 주어야 한다’는 의견도 많이 제시됐다. 그러다 보니 닛산 내에서도 ‘무언가 할 수 없는가’라는 의견이 오갔다.

리스토어는 생각보다 오래 걸렸다. 올해 4월 하순부터 시작되었는데, 닛산이 소유한 별도의 특장 회사인 ‘오텍 재팬’에서 리스토어를 담당했다.

계속 부품을 교체해왔고, 재도색도 한 번 진행했던 자동차이지만 분해를 할수록 고치거나 새로

만들어야 하는 부분들이 계속 나왔다. 뒷바퀴를 감싸는 펜더 부분에서 페인트 아래에 숨겨진 부식이 발견되어, 상당 부분을 잘라내고 복구와 용접을 진행하기도 했다. 나중에는 차체만

남을 정도로 분해가 진행됐다.

30년 이상 애용하면서 주행한 거리는 26만km 이상. 일본의

평균 주행거리가 1년에 1만km를 넘기기 힘들다는 것을 고려하면 적정한 거리이다. 엔진과 변속기

등 주행과 관련된 부분도 점검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이 모델에 전자제어 에어 서스펜션이 들어간다는

것이다. 주행 감각에 고집을 갖고 있기에 별도의 테스트 드라이브와 조정을 거쳤다. 게다가 오너가 시트와 안전벨트에 많은 신경을 썼기 때문에, 협력사에서

안전 평가를 받은 벨트를 별도로 받아왔다.

시마의 리스토어는 생각보다 더 오래 걸렸다. 4월 말부터 12월 초까지 소모했으니, 대략 8개월

정도를 소모한 셈이다. 아무리 닛산이 만들었다고 해도 회사 안에 부품이 모두 있는 것은 아니다. 생산을 그만둔 부품도 있고, 지금과는 다른 자동차 제작 방법이 들어가기도

한다. 닛산 사내와 리스토어를 담당한 오텍 재팬은 물론, 스미토모

전기 공업 등 수많은 협력 기업이 이 차에 부품을 공급했다. 돈도 많이 들어갔는데, 당시 판매했던 신차 가격 이상이 들어갔다고.

닛산에서 마케팅을 담당하는 ‘마츠무라 마코토(松村眞衣子)’는 “대부분의

자동차 회사는 평소 기술 혁신으로 사람들의 생활에 공헌하는 것을 생각하며, 최신 기술 또는 선진 기술의

개발을 진행한다. 그러나, 사망사고 제로를 목표로 하는 닛산은

선진 기술로 만든 자동차를 시장에 투입할 뿐 아니라 오랜 기간 애용해 주는 오너들도 생각하며, ‘안전하면서

길게 이용해 주는 것도 중요하다’고 자부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한국에서 리스토어는 험난한 길

만약 한국에서 어떤 자동차가 마음에 들어 30년 이상을 타고 싶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일단 부품 공급 연한이 다 되기 전에 대량으로 필요한 부품을 사들이는 것이 제일

현명하다. 문제는 이렇게 해도 대응할 수 없는 부품이 있다는 것. 금속이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부품은 그나마 괜찮겠지만, 고무 등 탄성이 필요한 부품은 시간이 지나면 열화가 쉽게

일어난다. 만약 차체에 부식이 일어난다면, 이름난 판금 장인부터

찾아야 한다.

만약 운이 좋아서 부품은 직접 만들 수 있으며, 판금 장인을 찾았다고

해도 또 다른 시련이 기다린다. 대기 오염을 걱정하는 환경부는 ‘오래된

자동차는 무조건 도심 진입 금지’를 도입해 버렸다. 현대

‘그라나다’를 타는 한 오너는, 일이 있어 자동차를 탄 채 서울에 진입했다가 벌금을 물었다. 엔진을

꽤 철저히 관리해 매연조차 나오지 않는데도 말이다. 국내에서는 오래된 자동차를 유지하는 오너를 ‘빨리 폐차하고 새 차를 사게 만들어야 하는 사람’으로 본다.

이 시점에서 어떤 배우나 유명인이 한 대의 자동차를 오래 타고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과연 이 정도로 화제가 되고 제조사에서 직접 리스토어를 진행해 줄 정도가 될까? 그 정도는 아닐 것 같다. 영화 ‘택시운전사’를 촬영할 때, 국내에 기아 브리사가 거의 없어(10대도 남지 않았다) 일본에서 원본이 되는 자동차인 ‘마쓰다 파밀리아’를 갖고 와 개조했다는 사실만 봐도 알 수 있다. 심지어 같이 등장했던 포니 1은 그나마 남아있던 포니 2를 개조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대의 자동차를 사랑하고 오랫동안 소유하면서 새 차처럼 정성을 들여 관리하는 오너들에게는

큰 경의를 표한다. 새 차도 좋지만, 오랜 세월을 버텨온

자동차는 더 좋기 때문이다. 자율주행의 시대, 전기차의 시대가

온다고 해도 오래 된 자동차만이 줄 수 있는 가치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추가

알고 보면 대단한 회사, 오텍 재팬

닛산 스카이라인의 아버지, 사쿠라이

신이치로(桜井 眞一郎)는 타협하지 않는 기술자였다. 프린스자동차 시절부터 몸을 담고 있었고, 닛산에서도 스카이라인 하나만

바라보고 살았다. 1980년대 중반, 병으로 오랜 기간 입원했다

복직한 그는 다른 자동차의 개발에 투입됐지만, 규모가 너무 커져버린 닛산은 그가 원하는 이상적인 업무

환경이 아니게 되었다. 그 즈음에서 당시 닛산의 사장이 그에게 ‘닛산에서

독립된 작은 규모의 새로운 회사’를 제안했다.

회사 이름은 Automobile Technology in Japan에서 따와

‘오텍 재팬(AuTech Japan)’이 되었다. 직렬 6기통 엔진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의 건물을 중심으로 하며, 그 옆에는 V형 6기통

엔진에서 영감을 받은 건물이 있다. 이 곳에 사쿠라이가 초대 사장으로 부임하자, 프린스자동차 시절부터 함께 해 온 엔지니어들과 그의 밑에서 자동차를 배워 온 닛산 직원들이 잇달아 오텍으로

이적했다. 그리고 독특한 특장차를 만들어 가며 이름을 날렸다.

현재 오텍 재팬은 장애인을 위한 특장차는 물론 고성능에도 손을 대고 있다. 그

중에서 대표적인 모델이 바로 ‘닛산 스테이지아 260RS’와

‘닛산 실비아 컨버터블’이다. 260RS는 닛산의 왜건, 스테이지아에 스카이라인 GT-R 33의 엔진과 4륜구동 시스템을 이식하고 브렘보 브레이크와

강화된 서스펜션, BBS휠을 장착했다. 실비아 컨버터블은

지금도 쉽게 볼 수 없는, 오텍 재팬만의 감성이 담긴 스포츠카이면서 기분에 따라 쿠페와 컨버터블을 쉽게

오가는 모델이다.

그러한 기술자들이 모인 회사에서 이번에 시마의 리스토어를 담당했으니, 그 정성이

어디까지 이어졌을 것인지 짐작할 만 하다. 아마도 이 차는 30년은

더 끄떡없이 버틸 것이다. 이토 카즈에도 ‘면허를 반납할

때까지 사용할 것’이라고 말했으며, 이제 막 면허를 획득한

딸에게 이 차를 물려줄 생각도 있다고 덧붙였다.

최근 국내에서 ‘전기차로 인해 사라지는 일자리 문제’가 시끄럽다고 한다. 모두가 생산 라인에 머물 수도 없고, 개발자 자리에 오래 머무는 것도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오텍 재팬’의 사례를 본받아 엔지니어와 기술을 가진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더 일할 수 있는 별도의 자리를 만든다면 어떨까? 국내에서도 캠핑과 장애인 관련으로 특장차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수요는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 사례는

참고해 볼 만 하지 않을까?

글 | 유일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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