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력한 부드러움, 볼보 XC90 & S90

  • 기사입력 2021.05.24 09:33
  • 최종수정 2021.06.28 17:12
  • 기자명 모터매거진

볼보의 플래그십을 담당하는 XC90과 S90이 새로운 마일드 하이브리드와 함께 변화를 단행했다. 환경을 조금 더 고려했지만 불편함은 전혀 없다. 아니, 오히려 더 편해졌다.


최근에 ‘삶에서 여유가 없다’고 느껴질 때가 있었다. 시승, 촬영, 취재 등으로 인해 하루도 쉬지 못하는 날이 2주 넘게 지속되었고 그때마다 운전대를 잡았을 때 조급한 마음을 제어할 수가 없었다. 빠르게 달려도 목적지까지 도착하는 데 5~10분 차이밖에 나지 않지만, 그거라도 단축하기 위해 가속 페달을 짓이기고 기름을 바닥에 뿌리다시피 하면서 다녔었다. 옆자리에서 몸을 웅크리고 불안에 떨었을 사진 담당 기자에게 심심한 위로를 표한다.

오늘은 약간 다르다. 시승을 하는 것은 여느 날과 마찬가지이지만, 빨리 달릴 필요가 없다. 조금 늦게 달려도 목적지까지 충분히 도착할 수 있는 시간이 주어졌고, 자동차도 익숙한 얼굴로 주어졌다. 북유럽의 여유를 느낄 수 있는 볼보 XC90과 S90이다. 그렇다면 할 일은 단 하나, 오른발에 들어간 힘을 조금 풀고, 오랜만에 음악을 고르고, 다른 차들과 리듬을 맞추면서 목적지까지 여유 있게 운전하는 것뿐이다. 평범하게 달릴 때 느껴지는 것도 있으니 말이다.

강력함이 곧 여유가 된다XC90에 대해서는 그동안 언급한 것들이 있으니, 이번에는 아주 간단하게만 언급하고 넘어가고자 한다. 현재 판매하고 있는 XC90 2세대 모델이 등장한 지도 꽤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오래된 자동차라는 느낌은 전혀 없다. 시간이 지나도 유지되는 스칸디나비아 디자인의 매력이다. 헤드램프를 장식하는 ‘토르의 망치’와 후면을 장식하는 세로로 긴 형태의 테일램프는 지금도 여전히 볼보만의 매력으로 남아있다.단정한 디자인을 가진 실내는 언급을 더 할 필요가 없다. 그보다 앉을 때마다 편안함을 제공하는 시트가 마음에 든다. 푹신함을 자랑하지는 않지만 몸에 딱 맞춘 것처럼 앉을 수 있으며, 헤드레스트 조정이 불가능하지만(인스크립션 트림) 그것을 의식할 필요가 없다. 다른 이들보다 앉은키가 큰 관계로 처음 탑승할 때마다 헤드레스트를 길게 뽑아내곤 하는데, 볼보는 그거 하나를 자연스럽게 줄여주는 게 참 좋다. 장거리를 주행해도 몸이 불편하지 않다는 점도 좋다.

이제 본격적으로 여행을 즐길 시간이다. 이번에 시승하는 모델에 탑재된 엔진은 48V 마일드 하이브리드를 추가한 B6 가솔린 엔진. 최고출력이 300마력에 달한다. 물론 PHEV 버전의 최종 출력 405마력보다는 적지만, 주행하면서 300마력이 부족하다고 느낀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물론 속도를 그다지 내지 않았고, 가능한 범위 내에서 여유를 두고 운전을 즐겼지만, 그렇다고 해서 잠재능력을 못 알아볼 정도까지는 아니다.일단 자동차 전용도로와 고속도로를 달리는 이야기부터 해 보자. 2세대 XC90이 처음 등장했을 때 가솔린 엔진을 탑재한 T6 모델을 시승한 적이 있는데, 그때도 대부분의 영역에서 만족도가 높았다. 대신 한 가지는 굉장히 아쉬웠는데, 상대적으로 적은 배기량인 2.0ℓ에 터보차저를 더해 출력을 이끌어내는 만큼 터보 래그가 그대로 느껴졌었다. 가속 페달에 계속 힘을 주는 바람에 연비가 지속적으로 하락했던 것은 덤이다.

그때의 기억을 뒤로한 채 오른발에 살짝 힘을 주어 봤는데, 웬걸! 생각보다 가볍게 출발한다. 이전에 느꼈던 터보 래그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잘못 느낀 것 같아서 잠시 정지했다가 다시 출발해 보아도 여전히 가벼운 발걸음을 보여준다. 심지어 재가속에서도 이전에 보여주었던 주춤거리는 동작은 찾아볼 수 없다. 최고출력이 낮은 아주 겸손한 스펙의 모터가 뜻밖의 큰 활약을 보이는 것이다.나중에 매뉴얼을 읽어 보니 전기모터만 추가한 정도가 아니다. 저 마찰 엔진 기술과 혁신적인 엔진 관리 시스템, 직분사 기술 및 통합된 전기식 슈퍼차저, 터보 기술의 조합 등 엔진을 거의 새로 만들다시피 했다. 간단하게 전동화를 이루기 위해 마일드 하이브리드를 선택했다고 섣불리 판단했던 과거의 자신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다. 하긴 친환경 실천을 위해 PHEV와 전기차를 본격적으로 만들고 있는 볼보가 그런 얇은 수를 쓸 리가 없다.

그래서 출력을 가볍게 끌어낼 수 있다 보니 오른발에 힘을 과도하게 줄 필요가 없고, 그 결과 연료 소모도 획기적으로 줄어든다. 그리고 여기서 또 다른 여유가 생긴다. 언제든 출력을 끌어낼 수 있다는 마음가짐은 운전에 여유를 주고, 운동 성능이 높음에도 불구하고 신경질적인 자동차가 아닌 독특한 부드러움을 갖고 있기에 스티어링 조작 등 운전에 필요한 동작을 서둘러서 할 필요가 없어진다.느긋하게, 얌전하게, 편안하게 달리는 것이 어울리는 볼보이다. 그래서 고속도로를 달린다면, 운전에 집중하기보다는 ACC를 비롯한 첨단 인텔리세이프(IntelliSafe) 시스템을 작동시키고 일상에서 축적된 피로를 조금은 풀 것을 권한다. 운전자의 실력과 볼보의 잠재 능력을 발휘하는 곳은 목적지에 거의 다 와서 즈음 나타나는 산길. 천연의 헤어핀과 연속적인 높낮이가 있는 이곳은 볼보가 가진 역동적인 능력을 시험하기에 딱이다.

물론 이런 곳에서는 아무래도 세단인 S90이 좀 더 안정적인 움직임을 보여주지만, XC90도 꽤나 경쾌하게 달릴 수 있다. 2m에 가까운 폭과 5m에 가까운 길이의 육중한 SUV이지만, 차체 크기보다 한 체급 작게 느껴지는 스티어링 반응을 갖고 있기에 이런 와인딩에서 충분한 능력을 발휘한다. 차체가 사각형으로 잘 다듬어져 있기에 차선 내에서 라인을 그리고 움직이는 것이 전혀 부담되지 않는다. 이 능력은 골목길을 빠져나갈 때도 유용하다.

누군가가 꿈꾸는 플래그십, S90어느새 바깥에는 벚꽃이 떨어지고 있다. 추운 겨울이 오래 지속되는가 싶더니 어느새 봄이 찾아왔고 지금은 그 봄이 져 가고 있는 중이다. 앞으로 또 더운 계절이 다가오겠지만, 지금은 그런 것을 잊어버리고 아름다운 벚꽃을 즐기고 싶다. 한동안 잊고 살았던 풍광을 즐기다 보니 어느새 새로운 차가 준비되었다는 연락이 왔다. 아쉽지만 이제는 돌아가야 할 시간. 그래도 여유를 두고 돌아갈 수 있으니 다행이다.S90을 타고 돌아가는 길, 목마름에 잠시 차를 세웠다가 어떤 이를 만났다. 여유가 생겨 플래그십 세단을 고려 중이라는 그 사람은 한동안 S90을 바라보더니 결심을 굳혔다. 아마 그 매력적인 디자인에 반한 것 같다. 사륜구동 모델이지만 A필러 하단부터 앞바퀴 중심까지의 거리가 꽤 길어 마치 후륜구동 같은 느낌을 보여주기 때문일 것이다. 매력적인 루프 라인과 벨트 라인, 오페라글라스를 품은 C필러의 형상도 말이다.

오랜만에 여유와 즐거움을 누렸다. 그리고 볼보의 무서운 점을 제대로 알게 되었다. 넘치는 출력이 주는 뜻밖의 여유와 그것으로 인해 지킬 수 있는 환경을 볼보는 제대로 알고 있다. 이 매력적인 엔진이 사라지기까지는 10년도 채 남지 않았기에 아쉽기도 하고, 그 전에 즐길 수 있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도 든다. 이제는 볼보를 ‘안전’만이라는 단어로 묶어둘 수 없을 것 같다. 어느새 이토록 매력적인 자동차가 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글 | 유일한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 2024 모터매거진. All rights reserved. ND소프트
모바일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