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르포]“무서워서 못다니겠어요”, 도산대로는 ‘서킷’이 아닙니다

  • 기사입력 2021.10.29 14:34
  • 최종수정 2021.10.29 14:54
  • 기자명 모터매거진

형형색색의 스포츠카들이 커다란 배기음을 내며 빠른 속도로 질주한다. 차종도 다양하다. 페라리, 포르쉐, 람보르기니는 물론 애스턴 마틴, 맥라렌 등 수 억원을 호가하는 이른바 ‘슈퍼카’들이다. 그러나 이들이 달리고 있는 곳은 서킷이 아니다. 바로 서울 강남구 도산대로 일대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이다.

도산대로가 일부 몰지각한 이들에 의해 몸살을 앓고 있다. 고가의 스포츠카들이 다른 차들 사이를 위험하게 지나가는 장면을 심심찮게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학동사거리에서 청담사거리를 잇는 구간은 이른바 ‘도산서킷’이라 불리며 스포츠카 운전자들의 놀이터가 됐다. 이러한 모습에 지나가는 운전자와 행인들은 눈살을 찌푸리며 인근 지역 거주자와 근무자들은 고통에 시달리고 있다. 이러한 행태는 하루이틀 제기된 문제가 아니다. 이미 10여년 전부터 이 구간에서 난폭운전을 일삼는 이들의 소식은 심심치 않게 들렸다. 그러나 해당 지역을 관할하는 강남경찰서 측은 별 다른 개선의 의지를 보이지 않고 있다.

시민들의 커져가는 불만, “도산대로 지나다니기 무섭습니다”평소 도산대로 일대를 자주 다닌다는 택시기사 김 모씨(50)는 최근 아찔한 상황을 겪었다. 정상적으로 차선을 변경하는 중 굉음을 내며 후방에서 달려오는 스포츠카와 아슬아슬하게 충돌을 피한 것이다. 그는 “이런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난폭운전을 일삼는 스포츠카들 때문에 무서워서 운전하겠는가? 도산대로를 지나다니기 무섭다”며 한숨을 쉬었다. 실제로 현장 취재 당시 과도하게 높은 RPM을 사용하면서 커다란 배기음을 내며 달리는 스포츠카를 5분에 한대 꼴로 볼 수 있었다. 심지어 그 속도는 주변 차들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빠른 속도였으며 교통 상황에 따라 종종 급제동을 하는 등 위험한 난폭운전을 일삼고 있었다. 이러한 문제에 따른 소음 공해도 심각하다. 학동사거리 인근에 근무하는 직장인 박 모씨(38)는 “평소 자동차를 좋아하지만 스포츠카의 과도한 배기음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라며 “업무에 집중하던 중 깜짝 놀라는 것은 물론이고 회의 시간에 들리는 큰 배기음 때문에 종종 대화가 끊기기도 한다”며 소음 문제를 지적했다. 심지어 고의로 바퀴를 미끄러트리며 주행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으며 행인들의 불안감을 조성하는데 한 몫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해 인근 주민들도 입을 모았다. 인근 오피스텔에 거주하는 직장인 이 모씨(25)는 “스포츠카가 지나다닐때는 귀를 막는다. 심지어 유모차에 있던 아기가 울음을 터트리는 것도 종종 목격했다. 특히 주말 새벽에는 이러한 소리가 더욱 심해져서 종종 잠을 깰 때도 있다. 모두가 사용하는 도로에서 왜 이러한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불편한 기색을 드러냈다.

도산대로 카스팟팅, 이러한 행위를 부추기고 있나?
일부에서는 이러한 모습이 자주 보이는 것은 관객이 있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있다. 최근 지나가는 스포츠카 혹은 희귀한 차를 촬영하는 ‘카스팟터’가 이러한 논란의 중심에 섰다. 카스팟터란 지나다니는 자동차를 촬영하는 행위인 ‘카 스팟팅(Car Spotting)’을 즐기는 이들을 뜻한다. 이들의 사진과 영상이 인터넷 공간에 인기를 얻기 시작하면서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
 
취재 당시 해당 구간에서 카메라를 들고 삼삼오오 모여있는 이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나이대도 다양하다. 초등학생부터 고등학생까지 청소년들이 주를 이루며 적게는 수 명 많게는 수 십명까지 도산대로에 모이기도 한다. 이들 앞에서 일부러 RPM을 높여 배기음을 뽐내거나 최대 가속력을 끌어내는 ‘런치 컨트롤’을 사용하는 이들도 있었으며 교차로에서 진입하며 일부러 차를 미끄러트리는 운전자들도 있었다. 또한 마치 자신을 더 찍어 달라는 듯 같은 구간을 반복해서 빠른 속도로 지나가는 행위도 볼 수 있었다.
 
사진 출처 : 유튜브 채널 '카라큘라 Caracula'

도산대로의 난폭운전 문화를 비판하는 이들은 카스팟터들에게 촬영을 당하기 위해 더욱 빠르고 시끄럽게 달리며 관심을 바라는 운전자들이 늘어났다고 주장한다. 여기에 최근 유튜브 ‘카라큘라’ 채널에서 한 영상이 업로드 되면서 이들에 대한 논란이 커졌다. 페라리의 한정판 모델인 라페라리 아페르타가 도산대로에 등장하자 해당 차량을 촬영하기 위해 도로까지 침범한 것이다. 이러한 모습은 주변 행인들의 카메라에 의해 고스란히 찍혀 비난을 받았다. 심지어 일부 지역 자동차 동호회에서는 도산대로에서 카스팟팅을 당하기 위해 일부러 먼 거리를 달려오는 경우도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그러나 평소 카스팟팅을 즐기는 김 모군(19)은 “카스팟터가 있어서 스포츠카들의 난폭운전이 늘어났다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 카스팟팅 문화가 생기기 이전에도 이 일대 도로는 비슷한 문제로 늘 몸살을 앓았던 곳이 아닌가?”라며 카스팟팅 문화와 난폭운전에는 연관성이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카스팟터는 “해외에서 시작된 문화가 국내에서는 미성년자들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보니 여러 문제가 생기는 것 같다. 어린 나이에 자동차를 보고 즐기기 위해 가장 접근성이 좋은 곳이 도산대로다”라며 “어른들이 시작한 문화가 아니다보니 아직 미성숙한 부분이 많다. 다만 라페라리 사건 이후 카스팟터들 사이에서도 자정하려는 노력이 이루어지고 있다”라고 말했다.
강남경찰서, “일일이 단속하기엔 현실적으로 어려워…”
현장 취재를 시작하고 한 시간은 훌쩍 지났을 무렵, 해당 구간에 경찰차가 등장했다. 이미 수십대의 스포츠카들이 도로를 누빈 이후다. 그러나 출동한 경찰이 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저 시끄러운 스포츠카가 지나가면 경고를 위한 사이렌을 조용히 울리는 정도였다. 운전자들은 경찰을 신경쓰지 않았다. 그러한 경찰 앞에서 보란듯이 빠른 속도로 해당 구간을 왕복하는 스포츠카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태가 매 주말 일어나고 있는데 여전히 별 다른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도로 상황을 관리하고 계도에 앞장서야할 경찰은 이 문제에 대해 미온적인 답변을 내놓았다. 강남경찰서 관계자는 “해당 구간에 출동한 경찰이 그러한 교통문제를 단속하러 출동한 것인지, 혹은 다른 민원 때문에 출동한 것인지 확인해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당시 출동한 경찰은 경찰차 안에서 내리지도 않았으며 그 구간에 약 30분간 머물다 돌아갔다. 다른 민원을 위해 출동했다고 보기에는 어려운 행동이었다.
 
근처 자영업자들은 소음으로 인해 민원을 제기하더라도 경찰이 출동해 현장에서 단속하고 처벌하는 것을 거의 보기 힘들다고 말했다. 아울러 경찰 관계자는 “그러한 상황을 일일이 단속하기에 현실적으로 많은 어려움이 있다”며 “관계 법령 파악 후 앞으로 단속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밝히며 해당 문제에 대해 말을 아꼈다.
평소 도산대로에서 종종 과속을 즐기는 스포츠카 운전자 A씨에게 이와 같은 행위를 하는 이유에 대해 “우선 도산대로는 왕복 12차선으로 도로 정비가 잘 되어 있어 고급 스포츠카들이 서울 시내에서 마음놓고 달릴 수 있는 도로”라고 말했다. “특히 논란이 되고 있는 해당 구간은 유턴 차선이 존재함과 동시에 과속 단속 카메라가 없기 때문에 신호를 받기 전에 달려나가는 재미가 있다”며, “레이스 트랙에서 주행하기 위해 드는 시간과 비용을 계산했을 때 가볍게 달리고 싶을 때는 도산대로를 한 바퀴 도는 것이 훨씬 편하다”고 말했다.
 
도로의 규칙을 지키는 것은 기본, 이제는 자정의 노력이 필요한 때...

고급 스포츠카가 내뿜는 배기음은 매력적이다. 분명 자동차를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즐거운 소리일 것이다. 그러나 시내 한복판에서 들리는 이러한 소리는 누군가에겐 소음 공해에 가깝다. 자신의 취미를 즐기더라도 남에게 피해를 주어서는 안된다. 그러나 자신의 차를 뽐내고 싶어하는 일부 철없는 운전자들이 도로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도산대로가 이러한 난폭운전자들에게 ‘맛집’이 된지 오랜 시간이 지났으나, 적절한 대응을 하지 못하고 있는 경찰과 강남구청에게도 반성이 촉구된다. 이는 인근 주민과 직장인들의 간곡한 애원이다. 해당 구간 과속 단속 카메라 설치 및 현장에서 적극적인 제지와 계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글,사진 | 조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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