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LD, 마세라티 기블리 하이브리드

  • 기사입력 2021.11.29 09:49
  • 기자명 모터매거진

역대 마세라티 중 가장 얌전한 모델이다. 얌전하다고 했지 약하진 않다. 효율은 놓치지 않으면서 도로를 누비기에는 충분한 파워를 품고 있다.

4기통 마세라티를 탔다. 따끈따끈한 기블리 하이브리드다. 본디 마세라티라 하면 V8 파워유닛으로 늑대의 하울링 같은 배기 사운드를 내는 게 떠오르는데 4기통이라니∙∙∙. 내가 보수적인 탓에 6기통 마세라티가 이제야 적응이 되었는데 4기통이 나왔다. 하긴 최근에 등장한 MC20은 6기통 엔진을 달았지만 출력은 무려 620마력이다. 전기차 시대로 접어드는 지금 이 순간, 그만큼 파워만 보장된다면 이제 실린더 수의 의미는 점점 없어진다. 본격적인 하이브리드라고 할 수 없다. 연비에 초점을 맞췄다기 보단 작은 엔진에 전기모터로 힘을 보태어 마세라티 배지가 부끄럽지 않은 만큼의 성능까지 끌어 올린 것이다.

엔진룸 안에는 4기통 2.0ℓ 터보 엔진과 48V 전기모터가 숨어 있다. 최근 독일 브랜드에서 사용되는 마일드 하이브리드 타입이다. 최고출력은 330마력, 최대토크는 45.9kg∙m이며 변속기는 토크 컨버터 타입 ZF 8단이다. 뒷바퀴만을 굴리며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5.7초, 최고시속은 255km다. 수치만 보면 마세라티 치고는 아쉬운 게 사실이다. 숫자는 숫자일 뿐! 실제로 달려 보자. 연비 측정은 하지 않을 테니 드라이빙 모드는 스포츠에 놓고 가속페달을 무자비하게 괴롭혔다.
터보랙은 살짝 있다. 터빈 자체가 트윈 스크롤이 아니라 스풀업 걸리는 시점이 뒤로 밀려 있기 때문이다. 전기모터 사이즈가 크지 않아 터빈이 돌기 전, 그 구간을 채워주기에는 부족하다. 그렇다고 답답할 정도는 아니다. 다운 시프트에 집중해 엔진 회전수를 어느 정도 올려 놓는다면 엔진 리스폰스가 빠릿빠릿하니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가속력은 공도에서 타기 충분하다. 일반적인 교통 흐름을 따라가다 여유 있게 선행 차를 추월할 수 있다. 고속도로에 차를 올려봐도 파워가 달리지 않는다. 고속 안정감이 준수해 여유 있는 크루징이 가능하다. 서스펜션은 기본적으로 부드럽게 세팅 되어 있지만 속도가 올라갈수록 차체를 노면으로부터 놓치지 않는다.
스포츠 세단이니 코너링 실력도 체크해야 한다. 하드웨어 구성은 좋다. 엔진은 캐빈룸 쪽으로 바짝 당겨져 있고 앞에는 더블 위시본 뒤는 멀티링크로 액슬과 차체를 묶었다. 댐퍼 스트로크가 길고 스프링 레이트가 약해 좌우 롤링이 이른 시간에 찾아온다. 다행인 것은 발생 시점만 빠르고 더 격하게 조향이 들어가도 거동이 무너지지 않는다. 스티어링 피드백은 스포츠카 수준은 아니지만 솔직하다. 코너에 들이대면 언더스티어를 보인다. 벗어나는 범위가 크지 않아 약간의 악셀 워크만으로 궤도 수정이 가능하다. 진입 속도만 적절하게 맞추면 예쁜 라인을 그릴 수 있다. 진입 각이 수시로 바뀌는 복합코너에서도 섀시가 엉키지 않고 잘 빠져나온다. 한쪽으로 쏠린 중량을 반대로 넘기는 리듬이 깔끔하다. 독일산 스포츠 세단과 비교하면 날카로움이 덜 하지만 긴장감 없이 달리고 싶은 이에게는 알맞은 성격을 보인다.
브레이크 시스템은 출력과 섀시를 다스리기에 충분하다. 브레이크스티어 혹은 노즈다이브와 같은 불쾌한 현상이 쉽사리 일어나지 않으며 고속에서 강한 제동이 연거푸 들어가도 지치지 않는다. 또한 코너를 돌면서 브레이킹이 걸려도 차체가 안쪽으로 말리지 않고 안정적으로 속도를 줄인다. 브레이크 페달 답력은 무거운 편이며 스트로크도 짧다. 보통 차를 타듯 브레이크 페달에 발만 얹고 있으면 신호 대기 중에 차가 앞으로 서서히 나갈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 슈퍼카를 타면 이런 경우가 있는데 기블리가 그렇다. 단점으로 여겨 질 수도 있지만 이 세팅은 브레이킹 컨트롤에는 최고다.
예상을 벗어났다. 하이브리드 트림이라 기대하지 않았는데 재미있다. 마세라티 하면 빼 놓을 수 없는 게 배기 사운드. 나름 성의는 보였으나 전설의 마세라티 사운드에는 못 미친다. 4기통이니 어쩔 수 없었겠지만 그래도 아쉽다. 이 바닥에 있으면서 수백 대를 타 본 결과, 마세라티 그란투리스모의 소리가 가장 좋았다. 람보르기니도 좋고 페라리도 좋지만 여성의 귀까지 홀리는 소리는 마세라티의 것이었다. 그렇기에 이 기블리가 하이브리드임에도 욕심이 나는 것이다.
어느덧 기블리가 세상에 나온 지 7년이 흘렀다. 기블리는 어떤 매력, 즉 어떠한 점으로 소비자의 지갑을 열게 할까? 먼저 디자인이다. 출시된 지 오래되었지만 여전히 자신만의 드레스 코드를 갖고 있고 도로 위의 수많은 차들 속에서 돋보인다. 다음으로 브랜드 파워다. 퇴근 할 때 마세라티를 타고 집에 가는 것만으로 기분이 좋았다. 보는 사람도 없는데 괜히 미소가 지어진다. 뭐라 표현할 수 없는 가치다. 세속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이게 현실이다. 하이브리드 시스템도 매력 중 하나다. 복합 연비가 기가 막히게 우수하진 않지만 아무 생각 없이 타고 다녔음에도 기름이 서서히 줄어 들었다. 마세라티 정도 타는 이가 기름값 걱정은 하지 않겠지만 적어도 주유소 가는 귀찮음 하나는 덜었다.
또한 별거 아닐 수 있지만 누구에게는 중요한 게 있다. 바로 무선 애플카플레이 인식율이다. 다른 브랜드와 비교하자면 1등이다. 생각보다 애플카플레이 하나 활성화시키기 위해 많은 조작을 해야 하는 차들이 많다. 마세라티의 것은 누가 만들었는지 정말 훌륭하다. 마세라티는 이러한 편의사양이 엉성할 거 같은 이미지가 있는데 과거에는 그랬지만 이제는 몰라보게 개선되었다. 사골이라 부를 수도 있지만 오히려 사골이라 완성도가 올라간 것 같다. 취향의 차이겠지만 이 정도 만족감이라면 1억이 조금 넘는 돈을 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난 효율이고 뭐고 필요 없고 진짜 마세라티를 원한다면? 하드코어 마니아를 위한 트로페오가 기다리고 있다. 다음에는 고성능 트로페오 이야기다. 
글 | 안진욱   사진 | 최재혁SPECIFICATION길이×너비×높이  4970×1945×1485mm휠베이스  3000mm  |  엔진형식  I4 터보+전기모터, 가솔린배기량 ​​​1995cc  |  최고출력  ​​330ps최대토크  45.9kg·m  |  변속기  8단 자동구동방식  RWD  |  복합연비  8.9km/ℓ​가격  ​​​1억205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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