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이 아닌 모험을 향해! 할리데이비슨 팬 아메리카

  • 기사입력 2021.08.09 08:38
  • 기자명 모터매거진

이런 날이 올 것이라고는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흙먼지가 풀풀 날리는 오프로드를 달리게 될 줄이야. 그동안 할리데이비슨이라고 하면 가죽으로 된 재킷을 입고 심플한 형태의 헬멧을 쓴 뒤 특유의 소리를 내며 잘 포장된 도로를 장시간 질주하는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1960년대부터 그런 스타일의 모터사이클을 주로 만들었으니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사실 할리데이비슨은 가슴을 뜨겁게 만드는 모터사이클을 만들 줄 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할리데이비슨이 오프로드를 다니는 모습은 절대 이상하지 않다. 모터사이클을 처음 만들었을 때는 포장된 도로도 별로 없었던 시절이었고, 자동차는 물론 모터사이클도 거친 길을 다니는 게 당연했을 것이다. 지프의 조상인 윌리스 MB가 거친 전장을 누비던 그때, 옆에서는 할리데이비슨도 같이 달리고 있었다. 모터사이클을 사랑하는 이들은 할리데이비슨을 타고 오지로 들어가 캠핑을 즐기기도 했다.

그러니까 할리데이비슨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오프로드 정신을 현재에 와서 부활시킨 것이다. 그리고 아주 강렬한 이름을 붙여 주었다. 팬 아메리카. 북미 대륙의 끝 알래스카 프루드호 베이(Prudhoe Bay)와 남미 대륙의 끝 아르헨티나 우수아이아(Ushuaia)를 잇는 길고 거친 길이다. 그 모든 곳을 다닐 수 있다고 장담하니, 분명히 달리는 성능이 우수한 모터사이클이 되었으리라. 과연 어떤 도로가 필자를 기다리고 있을지, 설레는 마음으로 헬멧을 써 본다.
디자인만이 전부는 아니다


팬 아메리카의 모습은 낯설다. 스포츠카만 만들어오던 포르쉐가 SUV인 카이엔을 세상에 처음 공개했을 때 사람들이 받았던 충격을 그대로 느낄 수 있다. 그 안에 할리데이비슨 모델들의 핵심이 되는 디자인을 녹이긴 했지만, 그것은 이 브랜드의 마니아가 아니라면 쉽게 알아보기 힘들 것이다. 그 동안은 할리데이비슨을 모르는 사람도 디자인만 보고 모터사이클을 맞출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게 불가능해진 것이다.

앞바퀴를 차체 방향으로 바짝 당겨온 모습, 사각형의 거대한 LED 헤드램프, 샤크 노즈(Shark Nose) 페어링, 모든 것이 오프로드를 달리기 위한 기능을 강조한 형태다. 심지어 연료탱크의 형상조차 그렇다. 바늘 대신 디지털을 품은 계기판은 이제 모터사이클에서도 한눈에 다양한 정보를 확인하도록 만든다. 본래 할리데이비슨은 방향지시등 버튼을 좌우 핸들바에 분배하는데, 팬 아메리카는 왼쪽에 모두 몰아넣었다.

할리데이비슨의 상징과도 같은 V형 2기통 엔진은 차체 한가운데 정확하게 배치됐다. 프레임과 함께 엔진을 새로 만들면서 엔진이 프레임의 일부가 되도록 했고, 전체적인 디자인과 잘 어우러지도록 다듬어냈다. 다른 모델들과는 달리 빈틈이 잘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특징이다. 준비된 모델들은 모두 캐스트 휠을 장착했는데, 오프로드를 본격적으로 달리고 싶다면 와이어 스포크 휠을 장착한 모델이 수입될 때까지 기다려야 할 것 같다.

외형은 이 정도만 평가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주행해 볼 차례다. 아 참, 주행 전 명심할 것이 있다. 키가 크다면 상관없는 이야기지만, 만약 자신의 키가 작고 다리도 짧다면 팬 아메리카에 오르기 전에 반드시 시동을 걸어두는 것을 추천한다. 옵션으로 장착된 ARH(Adaptive Ride Height)가 작동하면서 시트를 비롯해 차체가 전체적으로 낮아지기 때문이다. 덕분에 일반적인 멀티퍼퍼스 모터사이클과는 다르게 상당히 쉽게 모터사이클에 오를 수 있다.
차체가 낮아졌으니 오프로드 주행이 불리해지리라 생각한다면, 그 역시 기우다. 일단 출발해서 조금만 속력을 높이면, 차체가 다시 높아지면서 적절한 높이를 찾는다. 오프로드 주행을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주행 중 신호로 인해 정지해야 하는 상황이 오면, 그때는 다시 차체가 낮아진다. 그래서 키가 작아도 멀티퍼퍼스 특유의 주행을 즐기는 데 문제가 없다. 이 옵션 하나만으로도 할리데이비슨을 사야 하는 이유가 성립되는 셈이다.

팬 아메리카용으로 새로 개발한 ‘레볼루션 맥스 1250’ 엔진은 부드럽게 돌아간다. 그동안 툴툴대는 느낌의 할리데이비슨 엔진만 경험했다면 꽤 놀랄 것이다. 오프로드를 주행하기 위해 성격이 완전히 달라졌기 때문이다. 저속 회전에서도 높은 토크를 사용할 수 있었던 이전과는 달리, 새 엔진은 최소 6천 회전 이상 높여야 토크가 발휘되고, 그때야 비로소 출력을 조금씩 내기 시작한다. 만약 일반도로를 고속으로 달리고 싶다면, 오른손에 꽤 힘을 주어야 할 것이다.
일반도로 주행에서는 편안함과 평이한 모습이 동시에 다가온다. 토크가 생각 외로 낮게 느껴지는데, V형 엔진을 탑재한 것 치고는 놀라운 일이다. 일반적으로 V형 엔진은 같은 배기량 내에서 강력한 ‘토크’를 만들어내며, 모터사이클에서도 그 부분을 강조하기 때문이다. 시승 코스는 고속 주행이 주가 되었지만, 나중에 시간을 따로내서 저속 주행도 시험해보고 싶다. 정체가 이어지는 도심을 통과할 일도 분명히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오프로드는 어떨까? 주행 경험은 적지만, 용기를 내서 ABS와 TCS를 모두 끄고 거친 길에 진입해 보았다. 자갈을 밟을 때마다 차체가 조금씩 흔들리지만, 오프로드를 주행하는 데 있어 방해되는 것은 없다. 토크가 낮아서 불만이 있었는데, 오프로드에서 차체를 정밀하게 제어할 때는 이쪽이 오히려 더 유리하다. 엉덩이를 들고 다리로 진동을 느끼면서 주행을 즐기는 것도 색다른 재미다. 거친 길을 의연하게 헤쳐나가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할리데이비슨이 처음으로 만드는 멀티퍼퍼스라서 주행 전에는 오프로드 주행 능력을 의심했었는데, 막상 달려보니 그 의심은 깨끗이 사라졌다. 한동안 이런 오프로드 주행용 모델을 만든 적이 없다 보니, 오히려 정석대로 만들어 낸 것 같다. 그래서 오프로드 주행 중 특별하게 보여준 할리데이비슨만의 특성은 없었지만, 눈에 띌 만큼 부족한 면도 없었다. 도랑을 통과하면서 그리고 모래 언덕을 정복하면서 오랜만에 오프로드 주행의 즐거움을 느낄 수 있었다.
할리데이비슨의 첫 번째 멀티퍼퍼스, 팬 아메리카는 ‘멀티퍼퍼스의 모범답안’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마음에 들었고, 다른 모델들과 비교해도 구매 가치는 충분하다. 무엇보다 키가 작은 라이더들도 품어준다는 면에서 그렇다. 단 한 가지 아쉬운 것은 ‘할리데이비슨의 색채’가 옅다는 것이다. 브랜드 내에서 처음 등장한 장르이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기도 하다. 새로운 장르와 시장에 도전하는 할리데이비슨이 어떤 미래를 그려나갈지, 그것을 함께 즐겨보도록 하자.

글 | 유일한
 
SPECIFICATION
HARLEY DAVIDSON PAN AMERICA
길이×너비×높이  2265×965×1510mm  |  휠베이스 1580mm
엔진형식  V2, 가솔린 |  배기량  1252cc  |  최고출력  152ps  |  최대토크  13.0kg·m
변속기  6단 수동  |  구동방식  ​RWD  |  복합연비  -  |  가격  3190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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