랜드로버 디펜더 90, 조금 불편해도 괜찮아!

  • 기사입력 2021.09.09 09:09
  • 기자명 모터매거진

개성 하나는 철철 흘러넘치는 녀석을 만났다. 디펜더90이다. 외모부터 실내까지 고급스러운 오프로드 감성에 제대로 취할 수 있는 차다. 110과는 비슷한 듯 같은 매력을 뽐내는 90을 만나보자.

요즘 도로에서 디펜더110을 꽤 자주 만난다. 그때마다 특유의 강렬한 인상에 군침이 흐르는 것을 꾹 참았다. 그런 디펜더가 문짝 두 개를 덜어내어 3도어 SUV로 등장했다. 짜리몽땅한 디펜더90을 만나니 참아오던 군침이 질질 흘러 티셔츠를 적실 정도다.첫인상은 짧고 뚠뚠하다. 뚱뚱하다가 아닌 뚠뚠하다라는 신조어를 굳이 사용한 이유는 그만큼 신선하고 젊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키도 크고 길이도 짧은 녀석이 볼륨감까지 가지고 있으니 도로 어디에 세워 놔도 한눈에 발견할 수 있다.

이름 뒤에 붙은 숫자 90, 110은 헤리티지를 계승하는 이름이다. 디펜더 1세대 모델 역시 90과 110 모델이 있었는데, 이는 각 휠베이스의 인치를 뜻하며 1세대 모델의 3도어 모델의 휠베이스는 90인치, 5도어 모델은 110인치였다. 비록 지금의 2세대 디펜더90의 휠베이스는 약 101인치에 달하지만 말이다. 숏보디 모델이 왜 필요한지 묻는다면, 답은 당연히 오프로드 성능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차체의 길이가 길수록 복잡한 지형을 타고 넘을 때 차체 가운데에 장애물이 걸리는 것과 같은 한계가 생기기 때문이다.

가장 눈에 띄게 바뀐 점은 당연히 옆모습이다. 짧은 오버행을 통해 디펜더 특유의 강렬한 실루엣을 만들면서 면이 넓은 사각형이 곳곳에 쓰였다. 도어, 2열 윈도, 알파인 글래스, 공기 흡입구 등 다양한 부분에서 일관적인 디자인 언어를 유지하고 있다.
앞모습과 뒷모습은 110 모델과 같다. 여전히 든든한 악동의 이미지다. 우선 엉덩이에 매달린 커다란 스페어타이어는 오프로더의 상징답게 그 위용을 자랑한다. 무겁게 열리지만 소프트 클로징 기능을 탑재한 트렁크로 편의성을 더했다. 220V 아울렛을 트렁크 내부에 장착했는데 도강하는 과정에서 방수를 위한 고무 실링을 장착한 디테일도 엿볼 수 있다. 차의 길이를 줄이는 과정에서 트렁크 공간이 많이 희생됐다. 물론, 2열을 접으면 공간이 늘어나긴 하지만 평탄화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편이라 차박은 포기해야 할 것 같다. 여기에 아쉬운 점이 하나 또 있다. 2열을 눕히고 나면 다시 세우기가 번거롭다는 것. 트렁크에서 2열 시트를 세우기 위한 보조 장치가 없어서 상당히 불편하다. 프리미엄급의 가격을 생각하면 실망스러운 부분이 아닐 수 없다.

묵직한 도어를 열고 디펜더에 올라타 보자. 약간 힘이 들 정도로 확실히 높다. 110의 경우 에어 서스펜션이 장착되어 승하차 시 높이를 조절할 수 있지만, 90은 에어 서스펜션이 빠져있다. 183cm인 내 키에도 타고 내리기가 약간 버겁다. 옵션으로 도어 스텝을 선택할 수 있는데, 웬만하면 꼭 설치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인테리어 디자인 역시 110과 동일하다. 차에 필요한 대부분의 조작을 한 곳에 모은 멀티 펑션 다이얼과 버튼들은 둔탁한 클릭감을 가지고 있다. 몇 번 조작해보면 금세 편안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 큰 장점이다. 센터페시아에서 센터 콘솔까지 흘러넘치는 버튼들을 가지고 있어 손이 허둥대는 것보다 이것이 훨씬 낫다. LG와 함께 만든 피비 프로(Pivi pro)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동작이 빠릿빠릿하고 UI 디자인이 스마트 기기처럼 세련됐다. 특히 폰트가 예뻐서 마음에 든다. 여러 수입차들을 다양하게 경험해봤지만 이렇게 폰트까지 신경 쓴 경우는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오프로더다운 디테일은 빼놓을 수 없다. 대시보드를 가로지르는 마그네슘 빔을 통해 만든 손잡이는 오프로드를 달리는 SUV라면 빠져선 안 될 필수 요소이며, 대시보드 양 끝에 마련된 손잡이 역시 그러한 디테일의 하나라고 볼 수 있다. 특히 광활한 수납공간에도 이러한 배려를 찾아볼 수 있다. 대부분의 수납공간 안쪽은 미끄러지지 않는 고무 재질로 마감했다. 대시보드 수납공간의 바닥은 물론, 컵 홀더 안쪽의 볼록하게 튀어나온 고무는 음료를 놓아도 흔들리거나 떨어지지 않게 단단하게 붙잡아준다. 차가 쉴새 없이 흔들리는 오프로드 주행 중에 물건들이 흔들리거나 덜그럭대는 소리가 나지 않도록 해주는 센스 있는 디테일이다. 게다가 콘솔박스를 열면 냉장고 기능도 포함하고 있다. 깊은 산 속까지 들어가고 나서도 시원한 물 한 모금을 마실 수 있는 꿀 같은 기능이다.

앞서 소재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을 덧붙이자면, 디펜더의 인테리어가 보기에는 거칠지만 만져보면 꽤 고급스럽다. 손에 닿는 대부분의 부품이 부드러운 가죽 혹은 고무 재질로 마감되어 있다. 특히 운전대의 스포크도 마그네슘 합금 소재로 만들어졌는데 촉감이 예술이다. 부드러운 모래가 약간 까슬하게 느껴지는, 아주 고운 사포를 만지는 듯한 묘한 매력이 있어 자꾸 손이 간다. 인테리어의 디자인 자체는 날것 그대로가 노출된 느낌인데 고급스러운 마감을 더하니 요즘 유행하는 카페들의 인테리어가 생각났다. 콘크리트와 벽돌을 일부러 노출하는 식의 인테리어를 가진, SNS에서 유행하는 그런 카페들 말이다. 아무튼 마음에 쏙 든다.
2열 시트도 앉아보자. 우선 타고 내리는 것 자체가 번거롭다. 1열 시트를 수동으로 젖히고 버튼을 눌러 앞으로 당겨야 한다. 원터치로 충분히 할 수 있었을 텐데 이렇게 두 단계를 거쳐야 하는 것이 귀찮고 답답하다. 이런 부분에 센스를 발휘하지 못한 랜드로버가 야속하다. 차체의 높이가 높아서 2열을 탑승하는 동작도 불편하지만 그것이 멋과 오프로드 성능을 위해 희생할 특성인 것을 고려하면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뒷좌석에 앉으면 생각보다 넓고 안락하다. 등받이는 꽤 서 있는 편인데 각도 조절은 불가능하다. 2열의 시트 포지션은 1열보다 더 높다. 다행히도 헤드룸은 여유가 있고 레그룸 역시 주먹 두 개가 들어갈 정도로 넉넉해 기대 이상으로 넓은 공간을 확보했다. 큼직한 윈도와 파노라마 선루프가 탁 트인 시야를 제공해서 답답하지도 않다. 이 정도면 성인 2명이 앉아서 장거리 주행을 해도 괜찮을 정도다.

잠들어 있던 디펜더를 깨웠다. 조용하다. 분명 디젤 엔진인데, 웬만한 가솔린 엔진만큼 조용하고 진동도 없다. 마일드 하이브리드 시스템을 품은 3.0ℓ 직렬 6기통 인제니움 디젤 엔진은 수준급의 완성도를 자랑한다. 동승자에게 미리 말해주지 않는다면 한 번에 디젤 엔진이라고 알아차리기 힘들 정도다. 이제 랜드로버 역시 내연기관 시대의 종료를 선언했으니, 마지막 내연기관 엔진이라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이러한 정숙성은 주행 중에도 유지된다. 엔진의 음색이 잘 정돈되어 있으며 회전 질감 역시 우수하다. 가속 페달을 깊게 밟아도 요란하지 않다. 멋있는 바리톤 성악가의 노래를 듣는 것만 같다.
가속 시 느낌은 부드럽고 묵직하게 바닥을 박차고 달려 나간다. 디펜더90의 최고출력은 249마력, 최대토크는 58.1kg·m다. 가속력이 폭발적이진 않지만 2.3t의 무거운 차체를 꽤나 경쾌하게 이끌어 간다. 특히 2000rpm부터 최대토크의 90%가 쏟아져 나오기 때문에 경쾌한 느낌이 더 진하게 느껴진다. 고속 주행에서 재가속해도 강한 펀치력 느껴지고 속도계는 좀처럼 지치는 기색을 보이지 않고 올라간다. 다만 시속 110km부터 풍절음이 심하게 들리는데 각이 바짝 서 있는 디자인에선 어쩔 수 없는 점이다.

차체의 움직임은 조금 출렁대고 뒤뚱대는 편이다. 짧고 높은 차체에 무게도 제법 무거운 편이니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댐퍼가 부드럽게 세팅되어 있어서 롤링과 피칭도 꽤 심하다. 에어 서스펜션을 장착한 110보다는 조금 못한 편이지만, 요철을 지날 때는 충격도 크지 않고 부드럽게 넘어간다. 그래서인지 더 빨리 달리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다. 가속 페달을 짓이기면서 달려야 즐거운 차가 있는 반면 이 녀석처럼 가속 페달에서 힘을 빼고 느긋하게 달리는 게 더 즐거운 차도 있는 법이다.
디펜더의 진가를 알아보기 위해 오프로드로 향한다. 산길을 타기 시작하면서도 온로드에서 느낀 부드러운 승차감은 여전하다. 쉴 새 없이 덜컹거리는 오프로드에서도 편안한 주행 감각을 유지한다. 짧은 휠베이스 덕분에 좁고 굽이진 길을 만나도 부담스럽지 않고, 31.5°의 접근각, 33.5°의 이탈각은 어떤 지형을 만나도 자신 있게 들이댈 수 있다. 터레인 리스폰스 시스템은 지형에 맞춰 똑똑하게 구동력을 배분해주고 디스플레이를 통해 볼 수 있는 클리어 사이트 그라운드 뷰는 차체 아래에 어떤 지형이 있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실시간으로 영상을 비춰주는 것은 아니고, 전방 카메라가 촬영한 영상을 타이밍에 맞춰 차체 바닥의 위치에 보여주는 형식이다. 이와 더불어 센서를 통해 물의 깊이를 파악하고 디스플레이를 통해 정보를 전달하는 수심 감지 기능까지 포함하고 있어 든든함을 더한다.
아웃도어 라이프를 좋아하지만, 대부분의 시간은 온로드를 달려야 하는 이들에게 이만한 차가 또 있을까 싶다. 일상 속에서 오프로드의 감성을 흠뻑 느끼게 해줄 수 있는 차는 많지 않다. 적어도 디펜더는 그중에서 정점에 도달했다. 평소에 뒷좌석이 딱히 필요 없으면서 개성을 중시하는 이들에게 디펜더90은 개성을 표현하는 최고의 수단 중 하나가 될 것이다. 1세대 디펜더가 그러했듯, 2세대 디펜더 역시 하나의 아이콘이 될 수 있을까? 내 대답은 YES다.

글 | 조현규   사진 | 최재혁

SPECIFICATION
LAND ROVER DEFENDER 90 D250
길이×너비×높이  4583×1996×1974mm  |  휠베이스  2587mm
엔진형식 ​​I6 터보, 디젤  |  배기량 ​​​2996cc  |  최고출력  ​​249ps
최대토크  58.1kg·m  |  변속기  8단 자동  |  구동방식  ​​AWD
복합연비  10.2km/ℓ  |  가격  ​​​​​​​​​ 8420만~929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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