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차가 꾸는 SUV의 꿈, 현대 캐스퍼

  • 기사입력 2021.09.29 09:59
  • 기자명 모터매거진

독특한 디자인과 귀여운 이름을 갖고 실용성을 추구하려는 SUV, 캐스퍼가 드디어 세상에 나왔다. 과연 이 차에 담긴 것은 무엇일까? 사람들을 위한 즐거움과 자유로운 이동이 제대로 담겨 있을까?

긴 세월을 기다렸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이제 갓 출시된 자동차인데?’하면서 궁금해하실 독자 여러분도 있을 것이다. 사실 현대는 오래전에 경차 SUV를 기획하고 있었다. 당시 미쓰비시에서 SUV ‘파제로’를 들여와 ‘갤로퍼’라는 이름으로 큰 재미를 봤던 현대차(당시에는 현대정공이었지만 어쨌든)는 경차에도 SUV를 도입할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파제로 미니’가 대상으로 떠올랐고, 실제로 아토스의 엔진을 탑재하고 테스트까지 마쳤다.
여러 가지 이유로 인해 SUV 경차 프로젝트가 중단되고 오랜 세월이 흐른 현재, 현대차가 다시 경차를 들고 나온 이유는 간단하다. ‘새로운 자리를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 뒤에 있는 여러 가지 사정은 나중에 정리해서 이야기하기로 하고, 어쨌든 새로운 차를 만들 필요성은 있었다. 그래서 오랜 고민과 논의 끝에 오래 전 묻혔던 SUV 경차가 다시 나오게 됐다. 물론 그 동안 시간이 많이 흘렀으니, 디자인이나 편의 사양은 업그레이드되었다.

SUV다운 모습, 의외의 당당함
캐스퍼는 생각보다 높다. 그리고 당당한 자세를 갖고 있다. 아마도 디자인과 비율 때문에 그렇게 느껴질 것인데, 포인트가 되는 곳을 하나만 짚어 보자면 당당하게 부풀어 있는 펜더를 꼽고 싶다. 일반적으로 경차라고 하면 한정된 크기 내에서 실내 공간을 최대한 확보하기 위해 차체 끝부분까지 패널을 밀어내는 디자인을 갖게 되는데, 캐스퍼는 펜더를 부풀리기 위해 패널을 오히려 안으로 밀어 넣는 과감한 시도를 했다.
그 덕분에 경차임에도 불구하고 오프로드를 시원하게 주파할 것 같은 이미지가 만들어진다. 잘 보면 휠하우스도 사각으로 다듬어져 있는데, 이쯤 되면 4륜 구동을 넣어주지 않은 게 아쉽게 느껴진다. 앞부분과 뒷부분은 원형 헤드램프와 원형 방향지시등이 차지하는데, 아기자기하면서 귀여운 모습을 연출한다. 터보 모델은 헤드램프 옆에 원형 에어 인테이크를 별도로 추가하는데, 당당하면서 역동적인 모습을 원한다면 꼭 선택해야 할 것이다.
경차이지만 당당한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17인치 휠이 들어갔다. 물론 옵션이고 이렇게 큰 휠을 장착하면 연비 면에서도 불리하지만, 아마도 많은 이들이 디자인을 위해 선택할 것으로 보인다. 2열 도어 손잡이는 필러에 붙어 있는데, 자세히 보면 그 위에 유령 이모티콘을 새겨놓았다. 탈 때마다 자연스레 웃음이 나오는 포인트이리라. 브레이크 램프는 조금 특이한 형상을 갖고 있는데, 기분 탓인지 몰라도 LED를 적용한 버전이 더 밝게 빛나는 것 같다.
실내는 의외의 디테일에 감탄할 수도 있고, 실망스러운 점도 있다. 일직선으로 뻗은 대시보드는 보이지 않는 곳을 줄이는 데 큰 공헌을 한다. 돌출된 곳이라고는 작은 크기의 계기판과 내비게이션 화면 정도다. 작아도 필요한 기능은 다 갖추고 있고, 애플 카플레이도 지원한다. 센터페시아부터 조수석까지 뻗어있는 또 다른 트레이에는 다양한 물건을 아무렇게나 던질 수 있다. 차 안에 두어야 할 것이 많은 사람들에게 좋을 것이다.
기아 레이와 마찬가지로 기어가 있는 곳은 경사진 센터페시아를 이용해 따로 빼 두었는데, 공간 활용이라는 면에서 큰 효과가 있다. 디자인을 위해 실내가 줄어든 만큼, 이런 곳에서 아이디어를 낸 것 같다. 경차인 만큼 시트 폭이 넉넉하다고는 할 수 없지만, 결코 좁지는 않고 몸에 딱 맞는 느낌이다. 2열 시트는 앞뒤로 움직이고 리클라이닝도 지원하니 키 2미터가 넘는 거인이 아닌 이상 큰 불만 없이 탑승할 수 있을 것이다.
아쉬운 점은 실내를 구성하는 요소들의 마무리와 재질이다. 경차이기 때문에 비싼 재료를 쓸 수 없다는 점은 이해하지만, 플라스틱이 만나는 지점을 그대로 노출시키는 것은 좀 그렇다. 각 부품이 딱 맞아떨어지지 않아 보인다는 것도 아쉬운 점. 디자인으로 숨길 수도 있었을 것 같기에 더더욱 아쉬움이 든다. 그나마 스티어링 휠은 디자인을 통해 그런 부분을 많이 보완했다. 손에 걸리적거리지 않고 부드럽게 잡힌다는 점은 마음에 든다.
만족스러운 엔진, 아쉬운 변속
캐스퍼의 엔진은 자연흡기와 터보차저로 나누어진다. 시승용 모델은 터보차저로 배정되었는데, 최고출력 100마력을 발휘하니 한 번 기대를 해 본다. 오랫동안 사용해 온 자동 4단 변속기와 짝을 이루는데, L 이외에는 기어 단수를 따로 선택할 수 없으니 그냥 D에 놓고 주행해 보기로 했다. 변속은 오른발을 믿어보는 수밖에. 입구에서 제법 깊은 요철을 만났는데, SUV라서 그런지 바닥에 닿는 것 없이 그대로 통과해 버린다.
터보 모델은 고속도로나 전용도로를 많이 사용한다면 적극적으로 고려할 만 하다. 또는 ‘경차를 타더라도 출력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이들에게 좋을 것이다. 고속도로 제한속도인 시속 110km에 도달해도 엔진은 3천 회전에 미처 도달하지 않는다. 아쉽게도 시승할 때는 정체로 인해 연비가 줄었지만, 만약 정속 주행을 유지했다면 꽤 높은 연비를 얻었을 것이다. 물론 정체임에도 불구하고 리터당 12km가 넘는 연비를 기록했다.
이 터보 엔진은 꽤 만족스럽다. 조금 소음이 있긴 하지만 거슬릴 정도는 아니며, 동승객과의 대화를 방해 받을 정도도 아니다. 이 작은 차체를 경쾌하게 이끌고 나가는 데는 충분하다. 아니, 차고 넘친다고 느껴진다. 고속도로와 일반도로를 교대로 달려보면 그 진가를 안다. 오른발에 크게 힘을 주지 않아도 쉽게 속력을 얻을 수 있고, 또 마음에 드는 것이다. 오랜 세월 만들고 다듬어진 엔진이니 구조적인 문제도 거의 없을 것이다.
그러나 4단 변속기는 아쉬운 점을 드러낸다. 평지라면 문제가 없지만, 경사가 급한 언덕을 만나면 문제가 생긴다. 가속 페달을 바닥까지 짓이겨도 쉽게 올라갈 생각을 하지 못하는데, 엔진의 출력을 변속기가 제대로 바퀴에 전달 못한다는 것이 그대로 느껴진다. 옆에서 트럭이 더 느린 속도로 달리고 있으니 급경사인 것도 알겠고, 이 정도면 잘하는 것이라고 말해주고 싶지만, 동력 손실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만큼은 참기가 힘들다.
이렇게까지 이야기하는 이유가 있다. 사실 필자는 캐스퍼가 7단 DCT를 탑재하기를 원했다. 왜냐면 기아가 스토닉에 터보차저 엔진과 7단 DCT를 조합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공간의 문제 때문에 4단 자동변속기를 넣을 수밖에 없었던 것일까. 아쉬움은 커져만 간다. 뭐 언덕만 만나지 않는다면, 아쉬움은 없다. 작은 차체는 날렵한 코너링을 가능하게 만들어주고, 스티어링을 돌리는 재미도 쏠쏠하다. 서스펜션도 이 정도면 잘 다듬은 것이다.
안전과 편안한 운전을 위한 ADAS 기능은 꽤 만족스럽다. 특히 차선을 유지하는 ACC는 정체 구간에서 운전자의 피로를 크게 덜어줄 것이다. 시속 10km 이하로 내려가면 해제된다고는 하지만, 있는 것과 없는 것의 차이는 크다. 전자식 사이드 브레이크를 적용해 정지까지도 지원했으면 더 좋았겠지만, 더 바라는 것은 욕심일 지도 모른다. 덕분에 이른 아침에 주행하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몸에 큰 긴장은 들어가지 않았다.
라이벌이 있다고?
캐스퍼는 현재 국내에서는 라이벌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일본만 가도 사정은 크게 달라진다. 이 시장에서 터줏대감이라고 하면 제일 먼저 ‘스즈키 허슬러’를 들 수 있다. 2014년 등장 이후 현재는 2세대 모델로 진화했는데, ‘독특하고 재미있는 차가 필요하며, 높은 지붕까지는 필요 없지만 뒷좌석을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운전자’에게 인기를 얻고 있다. 최저지상고가 높아 눈이 많이 쌓이는 지역에서도 유용하니, 그야말로 ‘경형 SUV의 교과서’라 할 만 하다.
그와 더불어 다이하쓰에서 만든 사각형의 경형 SUV 태프트, 미쓰비시에서 만든 eK 크로스가 있고 조금 큰 소형 모델까지 폭을 넓히면 토요타 라이즈도 있다. 국내에 일본의 경형 SUV 판매망이 없다는 점이 캐스퍼에게는 다행일지도 모른다. 일본의 경형 SUV는 등급에 따라 4륜 구동도 지원하니 말이다. 물론 일본의 경차는 배기량과 출력이 훨씬 약하기 때문에, 높은 출력을 원한다면 캐스퍼를 선택하게 될 것이다.
 
 글, 사진 | 유일한
SPECIFICATION _ HYUNDAI CASPER TURBO
길이×너비×높이   ​3595×1595×1575mm | 휠베이스 2400mm | 엔진형식  I3 터보, 가솔린 | 배기량 998cc
최고출력  100ps  |  최대토크  17.5kg·m  |  변속기  ​​​4단 자동  |  구동방식  FWD  |  복합연비  ​​​​​​12.3km/ℓ  |  가격  2007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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