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잘나갔던 자동차들, ‘라떼는 말이야!’

  • 기사입력 2021.07.09 10:02
  • 기자명 모터매거진

과거의 이야기를 펼칠 때 흔히 ‘나 때는 말이야’로 시작하곤 한다. 그러한 말을 비꼬듯 ‘라떼는 말이야’라는 신조어가 생길 만큼 말이다. 자동차 시장에서도 ‘라떼’를 찾는 자동차들이 꽤 있다. 왕년에 방귀 좀 뀌었다는 녀석들을 알아보자.

MITSUBISHI LANCER EVOLUTION미쓰비시의 랜서 에볼루션은 준중형 크기의 승용차인 랜서를 WRC에 내보낼 목적으로 만든 것이 그 기원이다. 랜서와 가장 큰 차이라면 AWD를 탑재하기 위해 하부 구조를 전면 재설계 했으며 내구도를 강화한 섀시 구조다. 또한 랠리 기준에 맞춘 리어 스포일러와 근육질 펜더, 곳곳에 뚫린 벤트도 차이점이다. 1992년부터 2014년까지 생산했으며 10세대를 끝으로 명맥이 끊겼다. 10개의 세대가 모두 다른 차는 아니다. 섀시 코드를 기준으로 크게 1~4 / 5~6 / 7~9 / 10 이렇게 네 시기로 구분할 수 있다. 가장 전성기를 맞이했던 5세대 랜서 에볼루션은 미쓰비시팀이 줄곧 스바루에게 내주었던 제조사 챔피언까지 가져오게 만든 모델이다. 특히 당시 드라이버였던 토미 마키넨의 이름을 딴 에디션 모델이 출시되기도 했다.

흔히 일본을 비롯한 동양권에서는 ‘란에보’, 서구권에서는 ‘EVO’ 라고 줄여서 부른다. 딱히 내세울 만한 고성능 모델이 없던 미쓰비시를 대표하는 모델이었기도 하다. 그만큼 대중 매체에서도 종종 등장했다. 자동차 마니아들의 가슴에 불을 지른 애니메이션 <이니셜 D>는 물론, <완간 미드나이트>에서 볼 수 있다. 현재는 블록버스터 영화로 바뀌어버린 <분노의 질주 2>에서 주인공 ‘브라이언 오코너’가 7세대 랜서 에볼루션을, <분노의 질주 3 도쿄 드리프트>에서 주인공 ‘션’이 8세대 랜서 에볼루션을 타고 달렸다. 성룡의 영화에서도 ‘란에보’를 종종 볼 수 있었는데 특히 <썬더볼트>에서 노란색 랜서 에볼루션 3세대가 고속도로와 트랙을 질주하는 모습은 언제 보아도 가슴 설레는 장면이다.

SUBARU IMPREZA
스바루 임프레자 역시 준중형 크기의 스포츠 세단이다. 1992년부터 생산되어 현재 5세대 모델이 판매 중이며 랜서 에볼루션의 영원한 라이벌로도 꼽힌 모델이다. 임프레자는 일반 모델과 고성능 모델인 WRX가 판매됐다. 다만 WRC의 활약이 눈부셨기 때문에 스포츠 모델인 WRX, WRX STi의 존재감이 월등히 높았다. 이름의 유래는 ‘업적’을 뜻하는 이탈리아어 ‘Impresa’다. WRC의 기록을 계속 이어가겠다는 의미가 담겨있다고 한다. 임프레자가 다른 경쟁모델보다 우위를 가져갈 수 있는 점은 낮은 무게중심이다. 복서 엔진이라 불리는 4기통 수평대향 엔진이 장착되어 있기 때문이다. 수평대향 엔진의 낮게 울리는 배기음 역시 임프레자의 매력이다.

임프레자 역시 아이코닉한 자동차 중 하나다. 먼저 랠리에서의 성과가 눈부시다. 1세대부터 랜서 에볼루션과 경쟁 구도를 이루었으며 전설적인 랠리 드라이버인 콜린 맥레이와 리처드 번즈를 통해 유명세를 쌓았다. 특히 콜린 맥레이는 1995년 제조사 챔피언 타이틀과 드라이버 챔피언을 차지했으며 리처드 번즈는 2001년, 피터 솔베르그는 2003년에 임프레자를 타고 랠리를 우승했다. 이후 유럽 메이커들이 좋은 성적을 거두기 시작하면서 2008년을 끝으로 WRC에서 철수했다. 랜서 에볼루션과 마찬가지로 대중 매체에서도 활발하게 등장했다. <이니셜 D>에서는 주인공 ‘타쿠미’의 아버지인 ‘분타’의 두 번째 차로 등장하며 <분노의 질주> 시리즈에서도 3세대 및 4세대 임프레자 WRX STi 모델이 등장한다.
NISSAN SKYLINE GT-R
‘불패 신화’ GT-R도 이제는 인기가 시들해진 시리즈 중 하나다. 시리즈의 시작은 닛산 스카이라인의 트림 중 하나였지만 이후로 스카이라인의 고성능 라인업으로 별도 판매되었다. 현재는 GT-R이라는 독자적인 라인업으로 분리되어 판매 중인데 현행 GT-R 역시 출시한 지 무려 14년이 지나 사골 중의 사골 모델이라 놀림을 받는 중이다.
 
스카이라인 GT-R은 비슷한 시기의 일본 스포츠카들 중에서 압도적인 성능과 레이스 무대에서의 성공, 커다란 덩치와 특유의 묵직한 디자인으로 독보적인 인기를 자랑하는 자동차다. 스카이라인 GT-R의 첫 시작은 1969년에 등장한 코드네임 PGC10 모델이다. 당시 일본 그랑프리에서 49연승 및 50승을 달성해 ‘불패신화의 R’이라는 명성을 쌓았다. 이후 GT-R의 명맥이 잠시 끊기나 싶었지만 BNR32라는 코드네임으로 1989년에 재등장한다. 직렬 6기통 트윈터보 엔진에 사륜구동 시스템인 아테사 E-TS와 사륜 조향 시스템인 HICAS 등 당시의 최신 기술을 잔뜩 집어넣었다.
이 모델부터 뉘르부르크링 노르트슐라이페에서 개발 시험을 거쳤으며 ‘불패 신화’를 다시 쓸 만큼 레이스 무대에서도 큰 성공을 거둔 모델이다. 너무나 압도적인 성능을 가졌던 나머지 FIA로부터 출전 금지를 당한 자동차로도 유명하다. 이후 BNR33, BNR34 모델 역시 마니아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무엇보다 튜닝 베이스로 활용하기에 너무나 좋은 차였다는 것이 인기 요인이다. 스카이라인 GT-R 시리즈는 2002년을 끝으로 배기가스 규제를 만족시키지 못해 결국 생산이 종료됐다.
이러한 인기 탓인지 스카이라인 GT-R 역시 다양한 대중 매체에 등장했다. 특히 <이니셜 D>에서  호시노 코조가 BNR34를 타고 고갯길을 내려오며 “난 죽을 때까지 GT-R이다!!”라고 외치는 장면으로 유명하다. 또한 <분노의 질주 2>의 초반부에 은색 바디 컬러에 파란색 데칼을 붙인 BNR34와 <분노의 질주 4>에서 등장하는 새파란 BNR34 역시 유명하다.

LANCIA DELTA이탈리아의 자동차 회사인 란치아도 ‘나 때는~’을 말할 수 있는 차를 만들었던 적이 있다. 바로 ‘델타’다. 1979년부터 2014년까지 생산한 준중형 해치백 델타는 1980년대 중후반 WRC 무대에서 유명세를 탔다. 물론 란치아는 이미 WRC의 강자로 군림하던 브랜드였지만 델타를 통해서 WRC에 확실한 업적을 남겼다. 덕분에 델타의 고성능 모델인 HF 인테그랄레 시리즈 역시 큰 인기를 끌었다. 당시 WRC에서 활약했던 흰색 보디 컬러에 마티니 데칼이 그려진 란치아 델타 S4 그룹B 레이스카는 지금까지도 회자되는 랠리 무대의 아이코닉한 자동차 중 하나다.

하지만 1993년 등장한 2세대부터 급격한 몰락이 시작됐다. 델타의 상징과도 같던 사륜구동 모델은 처음부터 고려되지 않았으며 시대에 역행한 디자인으로 혹평을 받아 1999년에 단종됐다. 2008년에 3세대 델타가 부활하긴 했지만 오리지널 델타와는 거리가 있는 모델이었다. 일부 지역에서는 크라이슬러 배지를 달고 판매되기도 했다. 다소 괴짜 같은 디자인과 고성능 모델 또한 없었기 때문에 판매량은 안타까운 수준이었다. 이전부터 지속적인 경영난에 고생하던 란치아는 결국 2014년에 3세대 델타를 단종할 수밖에 없었다.
HYUNDAI SONATA
한때 국민 세단으로 불리던 쏘나타는 최악의 부진을 겪고 있다. 판매량 순위에서 언제나 3위안에 들어가던 쏘나타가 이제는 10위권 밖으로 밀려났다. 이미 K5에게 판매량 순위를 내어준 지는 오래됐으며 메르세데스 벤츠의 E 클래스와 비교해도 판매량에 큰 차이가 없다. 패밀리 세단을 찾던 소비자들은 이미 패밀리 SUV 혹은 미니밴인 기아 카니발을 선택하고 있다. 게다가 중형 세단 구입을 고민하던 소비자들은 디자인에서 더 호평을 받고 있는 K5를 선택하거나 가격이 겹치는 상위 모델인 그랜저를 선택하는 경향을 보인다. 이렇게 쏘나타의 재고가 쌓이는 탓에 쏘나타를 생산하는 아산공장이 재고 조절을 이유로 종종 멈추기도 하는 모습을 보일 정도로 판매 상황이 좋지 않다. 한때 쏘나타 수요의 큰 축을 담당했던 택시 모델을 만들지 않는 것도 판매량 부진의 이유가 될 수 있겠다.
VOLKSWAGEN GOLF
폭스바겐 골프가 이번 리스트에 포함된 것에 의아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골프는 여전히 ‘잘 나가는’ 자동차기 때문이다. 하지만 예전만큼 압도적인 모습이 아니기에 조심스레 이번 기획에 포함했다. 물론, 골프는 글로벌 시장에서 여전히 높은 판매량을 자랑하고 있다. 하지만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 멀어진다고 했던가? 한국 시장에서 8세대 모델의 출시가 워낙 늦어지고 있는 탓에 많은 사람들이 잊고 있는 모델 중 하나다. 골프의 인기가 예전 같지 않다고 말할 수 있는 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우선 첫 번째는 해치백 혹은 핫해치 시장이 예전과 같은 인기를 자랑하지 않는 것에 있다. 해치백을 찾던 소비자들은 소형 SUV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독일을 비롯한 유럽 시장의 판매량을 살펴보아도 골프의 판매량은 매년 큰 폭으로 줄어들고 있다. 특히 지난 2020년, 13년 만에 유럽 판매량 1위를 르노 클리오에게 내어주며 골프의 아성이 흔들렸다. 그에 비해 SUV 시장은 매년 성장했다. 소형 SUV인 티록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골프를 구매하고자 했던 소비자들이 티록으로 눈을 돌렸다는 분석이다.
두 번째 이유는 폭스바겐의 전동화 전략이다. 폭스바겐은 전기차인 ID 시리즈에 사활을 걸고 있다고 할 만큼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당연히 내연기관 시대의 강자였던 골프에 대한 투자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 골프 역시 전기차 모델인 e-골프가 있다. 하지만 2020년 독일의 전기차 판매량 자료를 보면 1위인 르노 조에가 3만376대, 2위 e-골프는 1만7438대로 그 격차가 제법 큰 편이다. 심지어 3위인 테슬라 모델3는 1만5202대를 판매하여 골프를 위협하고 있다. 언제나 최강자로 군림하던 골프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니 그리 머지않은 미래에 ‘핫해치가 잘 나가던 때는 말이야~’라는 말도 하게 될지 모른다.
 
글 | 조현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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