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틀리 플라잉스퍼 V8, BAD HABITS

  • 기사입력 2021.09.23 10:08
  • 기자명 모터매거진

순수했던 마음에 시간의 얼룩이 묻어도, 빛나는 날개에, 그리고 불꽃에 닿기 위해 푹 빠져버리고 만다. 세상에 어둠이 깔려도 멀리 가는 방법만은 안다. 브레이크는… 없다.  

싫다고 말할 사람이 있을까? 만약 자신의 앞에 이 멋진 녀석이 있다면, 그리고 오늘 밤 멋진 모습으로 어디로든 떠나도 괜찮다고 말한다면 말이다. 이제 더 이상 낭비할 것도 없고, 할 일도 남아있지 않다. 나이를 먹은 지금은 해가 져도 끓어오르는 몸을 통제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이도 없다. 이런 나쁜 습관 속에 늦은 밤 홀로 절망하기도 하고, 낯선 사람과 만나 낯선 대화를 나눈다. 이게 마지막이라고 오늘 밤도 맹세하지만, 아마 그렇지 못할 것이다.

플라잉 스퍼, 어둠 속에서 빛나는 보석. 네온 불빛 아래 모든 것이 어둡게 변해가도 흰색의 차체는 그 네온을 이겨내며 독보적인 존재를 드러낸다. 어느새 학교를 졸업하고, 세상에 발을 딛기 시작하면서 무너지기 시작해 버린 나만의 낙원은 그 안에서 새로 태어나 다시금 자신을 존재하도록 만든다. 그 안에서 보이는 수많은 환상들 속에 빅 벤, 버킹엄 궁전, 타워 브리지가 스쳐 지나가고, 어느 여인이 아끼던 장미의 향기도 스쳐 간다.

나쁜 습관, 그런 건 괜찮아

모든 부분이 눈을 크게 뜨고 바라보도록 만든다. 자신을 통제할 수 있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 무언가의 집결된 덩어리인 것 같다. 헤드램프만 해도 흔히 ‘보석’ 또는 ‘다이아몬드’라고 이야기하지만, 그것을 능가하는 빛의 집합체, 아니 무수한 반짝임의 향연이다. 이것도 간신히 입을 벌리면 나오는 말. 눈을 크게 뜬 채로 당신은 아무 말도 못 하리라. 그리고 아무렇게 말한다고 해도 누구든 당신을 이해하리라.

어두워도 괜찮다. 앞에 있는 거대한 그릴이 그 어둠조차 힘있게 빨아들일 것이니. 시동을 걸면 비로소 모습을 드러내는 B자 형태의 날개는 밤하늘을 날아다니게 만들며 자신에게 자유를 줄 것 같다. 환상 같은 이야기라고? 맞다. 그 환상이 그저 눈앞에서 실제로 춤을 추고 있을 뿐. 동이 트고 낮이 되면 이 환상은 사라지겠지만, 그전까지는 얼마든 손 앞에서 잡을 수 있는, 즐길 수 있는 것이다. 후면에서 매력적으로 휘갈겨진 붉은색의 B자 두 개와 함께 말이다.

빛으로 감싸인 실내는 마치 어둠을 물리치려는 것 같다. 그것도 좋지만, 너무 빛이 많으니 오히려 어둠을 즐기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러면 이쯤에서 마법을 한 번 부려볼까? 어쩌면 낯선 이와 낯선 대화를 나누는 근사한 순간이 올지도 모르니, 가운데에서 너무 빛나는 디스플레이를 집어넣어 보자. 그 자리를 근사하게 빛나는 세 개의 다이얼이 차지할 것이다. 적당한 어둠 속에서 빛나는 다이얼이 밤의 지배자가 되도록 만든다.
이제 잠에서 조금은 깰 시간이다. 늦은 밤 새벽 2시, 그 이후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면, 출구를 아무리 찾아봐도 찾을 수 없다고 느낀다면, 당신에게 마법 하나를 부여해 주겠다. 이 거대한 B자가 새겨진 뭉치를 손에 들고, 한가운데 있는 스타트 버튼을 누르기만 하면 된다. 이것만으로 당신은 밤을 휘저을 수 있다. 낮게 그르렁대는 엔진음이 새로운 사건을 부여할 것이다. 이제 운전석에 앉아 스티어링을 쥐면, 출구가 보일 것이다.
나쁜 습관이 있다고? 이런 빛나는 녀석에 올라타면 오른발을 주체할 수 없는 나쁜 습관? 뭐 좋다. 주체할 수 없다면 달리면 된다. 그 습관은 당신을 낯선 이들에게서 벗어나게 만들고 누군가에게 이어지도록 만들 것이다. 밤마다 자극을 찾아 밤거리를 헤매고, 낯선 이들과 이야기를 나누어도 남은 것은 홀로 남는 슬픔과 절망일 때, 누군가를 찾아가면 된다. 누구보다도 빠르게, 그리고 꿈속으로 달리는 것처럼 말이다.
아, 그러고 보니 아쉬운 것이 있다. 이제 이 녀석은 이전처럼 크게 으르렁거리지 않는다. 어쩔 수 없는 현실 아래 크기가 작은 절제된 심장과 폐를 가져버리고 만 짐승. 반세기를 넘어 오랜 기간 생명을 불어넣었던, 6.75ℓ의 심장은 이제 효율이라는 이름 아래 사라져버렸고, 다른 작은 심장과 폐를 가져와 버리고 말았다. 그래서 나쁜 습관을 보조할 수 없다고? 아니? 괜찮다. 이전보다 조금은 더 날렵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말이다.
그 누군가는 늦은 밤에 깨어났다고 투덜대겠지만, 괜찮을 것이다. 당신의 그 모습을 보는 순간 그런 작은 불만은 들어갈 것이고, 당신의 나쁜 습관을 다시 한번 안아줄 것이다. 너무 먼 길을 돌아왔고 재미가 없어질 때까지 모든 것을 태워버렸다고, 이제 자신에게 잃을 것도 쓸 것도 할 일도 남아있지 않다고 감히 이야기하지 말자. 이제 당신은 통제할 수 있을 것이다. 출구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훌륭하게 누군가에게 도착하지 않았는가.
나쁜 습관을 가졌다고 반복적으로 외쳤지만, 자신의 행동과 말을 통제하지 못했다고 했지만, 결국 해냈다. 아마도 밤에 빛나는, 날개를 단 환상을 봤기 때문일 것이다. 매력적이고 우아한 모습을 가진 환상. 그 안에서 네임(Naim)의 매력적인 음색이 연주하는 에드 시런(Ed Sheeran)의 아름다운 선율과 함께 제대로 환상을 즐겼다. 오늘 밤은 정말 근사했다. 이전에는 근사할 게 없었던 새벽 2시를 이렇게 만들어줬으니 말이다.
어느새 해가 뜨고 낮이 되었다. 밤에도 낮에도 이 거대한 차체는 아름답다. 그리고 이제 본연으로 돌아가 본다. 오랜만에 비어 있는 뒷좌석의 먼지를 털고, 어르신들을 모시러 간다. 고급스러운 가죽과 안마 의자 부럽지 않은 마사지, 편안하게 누우실 수 있는 공간까지. 그르렁거리던 밤과는 다른 모습으로 의연하게 그리고 편안하게 달리며 자태를 뽐낸다. 거기에 맞게 옷도 단정하게 입어본다. 모두들 그렇게 이야기한다. “운전기사 납셨네.”
뭐 어떤가. 벤틀리를 질투하는 이들의 시선이라고 생각하고 넘어가자. 밤을 불태우고 남은 것이 없었다고 생각했지만, 그 누군가가 있었고 정말 소중한 것들이 있었다. 다시 한번 아름다운 선율을 들으며, 어르신들에게 도착하고 재빨리 뒷문을 연다. 그리고 또 다른 곳으로 걸음을 옮긴다. 머리와 목에 느껴지는 편안함과 함께 그곳에 도착하니, 밤과는 다른 느낌을 풍기는 그 누군가가 서 있다. 이제 나쁜 습관은 누군가를 향한 그것 하나면 족하리라.
“아버님 어머님, 결혼을 허락해 주십시오!”
 
글 | 유일한   사진 | 최재혁

SPECIFICATION
길이×너비×높이  5316×1978×1483mm
휠베이스  3194mm  |  엔진형식  ​​​​​​V8 터보, 가솔린
배기량 ​​​3996cc  |  최고출력  ​​550ps
최대토크 ​​78.5kg·m  |  변속기  8단 DCT
구동방식 ​​​​ AWD  |  복합연비  -
가격  3억330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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