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컨 네비게이터, QUIET BLACK

  • 기사입력 2021.09.24 14:04
  • 기자명 모터매거진

거대함을 품은 SUV, 링컨 네비게이터는 특유의 조용함으로 사람들을 유혹한다. 엔진이 있지만 소음이 없고, 든든한 느낌으로 사람들을 보호해 줄 것 같다. 어쩌면 전기차 시대를 대비하는 링컨 특유의 준비성일지도 모른다. 

처음 만났을 때는 ‘이렇게까지 거대한 자동차가 우리나라 땅에 필요한가’라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필요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았던 것 같다. 병행 수입을 통해 한 대씩 들어오던 이 차는 어느새 그 인기에 힘입어 정식 수입이 결정됐고, 지금 이렇게 필자의 앞에 섰다. 일반적인 크기의 주차장에 세워두면 운전석에 타는 것도 힘들고, 빠져나올 때도 주차할 때도 큰 덩치가 신경을 쓰게 만들지만 그것을 뛰어넘는 매력이 있으니 선택을 받는 것이리라.

링컨 네비게이터. 본토인 미국에서는 출시되자마자 너무 인기를 얻어서 급하게 증산을 의논해야 했던 모델이다. 도로도 주차장도 넓은 미국이야 이런 크기가 부담스럽지 않겠지만, 한국은 조금 사정이 다른 것도 사실이다. 그렇다면, 이 차에 숨겨진 매력이 무엇이기에 고객이 확보된 것일까? 겉으로 보기만 해서는 알 수 없는 것임은 확실하다. 그렇다면 언제나 답은 하나다. 직접 운전해 보고 많은 사람을 태우고 화물도 적재하면서 시험해 보는 것뿐이다.
조용한 럭셔리? 이것은 조용한 항해
언제 봐도 거대한 그릴이 압권이다. 에비에이터도 그릴이 꽤 크다고 생각했는데, 네비게이터는 그보다 더 큰 그릴을 가졌다. 전면이 거의 직각으로 서 있기에 더 그렇게 느껴졌을지도 모른다. 거대한 헤드램프는 허전함을 줄이기 위해 하단에 두 줄의 LED 주간주행등을 품고 있는데, 독특하면서도 인상적이다. 방향지시등은 헤드램프 하단에 가늘게 위치하는데, 차체 크기를 생각하면 의외라고 느껴진다. 전면을 꽉 채우기 위한 디자이너의 노력인 것 같다.

대형 SUV이지만 측면에도 포인트와 디자인을 부여해서 허전해 보이지 않도록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살 많은 바람개비 형태의 거대한 휠이 있는 데다가, 휠하우스와 펜더도 주름이 잡혀 제대로 강조되어 있다. 헤드램프부터 테일램프까지 이어지는 강렬한 직선도 인상적이다. 후면 역시 좌우로 이어진 형태의 테일램프가 꽉 채우고 있는 데다가 링컨 레터링이 크게 새겨져 있으니, 허전해 보인다거나 심심하게 느껴지는 곳은 없다.
실내는 색상이 살짝 아쉽다. 황갈색과 검은색의 조합 자체는 어울리지만, 클래식 모델에 오른 느낌도 내기 때문이다. 미국 시장에는 붉은색 가죽과 진한 갈색을 조합한 실내도 있는데, 이쪽이 더 현대적이면서 고급스러워 보인다. 차체가 커져서 그런지 센터페시아에 있는 10인치 화면의 오른쪽을 누르는 게 조금 힘들다. 센터 콘솔의 주행모드 변경 다이얼은 꽤 뒤로 가 있어서 손이 쉽게 닿지 않는다. 변속 버튼은 조작하기 쉬우니 이것으로 만족해야겠다.

미세한 조절이 가능한 1열 시트는 이전에 많이 언급했으니 이번에는 넘어가고, 그 뒤의 공간에 집중해 보자. 먼저 2열에 있는 캡틴 시트는 1열과 거의 비슷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다. 장거리 주행에서도 불만은 절대 나오지 않을 것이다. 차체 크기가 있는 만큼 3열도 장식이 아니라 성인이 제대로 앉을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났다. 그러고서도 트렁크에 많은 화물을 실을 수 있는 공간이 있으니, 미국의 SUV가 어떤 것인지 제대로 알 수 있다.
항해를 떠나기 전 알아둘 것이 있다. 네비게이터는 미국 출신이지만 더 이상 8기통 엔진을 품지 않는다. 제공되는 것은 6기통 트윈 터보 엔진뿐이다. 그래서 아쉽게도 그르렁대는 소리는 이제 더 느낄 수 없다. 그런데 사실 링컨이 주창하는 ‘조용한 항해’에는 이 엔진이 더 잘 어울린다. 부드러우면서도 이 무거운 차체를 이끌고 나갈 수 있을 정도의 토크를 갖고 있으며, 오른발에 3~40% 정도의 힘을 주는 정도로 조용함을 유지할 수 있다.
10단 자동변속기 역시 물건이다. 워낙 덩치가 크다 보니 연비에서는 실망이 크겠지만, 적어도 가속에 있어서 허둥대는 면은 없다. 평지를 달리다가 갑자기 언덕길을 만나도, 충격 없이 그리고 지체 없이 적절한 기어를 찾아낸다. 그래서 가족뿐만 아니라 지위가 높은 누군가를 모시고 운전하기에도 좋을 것이다. 다소 운전이 서툴다 해도, 그 정도의 차이는 이 부드러운 엔진과 기민하게 반응하는 변속기가 메워줄 것이니 말이다.
일단 운전을 하다가 주변을 둘러보면, 차체가 제법 크게 느껴진다. 실제로 크니까 이 감각에 태클을 걸기는 힘들지만, 한 가지 아쉬움은 남는다. 같은 플랫폼을 사용하는 포드 익스페디션은 차체 크기에 비해 한 체급 작다고 느껴지는 움직임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곰곰이 생각해보면, 프리미엄 브랜드인 링컨의 옷을 입으면서 화려한 내장재와 외형을 입었고, 그 결과 무게가 늘어났기 때문에 그렇게 차체에 맞는 감각을 지니게 되지 않았나 싶다.

그러니까 네비게이터를 운전할 때는 스포츠카와 같은 감각은 가질 수 없다. 이 차를 스포츠카처럼 가속하거나 빈틈을 찾아서 움직이게 할 운전자도 거의 없겠지만, 그렇게 운전하려 해도 쉽지 않을 것이다. 더군다나 탁 트인 공간도 아니고 수많은 다른 차들이 운집해 있는 일반도로라면 더더욱 그렇다. 느긋하게 차선 하나를 정한 뒤 그곳에서 거의 벗어나지 않고 목적지까지 오른발만 움직이면서 이동하는 것이 네비게이터를 즐기는 방법이다.
기왕 움직임 이야기가 나온 김에 불만 하나만 더 가져가고자 한다. 장거리 주행이라면 아무래도 피로를 덜기 위해 ACC를 사용할 일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차체 크기가 있는 데다가 브레이크도 정밀하게 느껴지지 않으니 ACC에만 의존하기가 꺼려진다. 원하는 위치에 세울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심리적으로는 못 세울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이다. ACC 자체도 정밀하게 느껴지지 않다 보니 자신도 모르게 브레이크 페달에 발을 올려두고 만다.
고속도로 제한속도까지 다 쓰고 있다면 앞차와의 거리를 멀찍이 떨어뜨려 두면 되지만, 정체 또는 지체 구간에서 거리를 떨어뜨려 두면 꼭 앞으로 끼어들기를 감행하는 차들이 있다. 놀람과 분노가 교차하는 순간, ACC는 꺼버리고 오른발은 바쁘게 가속 페달과 브레이크 사이를 오간다. 이렇게 되면 차체도 앞뒤로 출렁거리고 항해는 할 수 없게 된다. 그러니까, 이 차는 정체가 없는 시간에 유유히 도로를 다니는 것이 어울린다.
자잘한 단점은 있지만, 네비게이터는 ‘조용한 장거리 항해’를 추구할 수 있는 자동차다. 일반 엔진으로도 이 정도의 조용함과 부드러움을 보여주는데, 만약 전기모터 시대가 오면 어떤 모습을 또다시 보여줄 수 있을까? 얼마 남지 않은 내연기관의 시대, 네비게이터는 그 시대의 거의 마지막을 붙잡는 것과 동시에 전기차 시대를 자연스럽게 대비하고 있기도 하다. 가족과 함께 어르신들을 꼭 편안하게 모셔야 하기에, 그래서 네비게이터가 인기를 얻고 있나 보다.

글 | 유일한   사진 | 최재혁

SPECIFICATION
길이×너비×높이  5335×2075×1940mm
휠베이스  3110mm  |  엔진형식  V6, 가솔린
배기량 ​​​3496cc  |  최고출력  ​​457ps
최대토크  71.0kg·m  |  변속기  10단 자동
구동방식 ​​AWD  |  연비  7.2km/ℓ​
가격  1억184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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