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WINGS, 벤틀리 컨티넨탈 GT V8

  • 기사입력 2021.08.11 12:20
  • 기자명 모터매거진

인간이 금속으로 빚어낸 결과 중 최고다.

지금으로부터 10년 후에 되돌아봐도 기억에 남을 촬영이었다. 만나는 순간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차는 처음이다. 내놓으라는 명차들을 수없이 만나 봤지만 이 정도 충격은 없었다. 게다가 난 슈퍼카를 좋아하는 전형적인 보통 남자임에도 이 디자인에 현혹되었다. 극단적으로 짧은 프런트 오버행으로 역동성을, 긴 리어 오버행으로 우아함을 표현한다. 풀사이즈 SUV에나 꼽힐 만한 22인치 휠도 지나치지 않다. 라디에이터 그릴도 눈빛도 모두 반짝거린다. 누가 크롬을 남발하면 촌스럽다고 했는가? 곳곳을 크롬으로 장식했지만 세련된 외모가 무엇인지 제대로 보여준다. 오묘한 푸른 입자가 맴도는 검정 물감을 바른 벤틀리 컨티넨탈 GT를 만났다.

컨티넨탈 GT는 벤틀리의 플래그십 모델은 아니다. BMW의 M3, 포르쉐의 911처럼 브랜드의 아이콘이다. 벤틀리는 본디 스포츠카 브랜드이기에 자신들의 정체성은 컨티넨탈 GT에 진하게 묻어난다. 지금으로부터 약 20년 전인 2002년, 1세대가 등장하면서 메가 히트를 쳤고 지금 3세대로 진화했다. 이전 세대 모델에서 공통된 약점이 하나 있었다. 폭스바겐 페이튼의 전륜 기반 플랫폼을 사용했기 프런트 오버행이 길어 프로포션이 예쁘지 않았던 것. 현세대는 포르쉐가 주도한 MSB 플랫폼을 사용해 큰 그림부터 잘 그릴 수 있었다. 시각 전문가는 아니지만 적어도 나와 길거리를 걷는 사람들의 눈에는 완벽한 디자인이다.

그렇다면 인테리어는? 묵직한 도어를 여니 2열 사이드 글라스도 살짝 내려간다. 컨티넨탈 GT는 B-필러가 없는데 완벽한 차음을 위함이다. 기분 좋은 배려를 맞으며 안으로 들어간다. 화려하다. 대칭 강박증을 가진 디자이너의 솜씨인가 보다. 데칼코마니 같은 센터페시아에 디테일은 외관처럼 크롬으로 꾸며 화려하다. 롤스로이스가 담백하게 고급스럽다면 벤틀리는 격렬하게 고급스럽다. 하이라이트는 디지털과 아날로그 세상을 오고 갈 수 있는 로테이트 디스플레이다. 내비게이션 때문에 주로 12.3인치 터치 디스플레이로 설정해 놓지만 아는 길이라면 클래식한 게이지를 두고 주행하는 게 훨씬 더 느낌 있다. 특히 좌회전이나 우회전 시 나침반이 방향을 돌리는데 이때 요트를 타고 있는 기분이 들어 좋다. 요트를 타본 적은 없지만 귀족이 된 것 같아 좋다. 그냥 좋다.   
최고급 가죽으로 감싼 시트는 착좌감이 훌륭하다. 그 어떤 의자보다 편안하다. 약간의 사이드 볼스터도 있어 코너에서도 어느 정도 운전자를 잡아 준다. 쿨링, 히팅은 물론 마사지 기능까지 갖춘 풀옵션 시트다. 헤드레스트에 새긴 날개는 인스타그램용이다. 시트와 스티어링 휠 정렬도 딱 맞다.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 정렬이 대부분 차에서는 지켜지지 않는다. 이 글을 읽고 나서 자신의 차에 가서 확인해 보면 당황스러울 수도 있다. 또한 A필러가 슈퍼카 수준으로 누워 있지만 전방 시야가 전혀 좁지 않으며 플로어 타입 페달로 발목에 무리가 가지 않는다. 인체 공학에 신경을 많이 썼다.
이제 엔진 스타트 버튼을 누르고 컨티넨탈 GT를 깨운다. 깜짝 놀랐다. 배기 소리가 우렁차다. 얌전할 줄 알았는데 거친 녀석이다. 전형적인 8기통 사운드에 톤을 부드럽게 만졌다. 12기통 모델도 존재하지만 만약 내가 산다면 8기통을 고를 것이다. 이유는 2가지. 우선 벤틀리의 시그니처 엔진은 V8 OHV 6.75ℓ다. 얼마 전 단종된 뮬산이 마지막으로 품었다. 배기량이 6.75ℓ도 아니고 OHV 타입도 아니지만 실린더 수라도 같으니까 끌린다. 두 번째 이유는 12기통보다 가볍다는 것. 안 그래도 무거운 차인데 조금이나마 가벼운 파워 유닛이 핸들링에 유리하다. 그렇다고 8기통이 12기통보다 파워에서 아쉽지도 않다.

V8 4.0ℓ 트윈 터보 엔진은 최고출력 550마력, 최대토크 78.5kg·m의 힘을 생산하고 8단 듀얼 클러치 변속기를 통해 네 바퀴를 굴린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4.0초, 최고시속은 318km에 달한다. 이 차의 예비 오너들은 기름값 걱정을 하지 않겠지만 연비도 괜찮다. 복합 연비는 7.4km/ℓ에 밟으면 머플러 커터에서 500원짜리가 쏟아지지만 얌전하게 주행하면 4개의 실린더만 작동해 15km/ℓ는 쉽게 찍힌다. 주유소 가기 귀찮으면 달래면서 타면 된다. 드라이빙 모드는 컴포트, 벤틀리, 스포츠, 그리고 커스텀으로 구성되어 있다. 컴포트와 스포츠 모드 사이에 벤틀리 모드가 있는데 이것이 벤틀리가 지향하는 드라이빙 방향이다. 편하면서 스포티하게 달리기. 장르로 말하자면 GT다. 모델명도 GT가 붙은 진짜 GT카다. 시동을 켜면 기본적으로 드라이빙 모드가 벤틀리에 놓여 있다.미끄러지듯 전진하는 승차감이 일품이다. GT카지만 일상 주행에서는 럭셔리 세단처럼 움직인다. 거친 노면의 상황을 운전자에게 알리지 않는다. 주어진 시간은 3일. 시간이 없으니 스포츠 모드에 두고 본격적으로 가속 페달을 밟아 본다. 폭발적으로 튀어 나간다. 무거운 공차중량이 무색할 만큼 경쾌하게 달린다. 어지간한 고성능 차로 비비기 힘들 정도의 성능이다. 여기에 배기 시스템의 가변 플랩이 열리면서 브리티시 머슬카로 돌변한다. 벤틀리에서 이런 사운드가 나올 줄은 예상하지 못했다. 음색은 묵직한 중저음이고 음량도 크다. 스로틀이 닫히면 백프레셔가 터지는데 지속 시간이 길다. 보통 차들이 ‘빠바방’이라면 ‘빠바바바바바바방’ 한다. 필력이 달려서 표현을 못 하겠다. 유튜브에서 꼭 들어 보길∙∙∙.

고속도로에 벤틀리가 떴다. 모두 길을 비켜야 한다. 괴력을 가지고 있기에 스피드미터 바늘이 태코미터 바늘처럼 올라간다. 이는 변속기의 덕도 크다. 변속 속도가 빠르고 다운시프트에도 적극적이어서 흥이 멈추질 않는다. 그리고 차가 워낙 안정적이다 보니 겁쟁이도 초고속을 즐길 수 있다. 속도가 올라갈수록 하체가 더욱 탄탄해진다. 댐퍼에 에어스프링을 매칭했는데 조율 실력이 상당하다. 이 서스펜션을 믿고 코너도 들이대 본다. 언더스티어 성향을 보이지만 장르와 몸무게를 고려하면 그 농도가 연한 편이다. 전자식 가변 안티 롤바가 장착되어 있어 좌우 롤링도 크지 않다. 복합코너를 만나도 섀시가 엉키지 않고 쉽게 돌파한다. 한쪽으로 쏠린 중량을 반대쪽으로 넘기는 리듬도 준수하다.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코너링 퍼포먼스가 높다.   잘 달리는 만큼 잘 서야 한다. 브레이크 캘리퍼 사이즈만 봐도 어마어마하다. 거대한 림에 닿을 정도의 볼륨감을 자랑한다. 마음에 드는 것은 리어 브레이크도 모노 캘리퍼인 점이다. 성능도 성능이지만 보기에 좋으니까. 여하튼 브레이크 시스템은 출력과 섀시를 다루기에 충분하다. 노즈다이브 혹은 브레이크스티어 현상을 잘 억제했고 고속에서 강한 제동이 연거푸 들어가도 지치지 않는다. 게다가 코너를 돌면서 브레이킹이 걸려도 차체가 안쪽으로 말리지 않으니 마음 놓고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도 된다. 캘리퍼 안에 피스톤이 10개나 되니 초반 응답성이 살짝 떨어지는 데 이는 적응하면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시승과 촬영은 끝났고 글을 쓰는 지금 벌써 그립다. 훌륭한 차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3일을 보냈다. 비싼 차를 무탈하게 보낸 것은 다행이고 함께한 순간이 행복했다. 차를 워낙 많이 타다 보니 좋은 차를 타도 감흥이 떨어지는데 이 녀석은 무미건조해진 내 감수성을 말랑말랑하고 촉촉하게 만들어줬다. 만인이 쳐다보는 환상적인 디자인에 매콤하게 달려준다. 결정적으로 타고 있는 순간 계급이 올라가는 자본주의의 달콤함도 맛봤다. 퓨어한 스포츠카를 좋아하지만 그 ‘퓨어’가 밥 먹여 주지 않는다는 것도 컨티넨탈 GT를 통해 깨달았다. 내가 사지 못한다는 큰 단점을 제외하면 완벽한 차다. 진짜 완벽한 차.

글 | 안진욱   사진 | 최재혁SPECIFICATION_ BENTLEY CONTINENTAL GT V8길이×너비×높이  4850×1965×1405mm  |  휠베이스  2851mm엔진형식 ​​V8 터보, 가솔린  |  배기량 ​​​ 3996cc |  최고출력  ​​550ps최대토크 ​​78.5kg·m  |  변속기  ​​​8단 듀얼 클러치  |  구동방식  ​​AWD복합연비  7.4km/ℓ  |  가격  ​​​​​​​​​ 3억290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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