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RK & DEEP 롤스로이스 컬리넌 블랙배지

  • 기사입력 2021.04.13 10:44
  • 최종수정 2021.06.28 16:46
  • 기자명 모터매거진

완벽한 SUV에 블랙 배지가 붙었다. 우리와 아주 살짝 놀아주려 한다.


압도한다. 세상의 모든 것을 눈빛 하나로 제압해 버린다.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시선이 오만하지 않다. 검은 성이 다가온다. 도로 위에 검정차들이 많지만 그 검정과 결이 다르다. 더 깊고 진하다. 빛을 흡수하는 실력도 비교할 수 없다. 롤스로이스 최고의 SUV 컬리넌과 오늘 하루를 보낸다. 그냥 컬리넌이 아니라 블랙 배지 모델이다. 쉽게 말하자면 블랙 배지는 노멀 모델 보다 살짝 스포티한 맛을 첨가했다고 보면 된다. 반짝이는 크롬 파츠에 블랙을 입혀 더욱 강한 분위기가 흐른다. 롤스로이스 블랙 배지는 1세대 고스트를 시작으로 레이스와 던으로도 출시되었다. 오너드리븐 비중이 높은 젊은 소비자들이 환영했다.

모든 롤스로이스를 타봤지만 블랙 배지는 처음이다. 비단결 같았던 노멀 컬리넌과 얼마나 다른지 궁금하다. 바로 달려보자. 우선 컬리넌은 V12 6.75ℓ 트윈 터보 엔진으로 최고출력 563마력, 최대토크 86.3kg∙m의 파워를 생산했다. 배지가 짙게 물드니 최고출력은 600마력, 최대토크는 91.8kg∙m로 향상됐다. 변속기는 같은 ZF 8단 자동 유닛이 매칭된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5.1초다. 최근 4초대 고성능 SUV가 많아 이 수치가 시시해 보일 수 있다. 참고로 이 차는 롤스로이스이고 공차중량이 무려 2762kg이다. 파워트레인의 괴력이 무게를 무시해버린다.

주차장에서 빠져나와 도로에 진입한다. 벌써 공도 위의 차들이 긴장하기 시작한다. 롤스로이스를탈 때마다 느끼지만 정말 운전하기 편하다. 모두가 양보해준다. 나 홀로 교통 선진국을 누린다. 저속에서 변속기가 울컥거리지 않으니 미끄러지며 앞으로 나아간다. 두툼한 토크가 저회전부터 터져 나와 추월을 한다고 가속 페달을 깊게 밟을 필요도 없다. 발만 갖다 대도 부드럽게 가속한다. 본격적으로 가속 페달을 지그시 밟아본다. 아니 과감하게 몰 거다. 확실히 일반 컬리넌과 달리 엔진 리스폰스가 조금 더 빠르다. 그렇다고 촐랑대지 않는다. 여전히 느긋하지만 템포를 당긴 것은 확실하다. 워낙 노멀 컬리넌이 파워풀 하기에 약 40마력 정도 올라간 것이 체감되지 않지만 재빨라진 순발력만큼은 쉽게 느껴진다.고속도로에서 이 고출력이 더 빛나기 시작한다. 힘이 남아돈다. 속도가 붙어 있는 상황에서 다시 가속, 그리고 또 가속을 해도 거뜬하다. 거기에 고속안정감은 환상적이다. 정확히 기억나지 않지만 노멀 컬리넌의 서스펜션보다 블랙 배지의 것이 단단한 것 같다. 개인적으로 블랙 배지의 세팅이 더 마음에 든다. 그렇다고 승차감을 포기했다는 것은 아니니 오해하지 말길. 롤스로이스치고 단단하다는 것이다. 긴장하고 있는 하체 덕분에 고속에서 차선을 급격하게 이동해도 거동이 흐트러지지 않는다. 이렇게 큰 차로 이 출력을 부담스럽지 않게 세팅한 롤스로이스 엔지니어링이 놀랍다. 그리고 센스 있다. 고성능 트림이라 해서 배기 사운드를 키우는 촌스러운 짓을 하지 않았으니까.  

육중한 덩치를 다스리는 브레이크 시스템도 훌륭하다. 블랙 배지는 캘리퍼 색상을 선택할 수 있다. 시승차는 레드 페인트를 발라놨다. 노즈다이브와 브레이크스티어 현상이 일어나지 않으며 고속에서 강한 제동이 연거푸 들어가도 지치지 않는다. 게다가 코너를 돌면서 브레이킹이 걸려도 차체가 안으로 말리지 않아 마음 놓고 브레이크 페달에 발을 가져갈 수 있다. 페달의 답력은 보통 차 수준이다.잘 달리고 잘 서니 이제 잘 도는지 알아보자. 물론 이 차로 코너를 즐기는 이는 없겠지만 엔진이 캐빈룸 쪽으로 바짝 붙어 있으니 괜히 스티어링 휠을 휘저어 보고 싶다. 코너링 성향은 언더스티어다. 노멀 컬리넌보다 라인을 벗어나는 범위가 작다. 하체를 살짝 만져 놓긴 했다 보다. 복합코너에 차를 넣어봐도 섀시가 엉키지 않는다. 한쪽으로 쏠린 중량을 반대로 넘기는 리듬이 자연스럽다. 스티어링 기어비가 여유롭지만 피드백에는 거짓이 없다. 스티어링 휠 사이즈가 이전 롤스로이스보다 작아진 이유가 있었다. 이러한 장기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암묵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아무튼 차고와 몸무게를 생각하면 준수한 코너링 퍼포먼스다.

이생에 언제 컬리넌 블랙 배지로 이렇게 놀아보겠는가! 신나게 놀았으니 컬리넌 블랙 배지를 감상하기 위해 세울 곳을 탐색한다. 보닛 위에 위풍당당한 오나먼트가 괜히 뿌듯하다. 블랙 배지라 조각상에 어둠이 내려앉아 기분이 묘하다. 우리가 성공하면 보닛 위에 삼각별을 둘 수 있고 업적을 이루면 환희의 여신상을 가질 수 있다. 환희의 여신상이 차를 세울 곳을 안내해줬다. 두툼한 도어를 열고 내려 컬리넌 블랙 배지를 둘러본다.

롤스로이스를 살 순 없지만 만약 고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면 블랙 배지를 선택할 것이다. 포스가 남다르다. 앞서 말했듯이 프런트 그릴, 오나먼트, 배지, 그리고 그 밖에 크롬 등이 블랙으로 마감되니 깔끔하면서 묵직하다. 컬리넌의 실루엣은 직선만을 사용하되 연결점은 부드럽게 깎아 남성미를 풍기면서도 우아하다. 외관에서 시선이 멈추는 곳이 있다. 꽃이 피어 있는 휠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이 근사한 22인치 휠도 블랙 배지에서만 만날 수 있다. 투톤으로 꾸몄는데 멈춰 있을 때나 굴러갈 때, 언제나 보기 좋다.  

다시 실내로 들어간다. 롤스로이스는 도어를 버튼 하나로 자동으로 닫을 수 있다. 이 버튼 하나만으로도 대접받는 기분이 든다. 인테리어는 노멀과 크게 다르지 않다. 시승차는 귀족 컬러 퍼플로 꾸몄다. 흔하지 않은 색이라 이색적이면서 호화롭다. 센터페시아는 대칭형 레이아웃으로 안정감을 준다. 송풍구는 동그랗게 만들어 클래식하고 버튼들이 직관적이다. 시트는 촉감도 좋고 푹신푹신하다. 소파에 앉아 있는 것 같다. 헤드레스트에 새겨진 알파벳 R 두 개는 최고를 상징한다.

당연히 뒷좌석도 넓다. 아니 광활하다. 건장한 성인 남성이 앉아도 다리 꼬꼬 앉을 수 있다. 아쉬운 것은 등받이 각도 조절이 되지 않는다. 세팅된 각도가 적당히 누워 있어 불편하진 않지만 롤스로이스라면 조금 더 눕고 싶다. 트렁크 공간은 600ℓ로 큼지막해 짐 가득 싣고 멀리 여행 갈 수 있다.

꿈의 차다. 도로 위에 기고만장한 럭셔리 SUV들을 고개 숙이게 만든다. 물론 가격 차이도 엄청나다. 배지값을 제외하더라도 차에 사용된 소재와 주행감만 놓고 봐도 가격 차이는 수긍이 된다. 이러한 움직임은 롤스로이스 외에는 불가능하다. 잡소리와 외부소음이 1도 들리지 않고 새로 깐 아스팔트 길을 새 타이어로 시속 10km로 달리는 그 느낌. 컬리넌은 거친 시멘트 고속도로 위를 시속 110km 이상 달려도 그 느낌이 전해진다. 과장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 그렇다. 바퀴 달린 것 중에 최고 위에 있는 차의 수준이 그러하다. 그 컬리넌에 블랙 배지가 붙으면 이 기본 성향에 운전자가 가속 페달을 더 밟게 만드는 유혹이 더해진다. 새벽에 유령처럼 다닐 수 있는 컬리넌 블랙 배지였다.

SPECIFICATIONROLLS-ROYCE CULLINAN BLACK BADGE길이×너비×높이  5341×2000×1835mm  |  휠베이스  3295mm엔진형식 ​​​​​​V12 터보, 가솔린  |  배기량 ​​​6750cc  |  최고출력  ​​600ps최대토크  91.8kg·m  |  변속기  8단 자동  |  구동방식  ​​AWD복합연비  5.6km/ℓ​  |  가격  5억3900만원~

글 | 안진욱   사진 | 최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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