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한국에서 ‘가성비 수입 대형차’로 인기 있었던 ‘이 차’

  • 기사입력 2021.04.02 14:53
  • 기자명 모터매거진

각 자동차 제조사의 플래그십 모델은 브랜드의 기술력을 총 집합시킨 결과물이다. 때로는 플래그십 모델 만으로 브랜드의 이미지가 결정되기도 하며 소비자들에게 브랜드의 최신 기술을 가장 먼저 소개하는 차량이 되는 경우가 많다. 메르세데스 벤츠의 S클래스, BMW의 7시리즈, 아우디의 A8 등이 그 경우다.
 
폭스바겐 역시 한때 대형 세단을 만들었다. 2002년부터 2016년까지 생산한 페이톤이 오늘의 주인공이다. 고급차 시장에 진출하고자 페르난디트 피에히 회장의 지시로 개발됐으며 S클래스를 타겟으로 잡고 개발했다. 피에히 회장의 주문 역시 까다로웠는데 최고 시속 300km 이상, 외부 온도가 50도라도 실내 온도는 22도로 유지할 것 등이었다. 결과적으로 최고 속도는 시속 약 270km에 가까웠으며 실내 온도 유지 장치 역시 피에히 회장의 주문대로 작동했다.

게다가 차체 비틀림 강성이 37,000Nm/deg에 달할 것도 주문했다. 당시 경쟁 차종들은 25,000Nm/deg 내외였고, 그룹 내 다른 스포츠카 역시 33,000Nm/deg를 넘지 않았다. 차체 강성 에서 오는 내구성 하나만큼은 경쟁자들을 완전히 압도하고자 했던 것이었다. 폭스바겐은 페이톤을 개발하면서 비용을 아끼지 않았다. 기술에서 인테리어 재료, 페인트 품질, 구동계에 이르기까지 라이벌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 위해 많은 돈을 투입했다. 심지어 페이톤을 생산하기 위해 공장을 새로 건설했다. 드레스덴에 있는 공장은 페이톤과 벤틀리 플라잉스퍼 1세대를 생산하기 위해 지어졌다. 공장 건설 비용만 5억 유로를 쏟아부었다. 바닥은 캐나다산 단풍나무로 깔았으며 외벽은 모두 유리벽으로 만들어졌다. 덕분에 투명한 공장 이라는 별명이 붙었으며 새들이 날아와서 부딫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고주파 생성 장치까지 설치해야 했다. 심지어 공장 내 모든 직원들이 흰색 가운을 입고 클래식을 들으며 수작업으로 조립했을 정도였다.

이렇게 만들어진 페이톤은 우선 3.6리터 V6 엔진을 기본으로 제공했다. 또한 V6 엔진을 두개 이어 붙인 W12 엔진도 고를 수 있었다. 비록 페이톤에선 성공하지 못했지만 이 독특한 W12 엔진은 이후 벤틀리와 아우디 A8 등에서 볼 수 있었다. 2003년 V10 디젤과 6기통 디젤 엔진, 8기통 가솔린 엔진도 순차적으로 추가됐다. 또한 에어서스펜션, 4모션 사륜구동 시스템, 고성능 에어컨 시스템 등도 특징으로 꼽을 수 있었다. 페이톤의 성적은 처참한 수준이었다. 대형 세단을 선택하는 소비자들의 눈은 높았고 그들은 페이톤을 선택하지 않았다. 2013년 이코노미스트는 페이톤을 ‘가장 망한 유럽차’로 선정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2004년부터 2005년까지 북미 시장에서는 2,500대 가량 판매했으며 결국 2007년 페이톤은 미국 시장에서 철수했다. 심지어 이 수치는 미국 시장에서 현대 에쿠스의 평균 판매량보다 적은 수치였다. 세계 시장으로 눈을 돌려도 마찬가지였다. 페이톤은 4년간 25,000대를 판매했는데, 드레스덴 공장의 연간 생산 가능량은 약 2만대 였던 것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이런 페이톤이 잘 팔리는 시장이 있었다. 바로 한국과 중국 시장이었다. 이 두 나라의 판매량이 전체 판매량의 절반을 차지했다. 한국 시장의 경우 V6 3.0리터 TDI 엔진이 주력으로 판매됐다. 같은 급의 수입 대형 세단치고 저렴한 가격을 가지고 있었고 우수한 연비 또한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는 요소 중 하나였다. 독일차에 환상이 있던 한국 소비자들에게 흔히 말하는 독삼사 대형 세단 대신 선택할 수 있는 이른바 ‘가성비’ 대형 세단 이었던 것이다. 한국에서는 2014년에 수입을 중단했다. 새로운 모델이 등장할 타이밍을 놓친 탓에 페이톤을 찾는 소비자들이 많이 줄었고 첫 출시 당시보다 소비자들의 눈이 훨씬 높아진 이유도 한 몫했다. 아무래도 폭스바겐이라는 브랜드 밸류가 메르세데스 벤츠 혹은 BMW에 비해서는 부족할 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이후 페이톤의 중고가는 빠르게 떨어졌다. 대형 세단이라는 장르가 원래 감가상각이 크지만 페이톤의 경우에는 그 폭이 훨씬 컸다. 현재 중고 시세는 약 800~1500만 원 사이로 형성되어 있다. 비슷한 시기의 경쟁 모델들과 비교했을 때 약 700~1000만 원 저렴한 수준이다. 그렇다고 페이톤을 덥썩 구매하는 것은 권하지 않는다. 플랫폼을 벤틀리와 공유하다보니 수리비 자체가 아주 비싼 편이고 심지어 잔고장이 심한 차로도 유명하다. 폭스바겐은 페이톤의 후속 모델인 피데온을 2016년부터 판매중이다. 다만 페이톤의 판매량이 높았던 중국시장에 한정한다. 다른 시장에서는 플래그십 모델을 투아렉 혹은 아테온으로 설정한 모양새다.

제조사에서 칼을 갈고 만들어낸 모델이 처참한 실패를 하는 경우는 종종 있다. 안타깝게도 폭스바겐은 플래그십 모델에서 그 실패를 맛보았다. 심지어 대당 3,700만 원 가까이 손해를 보고 판매했다니 폭스바겐 입장에서는 속이 쓰린 자동차이기도 할 것이다. 페이톤을 통해 새로운 미래를 꿈꾸었지만 좌절을 맛본 폭스바겐은 다시 한 번 달콤한 미래를 꿈꾸고 있다. 페이톤을 만들던 드레스덴 공장은 이제 전기차를 생산하는 공장으로 바뀌어 차세대 전기차를 생산하고 있다. 폭스바겐의 꿈이 다시 한 번 이루어질 수 있을지 지켜보자. 글 | 조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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