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스턴마틴 DB11 AMR, 환상적인 GT카

  • 기사입력 2021.04.11 12:33
  • 최종수정 2021.06.28 16:43
  • 기자명 모터매거진

문짝 두 개, 12기통 엔진, 그리고 후륜구동이다. 이 조합이라면 들어 보지도 못한 브랜드가 만들어도 좋다. 허나 이 차는 애스턴마틴이다.


요즘 다운사이징이다 뭐다 해서 대형 파워 유닛을 보기 힘들어졌다. 작은 배기량으로도 출력을 매콤할 정도로 올릴 수 있기에 큰 엔진의 실용성이 떨어졌다고 할 수 있다. 그렇기에 고배기량 엔진은 거의 멸종 위기에 처했다. 허나 큰 엔진이 주는 감성은 효율이라는 단어로 감출 수 없다. 오랜만에 12기통 스포츠카를 타고 있다. 스티어링 휠에는 근사한 날개 배지가 박혀있다. 바로 애스턴마틴이다. 모델은 DB11, 그것도 AMR(ASTON MARTIN RACING)이다. AMR은 애스턴마틴의 고성능 버전이다. 모터스포츠에서 한가락 하는 애스턴마틴의 튜닝 실력의 진가를 볼 수 있는 모델이다. 노멀 DB11을 타보지 않아 얼마만큼 더 스포티하게 조율했는지 알 수 없지만 일단 밟아보기로 한다.

애스턴마틴 DB11 AMR의 기다란 후드 안에는 무려 12개의 실린더가 일하고 있다. V12 5.2ℓ 엔진에 터빈 두 발을 달아 최고출력 630마력, 최대토크 71.4kg·m의 파워를 생산해 8단 자동변속기를 통해 뒷바퀴를 굴린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고작 3.7초다. 노멀 버전보다 0.2초 빠른 수치이며 최고시속은 334km에 달한다. 브로셔에는 이렇게 적혀 있고 실제로 어떤지 달려보자.

정말 빠르다. 세상의 모든 것을 추월한다. 가속페달을 살짝 건드려도 튀어 나간다. 워낙 배기량이 크다 보니 저회전에서부터 막강한 토크가 터져 나온다. 스피드미터 바늘이 비현실적으로 올라간다. 이 정도 스펙을 가진 슈퍼카를 탈 때와는 조금 다른 주행감 혹은 가속감이다. 잘 달릴 것 같은 녀석이 잘 달리는 것과 설마 했던 녀석이 잘 달리는 것은 다르니까. 곱상하게 생긴 외모 속에 괴력을 숨겨뒀다. 여기에 12기통 만이 낼 수 있는 사운드가 더해지니 천국이 따로 없다. 터보 엔진이지만 음색이 전혀 답답하지 않다. 저속에서는 저음으로 존재감을 알리고 고속에서는 톤을 높여 울부짖는다. 가끔 터지는 백프레셔도 운전자를 흥분시키는 데 일조한다.

변속기는 엔진과 쿵짝이 잘 맞는다. 토크 컨버터 타입이지만 조미료 살짝 치자면 듀얼 클러치 유닛 수준의 변속 속도를 보여준다. 저속에서 울컥거리지 않아 고급스러운 자세를 흐트러트리지 않으며 다운시프트에도 적극적이어서 운전자의 흥을 깨지 않는다. 감탄할 정도는 아니지만 엄청난 힘을 무난하게 처리하는 실력을 갖추고 있다.630마력을 공도에서 전부 사용할 수 없다. 그래도 고속도로를 달려보자. 출력이 출력인 만큼 고속도로에서도 힘은 남아돈다. 오랜만에 이런 슈퍼 GT카를 타니 재미있다. 끝을 알 수 없는 힘을 필두로 마음껏 달려본다. 이럴 수 있는 것은 고속안정감이 뒷받침되기 때문이다. 속도가 올라갈수록 무게중심이 낮아지는 게 느껴진다. 일상 주행에서 괜찮은 승차감을 보여줬던 서스펜션이 고속에서는 야무진 면모를 보인다. 참고로 앞뒤 액슬은 각각 더블 위시본과 멀티링크로 차체와 묶었다.

서스펜션 세팅이 마음에 들어 와인딩을 탈 수밖에 없었다. 1.7t이 살짝 넘는 중량으로 코너에서 어떠한 모습을 보일지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굽이진 길에 진입한다. 초고성능에 후륜구동이라 부담스럽지만 탄탄한 서스펜션을 믿고 들이댄다. 코너에 들어가면서 제동을 걸면 중량이 앞쪽으로 쏠리는 것은 잘 억제했다. 그 때문에 진입속도가 높으며 자연스럽게 라인을 그리기 시작한다. 코너 성향은 언더스티어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곧바로 파워슬라이드를 일으키며 오버스티어를 보여줄 것 같지만, 그런 드라마틱한 상황은 연출되지 않는다. 운전자를 불안하지 않게 하면서 조신하게 코너를 탈출한다.  복합코너에서는 섀시가 엉키지 않고 가뿐히 정복한다. 스티어링 휠의 피드백과 리턴이 빠르고 한쪽으로 쏠렸던 중량을 반대 방향으로 던지는 과정이 매끈하다. 코너 방향이 계속해서 바뀌어도 이 녀석은 전혀 당황하지 않아 운전자가 더 과감해진다.

브레이크 시스템은 단연 최고다. 무시무시한 출력을 다루기에 충분하다. 운전자가 원할 때 원하는 만큼 차를 세울 수 있다. 강한 제동이 걸리더라도 노즈다이브나 브레이크스티어 현상이 일어나지 않는다. 강한 제동이 연거푸 들어가더라도 페이드 현상 없이 지치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코너에서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도 차가 안쪽으로 말리지 않는다. 브레이크 페달은 가벼워 발에 피로를 주지는 않지만 미세한 브레이킹은 힘들다.  훌륭한 퍼포먼스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달리는 재미가 있다. 잘생긴 외모만 가진 줄 알았는데 다른 매력까지 품고 있었다. 외관은 정말 예쁘다. 하이엔드 슈퍼 GT카의 디자인은 이렇게 해야 한다고 애스턴마틴이 제시하고 있다. 롱노즈 숏데크 타입 실루엣에 어느 한 곳 모난 구석이 없다. 유려하고 우아하다. 디자인 완성도가 높은데 기능적인 요소도 잘 녹였다. DB11 AMR에는 거창한 에어로파츠가 달리지 않았다. 그런데도 고속도로에서 뛰어난 공력 성능을 자랑했다. 그 이유는 프런트 펜더와 C필러에 공기를 잘 흘려보낼 수 있는 유도 라인을 마련했기 때문이다. 또한 AMR 버전이라 해서 티 내지도 않았다. AMR의 흔적은 엔진 위에 붙어 있는 배지와 헤드레스트에 수놓은 스티치 정도다.

도어를 연 김에 실내도 둘러본다. 정신 없이 운전하느라 인테리어를 자세히 보지 못했는데 역시 고급스럽다. 이렇게 부드러운 가죽을 아낌없이 사용했다. 심지어 천정도 가죽으로 감쌌다. 센터페시아는 대칭형 레이아웃이고 버튼은 사용하기 편한 위치에 잘 배치했다. 스티어링 휠은 사이즈가 적당하고 그립감이 좋다. 패들 시프트는 컬럼에 고정되어 있는데 크기가 상당히 크고 조작감은 최고다. 철컹철컹 하는 이 느낌 때문에 계속 변속하게 된다. 시트는 컴포트와 스포티한 성격을 적절한 비율로 잘 섞었다.이제 DB11 AMR과 작별할 시간이다. 주어진 하루라는 시간만으로도 이 녀석의 매력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이 장르에 고집스러워 보일 만큼 충실하다. GT카는 장거리를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차를 말한다. 단순히 ‘빠르게’가 아니라 ‘안락하게 빠르게’다. DB11 AMR은 고성능 트림이지만 거친 성격은 죽이고 운전자를 친절하게 대한다. 그렇다고 심심한 것도 아니다. 매력적인 배기 사운드와 12기통이 주는 회전질감만으로 충분히 즐겁다. 앞으로 이런 차는 점점 더 사라질 것이다. 삶이 여유롭다면 늦기 전에 빨리 타봐야 한다.

SPECIFICATION ASTON MARTIN DB11 AMR길이×너비×높이  4750×1950×1290mm휠베이스  2705mm  |  엔진형식  ​​​​​​V12 터보, 가솔린배기량 ​​​5204cc  |  최고출력  ​​630ps최대토크  71.4kg·m  |  변속기  ​​​8단 자동구동방식 ​​RWD  |  복합연비  8.7km/ℓ   |  가격  ​​​​​​​​​-

글 | 안진욱   사진 | 최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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