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UV계의 귀족, 벤틀리 벤테이가 V8

  • 기사입력 2021.11.27 15:04
  • 기자명 모터매거진

변화는 성공이다. 단점이라 할 수 없는 단점들은 모조리 치워버렸다.  ­­

진짜 강남 오빠 스타일이 뭘까? 너무 커도 안 된다. 딱 키 180cm 정도, 옆머리 다운펌은 필수고 볼캡을 써야 하며, 유명 대학교가 적혀 있는 오버사이즈 후디에 무릎까지 떨어지는 반바지, 신발은 나이키 페가수스 83, 그리고 왼쪽 손목에는 롤렉스가 아닌 오메가를 차고 우디향 강한 묵직한 향수로 마무리. 내가 생각하는 그림은 이렇다. 여기에 차는 무조건 럭셔리 SUV여야 한다. 레인지로버 혹은 포르쉐 카이엔, 메르세데스 지바겐? 모두 좋다. 조금만, 아주 살짝 더 눈을 높여보자. 벤틀리 벤테이가는 강남 오빠의 클래스를 하이엔드로 상승시켜준다. 차로 사람을 판단하면 안 된다고 배웠지만 나를 포함해 제대로 배운 사람은 없고 여유 있는 이에게 호감을 보인다는 것은 자본주의에서는 당연하다. 다들 쉬쉬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벤테이가는 지금 이 순간 30~40대 남성에게 최고의 계급장이다.

벤틀리에는 총 3가지 모델이 있는데 그중에서도 벤테이가가 가장 오너를 근사하게 이미지 메이킹 해준다. 우선 플라잉스퍼는 내 차 같아 보이지 않을 수 있고 컨티넨탈 GT는 편한 복장으로 타면 직업이 수상해 보일 수 있다. 반면 벤테이가는 수트를 입던 캐쥬얼을 입던 삼선 슬리퍼에 떡 진 머리를 모자로 감추고 타도 괜찮다. 여성들은 SUV를 선호하고 벤틀리가 얼마나 비싼 차인지 잘 알기에 벤테이가는 이번 크리스마스를 외롭지 않게 만들어 준다. 단순히 비싼 차이기에 오너가 부자처럼 보이는 효과 하나만으로 구매가 이어질까? 빠질 수 없는 이유이긴 하나 부자들은 카드의 한도만 높지 돈은 현명하게 쓴다. 여유 있는 이들이 왜 벤테이가를 좋아하는지 이틀 동안 타봤다. 짧은 시간이기에 알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수면 시간 줄여가며 지겨울 만큼 타보자.
일단 소비자의 지갑을 열려면 디자인이 중요하다. 벤테이가 디자인? 그냥 멋있다. 멋있는데 고급스럽게 멋있다. 뭔가 기품이 흐른다고 할까? 분위기의 포용력도 커 나이와 성별에 상관없이 어울린다. 내 차도 아니지만 나도 잘 어울린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면 웬만한 이들은 훨씬 잘 어울릴 것이다. 덩치는 크지만 그리 커 보이지 않아 체구가 작은 여성과도 조화롭다. 수치를 보면 대형 SUV지만 패널의 모서리를 완만하게 다듬어 무식하게 커 보이지 않는다. 명품은 디테일에서 진가를 나타낸다. 벤틀리의 시그니처 아이템 헤드램프는 빛을 내는 크리스탈이다. 크기가 다른 동그라미와 큼지막한 그릴만으로 완벽한 얼굴이 탄생했다. 외모 콤플렉스를 찾을 수 없다. 본인도 잘 알고 있겠지.
옆모습은 SUV 특유의 강인함이 살아있다. 펜더 부근에 힘을 줘 근육으로 발달시켰고 22인치 휠은 위풍당당하다. 이 모델은 마이너체인지를 거쳤다. 앞과 옆에서는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았지만 뒷모습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바로 타원형으로 바뀐 테일램프다. 기존 플라잉스퍼의 것과 비슷한 B자 테일램프도 괜찮았는데 컨티넨탈 GT 스타일이 더 스포티해 보여 마음에 든다. 방향지시등이 시퀀셜 타입인데 작은 공간에서 표현하는 게 신기하다. 보통 테일램프가 가로로 길 때 시퀀셜 방식을 사용하는데 이렇게 타원 안에서 이뤄지는 시퀀셜은 처음 본다. 듬직한 덩치에 벤틀리 로고 박혀 있고 방향지시등까지 신기하게 켜지니 꽉 막힌 도로에서도 잘 껴준다.
이제 두꺼운 도어를 열고 실내로 입장. 대칭형 레이아웃의 센터페시아가 벤틀리를 탄다는 기쁨에 흥분했던 마음을 안정시켜 준다. 최고급 가죽으로 아낌없이 트림을 감쌌다. 10.9인치 대형 디스플레이는 플라잉스퍼나 컨티넨탈 GT처럼 로테이팅 기능은 없지만 애플카플레이와 안드로이드 오토는 탑재되어 있으니 위안이 된다. 착좌감이 으뜸인 시트는 풀옵션이다. 쿨링, 히팅, 그리고 마사지 기능까지 갖췄다. 2열 공간으로 넘어가 앉아 보면 확실히 페이스리프트 이전 모델 보다 레그룸이 여유롭다. 100mm 정도의 공간을 더 확보했다고 하는데 프런트 시트의 두께를 줄였는지 어쨌는지는 모르겠지만 예비 소비자로서는 환영할 일이다.  
다시 운전석에 앉아 엔진 스타트 버튼을 누른다. 벤테이가는 무려 500마력이 넘는 고성능 SUV다. 빨리 달리고 싶어 발끝이 간질간질하다. 브로셔에 적혀 있는 수치를 읊어 보자. V형 8기통 4.0ℓ 엔진에 터빈 두 발을 달아 최고출력 550마력, 최대토크 78.5kg∙m을 생산한다. 이 괴력을 8단 자동변속기를 통해 네 바퀴를 굴리고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4.5초다. 최고시속은 290km에 달한다. 스펙만 놓고 보면 완전 스포츠카다. 이렇게 큰 SUV가 얼마나 잘 달릴지 의심 반 기대 반으로 출발한다.
승차감부터 말하자면 정말 부드럽다. 미끄러지듯 우아하게 움직인다. 경박스러운 몸짓은 없다. 보통 SUV가 세단 보다 승차감에서 손해를 보는데 벤테이가는 그렇지 않다. 2열 승차감은 유럽산 플래그십 세단 보다 부족하지만 적어도 1열은 1등급이다. 초광폭 타이어를 끼우고 있지만 노면을 잘 걸러 운전자에게 전달하고 포장이 고르지 못한 노면에서도 투정 부리지 않는다. 스티어링 휠 감도는 가벼워 무거운 차를 모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 긴장감 없이 아무 생각 없이 쉽게 운전 할 수 있다.
드라이빙 모드를 스포츠에 놓고 본격적으로 밟아 본다. 8기통답게 으르렁 한다. 시원하게 지를 법도 한데 자제한다. 몇 달 전 탔던 컨티넨탈 GT의 박력 있는 배기 사운드가 그리워진다. 그래도 가속력은 컨티넨탈 GT 못지않다. 실제로 공차중량 차이가 거의 나지 않아 비슷하게 달릴 것 같다. 물론 변속기가 컨티넨탈 GT는 듀얼 클러치이고 벤테이가는 토크 컨버터로 다르지만 체감 되는 가속의 차이 거의 없다. 그만큼 벤테이가가 빠르다는 것. 시트 포지션이 높기에 이렇게 빠르면 무서워 가속 페달을 놓을 법도 한데 계속 밟고 있는 자신을 발견한다. 주행 안정감이 워낙 높아 무지막지한 속도로 달려도 무섭지 않다. 벤테이가의 캐빈룸은 정말 평화롭다.  
크루징에 음악이 빠질 수 없지. 방음도 꼼꼼히 되어 있어 음악 감상하기에도 좋다. 시승차는 네임 오디오가 들어가 있는데 환상적인 사운드를 선사한다. 벤틀리를 산다면 무조건 넣어야 하는 옵션이다. 스피커 수가 20개나 달려서인지 사방에서 한 꼭지점으로 집중한다. 기본적으로 맑은 톤인데 이퀄라이징을 조절하면 파워풀한 베이스와 함께 락과 힙합을 즐길 수 있다. 가장 잘 어울리는 장르는 잔잔한 발라드나 클래식이다. 각 악기의 역할이 확연히 구분되고 이 분담은 조화롭다. 볼륨을 한껏 올려도 고음에서 찢어지지도 저음이 먹먹하지도 않는다. 한적한 곳에서 도어를 다 열고 음악을 크게 틀어 놓고 돌 위에 앉아 멍 때리고 있어도 낭만이 된다.

왜 강남에 많이 돌아다니는지 조금은 알 거 같다. 벤테이가와 함께라면 패션 코드, 스팟은 상관없다. 사람이 너그러워진다. 타는 내내 화가 난 적이 없다. 정장을 입으면 평소와 달리 바른 자세를 취하듯 벤테이가가 운전자를 평온한 곳으로 자연스레 유도한다. 이 하나만으로도 구매 이유가 확실해진다. 귀티 나는 준수한 외모에 플래그십 세단 수준의 안락함이 있고 스포츠카만큼 달려주기까지 한다. 굳이 차를 여러 대 둘 필요 없이 벤테이가 한 대면 이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다. 벤테이가는 차 값이 3억원을 넘는다. 이 3억원의 예산을 쪼개 1억5000짜리 플래그십 세단을 사고 나머지 1억5000짜리 스포츠카를 살 수도 있다. 허나 그 플래그십 세단의 배지는 벤틀리를 이길 수 없고, 그 스포츠카의 배지도 벤틀리에게 필패다. 게다가 벤테이가는 도로를 가리지 않고 공간까지 넉넉하지 않은가! 도로 위를 다니는 벤테이가 오너들은 똑똑하게 돈을 쓴 것이다.

글 | 안진욱   사진 | 최재혁

SPECIFICATION
길이×너비×높이  5125×1998×1742mm
휠베이스  2995mm  |  엔진형식  V8 터보, 가솔린
배기량 ​​​3996cc  |  최고출력  ​​550ps
최대토크  78.5kg·m  |  변속기  8단 자동
구동방식 ​​AWD  |  연비  -
가격  3억120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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