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터스 DNA

  • 기사입력 2021.03.17 10:14
  • 최종수정 2021.06.28 16:33
  • 기자명 모터매거진

케이터햄 슈퍼세븐 & 웨스트 필드 메가부사 & 로터스 엑시지 스포츠 410

순수한 스포츠카란 무엇일까? 사람마다 정의가 다를 수 있지만, 로터스라는 대답이 가장 현명하다. 로터스 창립자 콜린 채프먼(Colin Chapman)는 스포츠카는 무조건 가벼워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그를 추종하는 브랜드가 케이터햄과 웨스트필드다. 60년이 넘은 로터스 세븐을 가지고 자신의 색을 입힌 두 브랜드다. 로터스 엑시지가 주관하는 이번 기획으로 케이터햄과 웨스트필드가 한자리에 모였다. 명품 장난감 3대가 모여 있는 것만으로 장관을 이뤘다. 

CATERHAM SUPER SEVEN 

난 레고 마니아다. 특히 레고로 차를 만들기를 좋아한다. 얼마 전 노란색 케이터햄을 만들었다. 케이터햄은 우리가 생각하는 오픈휠 스포츠카의 전형적인 디자인을 보여준다. 작고 가벼운 것을 무기로 트랙에서 환상적인 움직임을 보여줘 인기가 높다. 케이터햄은 퓨어 스포츠카를 대표하는 로터스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다. 먼저 로터스 창립자 콜린 채프먼은 1957년 로터스 세븐 시리즈 1을 제작했다. 지금 머릿속에 떠오르는 그 모양의 원조가 이 모델이다. 이 차는 민첩한 운동성능에 정비도 편하며 거기에 가격까지 저렴해 스피드 마니아들에게 큰 인기를 얻었다.

이러한 폭발적인 반응에 힘입어 1960년에 시리즈 2, 1968년에 시리즈 3, 그리고 1970년에 시리즈 4를 발표했다. 이 당시 케이터햄은 로터스 세븐의 딜러였다. 로터스가 더 이상 이 모델을 생산하지 않겠다고 하자 케이터햄이 지속적인 제조할 수 있는 권한을 구입했다. 이때가 1973년이다. 케이터햄은 세븐 시리즈 4 모델을 그대로 판매했으나 반응이 시원치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역으로 시리즈 3 모델로 판매 전환했다. 1974년 세븐 카즈 리미티드(Seven Cars Limited)라는 모델명으로 21대를 만들었다. 이 중 20대는 포드에서 가져온 1.6ℓ 트윈 캠 엔진은 사용했고 레이스카로 쓰일 1대는 알파로메오 2.0ℓ 트윈 캠 엔진을 박았다.  

작은 차에 매콤한 맛을 보여줘 다시 판매에 불이 붙었고 지금까지도 이 레이아웃은 이어지고 있다. 관 모양의 섀시에 2시트 만을 달고 있는 케이터햄의 보디는 모델에 따라 FRP 혹은 카본 파이버로 만들어진다. 강한 엔진이 필요하지 않다. 공차중량이 500kg 정도이기 때문이다. 경량화를 위해 오디오 시스템, 에어컨, 내비게이션 등은 모조리 뺐다. 게다가 주행안정화장치 및 ABS, 그리고 에어백도 없어 수준 높은 드라이버에게만 스티어링 휠이 허락된다.이러한 케이터햄을 공도에서 보기는 어렵다. 이번 기획으로 생애 처음으로 케이터햄을 만났다. 촬영 협조를 해준 차주가 가져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녀석이다.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다. 트랙데이 히어로를 실제로 만나니 감회가 새롭다. 촬영을 함께 한 모델은 세븐 기본 트림이다. 롱노즈 숏데크의 진수를 제대로 보여준다. 머플러가 중통부터 차체 옆으로 빠져 있는 데다 오픈휠 타입이라 클래식한 분위기가 물씬 흐르고 의도적으로 페인트가 발리지 않은 차체가 매력적이다. 있을 것은 다 있다. 헤드램프도 있고 방향지시등도 있고 사이드미러까지 있다.  

생각 보다 훨씬 차체가 작다. 로터스를 시승할 때마다 타고 내리기 어렵다고 했는데 케이터햄 앞에서는 엄살이다. 키 180cm 성인 남성이 입장하기도 앉기도 힘들다. 서양인들이 어떻게 이 차를 타는지 궁금할 정도다. 겨우 앉았다. 운전석은 영국 태생답게 우측에 있고 스티어링 휠은 작다. 너무 작아 주차를 할 때는 힘들지만 코너를 탈 때는 정말 재미있을 것이다. 차가 워낙 가벼워 파워 스티어링이 아님에도 쉽게 돌아간다. 또한 파킹 브레이크를 채우지 않으면 한 손으로 차를 밀어도 잘 움직인다. 날씨 때문에 직접 몰아 보진 못해서 아쉽지만 분명 재미있을 것이다. 다음에 꼭 좋은 날 타고 글을 한 번 더 쓸 수 있길 바란다.

WESTFIELD MEGABUSA이름도 생소하다. 자동차 마니아라 자부하지만, 웨스트필드는 이름만 들어봤지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인터넷에 수없이 검색해 봐도 정보가 없다. 그만큼 희귀한 브랜드다. 웨스트필드는 케이터햄처럼 로터스 세븐의 제조 라이선스를 얻은 브랜드다. 1982년 크리스 스미스(Chris Smith)는 영국에 웨스트필드를 설립한다. 웨스트필드 배지를 달고 로터스 세븐을 만들었다. 허나 문제가 생겼다. 케이터햄과 유사한 스타일과 구성으로 키트를 제조했기 때문이다. 케이터햄은 웨스트필드에 소송을 걸었고 웨스트필드는 패소하게 된다. 이후 웨스트필드는 로터스 세븐의 디자인을 살짝 바꿨다.웨스트필드는 캐이터햄이 사용하는 알루미늄보다는 로터스가 전통적으로 엘리스, 에스프리, 엘란 등과 같은 모델에 사용한 유리 섬유(FRP) 보디 방식을 사용했다. 또한 SDV(Single Donor Vehicle) 키트로 소비자들의 편의성을 높였다. SDV는 쉽게 말해 대중적인 양산차의 파워트레인과 부품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운전자는 완성도 높은 파츠를 가질 수 있고 추후 메인터넌스 또한 유리하다. 웨스트필드에서 준비한 키트는 마쓰다 MX-5, 포드 시에라, 그리고 혼다 S2000 등이 있다.

고급스러운 베이지 페인트가 차체에 발린 웨스트필드가 눈앞에 있다. 프런트 펜더는 노란색으로 포인트를 줘 더욱 장난감차처럼 보인다. 정확한 모델명은 웨스트필드 메가부사(Megabusa)다. 전체적인 실루엣은 케이터햄과 비슷한 것 같지만 분위기가 살짝 다르다. 케이터햄이 레이스카 같다면 웨스트필드는 GT카 향이 난다. 옆에 있는 케이터햄은 휠과 펜더가 함께 움직이는 완벽한 오픈휠 타입이라면 웨스트필드의 펜더는 차체에 고정식이라 오픈휠이라 부르기는 어려울 것 같다. 휠은 스포티한 5스포크이며 14인치다. 14인치라니. 귀엽다. 앞뒤 바퀴 사이에는 요즘은 볼 수 없는 사이드 머플러가 달려 있다. 캐빈룸과 극도로 가까워 배기 사운드가 노골적으로 전달된다.헤드램프처럼 동그란 사이드미러는 각도 조절도 되며 크기는 작지만 생각보다 사각지대가 없다. 몸을 실내로 구겨 넣어 들어가 본다. 실내 역시 케이터햄과 느낌이 다르다. 눈과 손이 닿는 곳이 가죽으로 감싸져 귀족의 마차를 탄 듯하다. 게이지는 스피드미터와 태코미터를 비롯해 연료 등 차를 운행하는 데 있어 꼭 필요한 정보는 다 알 수 있다. 우드 스티어링 휠은 보기에도 근사하지만 실제로 잡아보면 옛날 할아버지들의 손맛을 알 수 있다. 사진으로 보면 직경이 커 보이지만 차가 작아서 그렇다. 보통 차의 스티어링 휠 정도의 크기다.

기어노브는 메탈 볼인데 스트로크가 짧아 빠른 변속이 가능하다. 시트는 의외로 착좌감이 좋다. 사이드 볼스터가 없지만 이미 몸이 차체에 완벽하게 끼워져 있기에 필요 없다. 깜빡할 뻔했다. 웨스트필드에는 오디오 시스템이 달려있다. 웨스트필드의 캔버스톱을 열고 영국 록을 들으며 즐기는 오픈에어링. 얼마나 근사한가!기다란 보닛 아래에는 4기통 1.3ℓ 엔진이 담겨있다. 여기에 6단 수동변속기가 매칭된다. 요즘 차들과 비교하면 파워가 빈약해 보이지만 이 녀석의 공차중량은 고작 440kg이다. 즉 요즘 차보다 화끈하게 달릴 수 있다. 웨스트필드 역시 고약한 날씨 때문에 직접 운전해 보지 못했다. 꼭 잠깐이라도 타서 독자들에게 소감을 전하겠다.

LOTUS EXIGE SPORT 410이번 기획의 주인공은 로터스다. 케이터햄이나 웨스트필드 모두 로터스가 없었더라면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케이터햄 슈퍼 세븐과 웨스트필드 메가부사가 자신보다 나이는 많지만, 순수 혈통을 과시하며 웃고 있는 로터스 엑시지가 있다. 풀네임 로터스 엑시지 스포츠 410이다. 성격은 극한의 하드코어 버전인 컵 430과 스포츠 350 중간에 위치한 모델이다. 관계자에 따르면 컵 430 쪽으로 치우쳐 있다고 한다.디자인 자체만으로도 시선을 강탈하는데 거기에 형광 그린 페인트가 더해져 도로 위에 존재감이 상당하다. 차체 크기가 작지만 워낙 멋있게 생겨 위풍당당한 포스를 풍긴다. 고성능 모델답게 카본 파이버로 만든 프런트 스플리터와 리어 스포일러가 더해져 미적지수와 다운포스를 동시에 올렸다. 외관은 이 정도 둘러보고 실내로 들어가 본다.

앞서 케이터햄과 웨스트필드에 앉아 본 후 로터스에 타니 거짓말 살짝 보태어 세단처럼 타기 편하다. 작은 스티어링 휠, 유격이 느껴지지 않는 기어노브, 그리고 답력이 무거운 클러치는 로터스임을 운전자에게 알려준다.시트와 룸미러를 조절하고 출발할 준비를 한다. 오랜만에 수동변속기 차를 모는지라 벌써부터 흥분된다. 도로로 나가자마자 달려본다. 엔진 리스폰스가 정말 빠르다. 터보 대신 컴프레서를 단 효과다. 빠르긴 진짜 말도 안 되게 빠르다. V6 3.5ℓ 슈퍼차저 엔진은 최고출력 410마력, 최대토크 42.9k∙gm의 힘을 뒷바퀴로만 전달한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3.3초, 최고시속은 290km에 달한다. 변속기는 6단 수동 유닛이다. 여기에 트랙션을 유지하면서 속도가 올라가니 더욱 마음에 든다. 로터스를 경험하지 못한 이들은 로터스는 뒤가 쉽게 이리저리 춤출 거라 생각하지만 실제로 전혀 그렇지 않다. 로터스는 가볍고 최고의 그립을 가지고 있다.

이 그립으로 코너를 타보자. 코너링 성향은 완벽한 뉴트럴이다. 원하는 라인을 엑시지는 그대로 재현한다. 스티어링 기어비도 촘촘해 섬세하게 그릴 수도 있다. 워낙 댐퍼 스트로크가 짧고 스프링 레이트가 강해 좌우롤링 또한 거의 없다. 아니 전혀 없다. 덕분에 복합코너를 아무렇지 않게 빠져나간다. 한쪽으로 쏠린 중량을 반대쪽으로 쉽고 빠르고 자연스럽게 넘긴다. 코너링 한계가 워낙 높아 아마추어 드라이버는 이 녀석의 끝을 알 수 없다.브레이크 시스템도 완벽하다. 출력을 손쉽게 제어한다. 기본적인 제동성능도 우수하고 브레이크스티어와 노즈다이브 현상을 잘 억제했다. 게다가 고속에서 강한 제동이 연거푸 들어가더라도 지치지 않는다. 코너를 돌면서 브레이킹이 걸려도 차체가 안으로 말리지 않는다.  

역시 이번 기획의 주인공답다. 진짜 스포츠카가 무엇인지 궁금하면 로터스를 타 보면 된다. 케이터햄과 웨스트필드가 로터스의 피가 흐르긴 하지만 진짜 로터스는 아니다. 케이터햄과 웨스트필드를 타 보지 않아 정확히 비교할 순 없지만, 로터스만큼 완벽하게 순수하진 않을 것이다. 내년부터 로터스는 양산형 전기차도 출시하고 라인업도 대중적인 방향으로 확장한다고 한다. 지금의 로터스 모습을 잃을까 걱정되기도 하지만 창립자의 고집을 지독하리만큼 지키는 브랜드가 로터스이기에 한편으로는 기대가 된다.

글 | 안진욱  사진 | 최재혁  협조 | 더원 클래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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