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충전으로 어디까지 가니? 포르쉐 타이칸 4S 퍼포먼스 배터리 플러스

  • 기사입력 2021.06.21 09:38
  • 기자명 모터매거진

포르쉐 타이칸의 자존심이 상했다. 국내에서 1회 충전 주행 가능 거리 인증을 251~289km 밖에 못 받았기 때문이다. 그들의 생각은 다르다. 충분히 330km를 갈 수 있단다. 입증할 기회를 잡았다.  
글 | 이승용  사진 | 포르쉐 코리아

“포르쉐 타이칸이 한 번 충전으로 고작 289km를 간다며?”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말도 안 되지.” 코웃음 섞인 목소리였다. ‘외계인이 만든 스포츠카란 애칭을 달고 다니는 포르쉐가 만든 전기차인데 아무렴 그렇겠지.’ 괜히 의심했구나 싶지만, 대화 속에 깃든 의심의 싹은 머릿속에서 소복이 자랐다. 때마침 포르쉐 코리아가 입증할 기회를 만들었다. 강원도 인근의 산자락을 넘나드는 360km의 시승 코스를 마련하고 1회 충전만으로 주행 가능한지 달려보자는 초청장을 들이밀었다.

세련된 멋쟁이포르쉐의 영혼이 담긴 포르쉐 최초의 전기차엔 꼭 담아야 할 의미들이 있다. 바로 강렬함, 짜릿함, 그리고 진보한 스포츠 DNA다. 거기에 친환경, 효율이란 상반된 명제까지 꿰맞춰야 한다.타이칸은 911보다 크고 파나메라에 못 미치는 어정쩡한 차체 크기지만, 포르쉐 고유의 디자인 언어에 따라 매끈하고 강렬한 실루엣을 보여준다.낮은 무게중심 디자인으로 역동적인 이미지를 부여했고 길게 늘어뜨린 눈물 자국 모양의 헤드램프, 탄탄한 어깨 라인, 전동식 팝 아웃 도어핸들, 가로로 길게 이어진 리어 라이트 스트립, 액티브 쿨링 에어 플랩과 어댑티브 스포일러 등 시각적 요소와 공기역학적인 요소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졌다. 그 결과 공기저항계수(Cd) 0.22를 기록했다. 동급 최고라고 한다. 포르쉐 최초의 전기차 타이칸의 디자인은 새로운 시대로 도약하는 브랜드의 미래를 담고 있다.

팝 아웃 도어핸들을 열면 독특한 감성을 경험하게 된다. 포르쉐 디자인 DNA는 분명한데 미래지향적이고 미니멀리즘을 추구한 디자인이 낯설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대시보드, 센터페시아, 글로브 박스, 센터 콘솔, 도어 트림 등 실내의 대부분에서 카본이나 메탈, 최고급 가죽은 보이지 않는다. 일반가죽, 올리브잎으로 무두질한 OLEA 클럽 가죽을 선택할 수 있으나 레더 프리(Leather-free) 인테리어를 강조하며 전통적인 스타일에서 벗어난 담백한 이미지를 선보였다. 비싼 배터리 가격이 에어댐의 립 스포일러, 사이드 스커트, 리어 디퓨저에 주로 쓰이던 카본을 버리고 플라스틱으로 대체하게 했고 호화롭게 실내를 휘감았던 최고급 가죽을 걷어내고 재생 소재 직물로 덮거나 싸구려 플라스틱 표면을 드러나게 했다. 환경을 위해 재활용 소재를 개발해 사용하는 건 좋지만, 이를 빌미로 1억이 훌쩍 넘는 스포츠카의 실내가 헐벗고 있다는 건 웃픈 일이다.

다행스럽게도 포르쉐 어드밴스드 콕핏은 16.8인치 커브드 디스플레이를 장착한 인스트루먼트 클러스터와 10.9인치 중앙 디스플레이, 10.9인치 동승석 디스플레이로 고급스럽게 세팅되었다. 센터 콘솔에도 터치 컨트롤 모니터가 장착되었다. 이리저리 둘러봐도 물리 버튼은 시동 버튼과 스티어링 휠에 장착된 버튼들, 그리고 모드 스위치뿐이다. 디스플레이를 통해 다양한 정보를 제공받고 터치로 조절할 수 있다. 커브드 디스플레이 전체를 지도 화면으로 전환할 수 있다. 동승석 디스플레이는 차량 설정 기능을 제외한 대부분의 기능을 운전자와 동일하게 제어할 수 있어 편리하다.타이칸 4S 퍼포먼스 배터리 플러스의 초반 가속 퍼포먼스는 918 스파이더에 버금간다. 포르쉐 E-퍼포먼스 드라이브트레인의 최고출력은 490마력이지만, 론치 컨트롤을 켜고 오버부스트를 사용하면 최고출력이 571마력까지 상승한다. 최대토크는 66.3kg·m이다. 공차중량 2305kg의 차체를 끌고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4.0초 만에 주파하고 시속 200km에 12.9초 만에 도달한다. 제원표만 보아도 괴물 같은 힘을 자랑한다.

배터리 최대 충전 전력은 270kW, 배터리 용량은 93.4kWh, 800V 시스템 전압을 사용한다. 오른쪽 프런트 펜더엔 AC 타입 1과 DC CCS 1 콤보 단자가 있고 왼쪽 프런트 펜더에 AC 타입 1 단자가 있어 양쪽에서 충전할 수 있다. 손가락을 가져다 대면 충전 구가 자동으로 열리고 닫히는 터치식 버튼은 옵션이다. 앞바퀴와 뒷바퀴 모두에 영구 자석 동기식 모터(PMSM)를 탑재하고 뒷바퀴엔 2단 변속기를 적용했다. 에어서스펜션, 리어 액슬 스티어링, PDCC, 세라믹 브레이크를 장착하였다. 스포티하고 다이내믹한 주행 성능을 대담하게 즐길 수 있다.목표 달성, 예상 주행 가능 거리 330km 이상포르쉐는 기온이 20도 이상 35도 미만에서 도심 30%, 지방도로 40%, 고속도로 30% 비율로 주행했을 때 330km를 너끈히 갈 수 있다고 주장한다. 확인을 위해 타이칸 4S 퍼포먼스 배터리 플러스의 운전석에 앉았다. 한 차에 두 명씩 타고 총 350km의 시승코스를 운전한다. 운전자 교대는 총 5번. 출발을 위해 강원도 양양의 르네 블루 바이 워커힐 주차장에서 시동 버튼을 눌렀다. 클러스터의 정보는 오후 12시 48분, 외부 기온 21.5도, 배터리 충전 상태 97%, 주행 가능 트립 미터 436km를 표시했다.

포르쉐 특유의 빠르고 화끈한 성능을 고스란히 이입한 타이칸 4S 퍼포먼스 배터리 플러스를 몰고 강원도 국도와 굽이진 산길, 고속도로를 달린다니 기대감에 가슴이 벌렁거렸다. 기어 셀렉트 버튼을 D로 바꾸고 출발했다. 이쯤에서 심금을 울리는 배기 사운드가 들려야 하는데 조용하기만 하다.운전 재미를 위해 스포츠 모드를 켰다. 일종의 전자 배기음인 일렉트릭 스포츠 사운드는 기대에 못 미친다. 일상에서의 주행 거리를 확인하려는 거니 질주 본능을 살살 달래가며 연비(전비) 주행할 필요는 없더라도 무리하게 몰아붙일 일은 아니다.레인지 모드로 바꾸고 여유를 갖기로 했다. 타이칸은 노멀, 스포츠, 스포츠 플러스, 레인지 모드를 선택할 수 있다. 모드 별로 회생제동장치의 개입 수준이 다르다. 결국 운동에너지를 전기에너지로 바꿔 배터리에 축적하는 양도 달라진다. 이를 계기반을 통해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타이칸의 회생제동 제어장치는 모든 모드에서 이질감을 느끼지 못할 정도로 부드럽게 작동한다. 레인지 모드에선 가속과 감속 시 화석연료 차들과 별반 다름없을 정도로 이질감이 거의 없고 스포츠 플러스 모드에선 힘찬 가속만큼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었을 때 제동력이 높아지며 이질감이 조금 느껴진다. 가속 페달만으로 운전이 가능할 정도로 회생제동이 강한 타사 경쟁모델들보다 회생제동이 부드럽게 작동하는 점은 큰 장점이다.

일반도로를 벗어나 고속도로에 진입했다. 스포츠 모드로 변경하고 가속 페달에 힘을 실었다. 가속 성능은 실로 기가 막힌다. 가속 페달을 밟는 대로 바닥을 낚아채며 냅다 달려 나갔다. 아마 가솔린 엔진이었다면 휘발유를 미친 듯이 태워도 이처럼 쉽게 빨리 달릴 수 없었을 거다. 8기통 가솔린 엔진 버금가는 성능이다. 기름값 아깝다고 생각할 필요 없으니 오른발에 힘을 계속 주게 된다.경량 보디는 여러 면에서 차를 역동적이고 민첩하게 만들어준다. 물론 제동도 더욱 효과적으로 할 수 있다. 타이칸은 강철과 알루미늄을 고루 사용한 하이브리드 섀시다. 엔진과 변속기가 없는 순수 전기차니 가장 무게가 많이 나가는 부품은 배터리다. 바닥에 배터리를 깔아 무게 중심을 낮췄다. 앞서 말한 대로 공기저항을 최대로 줄일 수 있었던 디자인과 포르쉐 에어로다이내믹 시스템 덕분에 효율 못지않게 주행 감성도 높아졌다. 시속 90, 160, 200km에서 리어 스포일러가 솟아오른다. 마치 타이칸도 포르쉐 가문의 대를 잇고 있는 스포츠카임을 보여주는 행위 예술 같다.

강원도엔 해발 800m 이상의 백두대간 5개 령이 있다. 뱀이 산 전체를 서리서리 감은 듯이 꼬불꼬불 난 산악 도로를 오를 차례다. 대부분의 운전자는 이런 길을 맞닥뜨리면 의기소침해지기 마련이다. 힘도 좋아야 하고 차체도 단단해야 하고 하체도 탄력 있어야 하고 제동력도 강해야 한다. 그런 차라면 운전 실력이 조금 부족해도 자신감이 생긴다. 포르쉐 배지를 달고 있는 스포츠카를 몰고 있는데 기세를 부릴 만도 하다. 스포츠 플러스 모드로 바꾼 뒤 속도를 높였다. 머리띠처럼 크게 휘감기는 코너에서도, S자 형태로 갑작스레 이어지는 연속 회전 구간에서도 타이칸은 날렵하게 움직였고 의연했다. 섀시 강성은 누가 운전해도 알 수 있을 정도로 강렬하다. 브레이크 성능도 더할 나위 없다. 매의 날카로운 발톱처럼 지면을 움켜쥐었다. 몇 개의 령을 오르고 내리고 여기저기 고속국도를 달리다 보니 어느새 오후 7시가 되었다. 배터리 충전 경고등이 들어오고 이동 거리를 모니터링하라는 메시지가 계기반에 떴다. 외부 온도는 17도, 주행 가능 거리는 56km. 출발했던 숙소까지 거리는 약 15km 남짓 된다. 피로도 몰려오고 배도 고파오니 절로 가속 페달을 힘껏 누르게 된다. 목적지에 도착했다. 트립 미터의 주행 가능 거리는 37km. 드디어 미션 클리어.불신과 불안으로 시작했던 일정이었지만, 이젠 관대해졌다. 여러 상황과 조건에 따라 변수는 생길 테고 논쟁은 이어지겠지만, 타이칸 4S는 그랜드 투어러로 손색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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