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친 도로의 픽업트럭 포드 레인저

  • 기사입력 2021.05.25 07:57
  • 최종수정 2021.06.28 17:12
  • 기자명 모터매거진

드디어 한국 땅을 밟은 포드의 픽업트럭, 레인저를 거친 황야에서 만났다. 실용성도 있지만, 어디든지 달리는 그 모습에 확실한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자, 아직 느립니다. 더 과감하게 밟아 보세요!” 무전기를 통해 그동안 교관들과 함께하는 주행에서 결코 들을 수 없었던, 운전자의 과감함을 자극하는 말이 들려온다. 이미 유리창은 앞차가 튀긴 진흙과 흙탕물로 뒤덮였고, 바닥에서는 거대한 장애물을 밟았을 때 나는 기묘한 소리가 올라온다. 오랜만에 겪어보는 야생의 숨결에 잠시 위축도 되지만, 자동차를 믿고 과감하게 오른발을 깊게 밟아본다. 아직 더 달릴 수 있다는 듯, 연신 거친 숨결을 토해낸다.

필자는 포드의 픽업트럭, 레인저를 타고 오랜만에 본격적인 형태의 오프로드 코스를 달리고 있다. 아마 이 정도의 코스라면 ‘과감하게 달릴 줄 안다’라고 자부하는 SUV들도 쉽게 덤벼들지 못할 것이다. 그런데 왜 SUV가 아니고 픽업트럭이냐고? 좀 더 본격적인 레저를 즐기기 위해서는 사실 SUV가 아니라 픽업트럭이 필요할 것이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과 마주치는 것이 두려워져 버린 작금의 시대에 가족끼리 오붓하게 캠핑을 즐기려면, 더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야 한다.

어쩌면 오프로드의 지배자, 레인저 랩터국내에 들어오는 레인저는 두 가지.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일반적인 형태의 픽업트럭인 레인저 ‘와일드트랙’, 그리고 오프로드 주행 성능을 극대화한 레인저 ‘랩터’다. 공룡이 등장하는 영화에서 한 번쯤은 보거나 들었을 ‘랩터’는 본래 맹금류를 뜻하는 영어인데, 주로 사나우면서 위협적인 공룡에 이름으로 새겨진다. 영화 속에서 ‘지능이 높은 무자비한 사냥꾼’의 모습으로 등장한 ‘벨로시랩터’를 떠올린다면, 랩터가 어떤 뜻으로 붙었는지 금방 알 것이다.그래서 외형부터 범상치 않다. 그릴과 범퍼를 검은색으로 장식한 것은 물론, 혹시 포드의 모델임을 못 알아볼까 싶어 그릴에 ‘FORD’ 글자를 크게 새겼다. 범퍼 아래에서는 은색의 스키드 플레이트가 빛나고 있다. 아니 사실 이런 장식들에 눈이 갈 필요는 없으리라. 타이어만 봐도 알 수 있을 터이니 말이다. 검은색으로 빛나는 휠은 일반 모델보다 오히려 지름이 작은데, 타이어가 두껍고 트레드가 거칠게 돋아 있어 오프로드 전용 모델이라는 것이 금방 드러난다.

사실 그 외형을 보고도, 하체에서 살짝 드러나 있는 오프로드 주행 전용 폭스(FOX)’ 쇽업소버를 보고도 그리 긴장하지는 않았다. 그동안 진행되었던 오프로드 주행 행사의 대부분이 ‘자동차가 무리하지 않고 지나갈 수 있으며 그 맛을 살짝 느껴보는 정도’로만 구성되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동을 걸고 코스에 진입할 때만 해도 그리 긴장하지는 않았는데, 무전기에서 “너무 느리니 속력을 좀 더 올리라”는 소리가 들린다.현재 주행 속도는 시속 40km. 일반도로라면 느린 속도이지만, 오프로드에서는 결코 느린 속도가 아니다. 그런데 더 밟아야 한다니? 아무리 랩터라도 이 정도면 차체가 손상을 입을 것 같다는 걱정이 생겼다. 한 번 더 무전이 전달된다. 최소한 시속 80km까지는 밟아야 한단다. 자동차의 성능을 믿고 있으니 이 정도는 요구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 망설임을 떨치고 과감하게 오른발에 힘을 주었다. 막강한 힘이 바퀴로 전달되면서 잠시 헛도는 것이 그대로 느껴진다.

땅을 박차고 나가 목표까지 속도를 높인 그 순간, 차체가 살짝 공중으로 떠올랐다. 정확히 말하면, 네 바퀴가 모두 공중에 떠서 순간적이지만 날고 있었다. 충격과 함께 차체의 어딘가는 부서질지도 모른다는 공포가 밀려왔는데, 의외로 충격을 흡수해가며 사뿐하게 착지한다. 더 놀라운 것은 착지한 뒤에 흔들리는 모습이 없다는 것. 다시 가속 페달을 밟으면 그대로 모래와 돌을 튀기며 앞으로 전진하고 만다. 이 정도로 막강한 성능을 가졌을 줄이야!탄탄한 모습을 직접 경험하고 나니, 그 뒤로는 자신감이 생긴다. 정신을 차려 보니 다음 코스로 이동하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조작을 가하며 일부러 움직임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보통 이쯤 되면 앞서가던 교관들이 그 행동을 제지하지만, 여기서는 아무도 제지하지 않는다. 오프로드에서 차체를 마구 흔들고 높은 엔진 회전을 사용하고 심지어 뒷바퀴를 일부러 미끄러트려 드리프트 주행에 돌입해도 “마음껏 즐기세요”라는 말 한마디로 끝이다.

랩터는 어디든지 갈 수 있다. 별다른 장비를 갖추지 않고도 수심이 제법 되는 강을 건널 수 있으며, 흙으로 뒤덮인 경사로를 빠르게 주행할 수도 있다. 처음에는 그 능력을 믿지 못했지만, 직접 건너보니 확실히 다르다는 게 느껴진다. 바퀴가 완전히 물에 빠지므로 도어 하단까지 물이 차오르지만, 실내에서는 어느 곳 하나 물이 새지 않는다. 만약 랩터를 오프로드에서 운전한다면, 운전자의 강단만 필요하다.

편안한 올라운더, 레인저 와일드트랙랩터는 다 좋지만 약점도 있다. 먼저 적재량이 300kg으로 상대적으로 적다. 2500kg의 견인하중은 결코 적은 편은 아니지만, 트레일러 종류에 따라 아쉬움이 남을 것이다. 그렇다면, 오프로드 주행 성능은 약간 떨어져도 적재량과 견인에서 실용성을 더 보여주는 ‘와일드트랙’을 찾을 차례다. 랩터보다 남성적인 미학은 조금 줄어들었지만, 당당한 자세는 ‘픽업트럭은 이런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 같다. 그리고 여전히 거대한 그릴을 갖고 있다.와일드트랙의 오프로드 주행 성능이 떨어진다고 아쉬워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랩터 수준은 아니어도 와일드트랙 역시 꽤 준수한 성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인 운전자들이 흔히 만나는 오프로드, 그러니까 조금 거친 시골길 정도는 가볍게 달릴 수 있으며 그보다 조금 더 거친, 돌이 많은 길도 혹은 모래로 가득 찬 백사장도 수월하게 달릴 수 있을 정도다. 그것도 오프로드 전용 타이어를 끼우지 않고 말이다.

그래서 고속으로 달리며 점프는 하지 않았지만, 대부분의 코스를 공유하며 달릴 수 있었다. 수심이 상대적으로 얕기는 하지만, 개울 정도는 아주 가볍게 건널 수 있다. 게다가 중요한 것이 있는데, 레인저는 미국 출신의 픽업트럭이면서도 디젤 엔진을 탑재하고 있다. 아직은 배기량으로 자동차 세금이 결정되는 국내의 현실에서 레인저의 디젤 엔진은 지갑에 큰 만족을 줄 것이다. 연비도 상대적으로 더 좋고 말이다.많은 이들이 알고 있는 픽업트럭은 포드 F-150이고 미국 시장에서 오랜 기간 베스트셀러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그만큼 잘 만든 모델이라는 이야기일 것이다. 허나 미국과 국내 도로는 사정이 다르고, 주차장의 크기 문제도 있는 만큼 F-150은 조금 부담이 된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작은 크기지만 F-150의 영혼은 담고 있는 레인저가 마음에 든다. 레인저와 함께한다면, 거친 도로에도 과감하게 뛰어들 수 있을 것 같다.

글 | 유일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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