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전쟁, 그리고 자동차 전쟁 유니티 VS 언리얼

  • 기사입력 2021.07.30 10:16
  • 기자명 모터매거진

게임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들어봤을 게임 엔진. 현재는 유니티 엔진과 언리얼 엔진이 경쟁하고 있는 중이다. 그런데 이 두 엔진이 게임을 넘어 자동차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왜 그렇게 되는 걸까?

뜬금없는 이야기로 들릴 수도 있겠지만, 필자는 게임을 즐긴다. 어린 시절 즐겼던 소닉, 슈퍼마리오 시리즈부터 시작해 ‘스타크래프트’를 지나 ‘언차티드’ 시리즈와 ‘데드 스페이스’ 시리즈를 정복하고 현재는 스마트폰 게임부터 컴퓨터, 콘솔 게임까지 가리지 않고 즐기고 있다. 그런 게임들을 즐길 때마다 자주 보이는 로고가 있는데, 대표적인 것이 바로 ‘언리얼 엔진(Unreal Engine)’이다. 유니티 엔진은 게임에 적용돼도 로고가 잘 등장하지 않는다.어쨌든 최근에 출시되는 게임들을 즐기다 보면, 캐릭터의 빠른 움직임, 그리고 현실과 거의 비슷한 동작과 그래픽에 감탄하고 만다. 그 뒤에는 게임 속에서 적용되는 물리현상을 제어하는 ‘게임 엔진’이 있다. 앞서 언급한 유니티와 언리얼이 대표적인데, 자체적으로 게임 엔진을 개발하는 곳도 있지만 대부분은 잘 제작된 게임 엔진을 구매해서 사용한다. 이제는 게임 엔진이 좋아질수록, 움직임과 그래픽이 동시에 상승한다.

게임에 묶이지 않는 게임 엔진들그 게임 엔진이 게임을 벗어나 다른 영역에서 활약한 것은 최근의 일이다. 게임이 예술의 영역까지 넘보게 될 정도로 게임 엔진이 발전하면서 생긴 일인데, CG가 대량으로 필요한 영화 및 드라마 산업에서 사용되고 있는 중이다. 그중에서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것이 바로 ‘용갑합체 아머드사우루스’인데, 변신하는 공룡들의 사실적인 움직임을 만드는 데 ‘언리얼 엔진’을 사용하고 있다. 배우의 연기에 그래픽을 실시간으로 올려서 확인할 수 있기에 큰 환영을 받고 있다.그러면 그 게임 엔진이 자동차 분야에서는 어떻게 활용되고 있을까? 제일 큰 변화는 디자인 단계에서부터 나온다. 여기서 잠깐 자동차 디자인의 변화를 간단하게 알아보자. 과거에는 자동차 디자이너가 자동차의 모든 부분을 손으로 직접 그려야 했는데, 1960년대에 CAD의 선구자 패트릭 핸래티(Patrick Hanratty)가 컴퓨터 보조 설계 시스템을 개발하면서 많은 부분이 변했다. 이후 1970년대부터 CAD가 본격적으로 수용되면서 설계와 생산 사이의 격차가 줄어들었다.

그래도 비효율적인 부분은 남아 있다. 수천 가지 부품으로 만들어지는 자동차 자체가 문제다. 각 부품이 생산에 들어가기 전에 디지털 제작을 거치는데, 그 데이터를 TV 광고를 위해 재제작하고 휴대폰을 비롯한 모바일 환경에 맞게 또다시 만들어야 한다. 그 과정을 자주 거치다 보니 효율이 좋지 않아졌다. 만약 그런 단계들을 건너뛰고 하나만 만들어도 설계 및 검증부터 판매를 위한 홍보물까지 만들 수 있다면? 효율이 크게 증가할 것이다.

게임 엔진은 바로 이 분야에서 활약한다. 만약 어떤 자동차의 콘셉트를 잡는다고 해 보자. 그 차는 스포츠카가 될 수도 있고 가족을 위한 미니밴이 될 수도 있다. 최근의 추세에 따라 SUV로 만들어진다 하면, 주 무대가 도심인지 또는 교외인지 생각해야 한다. 만약 이런 콘셉트를 디자이너에게 말로 전달한다면, 수많은 스케치를 받은 후 고민에 빠지게 될 것이다. 이 과정에서 게임 엔진을 사용하면, 명확한 콘셉트를 가진 자동차를 디자이너에게 바로 전달할 수 있다.
게임 엔진을 통해 만들어진 가상의 3D 자동차는 피드백도 빠르다. 디자이너는 콘셉트를 받은 뒤 미세 조정과 다듬기를 거친다. 그 과정에서 엔지니어가 실시간으로 개입해 구현이 가능한 디자인을 결정하고 때로는 수정을 요구할 수 있다. 예전이라면 직접 점토를 주물러 모형을 만들고 모두 한자리에 모여 품평회를 거쳐야 하지만, 이제는 누가 어디에 있든지 간에 같은 시간에 VR 기기를 사용해 접속하고 품평회 겸 수정 과정을 거치면 된다.

현대자동차가 만든 수소 콘셉트 트럭 ‘넵튠’이 이런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 대표적인 사례다.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디자인센터의 디자이너들이 시간을 내서 비행기를 타고 한 곳에 모일 필요가 없으며, 색상도 소재도 마음대로 선택해 볼 수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 번지면서 게임 엔진을 통한 자동차 개발은 또 다른 장점을 갖고 왔다.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일 필요가 없기에 그만큼 감염 위험을 줄이고 건강을 지킬 수 있다.
시간은 짧게, 효율은 극대로
자동차 제조는 생각 외로 어렵다. 공장에서 실제로 자동차를 제조해 보고 완성도를 본 뒤 수정을 거치기에(양산이 어려워 자동차의 부품 일부가 수정되는 경우도 꽤 있다. 심한 경우 디자인이 변하기도 한다) 본격적인 양산까지 약 6개월 정도가 소요된다. 만약 그 제조 과정을 가상으로 진행해 보고 실시간으로 수정할 수 있다면? 게임 엔진과 함께한다면 그것도 가능하다. 심지어 디자인 과정부터 개입하는 것도 가능하므로, 그만큼 기간을 더 단축할 수 있다.

공장 내 물류 이동을 시험해 볼 수 있고, 그 과정에서 경로를 수정하는 것도 가능하다. 노동자가 어느 위치에 서서 조립하는 것이 효율적인지, 그때 로봇은 어디를 담당해야 제조 시간이 단축되는지도 확인할 수 있다. 시험한 결과를 바로 로봇에 적용하면, 즉시 노동자를 도와 제조에 돌입할 수 있다. 기존의 시뮬레이션처럼 수학 공식을 출력해 숫자를 일일이 파악하는 것이 아니라, 실시간으로 움직임을 확인할 수 있으니 그만큼 노동자 교육에도 효과적이다.
마케팅과 관련된 시간도 줄어든다. 자동차 데이터가 미리 준비되는 만큼, 콘셉트를 듣고 이해한 뒤 적절한 형태의 마케팅을 바로 만들어낼 수 있다. 언리얼 엔진의 경우 2016년에 맥라렌 570S 시네마틱 트레일러(Cinematic Trailer)를 만들며 이 분야에 발을 들였는데, 현재는 전 세계 BMW 대리점에서 감성 자동차 경험(Emotional Vehicle Experience) VR 시스템을 사용 중이다. 고객들은 BMW 모델을 가상 공간에서 실제인 것처럼 경험할 수 있으며, 판매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시장별로 대표 차량을 하나 골라서 생산에 들어갔다가, 색상이나 외관 옵션이 해당 지역에 맞지 않는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던 시대는 끝났다. 매년 각 지역의 시장과 대리점 그룹을 위한 홍보물 제작에 수백만 달러가 소모되는데, 이런 비효율을 최소화하면 상당한 비용을 절약할 수 있다. 고객은 자동차의 색상과 실내 장식을 미리 체험해 볼 수 있으며, 그 과정에서 이루어지는 모든 내용을 수집해 맞춤형 마케팅 자료로 만들면 잠재적 구매자를 평생 고객으로 만들 수 있다.
유니티 VS 언리얼, 싸움은 이제 시작이다
여기까지 오면 궁금한 것은 하나일 것이다. 어떤 게임 엔진을 선택하는 것이 자동차에 좋은지 말이다. 그런데 사실 이 질문이 의미가 없는 것이, 게임의 콘셉트에 따라 게임 엔진을 선택하듯이 자동차 제조사도 자신의 콘셉트에 따라 게임 엔진을 선택한다. 굳이 나누자면, 유니티 엔진은 현재 아우디와 토요타가 주로 사용하고 있다. 언리얼 엔진은 BMW와 맥라렌이 사용한다. 그런데 두 게임 엔진을 동시에 사용하는 곳도 있으므로 구분이 애매하다.
앞으로는 게임 엔진이 제작은 물론 시험주행 등 다양한 분야에 개입하게 될 것이다. 실제 자동차를 달리게 해야만 시험주행이 완성된다고 할 수도 있지만, 현실을 가상 세계로 완벽하게 옮겨오는 것이 게임 엔진의 목표인 만큼 앞으로는 부품의 내구성 등을 가상 공간에서 모두 시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자율주행 기술을 개발하는 데 있어서도 게임 엔진이 빠질 수 없다. 앞으로의 자동차는 어쩌면 게임이 만들어낼지도 모른다.글 | 유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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