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가 만든 벤츠? 메르세데스 벤츠 500E 이야기

  • 기사입력 2021.06.04 15:25
  • 기자명 모터매거진

제목을 잘못 본 것이 아니다. 아는 사람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겠지만 한때 포르쉐가 메르세데스 벤츠의 500E를 만들던 때가 있었다. 포르쉐와 벤츠 본사간의 거리는 차로 약 15분 남짓이다. 그만큼 이 두 회사는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며 성장해왔다.글 조현규

이 둘의 관계를 가장 잘 나타낼 수 있는 차가 바로 500E다. 1980~90년대에 벤츠는 소비자들의 고성능 4도어 세단의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W124 E클래스에 500SL 엔진을 탑재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이 프로젝트에서 큰 역할을 한 것이 포르쉐다. 메르세데스 벤츠가 당시 경영난을 겪고 있는 포르쉐에게 지원의 손길을 내민 것이다. 해석하는 이의 시각에 따라서는 자존심이 강한 벤츠가 포르쉐의 손을 빌렸다는 것을 숨기려고 ‘지원했다’고 발표한 것이라 보기도 한다.

본격적으로 500E에 대해 살펴보기전에 W124 E클래스에 대해 간단히 알아보자. W124 E클래스는 처음으로 E클래스라는 명칭을 사용한 차이기도 하다. 이전까지는 W123, W114와 같은 ‘알파뉴메릭’ 방식을 사용했다. 또한 지금은 흔히 볼 수 있는 벤츠의 사륜구동 시스템인 4MATIC을 최초로 적용한 차이기도 하다. 뛰어난 내구성은 W124 E클래스의 장점이었다. 독일에서 주행거리 100만km를 넘긴 W124가 심심찮게 발견됐기 때문이다. 시간이 흘러 이 W124의 플랫폼은 쌍용의 체어맨에 활용됐다. 쌍용도 이 점을 마케팅 포인트로 활용했고, 제법 잘 먹혔기 때문에 여전히 기억하는 이들이 많을 것이다.

W124의 파워트레인은 직렬 4기통 2ℓ, 2.2ℓ, 2.3ℓ 엔진과 직렬 6기통 2.6, 2.8, 3.0, 3.2ℓ 가솔린 엔진이 4단 및 5단 자동변속기와 조합된다. 다운사이징과 파워트레인 단순화를 추구하는 요즘과는 다르게 다양한 종류가 존재했다. 특히 직렬 6기통 3.2ℓ 가솔린 엔진은 체어맨에서 오랜 시간 활약(?)한 엔진이기도 하다.

다시 500E의 이야기로 돌아와보자. 1980년대 말 벤츠는 자체 생산라인이 너무 작았다. 이미 새로운 S클래스를 위해 많은 인력이 투입된 상태였고 500E의 판매량이 많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에 이를 위해 생산라인 확장을 계획하는 것은 벤츠로써도 부담이었다.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당시 4도어 모델인 989를 개발하고 있던 포르쉐에게 개발을 의뢰했다. 그렇게 포르쉐는 자사의 2+2 모델 개발을 중단하고 벤츠와 손을 잡았다. 포르쉐 역시 989의 판매량이 많지 않을 것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포르쉐의 4도어 모델은 훗날 파나메라로 부활하게 된다.

500E는 W124와 겉모습이 거의 같지만 500SL의 V8 5.0ℓ 엔진을 탑재했다. 최고출력은 326마력, 최대토크는 48.9kg·m 였으며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5.5초면 가속할 수 있었다. 당시 경쟁 모델이었던 E34 M5와 비등한 성능을 내뿜었다. 마니아들 사이에서 어떤 차가 더 빠른 자동차인지, 마치 호랑이 VS 사자와 같은 토론의 대상이 되었다.

생산 방식 역시 특별했다. 차대는 벤츠에서 생산하여 포르쉐 공장으로 운반한 뒤 엔진과 하체를 조립하고, 그 후에 다시 벤츠 공장으로 돌아와 나머지 부분을 조립하여 검수하는 절차를 거쳤다. 이러한 방식으로 한 대를 생산하는데에는 무려 18일이 걸렸으며 하루에 12대를 겨우 만들어 내는 정도였다. 이러한 방식으로 1990년부터 1992년까지 생산했으며 이 당시에 생산된 모델은 포르쉐 라인이라고 불렸다. 이후 1993년부터는 벤츠 공장에서 전량 생산을 담당하게 된다.

포르쉐는 이때의 수익을 발판삼아 박스터, 카이엔 등을 출시하며 경영 악화를 벗어났다. 이후에는 이른바 꽃길만 걸어 현재의 위치에 올라서게 되었다. 위기의 순간에 손을 내밀어준 훌륭한 파트너를 만난 셈이다. 시간이 흘러도 두 회사는 돈독한 관계를 보여준다. 포르쉐 박물관에는 당시 500E가 전시되어 있으며 지난 2016년에는 벤츠와 포르쉐 박물관이 서로의 전시품을 공유하는 교류 이벤트를 실시하기도 했다. 알고보면 포르쉐의 창업자 페르난디트 포르쉐는 벤츠의 엔지니어로 근무하기도 했으니 두 회사의 인연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앞으로 이 두 회사의 콜라보를 또 한번 볼 수 있을까? 가능성은 낮겠지만 두 회사의 팬이라면 한 번쯤 해봄직한 즐거운 상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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