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90, BMW R NINE T

  • 기사입력 2021.06.23 09:30
  • 기자명 모터매거진

고전적인 형태로 라이더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BMW R NINE T가 엔진을 바꾸고 다시 돌아왔다. 여유 있는 느긋한 움직임을 보일 것 같은 외형과는 다른, 날카롭고 빠른 모습을 보인다.
글 | 유일한   사진 | 최재혁   라이딩웨어 협찬 | 얼리바이커  

지금 눈앞에 서 있는 이 모터사이클의 이름은 R NINE T이다. 그런데 이즘에서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시는 독자분들이 있으리라. 왜? 굳이 숫자 90으로 말해도 되고, 나인티(ninety)라고 해도 되는데, 이렇게 굳이 NINE T라고 힘을 주었을까? 그 이유는 BMW 모터사이클에서 90이라는 숫자가 가지는 상징 때문이다. 이 녀석은 BMW 창립 9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등장했고, 그래서 90이라는 이름을 고집하면서도 알파벳을 통해 힘을 주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가 또 있다. 오래전에 등장했던 BMW의 기념할 만한 모터사이클, R 90 S를 기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1973년에 등장한 R 90 S는 당시 최고속도 시속 200km를 기록하면서 큰 인상을 남겼는데, 2013년에 등장 40주년을 기념한 콘셉트 모델, 콘셉트 나인티(Concept Ninety)를 만들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이 콘셉트 나인티는 R NINE T가 성공적인 신고식을 치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조력자’였다. 전면의 페어링을 제외하면, 생김새도 거의 닮았으니 말이다.

그렇게 환대를 받으면서 당당하게 등장한 R NINE T는 라이더들에게 인기를 얻었지만, 그 수명이 다해가고 있는 것 같았다. 모터사이클의 배출가스 규제가 강화되면서, 냉각수를 사용하지 않는 기존의 엔진으로는 그 규제를 넘어설 수 없을 것이라고 여겨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BMW는 그 와중에 방법을 찾아냈고, R NINE T는 다시 한번 수명을 연장하고 라이더들 앞에 당당하게 섰다. 그리고 지금은 필자가 탑승하기 위해 준비 중이다.CLASSIC OUTSIDE, SPORTS INSIDE만약 이전 R NINE T의 모습을 기억한다 해도, 사진만 보고서 어디가 바뀌었는지 알아보는 것은 꽤 어렵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전체적인 디자인이 바뀌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바꿨다는 엔진조차 블록과 냉각핀 등 겉으로 드러나는 요소들은 그대로 사용하고 있으니, ‘숨은그림찾기’를 하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새로 돌아온 R NINE T가 더 멋있게 보이는 것일지도 모른다. 오늘을 달리는 과거의 모터사이클 같은 느낌도 난다.그래도 찾아보면 변화는 분명히 있다. 헤드램프도 그중 하나인데, 낮에 주행할 때 가운데에서 날개 형상으로 빛나는 LED 주간주행등이 생겼다. 멋도 있지만 낮에도 밤에도 모터사이클의 존재를 자동차에게 잘 알려준다. LED 헤드램프는 밤에도 길을 환하게 밝혀주는데, 비추는 범위도 길고 넓어 가로등이 없는 길이라도 주행하는 데 큰 걱정이 없다. 만약 이 불빛을 보지 못하는 운전자가 있다면, 당장 안과에 가서 시력검사부터 다시 받아야 할 것이다.

두 개의 원형 바늘을 품은 아날로그 계기판도 조금 바뀌었다. 이전에는 가운데에서 디지털 정보를 보여줬는데, 이제는 좌우 하단에 정보를 나누어서 보여준다. 시인성이 조금 더 높아지고 형태가 단정해진 것은 좋은데, 여전히 연료 잔량은 알려주지 않는다. 주행하다가 노란색의 주유기 경고등이 등장하면 바로 주유소를 찾거나 주행 전에 연료탱크 뚜껑을 열고 연료 잔량을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 어쩌면 그런 불편함조차 R NINE T의 매력일지도 모른다.어느새 등장한 지 7년이 훌쩍 지났지만, 바뀐 부분을 포함해도 R NINE T는 여전히 매혹적이다. 마치 혼자서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처럼 말이다. 첫눈에 사람을 반하게 하는 매력은 조금 약하지만,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다. 아마도 BMW가 모터사이클에 계속 담아온 고전적인 디자인, 그리고 자세(stance)를 갖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페어링이 전혀 없는 네이키드 모터사이클 본연의 모습과 BMW 특유의 수평대향 엔진이 어우러지고 있다.이제 시동을 걸고 새로 바뀐 엔진을 느껴볼 시간이다. 배출가스 규제를 통과하기 위해 새로운 실린더 헤드를 적용했는데, 이전에는 최고출력 110마력을 발휘했지만 새 엔진은 최고출력이 109마력으로 1마력 하락했다. 그러나 여기서 실망해서는 안 된다. 그 1마력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의 라이더는 아마도 모토 GP 등 전 세계적인 레이스에서 활약하는 사람들 정도일 것이다. 모터사이클을 좋아하는 F1 레이서 ‘루이스 해밀턴’이라면 느낄 수 있을지도?

시동을 걸 때 위아래가 아니라 좌우로 흔들리는 것 같은 감각은 수평대향 엔진이 주는 독특한 재미다. 그리고 달리다 보면 엔진의 회전에서 오는 흔들림은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그것보다 놀라운 것은, 이 엔진이 생각보다 높게 그리고 빠르게 회전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그동안 BMW의 모터사이클을 많이 운전해 봤지만, 수평대향 엔진을 접해본 적은 의외로 적었다. R 1250 GS에 올랐을 때는 오프로드를 주로 다녔으니 이렇게 회전을 올려본 적이 없었다.그 회전이 라이더에게 조금씩 달릴 것을 요구하는데, 그것을 타이어와 휠 그리고 서스펜션이 받쳐준다. 앞바퀴를 잡고 있는 황금색의 도립식 텔레스코픽 포크, 뒷바퀴 프로펠러 샤프트를 잡아주는 스프링과 쇽업소버가 제 역할을 해 준다. 잔 충격은 잘 넘기면서 라이더에게 잔잔한 느낌만을 남겨주고, 요철에서 오는 큰 충격도 걸러주면서 당황하지 않도록 만들어준다. 와이어 스포크 휠 역시 충격을 크게 줄이는 데 일조한다.

그 감각이 어느 정도인지 수치로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자동차와 비교를 해 보면 2000년대 초반에 등장했던 BMW 3 시리즈와 그 느낌이 비슷하다. 1990년대의 그 느낌은 아니지만 아직까지는 코너링에서 느껴지는 단단함이 차체에 남아있던 그것 말이다. 그러고 보니 잊고 있었다. 최근에 승차감을 고려한 세팅을 많이 해 왔지만, BMW는 기본적으로 달리는 재미를 추구하는 브랜드다. 그러니 모터사이클에 역동성을 넣는 것은 당연하다.형태는 고전적이지만, 그 내용물은 철저하게 스포츠 네이키드다. 아니, 페어링을 안 씌웠을 뿐이니 ‘스트리트파이터’라고 하는 게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운전이 굉장히 즐겁다. 잔잔하게 달리고 싶다면 그렇게 못 달릴 바 아니지만, 엔진 회전을 높이는 맛에 한 번 물들고 나면 R NINE T를 도심에서 즐기기보다는 주말마다 교외로 나가서 즐기고 싶어질 것이다. ‘Sheer Drivivg Pleasure’는 모터사이클에서도 강하게 통하는 언어다.

그리고 고전을 역동적으로 즐기는 데 있어 방해가 되는, 예를 들면 안전 또는 정비의 용이성 등을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 최신 기술로 다듬어졌기에 ABS와 DBC(다이내믹 브레이크 컨트롤)가 기본 적용되어 있고, 소모품 교체 등은 BMW 모토라드 정비센터에서 모두 해결할 수 있다. 라이더는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모터사이클에 올라 바람을 가르는 즐거움을 느끼기만 하면 된다. 마치 50여 년 전 그때로 돌아간 것처럼 방풍 재킷과 헬멧으로 무장하고 말이다.R NINE T는 긴 세월을 지냈고, 사라질 것 같다가 다시금 돌아왔다. 점점 강해지는 배출가스 규제 속에서 앞으로 얼마나 더 살아남을지 알 수 없지만, 왜인지 모르게 이 고전적인 형태로 영겁의 세월을 살아갈 것만 같다. 그래서 지금 R NINE T를 본 느낌은 십 년이 지나도 그대로이지 않을까 싶다. 고전적인 스타일로 많은 라이더들을 사로잡을 수 있으면서도 성능과 역동성을 잊지 않는 모터사이클, 그것이 BMW R NINE T가 가진 강력한 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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