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 위에서 항해를, 롤스로이스 던 블랙 배지

  • 기사입력 2021.08.12 11:11
  • 기자명 모터매거진

평소에 판단할 수 있는 기준들이 하나도 들어맞지 않는 자동차를 만나면, 그때는 혼란과 함께 새로운 즐거움이 다가온다. 평범함을 거부하는 그리고 다른 차원에 있는 것 같은 자동차, 롤스로이스는 그 정점에 서 있다. 그리고 블랙 배지는 여기서 약간의 젊음을 더해준다. 

누군가의 외형을 보고 우리는 미남 또는 미녀라고 이야기한다. 그 기준은 사람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어느 정도의 아름다움을 가졌다면 그 안에서 알게 모르게 급을 나누곤 한다. 그런데, 혹시 압도적인 미를 갖춘 사람을 만나본 적이 있는가? 만약 만난다면, 당신의 기준을 들이대 보지도 못한 채 그 자리에서 미에 압도당해 아무 말도 못 하게 될 것이다. 당신과는 다른 공간, 혹은 다른 차원에서 사는 것 같은 느낌이 먼저 들 것이기 때문이다.그동안 꽤 많은 자동차들을 직접 운전해보고 때로는 눈앞에 두고 만나면서 필자에게도 나름의 기준이 생겼다. 그래서 스포츠카라도, 그리고 고급 자동차라도 판단할 수 있게 되었고 비록 비루한 실력이지만 그것을 글로 옮겨 독자 여러분에게 이야기해 줄 수 있는 정도도 되었다고 자부한다. 그런데도 이 자동차만은, 아니 이 브랜드만은 이야기해주기가 참 힘들다. 압도적인 존재감, 그 하나만으로 역할을 다 하기 때문이다.
롤스로이스, 일반적인 기준과 감각으로는 절대로 평가할 수 없는 ‘럭셔리의 정점’일 것이다. 애초에 이 차는 운전자가 아니라 뒷자리에 탑승하는 사람을 기준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이번에 등장한 모델은 운전자를 기준으로 하지만, 그런데도 범접하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다. 롤스로이스에서 우아하게 지붕이 열리는 컨버터블인 던, 거기에 조금은 젊어지기 위해 과감하게 블랙을 더한 ‘블랙 배지’가 오늘의 주인공이다.
이것은 우아한 항해이다

롤스로이스에서 이렇게 과감한 붉은색이 어울렸던 적이 있었던가. 대부분의 롤스로이스라는 것은 침착한 그리고 가라앉는 느낌의 색을 주로 사용한다. 물론 고객의 요청에 따라 ‘어떤 색상이든 만들어낸다’는 것이 롤스로이스의 철학이지만, 화려함을 드러내는 롤스로이스를 본 기억은 손에 꼽을 정도다. 아마도 그동안 롤스로이스를 구매했던 고객들이 나이가 좀 있어서 진중한 삶을 사는 것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좀 더 젊은 라이프를 즐기기 위한 컨버터블에 젊은 롤스로이스를 지향하는 블랙 배지가 어우러졌는데, 색상도 꽤 과감해졌다. 이렇게 되면 다른 자동차의 경우 젊어지는 것을 넘어 경박한 느낌이 나는 경우도 있는데, 롤스로이스에서는 그 이야기를 꺼낼 수조차 없다. 과감한 붉은색이 이렇게 고급스럽게 느껴질 수가 있는 것일까. 붉은 드레스를 입었음에도 감히 가까이에 다가가지 못하고, 사진을 찍는 것조차 실례가 되는 것 같은, 우아한 여배우를 만난 느낌이다.

차체 색상과 크롬으로 감싸인 부품으로 인해 빛나는 우아함과, 검은색으로 감싸여 빛나지 않는 우아함이 조화를 이룬다. 라인으로 기교를 부리지 않고 거대한 면으로 감싸인 측면은, 언급하는 것조차 조심스럽다. 만약 이 면을 눈으로 볼 수 없다 해도, 손으로 면을 훑어가면서 우아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고귀한 장미와 같이 다듬어진 휠은 가운데 절대 흔들리지 않는 두 개의 R을 품고 있다. 어디를 달리든 자신만의 길을 걸으라는 표식이리라.실내도 과감하다. 대시보드 상단과 하단을 가로지르는 붉은색의 라인과 스티치가 ‘우아한 역동’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것 같다. 지금까지 붉은 스티치를 적용한 자동차는 참 많이 보아 왔지만, 이만큼 선명하면서도 완벽을 보여주는 자동차를 본 적은 없었다. 스티어링 휠의 림 안쪽도 붉은색의 가죽으로 장식했는데, 잡자마자 바로 느낌이 온다. 아니, ‘우아하게 도로를 지배해 주세요’라고 여신이 옆에서 속삭이는 것 같다.

시트는 ‘더 이상의 안락함이 존재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최상이다. 다른 자동차와의 비교 자체가 무의미하다. 이 시트에 앉아 스티어링 휠을 잡는 사람은 아마도 세상을 다 가지고 싶은 야심가이거나, 우아함의 극을 추구하는 아름다운 사람일 것이다. 기능을 조작하는 버튼이나 레버도 허투루 만들지 않았다. 눈을 감고 스위치를 눌러보면, 마치 악기를 다루는 것 같은 자연스러운 눌림에 깜짝 놀라게 될 것이다.

이제 던과 함께 항해를 즐겨볼 시간이다. 다른 자동차라면 주행이지만, 롤스로이스라면 더 이상 주행이 아니라 항해라고 해야 한다. 직접 운전해 보면 알 것이다. 고요한 것 같은 잔잔한 세상을 우아하게 헤쳐나가는 그 모습은 마치 잔잔한 호수를 우아하게 가르고 나가는 요트의 그것이다. 지붕을 닫고 있으면, 바깥의 소리는 잘 들리지 않는다. 그저 오른발의 움직임에 따라 ‘파워 리저브’ 게이지가 우아하게 춤을 추는 것을 느낄 뿐이다.
세상의 소리가 궁금해질 때는 가볍게 지붕을 열면 된다. 우아한 항해에 속도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설령 그동안 속도가 중요했다고 해도, 롤스로이스 던에 탑승한 이상 속도라는 개념은 그냥 사라져 버린다. 지붕을 열면, 또 다른 신기함이 펼쳐진다. 세상의 소리는 조금씩 들려오지만, 탑승객을 어지럽히는 바람은 잘 들어오지 않는다. 지붕을 연 상태에서도 눈을 보호하기 위해 무언가를 쓸 필요가 없으니, 이것이야말로 신세계가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토크가 높으면서도 우아하게 회전하는 12기통 엔진을 탑재했다든지, 자동차의 위치를 파악하고 자동으로 변속을 결정하는 변속기가 있다든지 그런 사소한 것들은 사실 운전자가 몰라도 된다. 그보다는 오른발에 굳이 힘을 주지 않아도 원하는 속도에 척척 도달하고 그 상태에서도 흔들림이 없다는 것이 중요하다. 롤스로이스에서 흔들린다는 것은 절대 용납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니 말이다. 탑승객을 불안하게 만든다면, 그것은 롤스로이스가 아니다.
젊은 분위기는 내지만, 우아함은 절대 잃지 않는다. 아니, 우아함이 극으로 추구되어 오히려 젊음이 되었다고 해야 할까. 비로소 일전에 누군가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젊다는 것은 말이지, 어리다는 것과 같은 말이 아니야. 언젠가 그 뜻을 알게 된다면, 그때는 이 맛있는 술을 함께 나누자.” 당시에는 그 말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롤스로이스 던 블랙 배지의 스티어링을 잡은 지금은 그 말을 조금 알 것 같다.
우아함은 하나의 예술이고 또한 젊음이다. 그리고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아우라다. 만약 그것을 넘어서서 우아함을 잡았다면, 그리고 말을 걸었다면 과감하게 세상을 헤쳐나갈 수 있으리라. 롤스로이스 던 블랙 배지를 잡았다면, 당신은 도로를 그리고 세상을 좀 더 우아하게 헤쳐나가고 있을 것이다. 그것을 나이가 들고 나서야 그리고 잠시나마 블랙 배지의 스티어링을 잡아보고 나서야 알았다. 아직 늦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가 나누자고 했던 맛있는 술은 아직 남아 있을까?
 
글 | 유일한  사진 | 최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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