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브랜드의 디자인 철학은?

  • 기사입력 2021.10.28 13:52
  • 기자명 모터매거진

나라마다 고유의 정체성을 가지고, 사용하는 언어가 다르듯 자동차 브랜드 역시 각자가 사용하는 디자인 언어 혹은 디자인 철학이 모두 다르다. 스스로의 디자인 철학으로 만들어낸 상품들로 소비자들에게 호소해야 하기 때문이다. 일부 브랜드는 그 디자인 철학 하나로 팬을 만들어 내기도 했으며, 앞으로의 미래를 보여주기도 한다. 각자의 개성을 명확히 정립하기 위해 만들어진 디자인 철학을 살펴보자.  
글 | 조현규
MERCEDES-BENZ
메르세데스-벤츠는 현대적인 럭셔리를 정의하는 ‘감각적 순수미(Sensual Purity)’ 디자인 철학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감각적 순수미라고? 언뜻 들어서는 이해가 쉽게 가지 않는다. 이러한 말은 어느 미술관에서나 들을 법하다. 감각적 순수미라는 디자인 철학을 만든 이는 바로 2008년부터 메르세데스-벤츠의 디자인을 총괄하고 있는 고든 바그너다.


Sensual은 ‘감각적인’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지만 ‘관능적인’, ‘섹시한’이라는 의미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 메르세데스-벤츠는 부드러운 곡선과 완만하게 부풀린 면들이 자연스럽게 연결되며 특유의 매혹적인 디자인을 완성했다. 이는 자동차 디자인에서 널리 사용되는 캐릭터라인을 과감하게 제거하는 모험이기도 했다. 이에 대해 고든 바그너는 “주름의 시대는 끝났다(The days of creases are over)”라고 말할 만큼 이러한 디자인에 자신감을 내비쳤다.

AUDI
기술을 통한 진보(Vorsprung Durch Technik)와 심플 이즈 더 베스트(Simple is the Best)를 슬로건으로 삼은 아우디는 ‘차의 디자인을 통해 기술을 표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아우디의 디자인에 관해 이야기하면 디자이너 발터 드 실바(Walter de Silva)를 빼놓을 수 없다. 메르세데스-벤츠와 BMW에 밀려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하던 A6를 단숨에 인기 모델로 올려놓은 비결은 바로 그가 만들어낸 싱글 프레임 그릴이었다. 싱글 프레임 그릴은 그릴을 보닛에서 끝내지 않고 범퍼의 하단까지 확장한 형태로 당시 A6에 최초로 적용된 형태다. 이 신선한 디자인은 당시 자동차 디자인상을 휩쓸었으며, 이후 다른 모델에도 순차적으로 싱글 프레임 그릴을 적용했다.


심플함에 관해 이야기를 이어가 보자면, 아우디는 브랜드 로고부터 그 심플함을 유지하고 있다. 네 개의 원이 네 개의 바퀴를 의미하는 것이라는 말도 있지만, 사실 이 브랜드 로고는 아우디라는 브랜드의 기원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자금난을 겪던 아우디는 호르히, 데카베, 반더러와 합병하여 만들어진 ‘아우토 유니온’이라는 회사를 만들었고 네 개의 회사가 합병했다는 의미를 가진 네 개의 원을 겹쳐서 브랜드 로고를 만들었다. 정말 간단한 이유이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아우디의 고객들은 디자인을 구매 이유 1순위로 꼽았다. 아우디 역시 이를 잘 아는 덕분에 오랜 시간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체계적으로 개발하고 있다. 실내외는 물론 색상과 소재, 특히 조명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자동차의 모든 영역으로 확장한다. 아우디의 디자인 철학은 진보적이면서 감성적이다. 이는 브랜드의 기술력과 품질을 완벽하게 표현하기에 모자람이 없다.

JAGUAR재규어는 과거에서 힌트를 얻은 디자인을 디자인 철학으로 사용하고 있다. 바로 ‘움직임의 예술(The Art Of Performance)’이다. 과거 재규어 E-타입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자동차’로 극찬받았다. 또한 모터스포츠에서도 강력한 모습을 보였다. 그러한 업적을 계승하듯 역동적이고 과감하며 전체적인 디자인에서 힘이 느껴진다.가파르게 꺾인 프런트 엔드와 길어진 휠베이스, 짧은 프런트 오버행은 견고함과 역동성을 더한다. 또한 우아한 비율에도 크게 초점을 두었는데, 마치 재규어가 사냥을 위해 뛰쳐나갈 준비를 마친 모습같다. 특유의 루프라인과 부드러운 곡선은 전체 라인업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특징이다. ‘J 블레이드’ 주간 주행등은 이제 가로로 누운 형태로 사용하고 있으며 갑옷 같은 프런트 그릴은 패밀리 룩으로 사용하고 있다.

GENESIS
프리미엄 브랜드 시장에서는 늦둥이인 제네시스인 만큼, 다른 브랜드가 만든 디자인 철학에 대한 모범 답안들을 쏙쏙 흡수하여 공부한 모양이다. 제네시스는 ‘역동적인 우아함(Athletic Elegance)’이라는 디자인 철학을 제시했다. 그러한 디자인 철학 속에서 두 줄의 디자인, 쿼드 타입 램프, 크레스트 그릴 등 제네시스의 패밀리 룩을 견고하게 완성했다. 또한 ‘파라볼릭 라인(Parabolic Line)’이라 불리는 유려한 루프라인과 볼륨감이 강조된 휠 아치를 특징으로 하고 있다. 특히 G80는 이러한 디자인 철학을 가장 잘 나타내는 모델이다. 완만한 아치형을 그리는 파라볼릭 라인은 우아한 모습을 연상시키고, 휠 아치를 강조한 ‘애슬레틱 파워 라인(Athletic power lines)’은 고전성과 역동성이 동시에 녹아 있는 모습이다.


프리미엄 브랜드들의 공통점이라면, 자신만의 디자인 철학을 명확히 정립하고 그 언어에 맞춘 디자인을 통일감 있게 구성한 것이다. 그러한 면에서 제네시스는 제법 성공적으로 자신들의 디자인 철학을 정립했다고 볼 수 있다. 단순히 선 두 개만 보아도 제네시스가 떠오를 만큼 말이다.

BMW
BMW의 디자인은 몇 가지 상징을 유지하고 있다. 키드니 그릴은 두말할 필요가 없는 BMW의 상징이며 헤드램프가 전방을 주시하는 형태인 포커스 룩, 두 개의 램프를 통해 만들어 내다가 현재는 주간 주행등으로 만들어 내는 엔젤아이, C필러 끝부분에서 앞을 향해 다시 떨어지는 호프 마이스터 킥 등이 그것이다.
특히 BMW의 디자인 중에서 이 ‘키드니 그릴’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키드니 그릴은 1933년부터 적용돼 BMW의 상징이 됐다. 두 개로 나누어진 특유의 형태가 마치 콩팥(Kidney)을 닮았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 차종에 따라 그 형태는 꾸준히 변화가 있었다. 최근에는 새로운 4시리즈에 장착된 거대한 키드니 그릴이 논란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그 새로운 형태의 키드니 그릴은 사실 BMW의 역사적인 모델에서 사용된 형태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것이다.
LINCOLN
캐딜락 못지않게 아메리칸 럭셔리를 부르짖는 링컨은 디자인 철학을 ‘조용한 비행(Quiet Flight)’으로 정의했다. 항공기에서 영감을 받아 우아한 곡선미를 뽐내는 외관 디자인이 특징이다. 큼직한 크롬 그릴과 항공기의 날개를 연상하게 만드는 램프 디자인 역시 링컨이 아메리칸 럭셔리 브랜드라는 것을 상징한다.


크롬 그릴은 변화를 제법 거쳤다. 2000년대 초중반에는 격자무늬가 촘촘하게 그려진 그릴을 사용하여 보수적이면서도 차분한 이미지를 만들어 냈다. 이것이 링컨의 앰블럼과 어우러져 단단한 이미지를 만들었다. 2000년대 중후반부터는 굵은 세로선이 좁은 간격으로 배치된 그릴 디자인을 사용했으며 이후 2010년대에 들어서는 그릴을 좌우로 나누어 가운데에 앰블럼을 배치하는 형태로 마치 날개를 활짝 펼친 것 같은 디자인을 만들었다. 지금과 같은 그릴 디자인이 만들어진 것은 지난 2015년 컨티넨탈 콘셉트카를 발표하면서부터다. 보수적인 브랜드로서는 나름 파격적인 변신인 셈이다. 결과적으로 이러한 디자인 변화는 성공적이었다. SUV를 중심으로 개편한 것과 더불어 항공기에서 착안한 풍요로운 디자인으로 브랜드의 이미지를 바꾸는 데 성공했다.

LEXUS렉서스의 디자인 철학인 ‘엘피네스(L-Finesse)’는 기술의 진보가 표현된 ‘첨예(Leading-Edge)’와 일본 특유의 감수성을 살린 ‘정묘(Finesse)’를 접목한 것이다. 장인정신을 중요하게 여기는 일본답게 자동차의 디자인에서도 장인정신을 추구한다.이러한 엘피네스가 최초로 사용된 모델은 3세대 GS다. 당시에는 그 차를 처음 본 대부분의 사람들이 충격을 받을 정도로 강렬한 디자인을 뽐냈다. 과하다는 지적도 분명 있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디자인을 점차 다듬어 나가기 시작했다. 현재는 눈에 익숙해진 덕분인지 다른 차들의 디자인 철학과는 차별화된 매력을 뽐내고 있다. 또한 스핀들 그릴을 통해 새로운 조형미도 만들어냈다. 이후 모든 렉서스에서 이 스핀들 그릴이 사용되었고, 더욱 감각적이고 박력 있는 렉서스의 디자인을 완성했다.

DS
DS는 원래 시트로엥이 생산하던 자동차의 한 종류였다. 또한 1968년 샤를 드골 대통령을 시작으로 현재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까지 사용한 프랑스 정부 공식 의전차이기도 하다. 그러한 DS가 2015년 PSA그룹 내 프리미엄 브랜드로 재탄생했다.
예술의 나라 프랑스답게 DS의 디자인 철학은 ‘아방가르드 디자인(THE AVANT-GARDE OF DESIGN)’으로 통한다. 전통적인 형식을 거부하며 새로운 기술과 과학의 발전에 부합하는 예술 경향이다. DS는 이를 브랜드 DNA로 정했다. DS가 아니면 소화하기 힘든 과감한 선과 화려한 빛을 통해 표현하는 개성을 가지고 있다. DS는 미지의 아름다움이라는 영역에 도전하며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는 확고한 의지와 용기인 아방가르드 정신을 나타내고 있다.
아방가르드는 본래 전쟁에서 선두로 나가 적의 움직임과 위치를 파악하는 척후병을 뜻하는 프랑스어다. 이것이 예술로 넘어가서는 앞으로 전개될 새로운 예술을 탐색하고 이제까지의 예술개념을 변화할 수 있는 혁명적인 뜻으로 바뀌었다. DS의 디자인이 다른 브랜드에서는 쉽사리 시도하지 못했던 스타일들이기에, 이러한 의미를 잘 해석했다고 볼 수 있다.
CADILLAC
아메리칸 럭셔리를 표방하는 캐딜락은 ‘아트 & 사이언스 (Art & Science)’라는 디자인 철학을 사용한다. 시각적인 부분은 Art, 기술적인 부분은 Science로 나타낸다. 이는 CTS, ATS 등을 선보이며 제시했던 디자인 철학인데, 캐딜락의 보수적이었던 브랜드 이미지를 현대적인 세련미를 갖춘 브랜드로 전환시킨 핵심 요소이기도 하다. 또한 캐딜락은 에스칼라(Escala)라는 콘셉트카를 공개하면서 아트 & 사이언스 철학을 현대적으로 한 번 더 다듬었다.
특히 수직과 수평이 조화를 이루는 램프 디자인은 많은 이들에게 찬사를 받고 있다. 아트 & 사이언스가 처음 시도되었던 때에는 1950년대 유행했던 테일 필 디자인에서 기원을 찾을 수 있는 수직 형태의 램프를 볼 수 있었다. 최근에는 거기에 수평 라인을 추가하며 더욱 눈에 띄는 램프 디자인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차체 곳곳을 이루는 근육질 라인 역시 캐딜락의 디자인을 더욱 개성 있게 만들어주는 요소다.
MASERATI
마세라티의 디자인은 특유의 삼지창 앰블럼을 중심으로 만들어진다. 다른 승용차보다 낮은 위치에 자리 잡은 수직 형태의 그릴에서 출발해 시원스레 뻗어 나가는 샤프한 이미지가 전반적인 디자인을 형성하고 있다. 이러한 형태는 우아하고 부드럽지만 매우 공격적인 독특한 결과를 만들어냈다. 또한 각 펜더에는 3개의 에어 벤트를 두드러지게 구성하고 펜더 라인을 부풀려 근육질의 몸매를 뽐낸다. 또한, 네 개의 배기구, 프레임 리스 도어 역시 마세라티의 모델들이 공통적으로 가지는 차별화된 디자인 철학이다.
또, 마세라티의 디자인은 ‘지속되는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이를 증명하듯 마세라티 모델의 디자인 수명은 제법 긴 편이다. 대표적으로 콰트로 포르테는 지난 2013년에 출시하여 햇수로 벌써 8년이나 지난 모델이지만, 디자인에 큰 변화 없이도 여전히 신선하고 매력적이다. 일반적인 대중 브랜드였다면 많게는 두 번이나 풀체인지가 되었을 법도 하다. 그러나 오랜 시간에도 신선한 매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그만큼 완성도 높은 디자인이라는 것의 반증이다.
VOLVO
볼보는 최근 리차지 콘셉트카를 발표하면서 ‘최소한의, 그러나 더 나은(Less But Better)’이라는 새로운 디자인 철학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간결하면서도 부족함이 없는, 혹은 더 효율적인 디자인을 사용하겠다는 것이다. 말끔하게 이어지는 면들의 연결, 전통적인 그릴 디자인, 토르의 망치 헤드램프 디자인 등이 새롭게 해석됐다. 이는 기존 스칸디나비안 디자인을 계승하면서도 미래 전기차만이 가질 수 있는 새로운 디자인 요소들을 적극 반영하겠다는 의지라고 볼 수 있다.
내연기관의 복잡성을 제거함으로 설계자는 차량의 비율을 새롭게 정의할 수 있고, 실내 공간을 늘리며 공기 역학적인 효율도 개선할 수 있다. 배터리팩을 위한 평평한 바닥, 길게 늘인 휠베이스는 물론이고 거대한 휠 하우스 가득 큼직한 휠을 채워 넣었다. 결과적으로 오버행은 더욱 짧아지고 내부 공간 역시 충분히 확보했다.
이러한 발전을 이룬 리차지 콘셉트 카로 인해 현재 볼보의 XC40, XC60, XC90과 같은 자동차는 높은 시야를 유지하면서 시트의 위치와 루프의 형태를 최적화하고 보닛의 높이를 더욱 낮출 수 있었다. 이러한 변경은 일반적인 SUV에 비해 더 낮은 공기 저항 계수를 달성할 수 있었고, 이는 더욱 효율적인 주행을 가능하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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